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혼맥 - 사위들 (8)
이 름 | 본관 | 장인 | 아들 / 딸 | 친부 | 참고사항 |
박이온 朴而溫 | 순천 | 5세 이효 以孝 | 子 박운손(朴雲孫) | 박숙선(朴叔善) | 박이온 승평군★ 朴而溫 昇平君 |
한훈 韓訓 | 청주 | 5세 찬우 纘禹 | 系子 한곤(韓鵾) | 한충인(韓忠仁) | 매형 신수근★ 妹兄 愼守勤 |
강윤범 姜允範 | 진주 | 5세 계우 繼禹 | 子 강자명(姜自明) | 강맹경(姜孟卿)★ | 강회백(姜淮伯) -조부★ |
양돈 楊墩 | 남원 | 6세 승순 承順 | 子 양공건(楊公健) | 양자유(楊子由) 대제학 | 외손 장건(張健) 興德人 - 군수 |
임만근 林萬根 | 평택 | 6세 절 晣 | 子 林毗 林畡 林畯 | 임종직(林從直) 증 참의 | 신광한 – 사위 대제학★ |
★ 이희옹 [李希壅] ?∼1541(중종 3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중우(仲友). 사관(士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장(誠長)이고, 아버지는 수영(壽嬰)이며, 어머니는 이영홍(李永弘)의 딸이다.
사마시 진사과를 거쳐,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고,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재직 중 중종반정을 도운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1509년(중종 4)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그 뒤 1516년(중종 11) 남원부사로 파견되었고, 1518년(중종 13)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재직 중 반정(反正) 때의 녹공(錄功)을 공훈기록에서 없애야 한다는 탄핵을 받았다. 1525년뒤 사간으로 재직하다 언관(言官)에 합당치 못하다는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그러나 1530년에는 순천부사(順天府使)로 재임하면서 피폐된 고을을 정상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1537년 찰리사(察理使)에 이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제수되었다가 그 뒤 강원도관찰사·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 천추사(千秋使)로 경사(京師)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였다.
최근에 지석(誌石)이 발견되었다
★ 박이온(朴而溫) 1461년(세조 7)~1524년(중종 19).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자화(子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 박숙선(朴叔善)의 아들로 1496년(연산 2) 병진증광사마시(丙辰增廣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였고, 관직이 철원부사(鐵原府使)에 이르렀다.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中宗反正)에 별제(別提)로서 참여하여 정국사등공신(靖國四等功臣)이 되었고,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와 승평군(昇平君)의 훈작을 받았고 사당에 배향되었다.
★ 신수근(愼守勤) 1450 ~ 1506
본관 거창(居昌). 자 근중(勤仲). 호 소한당(所閒堂). 시호 신도(信度). 성종 때 음보로 장령(掌令)이 되어 우부승지 ·중추부첨지사 ·호조참의를 역임하고 1495년 연산군비가 된 누이의 덕에 승지가 되었다. 같은 해 선위사(宣慰使)로서 평안도 지방을 순회하고 우승지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찬성(右贊成)에 올랐다가 파직되었다. 1504년 다시 돈령부첨정(敦寧府僉正)에 기용, 이듬해 우의정으로 등극사(登極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1506년 좌의정에 올랐다. 이때 사위인 진성대군(晉城大君: 中宗)을 옹립하고 함께 반정(反正)을 도모하자는 박원종(朴元宗) 등의 제의를 거절했다가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3형제가 유자광(柳子光) 일파에게 살해되었다.
★ 강맹경(姜孟卿) 1410(태종 10)∼1461(세조 7).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장(子章). 문하찬성사 강시(姜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東北面巡撫使) 강회백(姜淮伯)이고,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 강우덕(姜友德)이며, 어머니는 지보주사(知甫州事) 이혜(李蕙)의 딸이다.
1429년 중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우부승지, 도승지 이조참판,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공훈, 예문관제학·의정부우참찬을 역임하였다. 단종의 왕위를 수선(受禪: 선양으로 받음)에 협력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정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1458년 좌의정을 거쳐 이듬해 영의정에 승진되었다. 신숙주(申叔舟)가 비명(碑銘)을 지었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 강회백 [姜淮伯]
고려말 조선 초의 문인.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본관은 진주(晉州).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시(蓍)의 아들.
우왕 2년(1376) 등과하여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했고, 이씨 왕권이 성립되면서 그의 동생 회계(淮季)가 공양왕의 사위여서 곤란한 입장에 놓였으나 그의 인품이 신임을 받아 화를 면하고 다시 기용되었다. 시문을 잘했으며, 문집에 〈통정집(通亭集)〉이 있다. 그의 아들 석덕(碩德)도 문학이 훌륭했으며,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은 그의 손자다.
★ 양자유(楊子由)
1444년(세종 26)∼1495년(연산군 1). 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희철(希轍), 호는 귀은(龜隱)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부는 진주판관(晉州判官) 양연(楊淵)이고, 외조부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최부(崔府)이다. 정승순(鄭承順)의 사위 양돈(楊墩) 부친(父親)이며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구미리(龜尾里)에서 태어났다.
1468년(세조 14) 무자(戊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 2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장령(掌令), 집의(執義), 금산군수(錦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의 찬수관(纂修官)을 지냈으며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훈되었다.
★ 신광한 [申光漢]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한지(漢之) 또는 시회(時晦), 호는 낙봉(駱峰)·기재(企齋)·석선재(石仙齋)·청성동주(靑城洞主). 공조참판 장(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숙주(叔舟)이며,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 형(泂)이다. 어머니는 사포(司圃) 정보(鄭溥)의 딸이다.
영성(靈城)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대제학(大提學) 좌찬성(左贊成)에 지냈다. 나중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