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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룰렛 리뷰 (감상문) | 2016.08.06 13:2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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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숨기고 있는 그 숨김을 들춰보다 은희경 [중국식 룰렛]
나는 당신을 원한 것도 욕망한 것도 아니었다.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에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발광 액체가 되어서 당신에게로 흘러가 스며들어 당신이 되는 느낌이었다.(page71. 장미의 왕자 중)
사랑을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 그래서 나는 은희경의 글을 좋아한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럽지 않은데 우아하고 섬세한 글의 결이 맘에 들어서 그녀의 작품들은 열심히 읽는 편이다. 그녀의 소설집 [중국식 룰렛]도 역시 기대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밖은 연일 무더위의 연속이다. 길을 나다닐 때도 그늘로 그늘로만 숨어서 움직여보지만 8월 햇볕의 앙칼짐을 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말리는 생선처럼 더러는 꾸둑꾸둑 말라가고 있고 더러는 너무 많은 습기를 버리지 못해 몸부림치다가 부패되어 갔다. 한쪽에선 날렵한 비키니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화기애애했지만 또 한쪽에선 오히려 조도가 높은 이 여름 한낮이 너무 우울해서 도무지 스스로가 지탱이 안 되는 사람도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다.
은희경의 소설집 [중국식 룰렛]도 밝고 환하고 보송보송하지 않다. 그냥 지금의 내 기분 같은 그런 사람들을 버스정거장이나 골목 어귀에서 마주치는 느낌이다. 유쾌하지 않은데 눅눅하지는 않은, 차가운 아이스 모카라떼를 한 잔 마시든지 차갑게 식힌 진 토닉을 한 잔 마시고 싶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사실 나는 갖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어차피 갖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 걸맞은 무엇을 더 갖추려고 하고 욕망을 바로 거기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까. 나는 가진 게 없기 때문에 원하는 것도 없는지 모른다. 필요한 것은 많지만 원한다는 건 그것과는 다른 뜻이다.(page71 장미의 왕자 중)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 세상의 모든 욕망과 욕심 그리고 간단히 소유(所有)나 미소유(未所有)로 분리될 수도 있었을 그것들을 선택하고 가지거나 활용하는 것 또는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망설이거나 후회하거나 하는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을 갈래대로 나누고 엮어서 보여준다. 일반적이지 않을 듯한 상황 그런데 일반적인 인물들과의 어울림이 보여주는 몽환적인 듯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이 소설집을 읽으며 만끽한다.
여름 한 가운데서 읽어야 제 맛일 것 같은 여름 맛이 나는 은희경의 [중국식 룰렛]의 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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