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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씨 화이팅
 
 
 
카페 게시글
氏 [조상님들의발자취방] 輓章(14세문주, 15세관휘공, 1807년)
정성현(22세) 추천 0 조회 60 18.05.10 17:39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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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5.10 17:46

    첫댓글 14세 문주공 만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삼환재(채지홍) 붕래록에 문인들이고, 만장 9~11은 후대에 가필한것으로 보임

  • 18.05.11 09:01

    잘보았습니다

  • 18.05.11 10:56

    앞에 부분은 정문주공에 대한 만사이고, 중간이하는 정관휘공에 대한 만사이네요!
    정문주공이 말년에 사간원, 사헌부의 대간직에 계셨는데, 정적의 탄핵으로 서민으로 강등하여 남해에 충군되기도 하셨는데, "심환지(갑산으로 충군)"란 분과 같이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곧바로 풀려나오셔서 서용되어 사간원 헌납과 문천군수에도 제수되셨는데 문천군수에는 취임하지 않으신듯 합니다. 그 징계논란의 소용돌이에 심신의 타격이 크셨는지, 사건 후 56세에 타계하셨습니다. 오천 정탁공이 '중도에 몰(별세)'하셨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만사와 더불어 승정원일기 등 관련인물과 더 연구하면 공의 행적이 많이 밝혀질 것 같습니다.

  • 18.05.11 11:20

    앞에 언급한 만포 '심환지'란 분이 벽파의 영수가 되어 후일 영의정까지 오르는데, 이분이 당대 그림 수집가로서, 겸재공의 '인왕제색도'에 눈독을 들여, 정황공(겸재공 손자)과 정만수공(겸재공 아들)을 졸라 그 그림을 양도받아간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정만수공이 아쉬움에 양도에 대한 글을 써서 그림에 붙여 놓았겠습니까? 만포역시 이 그림을 얻은 기쁨을 글(제발, 題跋)로 적어 붙였는데, 후일 이 자손들이 선대의 글이 있다하여 사당에 이 그림을 걸어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최완수 선생 글에서) 이 심환지 공이 정조 독살설의 배후로 의심을 받고 있고, 후일 정적을 많이 제거한 것 등으로 관직을 모두 삭탈당합니다

  • 18.05.11 10:55

    지금까지 정문주, 정관휘, 정면수(이분은 동백공 종손가에서 양자오심)공의 유물이 배울 것이 많은 내용들이라, 잘 정리하고 해석하고 사진을 찍어, "유물집"을 발간해야 합니다. 자료들도 잘 보관해오시고~~~, 정후기 공이 높은 벼슬도 아니신데, 훌륭한 스승을 붙여 아드님을 교육하신 성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 집안의 일등공신은 육오와 정후기공이라고 생각됩니다.

  • 작성자 18.05.11 17:10

    철종종인님 감사하고요, 정위, 수현공 유물집발간을 축하합니다. 문주公은 선부군 년보에 보면 내직은 주로 대간에서 활동하시고, 외직은 1755년 8월 율봉찰방, 1767년 1월 풍기군수(승정원일기文柱→文周로오기, 5대조 충민공 시호 연시), 1769년 북청부사, 1771년 1월 문천군수 부임후 7월 체직 12월 숙환으로 졸하심.
    ※가능하면 만장해석을부탁합니다

  • 18.05.11 19:24

    아직 발간한 것은 아니고, 계속 내용을 번역하게 되네요! 고칠 부분도 계속 나오고, 그냥 사진찍어서 프린트해 제본하면 되는데, 시간에 쫒길 필요가 없어서 자꾸 보게 됩니다.
    마지막 월사 이정구공의 술자리 시는 자꾸 눈이 가는데,
    차가운 하늘 등촉 밝혀 황혼을 비추네! 파종소리 엄하여 성문을 닫으려 하는데 ~~~~~~ 밝은 달빛 외로운 배 망망대해 멈춰섰네, 백발의 근심절의 감히 다시 논할거나!

  • 작성자 18.05.11 18:38

    위시는 권필(1569~1612년)의 시로 석주집에서 등초한 것으로 한국문집총간에 해석본에 있으며, 후대에 화곡(사호공)관련하여 1 봉별화곡 정공안절해서, 2 이월사댁 주석유작(이정구)을 등초한것으로 월사와 화곡은 사돈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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