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석에 새긴 레시피
임재정
벽제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비명과 노래는 어쩌다 한 몸을 나눠쓰게 되었을까?
구두는 각기 하나의 입을 가졌으므로 두 개
벽제는 거대한 헌책방이다; 비탈에 서서 오열을 맞추고 숙연한 서가들을 보라
저 책들은 냉동고를 지나온 적이 있다; 모든 책은 부패에 관한 출렁임을 숨기고 있기 때문
요리를 완성하는 형식; 무덤; History
벽제에 다녀온 이들은
눈물의 둥근 모서리로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지다 돌아간다
밑불을 조절하는 손길처럼 노을이 내린다 경험을 모두 합하면 새카만 어둠으로 세상을 뜸 들인다
완벽했던 요리사 태왕의 요리책 서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일찍이 짐은 요리의 정수였느니’
사랑해; 너의 요리로 남겠어, 공언한 적이 있다
구토는 나를 요리할 때의 내적 갈등을 대리한다; 구두는 두 짝이 한 켤레, 혹은 두 켤레가 한 짝이다; 반지의 서약은 사각형이다
두 무릎을 오늘의 저녁 식탁에 올린 가장의 입이 지워지고 있다
*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비문. 최고의 요리사였던 그의 레시피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선전포고 이전과 이후는 늘 다르지
미리 다퉜어 이틀일 수도 삼천 년일 수도 있으니까, 오전은 금세 무거워지거든 밑반찬 삼을 서로를 위해 가벼워지자 했지 오븐의 인스턴트 음식이 익듯, 지금은 수런대는 풀잎이라 좋아, 진중해지라고 어른들은 말하지만 덧날 가려움도 있다고 입술을 삐죽대지 그러나
혀를 깨물어야 견디는 아토피의 세계, 손톱은 무럭무럭 자라고 현명한 우린 상대의 손톱 밑에서 발견될 권리가 있지
새들이 떠난 둥지처럼
거기서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는 깃털의 천진난만
혹 이런 거 아닐까, 내가 빠져나온 침대인데
거기 머물던 짐승의 흔적
저, 그것은 제 몫의 허물이 아닙니다만
하루하루 치고받다가 우린 마침내 제 얼굴을 벗어던질지도 몰라, 가면 준비하셨나요? 오늘의 드레스코드지 빈정댄다는 건 사랑한다는 거 아니겠어? 폭탄을 터트릴까 봐 재갈도 챙긴다 역시 가려움은 밑천이자 빌미
언제 또 이 모가지 긴 취기를 기울여 입 맞출까
한바탕 폭우가 들이치겠지 우린 퇴로를 지우고 영악해질 필요도 있다 이인 일각은 어쨌거나 일각 가려운 국면이 가득한 삼천육백오십면체의 소름으로 대기 중인 정수리에 뿔 하나 달고
이제 둘은 부부임을 선언합니다
-신생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