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큰인물 14
1) 오늘 역사 인물편에는 어떤 분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네 오늘은 학사 김응조선생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 학사 김. 응. 조. 선생의 집안은 어땠는지요?
선생의 본관은 풍산이십니다. 원래 학사선생 집안은 고려시대에는 송도에서, 조선시대에는 한양에서 살면서 대대로 벼슬활동을 하시던 집안이었는데,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안동 오미동에 자리 잡게 됩니다.
3) 안동 오미동이라고 하면,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이 오미동이라는 이름에 학사선생 형제분들과 얽힌 사연이 있다면서요.
학사선생의 아버지는 9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낳았는데요. 13남매지요. 그 가운데 6째가 학사선생입니다. 그리고 형제 가운데 요절한 한분을 빼고 8형제가 모두 소과에 합격했고 그중 5분이 문과에 급제하여 인조임금으로부터 ‘팔련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고 칭찬을 받고 팔련 오계지미에서 다섯 오자에 아름다울 미자의 오미동으로 이름을 씁니다.
4) 그렇다면, 학사 선생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네! 학사 김응조선생은 1587년에 태어나서 1667년에 돌아가십니다. 기록에 보면 영천출신으로도 되어있는데요. 이유는 아버지의 외가 영천인데 그쪽에서 선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6살 나던 해에 7년 전쟁인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16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탈상을 하고 18세 때 학봉선생의 손녀와 혼인을 하십니다. 20살에 다섯째 형과 서미동에 계시던 서애 류성룡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다음 해 1607년에 서애선생이 작고하셔서 안타깝게도 계속해서 배울 수는 없었습니다. 24살 때부터 도산서원과 소백산을 오가며 공부를 합니다. 이때 친하게 지낸 분이 갈암이현일 선생의 아버지, 정부인 장씨의 남편인 석계 이시명선생입니다. 27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그해 10월에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몇 해 후 마지막으로 우복 정경세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습니다. 원래 대대로 수도에서 벼슬을 하던 집안이라 기호학파였으나 학사선생 때까지 몇 대에 걸쳐서 완전히 영남학파의 가장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5) 임지왜란, 인조반정, 병자호란을 다 겪으신 분이시군요. 인조반정이나 병자호란때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선생의 아버지는 임진왜란때에 안동에서 의병에 참가하셨고 선생의 첫째 형은 곽재우장군 밑에서 의병으로 싸웠습니다. 학사선생은 나이가 너무 어렸지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 때에는 북인들이 집권을 하였는데 이때에는 벼슬에 나가기를 꺼리셨습니다. 그리고 인조반정(37세)에 의해 광해군이 물러나고 과거시험을 쳤는데 4등으로 급제하셨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38년 후에 병자호란(50세)이 일어나죠. 병자호란 때는 선생의 둘째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충주에서 전쟁 한 달 만에 항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하게 여기며 안동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때 선생의 동생인 김념조라는 분은 과천현감으로 관악산에서 청과 대치하여 과천을 사수하였습니다.
6) 선생이 스님과 내기를 해서 이겼다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온다면서요. 어떤 일화인지요?
18세 되던 해 소백산의 어떤 절에서 공부를 하셨답니다. 밤 늦도록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정진을 하셨는데요. 한 스님이 자신도 철야 정진을 잘 한다며 잠 안자기 겨루기를 하자고하여 학사선생과 10일 동안 잠을 자지 않기로 약속하였고 9일째가 되던 날 함께 밤을 새우던 스님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답니다. 선생은 태연하게 날이 밝을 때까지 책을 읽어서 겨루기에서 이깁니다. 스님이 일어나서 절하면서 “선생은 이인(異人)이니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7) 스님을 이길 정도라니 대단한데요, 학사선생은 또 검소하기로도 유명하신 분이라면서요?
장례를 검소하게 치를 것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 선생은 50년간 벼슬살이를 하셨지만 늘 청렴하게 생활하였습니다. 관직에 있더라도 재각(齋閣)-제사 지낼 때 쓰는 집-에 있는 것처럼 엄숙한 몸가짐을 가졌고 의복과 음식도 한미한 선비와 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8) 그렇다면, 선생이 남긴 책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소개를 좀 해주시죠.
먼저, <사례문답(四禮問答)>이라는 책이 유명합니다. 이책은 <주자대전>, <퇴계집>, <서애집>, <한강집>, <여헌집> 중에서 관혼상제에 대한 예설만을 모아 분류하고 편집한 것으로 가례에 대한 영남 퇴계학파의 설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그리고 <서애류선생변무록(西厓柳先生辨誣錄)>라는 책을 지으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책은 임진왜란 이후 북인과 월천조목선생 등으로부터 주화론자로 몰렸던 서애 류성룡선생을 변호하는 책입니다. 퇴계학파의 월천 조목선생의 제자들과 서애 류성룡선생의 제자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자 노력했던 것이죠. 학사선생은 퇴계학파 내에서 조정자이자 정리자의 역할을 수행한 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오미의 인재란 마 들었지만 풍산김씬 첨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