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말랭이의 맛/임해음(중국수필)/한국수필작가회 펌글

[최영두]

무말랭이의 맛 / 林 海 音(중국)  

 임선생님 앞.
 아무리 살림에 시달리는 가정주부라 해도 의당 찾아가 뵙고 드려야 할 말씀을 편지로 대신하는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내 어린 놈 진이의 도시락에서 나온 무말랭이 때문인데, 이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일이 생긴 지는 오래되는 모양이지만 저는 사흘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진이가 가지고 돌아온 도시락에서 무말랭이 한 조각을 발견했을 적에는 별로 수상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 동무들과 반찬을 나눠먹기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날에도 도시락 밥찌꺼기 속에서 또 그 말라붙은 무말랭이가 나왔을 때는 적이 수상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무말랭이 밑에 푸석푸석한 재래미 밥풀이 깔려 있었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정미된 봉래 쌀밥을 먹는 터여서 여기엔 꼭 무슨 곡절이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이번에는 똑같은 알마이트 제품이긴 하지만 도시락이 바뀐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희 것은 뚜껑모서리를 제가 설겉이 할 때 부주의로 약간 쭈그러뜨린 표시가 있는데 그 도시락은 밥, 반찬을 아울러 아침에 진이가 가지고 간 것과 달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이에게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바로 어저께 아침, 저는 도시락에 갈비튀김한대를 넣어주었습니다. 일이 어떻게 되나 알고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과연 진이가 갖고 돌아온 도시락에는 갈비찌꺼기는 하나도 없고 대신 여전히 말라붙은 무말랭이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괴상하게도 먼저 바뀌었던 저희 도시락이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저는 결정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착오가 아니다. 누군가 하느님의 벌을 받을 짓을 계획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행동으로 우리 어린놈의 영양식을 가로채다니! 어미된 사람으로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임선생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저희는 결코 넉넉한 가세가 못됩니다. 남편의 쥐꼬리 같은 박봉으로 온 가족이 살고 있는 처지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그들 부자의 도시락 반찬은 설령 한 개의 갈비이든 달걀부침이든 혹은 닭다리이든. 모두 수월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노고와 자식의 발육을 위하여 알뜰히 절약하여 간신히 장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남에게 도둑맞을 수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저희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저희 어린놈의 영양을 위하여 선생님께서 수고를 아끼지 마시고, 대체 어떤 엉큼하고 약삭빠른 아이의 짓인지 밝혀내 주시기 바랍니다.
 무말랭이란 어쩌다 한번쯤은 맛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날마다 끼니마다, 먹으면 과연 어떤 맛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쩐지 그 아이가 고리타분한 무말랭이를  물리도록 먹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교묘한 방법을 생각해 내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조사하시는 데에 도움이 될까하여 오늘 아침은 진이 눈앞에서 큼직한 쇠고기 완자 찜을 한 덩어리 도시락에 넣어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체 어떤 괘씸한 아이가 그것을 먹는지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총총.
축안
 진이 어미 올림

 진이 어머님께
 주신 편지를 일하는 분이 가지고 왔을 때 저는 막 식당에서 사십여 명의 아이들이 정신 없이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다가, 젓가락을 놓고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스러운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습니다마는 곧 즐거운 기분으로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길 바 없이 가벼운 심정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그 「도둑」을,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벌을 받을 영리한 아이를 잡았다는 시실 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제가 사흘 동안 궁금했던 일이 주신 편지로 인하여 해결되었으니 어찌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여전히 감격을 누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진실하고 귀여운 조그마한 얼굴이 마음 속 깊이 새겨져 꺼지지 않습니다. 이같이 순진한 아이들을 위하여 저도 종생토록 아동교육에 헌신할 생각입니다. 우선 이 사흘 동안에 생긴 일들을 말씀드리고 다음, 제가 어떻게 그 꼬마도둑을 잡았는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학교에서 점심 먹는 형편은 잘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날마다 아침에 등교하면 먼저 자기의 도시락을 주방에 가서 조서 방에게 넘겨주어 시루에 넣어 찌개 했다가. 점심때 제각기 찾아서는 k로 옆에 있는 큰 식당에서 여럿이 함께 먹습니다. 저도 예외 없이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사흘 전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막 젓가락을 들려 할 때 군이란 아이가 일어나서 「선생님, 누가 제 도시락을 바꿔 갔어요. 이건……내 것이 아녀요」해서 바라보니까, 딴은 뚜껑이 열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봉래미 흰쌀밥에 닭다리구이가 먹음직하기만 했으나 그건 확실히 군이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도시락을 잘못 가져갔나? 닭다리 반찬을 갖고 온 사람은 누구지?」
 몇 분이 지났어도 나서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럴 노릇이, 도시락은 크기나 모양이 모두 비슷하거니와 지에서 무슨 반찬을 싸주었는지 아는 아이는 드물 것입니다. 좌우간 바꿔 가는 아이가 없기 때문에 우선 군이보고 먹으라고 일러준 다음 따지기로 했습니다. 군이는 닭다리구이를 신명이 나도록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것은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군이가 홀어머니의 바느질품으로 지낸다고 해서 얕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말해서 오늘 누가 도시락을 바꿔가지 않았던들 군이는 그런 닭다리 반찬을 생각조차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똑같은 일이 또 생긴 데에는, 저도 어떻게 된 셈인지 수상한 생각이 안 날 수 없었습니다. 군이가 도시락을 열어보고, 어리둥절하며 「또 누가 잘못 가져갔구나! 」 하고 소리치자 아이들은 밥을 먹다 말고 군이 둘레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날 바꿔진 것은 갈비튀김이었습니다. 저는 군이더러 「무슨 반찬을 가지고 왔지?」 하고 물었습니다. 군이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무말랭이뿐이었어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자, 누가 도시락을 바꿨나? 갈비튀김하고 무말랭이면 수지가 안 맞을걸?」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와아! 하고 웃었는데 그래도 찾아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일변 우습고 또 일변 궁금했습니다. 군이도 영문을 몰라라 하는 눈치로 그 갈비튀김을 먹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치 고무공만큼 커다란 쇠고기 완자찜 때문에 어리둥절했을 때, 마침 보내주신 편지를 방게 되었습니다. 저는 편지를 뜯기 전에 벌써 군이에게 농담조로, 「아마 주님의 뜻인가 보다. 어서 먹어라」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군이네 모자가 기독교 신자라서 얼핏 생각한단 말이었습니다 마는 종교적 신앙심만이 그네들에게 무말랭이를 먹고사는 처지에 만족할 수 있도록 안도감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말랭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그들의 형편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제가 가정방문을 했을 때, 군이 어머니는 하루에 세끼를 채우기 어려우나 외아들 군이만큼은 부디 잘 가르쳐 달라고, 가난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부탁했습니다. 그 점에 있어 군이는 어머니의 실망을 사지 않고 있습니다. 군이 어머니와 한창 이야기 하다가 보니까, 뜰에 온통 무말랭이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군이 어머니는 먼지가 꾀죄죄한 무조각을 가르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렇게 숱한 무를 말리고 있습니다마는 돈주고 산 것은 아닙니다. 근처 채소밭에서 무를 많이 가는데 거둘 때 쫓아가서 그이들이 버린 동강이, 꼬랑지, 속이 썩은 것, 벗겨진 것들을 모두 주어 와서는 다시 고라 말리기도 하고 절이기도 한답니다, 그럼 우리 두 식구의 며칠 거리는 되니까요.」
 진이 어머님. 당신께서도 무말랭이만 항상 먹으면 무슨 맛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만, 제생각에 군이 어머니가 그것을 먹을 때는 한없이 쓰라린 맛을 맛볼 것 같습니다. 군이 자신만 해도 뒷날 어른이 되어 무말랭이를 씹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반드시 감개가 무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이든 명나라 시절 삼봉주인이 그의 친구 홍자성의 저서인 ≪채근담≫을 위하여 써 준 서문 중에서 「……나물뿌리는 취하여 책이름으로 함은 원래 청빈한 단련 끝에 얻어지며 또한 스스로 가꿀 수 있으며 그 내력이 온갖 풍상과 잦은 고초를 고루 겪어 ……」란 구절을 읽는다면, 반드시 왕년에 맛본 무말랭이야말로 실상 일종의 진미였다고 깨달을 것입니다. 얘기가 너무 옆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편지를 다 읽고 오랫동안 정신을 가다듬지 못했습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식당 안을 돌아다니다가 귀엽게도 동그랗고 홍조된 조그마한 얼굴 앞에 와서 발을 멈췄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도둑이 제발 저리다는 격으로 허둥지둥 무말랭이를 밥속에 쑤셔 감추었습니다. 저는 그 옆 빈자리에 앉아서 귀에다가 입을 대고 가만히 물었습니다. 「무말랭이 맛이 어떻지?」
 순간 깜짝 놀란 얼굴 표정이 금방 가라앉더니 시치미를 데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주 맛있어요 선생님!」
 아주 맛있다고! 저는 일어섰습니다. 그 말의 뜻을 음미하면서 일변 편지사연을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식당을 나오자 총총걸음이 뒤를 쫓아왔습니다. 「임선생님!」
 돌아다보니까 그 조그마하게 된 홍조된 얼굴이 숨가쁘게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셔요. 군이네 지은 정말 가난해요. 군이는 날마다 무말랭이만 먹는대요. 그래서…」
 저도 키가 퍽 작습니다마는 제 앞에서 선 이 아이는 저보다 머리 반쯤은 더 작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넓고 거룩합니까!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벌써 아셨겠지요? 당신께서 저보고 찾아내라는 그 하늘의 벌을 받을 아이를 저는 붙잡은 것입니다. 바로 아드님 진이었습니다.
 아무 말 않고 끄덕여 주는 것으로 진이의 청을 들어 준 저는 그 자리에 선 채, 그 건강한 작은 모습이 식당으로 되돌아간 후에야 벅찬 감격을 안고 교무실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대체 그 무말랭이의 맛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실상 인생의 온갖 맛을 다 갖추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어떤 사람이 어떤 처지에서 먹는지 지켜볼지 모른다. 그리고 또, 선량한 인간의 본성은 거칠고 추한 이 세상에도 우리의 다음 세대에만은 잃어지지 않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 동안 쉴새없이 손수건으로 닦으며 생각하며 했는데. 오랜 후에야 저는 음식찌꺼기 묻은 입술이 아니라 눈시울을 닦고 있었던 일을 깨달았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이렇게도 흠씬 즐거운데 어째서 눈물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 편지를 보신 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겠는지요. 이 하늘의 벌을 받을 아이를 용서하실 수 없습니까? 그러나 저는 저의 제자를 위하여 간곡하게 용서를 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총히 답서만 올리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 × ×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