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문화를 사랑한 한 공무원의 이야기
‘Save the 이웃집공무원’@ 브이홀
이웃집 공무원을 구해라? 공연타이틀 치고는 참으로 희귀한 제목이지 싶다. 6시 반쯤 입장한 V-Hall 무대 정면엔 김경민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 있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 이 공연은 '제 4회 이웃집 딴따라'의 일환으로 ‘이웃집 공무원’ 김경민 선생님을 위한 자선공연이란다.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아니러니컬하게도 몇 년 전까지도 홍대지역에서 지역주민과 상인들에게는 인디문화가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 '상상공장'은 지역주민들에게 홍대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힘썼고 서교동 동사무소에서 근무하시던 김경민 선생님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많은 도움을 주셨단다.
이렇게 홍대문화를 지지하던 김경민 선생님이 최근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거동조차 어려운 상황이란다. 이에 김경민 선생님을 돕기 위해 상상공장이 주측이 되어 지금까지 함께 작업을 해온 밴드들과 자선공연을 마련했다.
홍대앞 뮤지션들의 이웃집 공무원 구하기!
*감미로운 보컬과 멤버들의 코러스가 아름다웠던 밴드 보드카레인
본래 공연은 V-Hall과 홍대놀이터에서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놀이터 공연은 취소되고 V-Hall 공연만 진행되었다. 파워풀한 보컬의 3인조 부부밴드를 선두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어 등장한 남성 4인조 밴드 보드카레인은 새 앨범 녹음 중이라 공연을 자제중 임에도 김경민 선생님의 소식에 선뜻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몸을 가볍게 흔들거릴 수 있는 잔잔한 곡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우며 들어왔다. 밝고 신나는 곡 ‘걷고 싶은 거리’와 시원하고 감미로운 보컬과 기타와 베이스의 코러스가 함께한 ‘100퍼센트’가 끝나자, 커다란 환호가 쏟아졌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서 제 목소리가 슬픔이 아닌 희망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라는 멋진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홍대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리공연을 하면 경찰에 연행되기 일수였다고 한다. 사회를 보던 김기자도 10년 전 극동방송 삼거리에서 라이브를 하던 한 밴드가 연행되어 가는 걸 목격하면서 인디전문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보탰다.(그 밴드가 그 유명한 아소토유니온!) 김경민 선생님도 거리공연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역주민과 상인들을 설득하는데 앞장섰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의 자유러운 거리공연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우리도 밴드다. 홍대 어르신들로 이루어진 잔다리 밴드
사회를 맡은 김기자의 소개로 시작된 팀은 바로 '잔다리 밴드'. 잔다리 밴드는 홍대 지역 어르신들이 나이를 잊고 홍대 문화를 체험하는 ‘나이 없는 날’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3인조로 출연한 잔다리 밴드는 V-Hall과 묘하게 어울리는(?) 7080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가곡 ‘산들바람’, 산울림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 등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본래 인디 뮤지션과 홍대 지역 어르신들이 함께 어우러진 잔다리 밴드는 김경민 선생님의 주선으로 어르신 멤버가 구성된 만큼 김경민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그런 만큼 이날 잔다리 밴드의 심경은 의미심장 했을 터.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지나간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에요'라는 산울림의 노래가사가 더욱 애닮게 다가왔다. 평소 라이브 클럽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선곡이지만 어르신들이 들려주시는 만큼 신선함 반, 가슴 찡함 반이었다.
이번 공연은 제 4회 '이웃진 딴따라'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이웃집 딴따라'는 홍대에 살면서도 옆집 뮤지션이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공유되기 힘든 현실을 넘어서서 홍대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에게 홍대문화를 좀 더 알리자는 취지로 상상공장에서 진행해온 프로젝트다.
* 아름다운 곡들만 뽑아 선사한 이상은.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격정적인 발라드를 구사하는 밴드 코발트 블루를 지나, 8시 즈음 이상은이 등장했다. 이런 자선 공연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멘트로 이상은의 순서가 되자 어느새 공연장 안엔 꽤 많은 사람들이 찼다. 홍대주민의 한사람으로 이번 자선공연의 소식을 듣고 흔쾌히 노개런티로 출연의사를 밝혔다는 그녀. 이상은 특유의 치유의 목소리가 브이홀에 꽉찼다. ‘비밀의 화원’을 시작으로 ‘새’, ‘언젠가는’ 까지 주옥같이 아름다운 곡들이 어쿠스틱으로 연주됐다. 특히 마지막 곡 ‘언젠가는’ 에선 이상은이 마이크사람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모두가 큰 목소리로 함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를 열창했다. 김경민 선생님의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과 오버랩 된 그 장면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신곡들을 들려준 내귀에 도청장치. 팬들 특유의 손짓(?)이 인상적이었다.
9시 쯤, 내귀에 도청장치가 등장했다. 홍대주민인 보컬 이혁 또한 이번 공연의 사연을 듣고 망설임없이 동참했다.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2~30명 가량의 팬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있었다. 그들은 “이렇게나마도 도울 수 있어서 좋다”는 멘트로 공연을 시작했다. 최근 4집 앨범을 발매한 이들은 신곡 위주의 공연을 펼쳤다. 첫 곡 ‘Crazy love’를 비롯해 잔잔한 ‘포르기네이’, 댄서블한 비트의 ‘축제’와, ‘U Hoo Hoo’ 등을 연주했다. 객석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앵콜곡 'E-Mail’ 역시 팬들과 함께 점프를 하며 신나는 무대를 선사했다. 마지막 팀 ‘정직한 멜로디’의 재미있는 가사와 멜로디의 노래들을 끝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많은 관객들이 컴필레이션 앨범을 사고 모금을 도왔다.
비 오는 날, 사람들의 따뜻했던 손길
비가 줄곧 내렸음에도 관심을 가진 관객들과 팬들이 V-Hall을 찾아주었다. 공연장 한쪽에서는 이번 공연에 참가한 밴드들의 음악 11곡이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 판매와 자선모금이 이뤄지고 있었다. 관객들이 기부를 하는 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는데 컴필레이션 앨범 수익금과 모금액은 전액 선생님의 치료를 돕는 데 쓰인다고 한다. 밴드들은 모두 노개런티로 공연에 참여했으며 “많은 도움을 주신 김경민 선생님에게 고맙고,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다. 관객 분들이 모금에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우천으로 아쉽게 취소된 놀이터 공연 팀들도 팜플렛을 통해 응원메시지를 보냈다. 관객들과 밴드들 모두 훈훈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까지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일터, 김경민 선생님의 빠른 쾌유를 바라며 홍대앞 문화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글/안지연
사진/박재윤
에디터/김기자
201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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