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후 네 시에는 어울리지 않아 외 1편
낮아진 하늘에 눌린 나뭇가지가 유리면을 부풀린다
바닥에 쏟아진 빛이 마루 골을 따라 흐르고
허리를 굽히면 상반신은 유리창 저쪽에서 비에 젖을까
전기포트 스위치를 넣으면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뉴스가 켜진다
고단했던 골목의 발자국들이 흙물과 떠내려간다
거실은 얼굴을 감싸는 척 눈두덩을 지그시 눌러도 좋은 곳
물은 정말 100℃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까
생각도 아무 사명감도 없이 별은 눈꺼풀 속에서 가만히 떨고
어떤 불쌍한 천체는 숨을 죽이고 구름 정수리를 더듬고 흐릿한 것을 사랑하는 나를 껴안다가 지위를 잃고 인간적으로 사라진다
거기는 오랜 밤이지, 먼지 앉은 고지서들이 쌓인 현관이지
입속을 맴도는 치약 냄새처럼 저녁이 온다
전장에 다리를 두고 온 병사처럼 그는 등만 남는다
눈을 믿어요?
나흘 전 쌓인 눈 위로 눈이 내린다 순백이 밀어낸 얼룩은 순백과 함께 있을 때 얼룩으로 완성된다 모든 걸 감추며 싸락, 우리들의 그늘 감추며 싸라락, 가슴에도 죽은 나뭇가지 위에도 자동차 위에도
강아지 뛰고 아이들은 달립니다
앞으로, 뒤돌아보지 않아 앞이 되는 어디론가 날아오를 것처럼
하얀 입김 공기 속으로 흩어집니다 쌓인 눈 위로 다시 덮인 눈이 녹기까지
우린 늘 주위보다 춥고 더러움을 삼켜 조금 더 더러울 동안
주머니 속 동전 모서리에 길을 묻고 온기를 얻고 걷는다 뽀드득 뽀드득, 제 무게가 지르는 비명에 귀 기울인 채
평화로운 눈길을 미끄러워서 하얀 종교처럼 걷습니다
-실천문학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