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야기
첫 번째 천 년이 지난 후로 크리스마스는 겨울을 정의하는 중심적인 축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 속에는 많은 마술적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우선은 고대의 예언자들에 의해 예고된 사건이었고, 그리스도는 동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말구유 위에서 태어났습니다. 동쪽에서 신비의 별이 나타났고, 세 명의 현자가 그를 경배했고, 헤로데 임금은 죄 없는 아기들을 학살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사이의 '처녀잉태'라는 수수께끼도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탄생이야기는 무수한 음악가들과 시인들에게 수 세기 동안 영감을 주었습니다. 저도 이 주제를 경외감과 격식을 갖춰 다루고 싶었습니다. 제 자신의 개인적인 불가지론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 미술의 신성한 상징들이 제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적인 어휘들 가운데 장미는 흠 없이 완벽한 것을 상징했고, 그래서 장미가 그리스도와 성모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음반 중 두 곡은 장미를 중심 은유로 사용하고 있는데, 둘 다 이사야서의 구절에서 가사를 따왔습니다("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i]). '보라, 여기 장미가 어떻게 피어나는지를'은 15세기 독일 캐롤로, 1세기 뒤에 프라이토리우스[ii]에 의해 화음이 덧씌워졌습니다. '그런 미덕을 지닌 장미는 없다네'는 같은 시기에 씌어진 영국 캐롤입니다. 장미의 은유는 분명히 중세적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이전 시대의 자연숭상의 희미한 느낌 또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의식중에 의미가 연결된 것이 분명하지만, 여러 다른 의미를 하나로 합치는 상징의 힘이 미묘하고도 완강하다는 것도 상기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음반의 곡들 선정하면서, 많은 아름다운 자장가들 - 세속 뿐만 아니고 교회전통에 속하는 것들도 - 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이 음반에 실린 노래들은 어떤 면에서 모두 자장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자장가가 이중성을 띤다는 점입니다. 자장가는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면서 동시에 불안하게 만드는 것도 의도하는 것 같습니다. 피터 워락[iii]이 작곡한 스코틀랜드 노래 '발룰라로우'는, 가사의 측면에서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가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교회선법음계 멜로디와 저음부에서 맞대면하는 Eb음을 볼 때 음악적으로는 이 곡에 어두운 조짐이 아예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와 도미닉 밀러가 함께 작곡한 '보채는 아이를 위한 자장가'도 비슷하게 요람 너머의 어두운 세상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의 메시지'는 원래 바스크[iv] 지방의 캐롤입니다. 이 노래가 담아낸 이미지는 아름다우면서도 무섭습니다. 순종적이고 온화한 마리아 앞에는 불타는 눈빛과 눈발이 휘날리는 듯한 날개를 가진 경외스러운 존재의 방문을 받습니다. '체리나무 캐롤'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인간적인 면모가 매력을 발합니다.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인간적인 성정이 고스란히 노래되고 있기 때문이죠. 이집트로의 도망길에 오른 요셉이 체리를 따 달라는 마리아의 말에 퉁명스럽게 아이의 아버지한테 체리를 따달라고 하라고, 자기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감정이 정직하게 드러나있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군요.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에는 그의 죽음과 부활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암시가 숨어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계절을 노래하는 세속의 노래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겨울이라는 어둠의 중심에 빛과 생명이 존재하고 있고, 또한 편안한 요람 주위에는 항상 어둠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i] 이사야서 11장 1절, 이사이는 다윗왕의 아버지임.
[iii] 영국 웨일즈 출신 작곡가, 음악평론가, 1894-1930
[iv] 피레네 산맥 서부,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 있는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