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굶어도 배고프지 않은 그런 때가 있다 뭔가 휙, 지나가버린 때 주방 구석에 앉아 상추쌈 먹으며 울었다 쑥갓 두어 잎 얹어 먹으며 울었다 푸성귀처럼 퍼렇게 살아 있으리라 믿지는 않았지만 지나갔다, 막막해서 입 미어지도록 상추쌈 쑤셔 넣었다 혀를 깨물었다 허가 씹혔다 치명적인 오류가 생겼을 때 아무 키나 누르면 회복되기도 하지만 그나마 남은 것 지워질까 봐 노심초사 상추쌈만 꾸역꾸역 넣는다 쌈장에 찰지게 버무려진 환(幻)이라는 것, 마늘 환(幻), 양파 환(幻), 참깨 환(幻) 꼭꼭 씹어 먹는다 내가 먹은 게 너였나 너가 먹은 건 나였나
가부좌 틀고 앉아 들었다 놨다 한 너, 잘 가라, 환(幻) 속치마 레이스 같은 환(幻)을 걷어내면 문득 실핏줄 아른아른 비치는 늙음이 다가와 있을 거다 여기서부터 가파르다 단물 빠진 거친 밥상 위 이제부터 제대로 맛을 아는 때라고 깊은 맛은 씹은 뒤에 안다고 넌지시 또렷하게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