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에서 보내온 메일
【원효학토대연구소 ‘열반종요’ 출간기념 학술대회 내용】
참석자 – 행사장을 가득 메운 100여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높은 집중력을 보여줌. 특히 정목스님의 지도 아래 원효의 염불수행문을 걷는 구도자들이 전국에서 참석.
정목스님의 축사 – 자료집 참조
기조강연 개요(박태원)
원효는 1400년 동안 묻히어 왔다. 근대 이후 원효 연구가 활발해졌지만 제한된 방법론과 편중된 이해로 인해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 새로운 돌파구는 원효전서의 해석학적 번역이라는 생각에서 번역작업에 착수하였고 이제 그 첫 성과를 내놓는다.
원효학토대연구소의 장기목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원효전서의 영역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해석학적 번역이 마무리되면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원효학토대연구소가 번역한 내용이 영역되면, 칸트학회, 니체학회가 없는 나라가 거의 없듯이, 나라마다 원효학회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원효학을 정립하는 일에 세계학인들의 역량이 결집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둘째는, 원효에 기대어 불교 내지 불교학의 새 나이테를 형성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붓다와 만나기 위해 열어왔던 길들은 크게 보아 ‘아비담마 → 중관/유식 → 화엄 → 선종 선불교’이라는 굵직한 나이테들을 생성해냈다. 그 나이테들은 유례를 찾기 힘든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탐구와 실험의 결과였다. 그러나 선종 선불교를 끝으로 이 나이테 형성은 멈추어버렸다. 기존의 나이테들만으로는 붓다와의 대화가 충분히 성공적일 수가 없다. 이제 또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어야 한다. 원효는 이 새 나이테 형성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인물이다. 원효와의 대화는 니까야 대장경의 붓다와 새롭게 대화하는 길도 열어준다.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주는 등바람처럼, 붓다와 원효에 기대에 세상에 이로운 길을 새롭게 닦고 넓히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셋째는, 차이들의 불화와 상호폭력을 치유하는 자생적 통섭인문학을 원효에 기대어 정립해 보고자 한다.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의 현재언어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인문학의 새로운 길을 내보려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것은 원효가 열어둔 ‘서로 열고 서로 껴안는 길’(通攝)이다.
발표논문1(김성철) - 원효의 불성관
발표 요지;
열반종요에 나타난 원효의 불성관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김성철의 주장 가운데 두 가지가 주목된다.
하나는, <‘열반종요’에서 목격되는 원효의 회통은 종교학에서 말하는 포괄주의와 상대주의 결합이다. 일심을 최상위로 두고 다른 것을 하위에 포섭하는 포괄주의, 다른 관점들에 부분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상대주의,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원효의 회통이다. 이러한 포괄주의와 상대주의는 자칫 ‘칼을 숨긴 꽃다발’이나 ‘우아한 긍정으로 위장된 부정’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원효의 ‘일심’은 기존의 인도 대승불교에서 문헌적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며 『대승기신론』 이후의 등장한 것이다. 원효의 일심은 인도불교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독창적이지만 인도불교적 정체성과 연결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김성철의 주장에 대해 종합토론에서 제시된 박태원의 의견
종교학에서 말하는 포괄주의와 상대주의 개념을 그 형식적 유사성에 의거하여 원효의 회통논리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정작 성찰해야 할 것은, 형식적 유사성이 아니라, 원효가 최상위에 두는 개념이 과연 포괄적 지위를 지닐 수 있는지 그 타당성 정도를 음미하는 일이다. 또한 다른 주장들의 타당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우월과 부정을 위한 전략적 상대주의’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보다는, ‘부분적 타당성을 포착하고 허용할 수 있는 사유방식이나 이법의 개안’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를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교학처럼 모든 종교를 등가치적으로 묶어 형식적 유사성을 거론하는 태도에 갇히지 말고, 각 주장의 가치를 차등적으로 평가해 보려는 가치평가적 태도가 필요하다.
원효의 ‘일심’에 해당하는 인도불교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일심에 해당하는 인도불교의 개념은 ‘대상에 대한 집중’을 의미하는 ‘심일경성’이고 그것은 원효나 『대승기신론』이 말하는 일심이문과 무관해 보인다>는 관점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 ‘심일경성’을 ‘대상에 대한 집중’이라고 이해하는 관점은 아비담마 이래 중관과 유식을 관통하는 일반적 현상이다. 그러나 정작 니까야에서는 심일경성을 그렇게 설명하는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주석서와 아비담마 교학에서부터 등장하는 해석일 뿐이다. 선 수행이나 선정과 관련된 원효의 관점은 이런 통념을 따르지 않는데, 이점은 매우 주목되는 대목이다. 붓다와 새롭게 대화해 보려는 길에서도 원효의 이러한 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교의 궁극요점을 ‘일심’이라는 말에 담아보려는 원효의 의중과 의미는 기존의 교학적 통념에 구애받지 말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발표논문2(이혁주) - <원효와 스피노자 - 자유인의 인식과 실천을 중심으로>
요지; <원효는 자유의 추구를 공동체의 이익과 결합시키는 데, 스피노자는 그런 원효의 관점과 매우 유사하여 흥미롭다. 또한 스피노자의 관계론적 사유는 불교와 원효의 연기적 사유와 겹치고 있다. 향후 원효와 스피노자의 유익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해보고 싶다.>
현장 반응; 원효와 스피노자의 만남을 추구하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만큼 신선했다. 참석자들은 원효와 스피노자의 비교에 높은 관심과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소중한 학인 한 사람을 발굴하는 현장이었다.
종합토론에서 제시된 질문들
질문; 원효가 말하는 통섭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다.
대답(박태원);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설명하기보다 시간을 가지면서 정밀하게 풀어보겠다. 많은 밑그림이 필요하다. 기다려 달라.
질문; 열반종요의 내용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대답(박태원); ‘최고의 이로움이 어떤 것인가?’(열반)와 ‘그 최고의 이로움을 성취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적 가능성과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불성)에 대한 정밀한 논의가 열반종요를 채우고 있다. 그 내용들을 ‘지금 여기 우리 삶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지금의 번역은 그 작업을 위한 토대구축이다.
다음 학술대회
올 하반기에 『대승기신론소/별기』를 출간하면서 기념학술대회를 가질 것이다. 원효학토대연구소의 학술대회는 가급적 ‘철학적 성찰’에 초점을 두어 기존의 문헌/교학적 논의와는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다. 또한 철학적 성찰을 오늘의 언어와 관심으로 펼칠 수 있는 학인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볼 것이다.
첫댓글 서로 열고 서로 껴안는일을 하려고 시도하는거 같습니다.
발표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서로의 의견에 대해 탐구하고 토론하고 소통하여 진정으로 껴안고 지혜의 완성과 안락한 삶을 인도하는 불교로 우뚝설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보은 나무아미타불()()()
듣기만 해도 즐거운 다음 학술대회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 보은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
훌륭한 기회! 늘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일심광명화신 아미타파 일체경계본래일심
"서로 열고 서로 껴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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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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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언어라서 자세히는 알지못하지만
학자는 수행의 관점이 필요하고
수행자는 학자적인 논리가 필요하다
일심 광명 화신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원효학토대연구소의 무궁한 발전과 원효의 후예 학인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기를 함께 염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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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학회, 니체학회가 없는 나라가 거의 없듯이, 나라마다 원효학회가 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발표논문1(김성철)
'원효의 ‘일심’에 해당하는 인도불교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궁극요점을 ‘일심’이라는 말에 담아보려는 원효의 의중과 의미는 기존의 교학적 통념에 구애받지 말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마명과 원효는 부처님의 법문은 "일체경계 본래일심"을 설하기 위함이였다.(정목)
발표논문2(이혁주)
한문 시대가 아닌 젊은 이나 불자가 아닌 사람이 접했을때 불교 용어가 보편적 언어로 구사할 수 있기를 바램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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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원효학을 세계적으로 대두시켜 나아가 자리매김되어, 우리의 삶과 직결됨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살아있는 원효학이 제일 진화된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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