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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3-9절, 베드로 전서 2장 9절
왕 같은 제사장
아담의 장남인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농사지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동생인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르던 새끼 양을 잡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는 안 받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나요?
물어봅시다.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나요? 하나님은 고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인가요?
어렸을 때,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 보리이삭과 개구리 뒷다리를 막대기에 걸어 놓고 구워먹었습니다. 보리보다는 개구리 뒷다리가 더 맛있습디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숯불에 고기 올려놓고 지글 지글 구우면..... 아! 그 냄새...... 사실이지만 밀이나 보리보다는 고기가 더 맛있어요. 그러니 아버지 되신 하나님도 고기 좋아하시지 않겠어요? 그래서 고기 구워 드리는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것 아닐까요?
성경으로 돌아가 4-5절을 봅시다. 거기에 “열납하셨다. 받으셨다”는 단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쏴하”라는 타동사인데 그 뜻이 “눈여겨보다”입니다. 아벨과 그의 제물을 눈여겨보셨습니다. 가인과 그 제물을 눈여겨보셨습니다.
4-5절에서 아벨의 제물, 가인의 제물이라고 하지 않고 왜, 아벨과 그 제물, 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하셨을까요?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드릴 때, 드리는 사람의 됨됨이와 그리고 평소에 어떻게 살았는가? 즉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을 눈여겨보시고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이 드리는 제물-예배를 눈여겨보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가인의 인격과 삶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시기하여 안색이 바뀔 정도로 심히 분노하는 사람이었고(5), 선을 행하지 않은 사람(6), 죄의 소원이 가득한 사람(7), 자기 동생을 쳐 죽인 사람(8), 하나님께 거짓말한 사람(9)입니다. 가인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4장을 보면 가인이 어떤 자세로 농사를 지었나를 알 수 있어요.
3장 17절,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9절,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내리신 벌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후손까지 얼굴에 땀을 흘리면 종신토록 수고해야만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가인이 아주 힘들게 농사를 지었습니다.
3장 17절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18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마땅한 농기계도 없을 때입니다. 더구나 저주 받은 땅을 갈자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땡 빛에 단단하게 굳은 땅, 먼지만 푸석 퍼석하게 나는 메마른 땅입니다. 나뭇가지 꺽어 뾰죽한 부분으로 땅을 파고 씨를 뿌렸습니다.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런데 곡식보다 살을 찌르는 엉겅퀴, 잡초, 가시덩굴이 더 많이 나고 빨리 자랐습니다. 가시에 찔리며 풀을 뽑았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겁니다. 속상하고 원망을 했을 겁니다.
아이 씨,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어쩌자고 뱀 새끼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어. 아빠는 병신 같지, 왜 엄마 말 듣고 그 선악과를 먹어서 우리로 이 죽을 고생을 시키나? 심히 원망했을 겁니다.
왜 선악과는 만들어서 사람 이 고생 시키느냐고 하나님을 향해서도 불평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눈여겨보셨습니다.
드디어 밀 이삭이 누렇게 익었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또 불평합니다. “왜 하필 이때 비 오느냐고”
시간이 지나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밀밭에 들어가서 밀 이삭을 땁니다. 땀이 흐르는 몸에 밀 터럭(이삭에 붙은 가시)이 달라붙습니다. 그 이삭을 마당에 널고 타작을 합니다. 밀 터럭 때문에 온 몸이 심히 껄껄합니다.
그는 몸을 긁어가면서 불평합니다. 에이, 껄껄해. 미치겠네, 하나님은 이것도 “쏴하” 눈여겨보셨습니다.
추수를 마치고 곡식을 저장하면서 그는 생각합니다. “내가 밭을 일구었지. 아! 내가 참 수고 많이 했다. 내가 적당히 씨앗을 잘 뿌렸다. 농사일은 역시 내가 최고야.
내가 땀 흘리며 풀을 뽑았지,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이렇게 좋은 곡식을 거두게 되었지. 나는 역시 먹고 쉴 자격이 있어”
그는 모든 결과를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할 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도 “쏴하” 눈여겨보셨습니다.
그 후에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6절에서 첫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드린 제사를 받지 않으시자 그는 심히 분노하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왜 그토록 분했습니까?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수확을 한 것이 모두 자신이 죽도록 수고하고 노력하여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수고하여 내가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내 제사를 안 받으셔?” 하고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땅을 주신 하나님입니다, 씨앗을 싹트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비추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자라게 하신분도 하나님이고, 이삭이 나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은 한 알을 심었는데 100알씩 결실케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것을 알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면 그렇게 분노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
7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낮을 들지 못하겠느냐?” 여기서 “선”의 원어는 “야브” 인데 “기쁘게 하다. 올바르게 하다”는 뜻입니다.
킹제임스 성경에서 “네가 잘 행하면(올바르게 했으면) 너를 받지 아니하겠느냐?”로 번역했습니다.
가인은 제사를 올바르게 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라고 하였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믿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나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행함이 있는 믿음 - 행동이 뒤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서 행함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행동입니다.
행함이란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행함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입니다.
반대로 가인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없는 즉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를 가리켜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도 “쏴하” 눈여겨보셨습니다.
이제 가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우리의 상황으로 가지고 옵시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선 제사장들입니다.
가인과 아벨 같이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제물은 무엇입니까?
가인과 그 제물, 아벨과 그 제물!
이같이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이 행한 일이 제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자입니다. 우리는 주일 날 교회와 예배드리는 것만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이 개념을 넘어서야 합니다.
나의 인격, 나의 됨됨이가 하나님 앞에 제사로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나 됨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과 감격이 있습니까?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행동이 있습니까?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까?
아멘 하고 대답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벨의 제사입니다.
내가 사는 가정생활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부부생활이, 자녀양육이, 살림살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우리의 가정생활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거기에 감사가 있었나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시나요? 아벨의 제사입니다.
아니면 상처를 주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움과 한이 서려있습니까?
가인의 제사입니다. 가정생활이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내가 직장에서,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하는 일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직업, 그리고 직장에서 하는 일은 세속적이고 교회에서 하는 일만 주의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직장 때문에, 거기서 하는 일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으면 이것은 아벨의 제사입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을 통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람들에게 주님을 나타내게 된다면 여러분은 직장을 통하여 아벨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이웃을 섬기는 것이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면 그리고 여기에 목적을 둔다면 이것이 하나님 기뻐 받으시는 아벨의 제사입니다.
우리가 맡은 직분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국인교회 성도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맡은 직분으로 신앙생활 할 때, 아들 예수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하시나요? 아벨의 제사입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예수 십자가의 피로 씻어주시고 귀한 일군으로 삼아 주신 것에 감사하여 우리 외국인교회를 은혜로운 교회로 만들려고 노력하시나요? 아벨의 제사입니다.
우리교회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교회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익선원 가족들과 외국인 성도들을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이들이 우리의 면류관입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려고 하십니까? 아벨의 제사입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8,10)”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교회, 바로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2001년부터 오늘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어느 가안한 집이야기입니다. 고기를 사줄 형편이 못 되서 가장 싼 꽁치(서민생선)를 사서 구워먹곤 했답니다. 가운데 토막은 아이들에게 주고 엄마는 남은 꼬리와 대가리를 항상 먹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늦게 들어갔습니다. 먼저 밥을 먹은 아이들이 엄마 몫으로 꽁치 대가리와 꼬리를 남겨 두었더래요. 우리엄마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 아닙니까? 교회 시작한 이후, 이제까지 가운데 토막으로 외국인 섬겼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여러분에게 돌린 몫은 대가리와 꼬리뿐이었어요. 제가 여러분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대가리와 꼬리만 드렸습니다. 이렇게 목회했어요. 참 죄송합니다.
이런 여러분을 위로하기 위해 정 목사님을 보내주셨습니다.
2년 전, 우리교회를 어떤 큰 교회하고 합쳐보려고 한 적인 있습니다. 목사님은 합치면 자기들에게 엄청난 축복이라고 하시는데 그 교회 장로님들은 외국인 맡으면 손해 본다고 절대 안 된다고 해서 합치지를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겨우시지요. 그래도, 힘드시더라도, 손해 보는 것 같더라도 면류관 빼앗기지 않게 굳게 잡기 바랍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8,10)”
얼마 전에, 미국에 간 김 갑수 집사님과 통화했었습니다. 이제 잘 적응하고 생활도 안정되었다고 합디다. 직장이 얼마나 좋은지 직장에 가면 할렐루야랍니다. 그런데 교회만 가면 아~ 골치가 아프대요.
믿음의 확신과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 직분을 맡으면 서로 자기주장하게 됩니다. 자기가 높아지려 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분노합니다. 이렇게 되면 골이 흔들리는 교회, 지옥 같은 교회가 됩니다. 가인의 제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인격과 마음씀씀이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기 바랍니다.
여러분 직업 그리고 하는 일로, 삶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직분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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