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맹이들,
세때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천장호에서, 나희덕
어느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언젠가의 그 시간을 되돌아 볼때
내가 그에게 후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아픔이거나 슬픔이거나 갈증이거나,
그러한 아름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 눈을 감으면, 황경신
그의 일상에서 그를 빼내올 자신이 없었다.
그곳에서 그를 돌출시킬만한 아무 이유도,
권한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거기에 잘 있다.
나는 여기에 있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진 않고 무슨 짓을 해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기억이란 불쑥불쑥 찾아오는 것이며
그것을 오지말라 화를 낼 수도 없다.
후회를 해도 지난 일이고 행여나 다시란 생각으로 잡아선
안될 것을 또 다시 잡아서 스스로 또 죽음처럼 살필요는 없다.
뻔히 보이는 앞날에 무모한 용기를 낼 필요는 없다.
살아오는 동안 어느 세월의 갈피에서 헤어진사람을
어디선가 마주쳐 이름도 잊어버린 채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을 때, 그때 말이야.
나는 무엇으로 불릴까? 그리고 너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경숙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쳤을 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하도 서러워
꼬박 며칠 밤을 가슴 쓸어 내리며 울어야 했을 때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살고 싶었을 때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어
짚시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은 지난 몇달 동안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사람이 없었으며
사랑받고 싶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필요한 누군가가 나의 사랑이어야 했다
그립다는 것이
그래서 아프다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혼자가 되고부터 알았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그 모질게 내 뱉은 말조차 이제는 자신이 없다
긴 아픔을 가진 사람은 안다
그나마 사랑했기에
그렇게라도 살아갈수 있다는 것을
그것마저 없었을 땐
숨을 쉬는 고통조차 내 것이 아닌
빈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긴 아픔을 가진 사람은 안다, 배은미
진심을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자신 혼자만 꽁꽁 묶어두고 아무리 소리 없이 고집부려도 소용없다
어설픈 감점을 가차없이 버릴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이 그 진심을 끝까지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상대방을 자신의 자존심 보다 덜 사랑한 것이다
그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여기까지"였을뿐
어렸을 때 아버지가 참새를 잡아온적이 있어요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와서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왔었나 봐요
발목에다가 실을 묶어서 가지고 놀았는데
하루종일 방안을 빙빙돌면서 파닥거렸죠
안됐다는 생각을 아주 안한건 아니지만 놔주진 않았어요
내거였으니까,,
지금 내가 그 새 같습니다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가을노트, 문정희
손이 차다는 말 보다는 그 손을 끌어다 옆에 두는 편이 더 낫다
보았다는 말 보다는 느꼈다는 말이 더 낫다
이상하다는 말보다는 특이하다는 말이 더 낫다
"네 말을 이해 못하겠어"라고 말하기 보다는
"다시 한번 말해줄래"라고 말하는게 더 낫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걸 수치스러워하기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수치스러워하는게 더 낫다
다리 아파하기 보다는 부러진 의자에 못을 박는게 더 낫다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습니까?"라는 질문보다는
"운이 좋다고 믿으세요?"라고 묻는편이 더 낫다
침묵하는 습관보다는 말을 적게 하는 습관이 더 낫다
어둡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점차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작은 불빛을 내 편으로 만드는게 더 낫다
많은 것을 보기보다는 많은 것을 다르게 보는 눈이 더 낫다
자신이 열등하다고 믿기 보다는
가위바위보의 확률을 믿는 편이 더 낫다
많이 달라진 그를 탓하기 보다는
전혀 변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의심하는게 더 낫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일 빌지 못했다고 투덜대기 보다는
하루에 세번 자기가 원하는 걸 기도하는 편이 더 낫다
많이 먹기보다는 오래된 생각을 버리는게 더 낫다
사랑하기 보다는 사랑받는편이 더 낫다
-김동연,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
어쩌면 사람들은 늘 하고싶은 이야기를
마음 속 장바구니나 위시리스트에
수북하게 담아 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하고 싶어서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럽다며 도망가는 사람이 생긴다.
눈을 보며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사실을 털어 놓으면,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며 뒤통수에 대고
수근거리는 사람도 생긴다.
그런 일을 몇번 겪고 나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게 된다.
입을 다 물어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생각을 멈추게 된다
자기 일기장을 누가 훔쳐 봤다는 사실을 알게된 아이는
그 후로 대외용 일기만을 쓰게 되듯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진지하면서도 험학하지 않은 분위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일생에 몇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너무 일찍 나이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고든 리빙스턴
그 나무를
오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내가 삭정이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이십년 후의 내가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한쪽이 베어져나간 나무 앞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덩굴손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요
내가 아니면서 나의 일부인,
내 의지와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라나
나를 온통 휘감았던 덩굴손에게 낫을 대던 날,
그해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을 용서한 것은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덩굴자락에 휘감긴 한쪽 가지를 쳐내고도
살아 있는 저 나무를 보세요
무엇이든 쳐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그해 여름, 그러나 이렇게 걸음을 멈추는 것은
잘려나간 가지가 아파오기 때문일까요
사라진 가지에 순간 꽃이 피어나기 때문일까요
-걸음을 멈추고, 나희덕
혼자라 생각해도 돌아서면 누군가 서 있기 마련이고
같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그들이 내 곁에 있으란 법도 없다
잊을 줄도 알라
그것은 기술이라기보다는 행운이다
우리는 가장 빨리 잊어야 할 일을
가장 잘 기억한다
기억은, 우리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할때
비열하게 우리를 버리고
전혀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어리석게도 우리에게 달려온다
사람의 삶에 헤어짐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음을 완전히 부려놓을 수 있는 장소,
거기에서 영원히 멈출 만한 시간이란 없었다.
삶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 흐름에 따라 주소를 옮기는 것뿐인데
일일이 헤어짐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은 끝을 향해서 가고 있다.
누군가 스톱 워치를 누르고 묻는다.
괜찮아요?
자, 그럼 또 시작하죠.
그러니 걸어갈 뿐이다.
아직은 괜찮다.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서로의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두지는 마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예언자, 칼릴 지브란
시간이 흘러도 우리 인생은 여전히 그자리에 남아 있다
우리는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쁜일보다 좋은 일을 더 자주 기억하게 된다
텅 빈 침묵은 이야깃소리와 웃음소리로 조금씩 채워지고
뾰족하기만 하던 슬픔의 모서리도 점점 닳아 무뎌진다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체온 같았다
오른손과 왼손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놓았다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 체온, 장승리
단 한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 서시, 나희덕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
-첫눈, 김용택
첫댓글 글귀 좋다. 글공부할때 좋을거같아
너무 좋다..
제목부터 좋다..
글 좋다.. 잘 읽었어 ㅠㅠㅠ
고마워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