지나간 겨울의 추억
밥은 세미-오페라[i] '아더 왕'에 나오는 헨리 퍼셀[ii] 작곡, 존 드라이덴 작사의 '콜드 송' 악보를 나눠주었습니다. 콜드 지니어스[iii]가 무덤에서 소환되고, 우리가 연주하기 시작하자 집안 어디에선가 문이 세차게 쾅 소리를 내며 닫힙니다.
북반구의 추운 몇 개월은 지구 자전축이 운이 좋게도 약간 기울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허용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추운 계절은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겨울은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우리 신화의 일부분이며, 우리를 둘러싼 현실뿐만 아니라 상상력의 풍경도 변화시킵니다.
낮과 어둠 그리고 영원한 계절의 순환이라는 리듬의 근저에는 빛과 어둠, 열기와 냉기라는 양극단의 원형이 암호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모든 지상의 생명체들처럼 그 원형을 인지하고 그것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유난히도 추운 날입니다. 하지만 저의 어린 시절에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길고 훨씬 더 추웠던 것 같습니다. 이 21세기의 겨울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나버리는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리는 일도 드물고, 눈이 내리더라도, 금방 녹아버립니다. 지구온난화가 돌아오는 겨울을 매년 단축시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온난화가 지구의 계절적 리듬을 바꾸고 있는 만큼 인간의 심혼(心魂)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중대한 무엇인가가 우리에게서 박탈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수시로 악천후가 일어나고 야외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고생이지만, 이 계절에는 원초적이고 신비하고 대체 불가능한, 황량하면서도 엄청나게 아름다운 무엇이, 우리 자아의 신화를 유지하고 우리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데 빠질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 내부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서 여름철의 빛, 에너지, 온기뿐만이 아니라 겨울철의 어두움이 필요하기나 한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11월부터 3월까지의 긴 암흑의 시간들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둠속에서 등교하고, 어둠속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에서 깨면, 창문 안쪽에 낀 서리를 손톱으로 긁어 사람얼굴을 그립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옷을 갈아입고, 두툼한 모직을 겹겹이 껴입고, 어두운 거리를 유령처럼 걸어갑니다. 추워서 입김이 나오고, 길은 얼음투성이입니다. 철로가 놓인 다리에는 신기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직도 깜깜한 아침에 아버지와 우유배달을 돌면서 보았던 하얗게 쌓인 눈이 기억납니다. 텅 빈 거리를 조용히 지나가다 보면 길과 정원에 우리 발자국만 찍혀있고, 우리 손에는 소리가 죽어 둔탁하게 절그럭거리는 우유병이 들려있었습니다. 아침 우유배달이 끝나도 태양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저 창백한 달만이 헐벗은 나무나 하얗게 변한 지붕 위에 떠 있었습니다.
겨울밤이면 저는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저희 집 아래층에 가끔 혼자 깨어있으려고 했습니다. 저희 집의 유일한 난방장치인 연탄난로가 거기 있었죠. 등을 끄고 난롯가에 앉아서, 붉게 타오르는 연탄과 명멸하는 불빛, 방안을 가득 채운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 장소에서는 귀신이나 유령같은 것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야말로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마술처럼 바뀐 풍경과 이상하도록 조용한 설원의 계절이었습니다.
…투스카니에서의 그날 저녁, 바깥에서는 여전히 세찬 바람이 울부짖고 있는 가운데, 저는 캐스린에게 이번 프로젝트에 걸맞은 뉴캐슬 노래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아주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가 '눈은 곧 녹는다네'라는 곡을 불러주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모르는 곡이었는데, 캐스린과 줄리안이 제게 끈기 있게 가르쳐 주었죠. 이 곡은 겨울 노섬벌랜드[iv]의 평야처럼 차갑고 황막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향수로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trans. by J & M
[i] 16~17세기 영국에서 성행한 연극, 노래, 춤이 결합된 공연예술
[iii] 세미-오페라 '아더 왕'에 나오는 인물. 오페라 속에서 죽음에서 소환되는 인물로 그려짐. ‘콜드 송’은 극중 ‘콜드 지니어스’의 독창을 지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