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의 논쟁이 일어나고 우리는 소수와 다수로 갈라졌습니다. 소수가 헌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다수는 헌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헌법을 따라야만 정부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소수가 헌법을 따르지 않고 탈퇴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파괴와 분열의 전례를 만드는 것입니다. (중략) 헌법상의 문제는 연방 대법원의 판단이 소송 당사자들에게 구속력을 가집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정부의 다른 기관으로부터 존경받아야 합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특정 사례에 틀릴 가능성도 있지만 그로 인한 폐해는 그 사례로 국한됩니다. 또한 잘못된 판결은 나중에 무효화함으로써 특정 사례로 국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이 비록 잘못됐다 할지라도 거부할 때의 해악보다 수용할 때의 부작용이 적다는 것입니다. (중략) 궁극적인 정의는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자신감을 갖고 지켜보면 안 되겠습니까. 이보다 더 좋은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느 편이라도 자신들이 옳다는 확신이 없겠습니까.
진실과 정의는 미국 국민들의 판단에 의해 승리할 것입니다.(중략)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상했다고 애정의 유대를 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의 선량한 천사들의 손길이 반드시 다시 와 닿을 것이며 그때 연방의 합창이 울려 퍼질 것입니다.”
1861년 2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취임하기 2주 전, 사우스캐롤라이나·루이지애나·플로리다·조지아·앨라배마·텍사스 등은 ‘미동맹합중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이라는 국가로 분리 독립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미동맹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임한다. 미국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서 링컨 대통령은 취임하며 이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의 역할, 국가의 개념, 국민들의 역할과 정체성을 논리적으로 전개했다.
링컨은 “미합중국의 평화·번영·안전이 위기에 처했습니다”라며 당시 위기 상황을 규정한다. 그리고 “연방 정부가 적합하지 않다고 일부 계약자들에 의해 무효화될 수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분리주의자들의 핵심 이념은 무정부주의입니다’라고 분리 독립한 남부의 잘못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다수가 단지 수적인 우세만으로 헌법상에 부여된 소수의 권리를 빼앗는다면 도덕적인 관점으로 혁명을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침해된 권리가 중대하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소수의 권리와 개인의 기본권에 대한 가부가 헌법상에 명백히 보장돼 있습니다”라며 소수의 권리를 중시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링컨은 ‘헌법상의 견제와 균형의 제약을 받는 다수, 여론과 국민 정서에 유연하게 부합하는 다수야말로 민주 시민으로서 진정한 주권자입니다. 이러한 다수를 거부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정부나 폭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수의 원칙을 부정하면 무정부나 폭력밖에 남지 않습니다”라며 다수의 원칙도 천명하고 있다.
대법원과 국민, 그리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 역할을 일목요연하게 재조명한다.
링컨은 ‘헌법상의 문제는 연방 대법원의 판단이 소송 당사자들에게 구속력을 가집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정부의 다른 기관으로부터 존경받아야 합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비록 잘못됐다 할지라도 거부할 때의 해악보다 수용할 때의 부작용이 적다는 것입니다”라며 대법원의 판결을 중시한다.
링컨은 ‘대통령의 모든 권위는 국민에게서 나오며 국민은 대통령에게 나라의 분리를 결정하는 권한을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원한다면 그런 권한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행정부의 수반은 그 결정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의무는 현 정부를 인수한 상태에서 관리하고 후임자에게 손상되지 않은 채 인도하는 것입니다”라며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서로 적이 돼서는 안 됩니다. 감정이 상했다고 애정의 유대를 끊어서는 안 된다”라며 상생의 정치를 강조한다.
링컨의 연설은 대부분 논리적이며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 이념과 철학을 강조하는 명연설들이다. 그중 취임 연설은 남북전쟁의 목전에 민주주의와 국가·대통령, 그리고 국민의 개념을 잘 정리한 명연설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