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치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지지난 주 모임에서 전염병 방역도 좀 느슨해진다니 모처럼 가을 나들이를 하자 말이 나왔다. 거창하게 버스로 먼 곳을 가느니 차라리 가까운 곳으로 했다. 참 잘 됐다 여겼다. 괜히 날짜, 장소, 차 예약, 연락, 준비 등이 얼마나 성가신가. 그렇잖아도 회장단이 이태가 넘게 많은 수고를 했는데 누굴 맡으라 해도 할 사람이 없어 안쓰럽다.
도와주는 겸 참석해야겠단 마음으로 서둘렀는데 포근하던 날씨가 쌀랑하다. 다들 먼 데서 오는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 안 갈 수 있나. 여기서 한번 타면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하단에서 지하철을 타면 종점이니 쉬 가진다. 나서자 하고 선뜻 일어섰다. 아내가 은행에 들러 일 보고 가래서 기다리는데 내 번호가 한참 뒤다. 요즘 지점을 자꾸 줄여서 먼 이웃 동네로 가야 했다.
집에서도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송금을 하니 그런가. 그리 경비 절감을 해야 하는가 보다. 만날 시간이 다가와서 그만두고 일어섰다. 문을 나서자 찬 바람이 쌩하게 불어 또 가기 싫다. 햇수로는 삼 년째다. 무슨 전염병이 수그러들 줄 모르고 날로 성하나. 모든 모임을 금지하니 함께해 본 지 오래다. 그래서 무슨 무슨 만남을 다 잊고 산다. 내가 어디에 속한 지도 희미하다. 모이려 애쓰지 않아서 생긴 마음이다.
코로나가 이웃 나라에서 생겨 갑자기 온 세상으로 번져 야단법석이다. 계절이 바뀌면 사그라드는데 이건 더 심하다. 인도 델타로 덧나더니 알파니 베타, 감마한다. 그러다가 아프리카에서 또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 깜짝 놀란다. 돌연변이가 배나 되고 전염성도 다섯 배라며 금융시장이 출렁인다. 이러다 큰일 나지 않을까 심상찮다. 공기로 전파되는 것 같다니 어쩌나. 그러니 떠들썩한 이 난리통에 어디 놀러 가는 게 편하기나 한가.
종점에 내려 올라가니 몇이 서성인다. 대봉이 보인다. 혹시 안 올까 걱정했는가 반갑다며 손바닥을 펼친다. 주먹이 아니다. 몰운대 등산을 하겠다며 서둔다. 열 명이니 버스로 멀리 갔으면 적어 난감할 뻔했다. 햇살이 내리쬐고 바닷바람이 없으니 좀 포근하다. 분수대 마루에 그냥 가부좌를 개고 앉아 몇 사람과 얘기했다.
어찌 알고 부산문협 회장 선거에 후보가 찾아와 책을 나눠주고 임기 내 설계를 말했다. 똑똑하고 당차게 열심히 하겠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지금 대선 앞두고 당에서 선출된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표심 찾기에 안간힘 쓰는 모습이다. 춥다 게으름 피워서 되겠나. 낮은 하나도 차지 않고 햇볕을 받아 자리가 따스하다.
꼬불꼬불 횟집으로 가면서 잘 정비한 뒷길을 봤다. 전엔 막 내다 버려 바다가 아니라 쓰레기 떠다니던 검은 뻘밭으로 엉망진창이었는데 돌담을 쌓고 포장해서 말쑥하다. 말끔한 게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다. 이곳이 그리 많이 바뀌었다. 무장간첩 들어오고 나서 철조망이 낙동강을 따라 길게 쳐졌고 몰운대는 입구부터 군인이 막아섰다.
그 철조망도 걷고 초소의 병사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오늘 문인들이 저 끝까지 활개를 치고 들어갔다. 막혔던 낙동강 따라 넓은 도로가 나고 휑하니 차들이 달린다. 해수욕장도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들고 산책로가 근사하다. 거기다 화려한 분수대가 자랑이다. 노래 따라 휘어지는 시원한 오색 물보라를 보노라면 아득해진다. 여기가 다대포 맞나.
기슭에서부터 뒷산이 모두 아파트가 들어서서 성처럼 감돌았다. 그 난간에 전망대가 있다. 내려다보면 해수욕장 주변이 다 보였다. 가락 동쪽이라는 낙동강이 길게 내려오다 바닷물과 어울리는 마지막 기수이다. 봄가을로 도요새가 날아든다는 세 번째 섬 도요등과 백합이 많아 백합등 등 세 개 섬이 끝자락에 자리 잡아 반긴다. 모두 천연기물로 그 첫 번째 섬에 뱀과 쥐가 장마에 떠내려와 숲에 걸렸다. 만조에 등이 잠기면 갈대를 감아 오르고 매달려 버둥거릴 때 봉수대가 있는 아미산 솔개가 내리박혀 낚아채 갔다. 풍성한 식탁 맹금머리다.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해맑은 파도에 놀랐다. 언제 이리 좋아졌나. 지난날 운동장이 좁아 이곳으로 교련 연습하러 해마다 오뉴월에 올 땐 이러잖았다. 우중충하고 비릿한 소금기 냄새에 모래바람이 불어 눈을 뜨기 힘들었다. 곳곳이 모래언덕이다. 음식점이 옹기종기 붙어서 헐벗은 게 판잣집 같았다.
감천, 신평고개 고갯길을 여럿 넘어 비포장을 흔들리며 왔다. 되게 멀리 온 것 같다. 외딴곳이라 모두 점심을 싸 와야 했다. 길쭉하게 섬이 좌측으로 누웠고 우측 서쪽은 산자락이 내려와 언덕에 기관총을 설치한 해안 경비 군인들이 지켰다. 몽돌 주우러 가까이 갈라치면 호각 불고 가까이 오지 말라 나무랐다.
갈 땐 우우 가더니 올 땐 하나, 둘 뜨덤뜨덤 나타났다. 식당에 모여 송 회장의 인사말을 들었다. 12명 이상은 안 된다니 잘 됐다. 어찌 알고 알맞게 모였다. 점심 먹는 이 자리가 바닷물이 넘나들며 흘렀는데 장마 때 강모래가 내려 쌓여 섬과 이어졌다. 그 옛날 조상 원시인들 조개 무더기도 묻히고 말았다.
멸치와 재첩, 맛난 김이 이곳에서 지천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재첩 사이소” 외침이 귀에 쟁쟁하다 모두 지나간 일로 통통거리는 재첩 긁는 뱃소리가 웅웅 들린다. 강물이 흐려져서 사라졌는데 조금씩 나타난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언제 그런 날이 올거나. 기다려진다.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김 생산 바다는 매립되어 신평, 장림공단으로 바뀌었다. 어찌할거나.
이 생각 저 마음으로 점심이 끝날 때쯤 앉은 자리에서 수필 문학 세미나를 가지려 했다. 화창한 날 바닷가에서 하자며 모두 나앉았다. 둥근 계단이 정겨웠다. 달밤에 나팔꽃이 활짝 폈다. 보리가 익어 고개를 숙였다. 누에가 마지막 잠을 잘 때 고개를 푹 숙이고 잔다. 동이가 제천 세찬 강물에서 왼손으로 잡자 아들인가 등의 글이 합리적이지 못하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고, 보리는 익어도 빳빳이 치켜들며 누에는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잔다. 유전보다 가까운 쪽이고 급해서 왼손을 썼다.
이어 김목사의 주선으로 돌 던지기를 했다. 조를 짜서 돌을 날려 저쪽 세워둔 것을 넘어뜨리는 경기다. 쉬울 것 같아도 잘 맞지 않았다. 두 사람이 결승에 올랐다. 일등은 손목시계를 타게 된다. 별이 그려진 좋은 상품이다. 잘 맞던 게 마지막에 빗나가고 말았다.
권고문이 일등 상품을 잡고 얼마나 좋은지 두 팔을 들고 소리치며 앞을 왔다갔다 했다. 그래도 나는 준우승이다. 2등 상품을 한 아름 받았다. 오징어 게임 게임이 온통 세상을 들뜨게 해서 그게 어떤 내용인가 궁금했는데 여럿 가운데 재미있는 비석(飛石)치기이다.
첫댓글 코로나로 많은걸 읽게된것 같습니다.
여행도 가고싶고..친구들도 만나고싶고..모임에도 나가고싶고...이런 소소한 즐거움도 포기하고 지내니말입니다. 반가운 지인들을 만나시고 어린동심으로 돌아가 놀이도 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셨다니..!
다시 코로나 이전시절이 돌아오리라..날마다 바랍니다.ㅠ
선생님 즐거운 시간 눈에 선합니다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 코로나가 !
감동적인 글 감사합니다
성도님 박회장님
여기서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이태 수필 쓰지 못했습니다.
한자성어 한글4자 속담 정리하면서 지났습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되어 갑니다.
전염병 난리에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