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공유
연로해 가는 나이를 생각지 않는다. 마음은 그 시절로 돌아 가 있다. 중학교 2학년15세 소녀 셋은 공모를 했다. 부모님이 알면 분명히 호응 안 해 줄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린여자 애들이 겁도 없다고 혼 줄을 낼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갓집 주변의 저수지를 친구들에게 소개했고, 그곳으로 캠핑을 가서 낚시도 하자고 쏘삭였다. 세 소녀는 머리를 맞대고 일을 꾸몄다. 의기투합한 우리는 방학을 기해 실천하기로 했다. 한 친구는 오빠의 텐트를 몰래 갖고 온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오빠의 낚싯대를 갖고 온다고 했다. 드디어 작당을 한 우리는 오빠들의 중요한 재산목록들을 무거운 줄도 모르고 몰래 갖고 강남의 고속터미널로 모였다. 외갓집이 있는 안성을 가는 덜컹거리는 시골길에선 멀미가 항시 심했는데 긴장을 하고 있어선지 그날은 메슥거림도 멀미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두어 시간을 달려 외갓집에 당도하니 무조건 반겨주시는 외할머님과 할아버지만 계실 줄 알고 갔는데 대학생인 외삼촌이 와 있었다. 외삼촌의 꾸중이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겁이 나선지 텐트를 갖고 온 친구는 석유를 모두 솟았다. 외삼촌은 업어진 석유보다 겁 없이 산에다 텐트를 친다고 하는 엉뚱하고 맹랑한 세소녀의 행위에 실소를 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산에 뱀이 있고 산소가 가까이 있어서 무섭다고 절대 안 된다고 말리셨다. 그러나 외삼촌은 오셔서 텐트를 쳐주고 주변에 뱀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약을 뿌려주었다. 그렇게 두렵고 무섭던 산소 앞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은 배를 타고 셋은 낚시를 갔다. 어릴 때 낚싯배를 저어본 노젓는 솜씨를 맘껏 발휘하며 친구들을 데리고 저수지 가운데의 섬으로 데리고 갔고 본격적으로 낚시를 한다고 자리를 잡았다. 헌데 문제는 살아있는 꿈틀대는 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기는 것이었다. 서로 미루다 낚시대를 갖고 온 그 친구는 용기있게 살아있는 지렁이를 잡고 싱갱이를 하다가 드디어 사단이 나고 말았다. 뭉클대는 지렁이가 손으로 기어 올라가 가선지 배에서 펄쩍펄쩍 뛰며 비명을 질렀다. 배는 기우뚱해 지고 우리의 두려움은 극에 달하였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산다.”고 했던가. 헌데 추억 속에 석유를 모두 쏟고 외삼촌이 무서워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친구는 외국에서 살고 있어서 만나기 쉽지 않았다. 이십여 년 전에는 찾아가서 만나고 그 후 서로가 연락이 두절되어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지인들만 만나면 그 친구의 소재를 확인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었다. 그러나 만날 수 없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 것이 미국은 여자의 본 이름으로 한인 주소록에 등재가 안 되고 남편의 성을 붙이기 때문인데 남편 성을 확실히 몰랐기 때문에 찾기를 포기 했었다.
그러나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것을 어제 여러 사연들과 연결되어 내게 찾아온 그 친구를 보면서 이래서 “기적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어제 오후 4시쯤 해설사로 근무하는 남자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연은 친구에 후배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친구가 방송에서 보았는데 내가 혹시 칠장사에서 외국인들에게 해설을 하지 않았느냐, 미국에서 온 사람이 해설한 내가 자기가 아는 사람 같다며 나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는데 가르쳐 주어도 되느냐는 내용이었다. 찾는이의 이름을 들으며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찾던 그 친구였다. 그런데 그 방송은 이년 전 촬영한 것이었는데 뜬금없이 이 시점에 보았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시기에 그의 남편이 안성에 내려 와 지인들을 통해 나를 확인하고 찾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끊어진 인연이 연결된 것이었다.
친구는 광복절 연휴 막히는 길을 마다않고 춘천에서6시간을 걸려서 밤10시30분에 도착했다.
우리는 밤을
꼬박새우며 이십여 년의 세월의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는 그 소녀 시절로 돌아가 과거 속을 헤집고 다녔다. 졸업할 때 우리는 해마다 광복절 휴일 날 성북구 청수장의 정능의 포도밭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다음해 포도밭에 갔을 때 아무도 오지 않았었다. 그 후 각기 자기의 길을 가느라 소녀들의 약속은 까맣게 잊혀졌다.
중년을 넘어 많은 세월을 얼굴에 담고 이제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오래 전 만나자고 약속했던 공휴일 광복절 날이었다. 또 다른 친구도 연결해서 올라가는 길에 만나게 해 주었는데 이 친구도 요즈음 그가 꿈에 보이곤 해서 대사관에 알아보려고 했었다고 하니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이일로 추억을 공유한 친구뿐 아니라 지난 세월 속에 사람들과의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을 하게 되었다. 또한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희망도 보았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며 살아가는 여유가 여유를 만e만들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든다. 폭염주의보가 계속되는 날들이건만 정신은 뿌연 먼지를 닦아낸 듯 맑아지고 마음은 구름가신 하늘을 보는 듯 청결해졌다.
2016. 8. 16. 친구를 보내 놓고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