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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夏,北沃沮末曷二千騎渡河而南聲言報荻得‧古斗之讐.上命扶芬奴伏弩於河南待其登岸而射之,皆落水中.上又與漢素‧摩離擊其殘軍於河中大破之. 公主,再拜且拜,曰妾以小邦之主世襲此邑,輓近以來,北辱於末曷東屈於樂浪,北有松讓南有涉羅,無年不兵無日不戰,國弊民疫無以支存.況今,新喪于台,國無所主.妾,以孤寡,不知所圖,伏乞夫皇矜此可憐,使妾執紼,主此邦民.上遜辭再三避之不得,乃與公主設宴三日,合巹二夜雲雨巫山.二聖歓喜,万民謳歌百僚山呼.上抱后而喜曰吾妻之國山河嶮固土壤肥沃,進可以取退可以守,牛羊魚鼈不可以勝食,黍麥豆粱亦足而富,民有何可憂不知所圖.
임오 BC39년
여름에 북옥저땅 말갈 2천기가 하 건너서 남쪽에다 대고 맹세하길 적득과 고두의 원수를 갚겠노라 하였다. 상께서 부분노에게 명하시어 하남에 노수들을 매복하여 있다가 물가를 기어오르길 기다려서 쏘게 하셨더니, 모두가 수중으로 떨어졌으며, 상께서도 또한 한소 마리와 더불어 살아남은 군대를 하중에서 쳐서 대파하셨다. 공주가 재배하고 또 절하면서 아뢰길 “첩은 소방의 임금으로 이 읍국을 세습하였는데, 몇 년 이래로부터 북쪽으로는 말갈에게 치욕을 당하고 동쪽으로는 락랑에게 굽실거려야 하였으며, 북쪽에는 송양이 있고 남쪽에는 섭라가 있어서, 전란이 없는 해와 싸움 없는 날이 없었더니 나라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역병이 들어서 지탱하고 보존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게다가 우태가 죽었으니 나라는 주인이 없게 되었고, 첩은 홀로 된 과부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부황께서는 이를 가련하게 여기시어 첩으로 하여금 엉킨 실이나 다스리게 하시고, 이 나라 백성들의 임금을 해주세요.” 라 하였더니, 상께서는 겸손하게 재삼 겸손하게 사양하며 피하시다가 어쩌지 못하시어, 공주와 더불어 사흘간의 연회를 열고 이틀 밤을 합환하시어 무산운우를 나누셨다. 두 성인께서 매우 즐거워하셨더니, 만백성들이 노래하고 백료들이 만세를 불렀더라. 상께서 후를 품에 안고 기뻐하시며 이르시길 “내 처의 나라는 산하가 험고하고 땅이 비옥하며, 나아가면 이길 수 있고 물러서면 지킬 수 있으며, 우양어별은 먹어서 없앨 수 없고 서맥두량 또한 족하고 부유한데, 백성들이 어찌 근심할 일이 있고 해야 할 바를 모르겠소?”라 하시더라.
癸未 春正月 以萱花爲天太后 召西奴爲天皇后 旃后爲地皇后 仲室氏爲人皇后 二月 鍊兵二千於汗濱 水師八百於河中 命丹公相都於鶻岺湖上 飭諸將毋奪民貨色以安其生
계미년 BC38 춘정월 훤화를 천태후 소서노를 천황후 전후를 지황후 중실씨를 인황후로 삼으셨다. 2월, 병사 2천을 한빈에서 훈련하고, 수사 8백을 하중에서 훈련하셨다. 단공에게 명하시어 골령호 위쪽에다가 도읍할 자리를 살펴보게 하셨으며, 조칙을 제장들에게 내리시어 백성들의 재화와 여인들을 빼앗지 말고 그들의 생활이 편안케 하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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曷曷酋西文雪敬等再擧入寇汗濱上親征斬首千余級虜雪敬梟于河上時曷衆之散居汗西河北者與松讓通謀??兵來襲汗濱之船廠練場上以計誘其衆於漢(汗)口而屠之殆盡其衆號哭知不可敵皆移于河北上命摩離移民營農置戌於河界監視渡人
말갈의 추장 서문, 설경 등이 다시 크게 일어나 한빈을 도적질하러오니, 상이 친히 정벌하여 목 수천여 급을 베고 하상에서 설경을 잡았다. 이 때에, 말갈의 무리들이 한서와 하북에 흩어져있으면서 송양과 통하여 모략을 꾸미며 병사를 내어 한빈의 배 만드는 곳과 단련하는 곳을 습격해오니, 상이 계략으로 그 무리를 한구로 유인하여서 태반을 목베었다. 그 무리가 크게 울면서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모두 하북으로 옮겨갔다. 상이 마리에게 명하여 백성들과 관청을 옮기고 수비병을 강 경계에 두어 사람들이 넘어오는지 감시하게 하였다.
上與召皇后溯沸流水至沸流[湯原]松讓避居山中而不見 상과 소황후가 비류수를 거슬러 비류에 이르니, 송양이 피하여 산 중에 머물러 보이지 않았다.
松讓素以奸巧之人 七國之亂以舌功娶其女主而爲君 及得貫貝而生子松義及女 見陀勃無子欲兼倂卒本 踈其本妻女主 而欲兼娶召后 召后百計沮之故遂生邊界之爭 及上娶召后 自以爲長婿扇 動卒本之反側者 欲奪旒氏而得國 上不得已遂納旒氏 以安其心 又誘曷衆以害國 奧春累責其咎而不悛 上欲親折以懲之 而松讓知不可當空闕 而走于山中 梪木鬱密 人不得通 故不知其處也
송양은 간교한 사람이라, 7국의 난에서 말재주로 그 여자 주인을 취하여 군주가 되었다. 후에 관패를 얻어 아들 송의와 딸을 낳고는, 연타발에게 아들 없음을 보고 졸본을 병합하고자 하여 그 본래의 처 여자 주인을 소홀히 대하고는 소후를 더하여 취하고자 하였으나 소후가 백계로 저지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마침내 그 변경 경계의 전쟁을 일으켰다. 상이 소후를 취하자 스스로를 첫째 사위라 하면서 졸본의 반측자를 선동하여 류씨를 뺏고 나라를 얻고자 하였는데 상이 부득이 류씨를 용납하여 그 민심을 안정시키니, 말갈의 무리를 유인하여 나라를 해치고자 하였다. 오춘이 누차 그 처신을 책망하였으나 고치지 않으니, 상이 스스로 징벌하여 그 화근을 끊고자 하였더니, 송양이 당적할 수 없음을 알고 궁궐을 비운 채 산중으로 도망하였는데, 두몽이 울창하여 사람이 통할 수가 없으니 그 거처를 알지 못하였다.
松讓悉其國中兵五千以賈敦爲將而來侵初松失其妻子珍宝發憤欲死其臣鄒格奏曰臣有友人名賈敦者其父漢人其母臣之族也有將相之才陛下若以爲將可滅朱蒙而報讎矣松大喜迎之爲將悉五千步騎而發漢素聞之欲以船軍邀擊之於水中上命待其半渡而擊之使首尾不能救且命烏伊摩離各引五百騎自河南因其朝霧而渡北岸烏伊掠湯東諸庫摩離直馳入沸流而襲其無備空都虜松讓扶芬奴引兵一千出汗西北掠湯南湯西賈敦分兵二路一軍出汗濱虛張聲勢一軍出河南自將精騎銳卒襲靑谷之倉庫以爲持久之計使人探其虛實上知其意伏兵於靑谷若無人賈軍至河南爲烏伊摩離之所敗其至汗濱者爲扶芬奴漢素所敗其殘卒依賈敦之命從河岸出靑谷上誘其衆入靑谷四面圍之矢下如雨賈敦中箭落馬爲我軍所獲餘皆或降或逃僵尸滿野扶芬奴伐湯南如破竹虜男女二千余口烏伊巡湯東撫其民不犯秋毫百姓懷之時松讓自沸流出水樓[湯旺口]苦待捷報時摩離假作沸流軍而疾走松以爲渠兵而蒼皇出迎曰業已凱旋耶摩離笑曰非汝之凱旋而乃我之凱旋也遂擒以爲行酒之奴其後宮美女皆爲摩離之侍女松自知其不敢當膝行而請罪上命歲修貢羊八千首秦豆二千石藥材弓矢金銀宝刀雜物八百種白鹽三千石以示七縱七擒之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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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親率精騎二千渡汗水[牧丹江]至中川[拉林]召黃龍主羊吉吉大惧不出使人讓之曰汝以鸞子侮辱先帝不救同胞陷䧟曷酋不迎朕駕大乖倫常罪不可釋吉乃遣其侄子于仁獻黃金八千斤彩絹二千匹及先帝宮人芉花禾英等二十余人而謝曰僕老病子幼故遣侄于仁以迎大駕俾無失禮使沿路州牧盡誠奉供以便會獵恕此衰鈍可也陜父請伐之丹公曰不可黃龍世守忠義雖有劣吉亦是帝孫撫以幷之可也上亦然之乃與仁獵于獸林獲獐無數謂仁曰朕之弓術比吉何如仁曰臣父修文不識弓術安能比哉上笑曰修文之國上下好淫不理政事乎如不早降當如松讓乃割箕丘印之地爲獵場置獵舍獵騎以烏伊爲箕東將軍使鎭黃龍以烏干爲羯河鎭將以代其兄
命烏伊引兵五千鍊于中川羊吉見勢不利
上聞河北森林之地尙有曷賊蟄居之處其衆往往渡河而來有蠢動之狀乃命松讓出兵士三千人粮米五千石使藁斗吉士等捕曷于河北伐木採鐵曷衆逃入荇東
松讓以其艱難怨其神鹿懸鹿於蟹原之上有大蟹來咬鹿哀號七日天乃大雨七日洪水大漲平地水深二丈沸流都城陷沒於水中松讓避入岩窟都民號哭索其父母妻子慘惔難言上發兵往救之賑其民衆讓自知德薄才拙無以自存請以國獻永爲臣子乃以其地爲湯東湯西湯北三郡以讓爲多勿候多勿者復旧土之義也舊村曰多勿故國之義也天帝之熊心山鴨淥行宮[僅江口]在湯東爲讓所奪至是復之故以湯東爲多勿郡自是始置汗東汗南桂林箕東湯東湯西湯北編入國土而守牧之
曷思國黃頭郡候加菽公與其妃葦花公主
上謂烏伊摩離曰沸流已平黃龍亦爲入口之物緩緩噉下可也南方可謂稱定矣但河北之羯與荇人相通更入林中藁吉之功歸於虛地可謂蝇蜹之徒若不掃蕩良民不長奈何乃以烏伊爲左軍大將摩離爲右軍大將扶芬奴爲先鋒大將各引兵三千伐北羯逐出山外收其地[通河木蘭巴彦以北之地]爲湯外[鐵利]質山[綏化]二郡置戍鎭將及守牧官此地梪木塹天獐鹿無盡居人藏其盬肉於木桶而出遼東搜絹而來者亦多
又畋于質山鍊兵八千桂后追至與上較射于苑中林賞弓師七人劒師五人槍師三十八人以菸狗爲質山鎭將桓柏爲湯外鎭將桓柏桓淑所出漱帝之子桂后之胞弟也時年二十
黃龍雌雄見于骨岺至王骨岺交首脫爪至南岺蟠交三日乃以其山爲龍山其水爲龍溝群臣以爲祥瑞而請作宮室于此上以兵事未盡不許
上與萱后幸河南[富錦]大閱軍兵入優渤行宮[德宝河口]探聖母古蹟載乳嫗鄒加而歸民曰我父如天我母如地
上如質山探荇人國消息荇人王祖天好神仙以黃金爲龜事之如神好奢侈多後宮後宮子百余人其母妹婦女皆當夕番衣服飮食多求於遼東國人不勝其輪運之苦國有鹽鐵弓䃚荇鵞之産其利莫大其民多是遼來之人多美人佳士仙人嗜用荇菜故其菜遠及遼華荇人之名??暢味香可食國中湖沼多生之祖天以荇鵞養胃肥如鼢豚軍民之政皆委於方士不務農桑而賣買爲業民有三子其一爲仙其一爲軍其一爲農仙者仙院之役也軍者軍鹽之軍也農者畜也耕者極少荒地廣大多毒蛇大蟲祖天有三京夏居海山冬居滸原春秋在北棘其母蘭氏遼東女也天父山以千金買之爲妻生子天而出獵爲虎噉而死天年幼山弟雷代立亦以蘭爲妻生女數人而未能生子天乃烝而生子雲蘭勸雷傳位於天以如約雷回避不行而陰欲殺天蘭遂與天因其醉而絞殺之遂立天天委政於蘭而養鶴馴鹿紺紙金泥寫符??仙而優遊度日不知戰鬪弓馬之術田野荒廢取穀於黃龍卑离以鹽償之上禁黃龍之穀故飢寒者日歸於質山質山多戰多林無飢寒之憂蘭氏年過紀甲而窃奸方士祖天怒殺呂君方君吳君等皆蘭之情夫也於是蘭氏使其親族欲廢祖天而事發蘭黨多被誅戮幽其妻蘭氏於荇泉以其第四妻鵞氏爲正妻乃蘭生雷女也鵞以其庶弟祖焄爲相庶姪旺發爲將而盡逐方士登用眞仙國中上下離心不知變出何時蘭氏使侄子蘭秀上書于帝曰臣蘭素以遼東世族爲山之妻而生天月余山傷沒委妾於其弟雷曰天年至十五汝可立天天年十五而??成能與神作雲雨雷不如約而立天反妬臣與天好三年相持必竟雷受神罰而死時臣年尙少謹守從子之義勉爲三世之妃生其五子二女極盡貞誠至於老耗故時吸佳卽之精華以補氣(元)天妬以爲奸幽此老妾于荇泉別宮違其荇鵞之養背恩之甚莫若斯也願陛下興師問罪臣當擧義雖無桂后之美當盡陀勃之誠上嘉之賜密詔諭之曰朕當爲卿雪恥卿其勉勵自愛仍賜不老酒二缸蘭秀辭去上手額而西曰殆天之賜我者歟命伐質山之木以造船于雙江[綏化之北克音河呼蘭河合處]雙江人??山獻黃金七千斤上命召后作魚花以賜後宮及公卿夫妻
荇人國天帝鮮文逃來上大喜封爲荇人王仍練黃龍兵一万於河濱[哈爾濱]
時荇人國多飢民且失天帝上下洶洶上遣粟救之召其王祖天來觀鍊兵祖天許之其妻鵞氏疑有變而諫曰大王得罪於母蘭今母子相隔朱蒙以此擒之奈何祖天然之使其二妻子祖原來獻珊瑚盃而奏曰臣父有喘氣之證入朝中途病劇留之命臣來謝上曰汝父之病何不早言邪乃以喘藥遺之厚待而送之
時淹淲河南湯東汗濱河濱有水陸兩軍質山中川桓那牛壤西城有車騎兩軍皆置將軍司馬以統之
祖天使扶芬奴將新二千與蘭秀巡定荇南諸郡荇人莫不來降尉厭將質陽一千巡定荇東諸郡以祖??爲前導以七月五日會於河上上以蘭氏爲荇人國天王時蘭氏産期臨迫臥於牛車之上謂荇人之來降者曰吾已爲高句麗國皇后而當朔如此汝等當尊朱蒙爲天帝而討天之罪於是沿路諸候爭來投降上與桂后蘭妃受其降而賜之以酒與不血刃而進駐天都滸原[興通鎭界]
上命烏伊進伐荇泉荇菜之最好者産于是淵味小苦有渋雅之香味以此煮鵞肉以祭天故以爲靈地而作別都乃古都人口之稠密物貨之華麗勝於滸原故天使其長子祖雲令死守而不降且其民欲爲國殉死上令烏伊先伐其四面而絶其粮然使蘭氏勸雲降雲知其爲天命而出降
命與扶芬奴巡荇西路而上扶尉厭從荇東路而上上與烏伊引兵而前
進屯於北棘之南祖天見勢甚危遣使獻金龜而請割荇東荇南以獻之永爲臣妾上命祖天自來降之天恐不能保欲焚城而死城中乃反欲擒天而迎皇師天聞單身走海山天走而城中唯有天之妻子近臣二百余人議論不一烏伊屯河上[呼裕爾河]觀望不進扶芬奴喧傳大軍進擊海山天之三子祖駿出城來見祖雲而知皇軍之信義遂決出降烏伊引兵入城中撫慰城民
群臣於朝陽殿上謂烏伊曰北沃沮靺鞨越河入寇河上之民歲受其侵冝將兵掃窟使民無苦烏伊曰黑水之鞨連亘數千里以漁獵寇盜爲生本無定居掃窟甚難一時散之終復來寇如蝇如蚊上曰屠其王庭而移民屯戌沿界立亭以報其䨏
梁貊國沙頭部酋長許信五里部陌克加南部酋長烏陳月伊部酋長金忍等入朝皆賜妻一人馬二匹綵絹十匹厚待而送之
卑离王簠公遣其子素奴來獻美女五人明珠十顆請會於東池紫蒙王廣公亦遣子西川來獻象牙白璧宝??五事簠公請廣公及胡王莫車故莫車亦遣使來獻不老酒請會東池許之
勾茶國女主閃尼殺其夫而請爲夫人上素知其(爲)毒女不許閃尼遂反以盖馬王燕冝爲夫而共謀欲侵黃龍招懷反側群臣請伐盖馬上以荇人之創未愈欲休兵而不許使都喜吉士徃探盖勾之虛實而歸
徵荇南軍二千黃龍軍五千命扶芬奴于仁鍊之于西川上親鍊沸流軍三千于汗濱從汗水至汗東南獵于桓那勾茶之界閃尼躍馬追桂后大罵曰亡國之女敢閙天仙之國上怒欲伐之命沸流軍結陣于界上而待詔
上至瓠盧湖與柘公妃桂孟子泛舟湖上品瓜賞月酒然有絶世氣象
閃尼以馬韓人水德爲其情夫悉集囯中兵與我軍相持其囯在黃龍桓那之南漢山之北東至汗東之南西至盖馬之東南接馬韓辰韓常附庸於黃龍盖馬至是與馬韓通好與燕冝失和上以爲戰機乃使人謂閃尼曰戰吾所非不能也傷人必多不若和閃尼曰勝者傷人敗者被傷當然之事也欲來降則降欲被傷則傷而已引兵入界㤼之以威今忽言和何也上笑曰無已則戰矣其勿怨可也乃使前騎散告於民曰吾欲與和而閃尼請戰故不得已戰也殺傷破毁吾豈嗜而爲之哉北夫余之故土不可不復而戰也勾茶之民以此怨閃尼上又言閃尼好淫而殺夫者三不可不懲詬我皇后辱及朕躬不可不問罪在閃尼一人冝爾百姓勿妄動而被誅若有擒梟閃尼水德而來者當封勾茶候矣兩軍固雨相持於二水[雙河]七月二十日先鋒突破敵陣直馳黃山大軍繼之敵集其軍於黃東[磐石]大戰三日互有勝負水德有勇我軍多傷上親射殺之賊潰保水上[黃泥河??]追擊破之閃尼以虎山爲將决死戰於都下[西安]大戰自晨至晡桂后護上被矢上怒督軍迫之射殺虎山以下九將血流成渠賊臣霞逢等縛閃尼出降命斬之命諸將巡撫諸郡不下者擊破之至八月十五日乃定行月歌于茶都分勾茶爲馬山平山黃山泥河豊城
命再思與柴吉定界以竹岺[??陀]印爲樂浪奄利水東岸南岸盡入順奴南沃沮故地也
上北巡至梁山賜戍卒衣酒溯上大河[黑河]北望大河之勢以審九河之曷域而謂烏伊曰曷衆尙依芦叢而居之因風火攻之計不可棄也命沿路備魚油松脂蓬炬等物九河之賊三十餘落其中大河玉河蘭河中河牛河濱土石齒月窟馬丘狄屯巴婁阿勿史弗等最强餘皆服屬于是史弗最近於梁山漸被皇化而頗有服從之意且有外部落七酋長有內附之意乃募喜厚遺是輩約以有事相應
五鹿充宗奸匈極惡與石顯輩弄絡劉奭以致貨累鉅万爲王鳳所逐而出幽州自稱玄菟太守以金銀彩絹等每誘涉臣會獵而欲襲鮮卑涉臣將其計而反誘鹿出渝關至石原使其將互獨射殺之馳入其居而取其財宝美女涉臣之母可喜莫車之大姑也與狦爲從而且以姊妻莫車而交密相與專橫於上谷王鳳惡鹿而不問其死
上與孟候蘭妃巡行荇南閱戍觀魚品荇而至滸原慰勞將士八百人畋于質陽而還
臨汁水之上相石之基盖黃龍國東都之旧基也山川風景具有可觀
命烏伊摩离鍊兵八万以爲討沃之備
烏伊等引兵至梁山分八路覘之時巴婁阿勿軍與史弗交戰菸狗直指阿勿部掃其窟大軍連續渡河因風放火賊首尾不能相救或走山依之或走水匿之老弱落溷而死者亦不知其數摩离從大河而上漢素引水師掩襲赴河之賊賊累戰失利北鞨王舂臣遣使請和割大河印爲界
烏伊等分末曷十二落爲三州曰大河州中河州關河州置戍而還
送牛河所得白熊王女加得於白熊國其王大喜遣使來貢魚皮鹿??
徵黃龍荇南桂林民丁万人營石汁水上鵞亂原
上與孟后如獸林溫宮
北鞨王舂臣爲其下蘇辰所殺大河酋長角民伐蘇辰殺之而自立盡取舂臣財宝妻女以爲其有
鍊民十万於河上[筆源]還西川而親耕籍田
上聞舂臣死後北鞨無人大河以北諸部互相爭鬪命扶尉厭馬黎等鍊兵於大河以爲討鞨之備
五江[奄汗中西北]之民能作舟車者使之賑鹽通貨置其鹽所器所衣所等於各地
上如湯外巡視鐵山
至大河閱兵角民聞之率其妻子遁入雪羅山中諸酋續續來降自願爲先鋒上曰朕豈好用兵哉但問角民之罪而已角民如自來則兵不血刃而定矣角民大惧送舂臣財宝妻女而請和上叱其使曰角民不自來則不得免死矣
肅愼王乾朕遣使來獻北海之火魚月山之角雁而諫曰臣聞陛下鍊兵十万於大河而將屠北鞨之衆云然末曷隨水而移其源遠自上谷之北從河而上逶迤太伯蚕食黑水東之于海上西之于北海此北海者單于之秘園也漢帝不能侵蘇武老於此者也臣與末曷或和或戰者百有余年不能根治而抛之者盖如惡草而難除不可盡芸也臣以爲陛下英勇雖出百王與此惡草爭利則得不補失恐非聖人之治也請罷是役
徵末曷人三万人爲鄕導編于三路六十軍之中一軍二千人作五隊隊用曷人百各爲之前導負担皆渡河而待期北鞨聞之避去者甚衆諸將曰若皆逃去只得空庭而已不如速討之上曰空庭而易動必非根據之地也留而死守者乃其根據也逃者逃之留者攻之可也浮動者逃則根地必孤矣或??或誅而不與較殺萬金之計也
北地飛雪寒威早至上與士卒露宿于野以兵卒冬衣未至不御重裘沿江積薪熱火火光連天賊以(爲)開闢後初有之事召后孟后聞上有微崇而馳至上翼衣未至責而還之未幾皮裘至軍得禦寒上還都
扶尉厭宝燕將第一軍伐大河之東南五加沙部馬黎鄭福將第二軍伐代河之西北菸狗羊臣將第三軍伐五河去年有神雀之慶而荇泉拔今有白鸞之慶北鞨亡矣鞨衆自以爲南北懸絶從古未聞鷄犬之驚穹廬巨創內藏千年宝貨皆是中國古物也守貨而死者相連如抱卵之雉矣
三軍皆出五河之北拔枝河[嗚浦東北]虜角民兄弟三人北沃沮三十余洛來降掃窟者八十三斬將者百二拓地千金里牛羊獹鹿十七万生口八万女子居二駿馬五千匹兵仗珍宝無數
置沃沮將軍十人分治降衆以曷女六万三千分賜將士移其大姓男丁于杜訥之西及梁貊之谷賜垦荒地
烏伊進拔不而城彼此不傷一卒都民以鸞旗鳳車迎聖上及三禾宮入次于天帝舊宮上親祭于廟以仙室大兄屋春爲不而城主賜禾鮮羊佗旺龜等大姓大酺三日徏卑离大姓旺氏鮮氏皮氏遂氏等于湯東以烏伊爲卑离假王
卑离諸城皆下而唯長岺高顯不下乃命摩離扶尉厭伐之
大雪烏干馬黎等困於積雪之中此地多毒泉軍士往往中毒而死上遣黃龍医二十人救之退保西河之梁河[農安]西河守芉直反付長岺上命羊臣往說芉直直外順內嶮不可信群臣請伐之直乃禾萼之婿而芉花之出也上問其年三十而曰年尙幼矣姑捨之
上不忍加誅赦爲先鋒而伐長岺過梁河至酸水[小雙城堡]與賊大戰破之上追至軍營直以其妻鮮氏薦之甚美上愛之直軍飮酸水而中毒上與直亦爲毒氣所侵而還命扶尉厭代領其衆而退保西河待期時長岺人多痢死其俗棄尸於原野河川軍飮酸水尸滿水中賊二次來襲撤毒而去鮮氏煮鵞於梪下骸骨自梪上落入鼎中其不潔如是
命秦章如長岺救療軍民之中毒者雖非我民亦皆施藥時長岺人從軍者甚多皆中是毒而臥故秦章密行而治之長岺人仰之如父
宝燕奪西河豪族于般之妻珙氏獻于扶尉厭于般怒誘西河軍民而反宝燕戰敗退保溫場[九台]
上親征西河[長春]拔之以扶尉厭爲西河太守鎭北大將軍鄭福副之宝燕移守梁山還珙氏
于于般扶尉厭引汗濱軍五千伐長岺拔之斬其守棘東左充
幸荇北命摩离伐海山拔之祖天隱窟數年不堪其苦至是引北鞨殘衆而欲再起竟敗而面縛出降諸將請誅之
扶尉厭鄭福等伐高顯城[服柳]拔之虜其酋角辛虎頭等于石上嘉其爲主盡忠免其死命從軍於大河
阿隃陀國使二人來朝貢物皆爲馬韓人所奪云其國在西海岸海路杜絶請從山路去上命夏信月當等率輕騎送于豊城之南
皇軍進拔盖馬國北河城[煙土通]爲據掠北河[新河]之東西盖馬王燕冝悉力以禦東城[遼爾罕府]乃以船暗向南口[遼源]南口孤立被圈城中食盡殺馬食草
南口鎭將胡登以城降上以其善守賞之使乙音鎭撫城民賑給豊厚厥民大喜恨不早降乃以乙音爲玄菟太守南口鎭將屯兵一万二千積二年之穀使漢素爲造船之備
乙音攻河城[通遼]拔之
鮮卑王涉臣遣使來貢請稿皇軍時鄭共軍迫龍湖[在開勇西北界]而與盖馬相持故恐惧而來者也
乙音進攻蔚岩[卓王府]大戰不利上命烏干將兵往救之干直指盖馬城[開魯]聲言與鄭共大軍陷城盖馬軍乃退蔚岩乙音收殘兵退保南口烏干鄭共??盖馬不克而還
上如北河[新河]慰鄭共烏干大稿軍士召涉臣不來
烏干辰拔菰城[亦達爾罕府界]東城等三城鄭共進駐羽城[興盛??近地]
還盖馬征軍於北河城[煙土通]
漢素拔河陽城[遼陽窩堡]置戍而還
涉羅女主突居知遣使入貢涉羅在於桓那之東南依山傍海世襲女主山多野少民以魚獵爲生冢居岩伏好歌舞鬼神國之後秀者爲女主之嬖臣生女爲巫其最少者繼之其俗淳實不華能爲其主而盡忠上賜奕居知綾縀命親自入朝
命菸狗馬黎引兵一万與鄭共烏干伐盖馬拔蔚岩城[卓王府]進迫其都城[開魯]燕冝率其妻子而西走潢上[大校上]菸狗取其珍宝送于石上遣武骨往稿大軍賜袍命勿侵掠其民使之安居服從以燕冝子小噲代立爲盖馬王歲修朝貢
鍊兵於湖海涉臣遣牛羊稿軍又以美女數十贈于鍊兵將士而欲得觀心將士劫其使責求愈多涉臣知不可當欲與之戰請救於紫蒙紫蒙王西川恐禍及己遣使來告上命練兵將士勿與涉臣搆怨又遣吉士於鮮卑慰論涉臣曰朕之伐盖馬也不得已也卿以忠誠早來臣服之矣近日征馬之將有不美於卿朕已治之矣勿爲惧慮而自誅不變向日之忠則爾國安矣勿自妄動而取禍涉臣喜而自新遣其子涉後爲質永爲父子之國許之
烏桓蘇鷄候元杜紀遣使來朝請赦燕冝之罪上曰燕冝自來可一言而決矣何區區使人介之哉使去燕冝又遣使來獻虎皮陶器請獻二女入宮永爲君臣上(曰)雖兄弟亦可何必君臣當相見而議也燕冝只送二女而竟不來陜父奏曰燕冝終始疑訝不可不伐上曰燕冝涉臣皆是奸物也不可一朝而破徐當究其道理不必燥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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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明元年甲申,五月,曷賊雪敬等一千余騎來侵靑谷,摩離擊破之.其舟楫兵仗多是沸流國物也.上命奧春與松讓相詰. 丙午,曷酋西文‧雪敬等再擧入寇汗濱.上,親征斬首千余級,虜雪敬梟于河上.時,曷衆之散居汗西‧河北者與松讓通謀聯兵來襲汗濱之船廠鍊場,上以計誘其衆於汗口而屠之殆盡,其衆,號哭,知不可敵,皆移于河北.上,命摩離,移民營農置戌於河界,監視渡人. 上,以船兵馬政之緊急,以漢素爲造船大加,鄭共爲造兵大加,馬黎爲畜馬大加,各領其屬而立府.以陜父‧吉士爲左右太史,命頒節侯曆于諸豪以便農牧.分汗濱軍爲十二隊,各置隊正,其半爲騎,其半爲船,各援弓釼弩槍.
동명원년갑신{BC37}, 5월, <말갈>적도 <설경> 등 1천여 기가 <청곡>을 쳐들어왔기에, <마리>가 이들을 격파하였다. 그들의 배 및 노와 병장기들의 다수가 <비류국>의 물건들이었기에, 상께서 <오춘>에게 명하시어 <송양>과 함께하여서 따져 보게 하셨다. 병오일에 <말갈>추장 <서문>과 <설경> 등이 재차 <한빈{桑干河下流沿邊}>으로 침입하여 노략하기에, 상께서 친히 정벌하여 천여 급을 참살하시고 <설경>을 사로잡아서 <하>상에다가 효시梟示하셨다. 이때, <말갈>무리들로 <한서{桑干河西部則中上流地境}>와 <하북{密雲湖地境潮河北方}>땅에 흩어져 살던 자들이 <송양>과 상통하여 모의하고 군병을 연합하여 <한빈>의 선창{造船所}과 훈련장을 래습하였기에, 상께서 계략으로 이 무리들을 <한구{桑干河河口}>로 유인하고 무찔러서 거의 모두를 도륙하셨더니, 그 무리들은 울부짖었으며 대적할 수 없음을 알고 모두가 <하북>땅으로 옮겨갔다. 상께서 <마리>에게 명하시어 <하수>경계에 백성들을 옮겨놓아 농사를 짓게 하고, 수자리를 두어서 물을 건너는 이들을 감시하게 하셨다. 상께서 병선과 병장기 및 군마의 일을 긴급하게 여기시고, <한소>를 「조선대가{배 만들기 대가}」로, <정공>을 「조병대가{병장기 만들기 대가}」로, <마려>를 「축마대가{말 기르기 대가}」로 삼으셨으며, 각자 자신들의 딸린 사람들을 이끌고 관부를 세우게 하셨다. <협보>와 <길사>를 좌・우 「태사」로 삼아서 명하시길 “절후력을 모든 호족들에게 나누어주어서 농사와 목축에 편하게 하라.”고 하셨다. <한빈汗濱>군을 열두 부대로 나누고 각각에 「대정隊正」을 두었으며, 반수는 기마군을 반수는 선군을 이끌게 하시고, 각각에게 궁・검・노・창을 나눠주셨다.
東明二年乙酉...二月,上,聞河北森林之地,尙有曷賊蟄居之處,其衆往往渡河而來,有蠶動之狀,乃命松讓出兵士三千人粮米五千石,使藁斗‧吉士等捕曷于河北伐木採鐵,曷衆逃入荇東. ... 上謂烏伊‧摩離曰沸流已平.黃竜亦爲入口之物,緩緩噉下可也.南方可謂稱定矣.但河北之羯與荇人相通更入林中,藁‧吉之功歸於虛地.可謂蝇蜹之徒,若不掃蕩,良民不長,奈何.乃以烏伊爲左軍大將,摩離爲右軍大將,扶芬奴爲先鋒大將,各引兵三千伐北羯逐出山外,收其地爲湯外‧質山二郡,置戌「鎭將」及守牧官.此地,杜木塹天獐鹿無盡,居人藏其鹽肉於木桶而出遼東換絹而來者亦多.上與桂后鍊兵八千而畋之,置獵舍而歸.
동명2년 을유 BC36 .2월, 상께서 <하북의 삼림지역에 상시로 <말갈>적들이 숨어살고 있고 그 무리들이 왕왕 <하>를 건너와서 살살 움직인다는 말을 들으시고, <송양>에게 명하시어 병사 3천명과 군량미 5천석을 내게 하시고, <고두>와 <길사> 등으로 하여금 이 <하북>의 <말갈>들을 사로잡고 나무들을 베어내고서 철을 캐게 하셨더니, <말갈>무리들은 <행동군 땅으로 도주해 들어갔다{행동군 땅은 행인국 동부 땅으로 행인과 말갈은 상통하며 살아왔다.}. ... 상께서 <오이>와 <마리>에게 이르시길 “<비류>는 이미 평정되었고, <황룡> 또한 입안에 든 물건이니 천천히 씹어서 삼키면 될 일이고, 남방南方도 평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소이다만, <하북}>땅의 <말갈들이 <행인과 함께 상통하여 숲속으로 다시 들어왔으니 <고두>와 <길사>가 세운 공이 헛일이 되었소이다. 정말로 파리 떼 같은 무리들이어서, 소탕하지 않으면 선량한 백성들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해야 하겠소?”라고 하시더니, <오이>를 「좌군대장」으로 <마리>를 「우군대장」으로 <부분노>를 「선봉대장」으로 삼아서 각기 3천병씩을 이끌고 <북갈>을 산림 밖으로 축출하고 그 땅을 거두어서 <탕외와 <질산두 군으로 삼고 수자리 및 「진장」을 두어 지키고{太守} 다스리는{牧使} 관리를 두셨다. 이 땅은 독두나무가 하늘을 찌르고 노루와 사슴이 무진하게 많아서 그곳에 사는 이들은 소금에 절인 고기를 나무통에 담아가지고 요동으로 나와서 비단과 바꾸려고 오가는 일 또한 많았었다. 상께서 <계>후와 더불어 8천병을 훈련하며 사냥하셨으며 렵사를 만들어놓고 돌아오셨다.
東明四年 丁亥,春正月,發河南‧湯東‧汗濱軍三萬,上親征湯東賊十部落,燒其窟而逐出黑水之外.荻得餘衆,誘引北沃沮鞨衆稍稍南下窟於黑水南岸年年增加,與敦河利勿之賊遙遙相應,將有大擧南下之兆故,上豫爲之伐自水口至梁山之間十部落五十餘屯,殺賊一万五千,虜八千余口,餘皆遁入敦河.敦河賊之來援者,亦多殺傷.是戰,亦以火攻得勝.賊,耐寒而不能耐火,爛者不能起,以上爲火神畏之,不敢抗拒.北沃沮諸賊,見皇軍之渡河,皆遠遁北塞依山而居,遣使約降請歲修朝貢者十二.上,凱旋河南,召樂浪王柴吉而獵于矮山.柴吉歲修朝貢以誠故,上優待之,而以其爲東扶余之屬國,使之安土.然,柴吉,不能自安,願以女献.上命陜父妻之,是爲柴花夫人.
六月,曷思囯奄利縣久爲末曷所占,至是來附於松江.
동명>4년정해{BC34}, 춘정월, <하남>・<탕동>・<한빈>의 군사 3만병을 징발하시어, 상께서 친히 <탕동적 10부락을 정벌하시고 그들의 소굴들을 불살라서 <흑수黑水밖으로 몰아내셨다. <적득>의 남은 무리들이 <북옥저>땅의 <말갈>무리들을 꾀어내 이끌고 점점 남하하여 <흑수>남안에다가 굴을 파는 일이 해마다 늘어나더니만, <돈하>와{의} <이물림>땅 적도들과 더불어 아주 멀리에서 상응하면서 곧 대거 남하할 조짐이 있었더니, 상께서 이를 예감하시고 <수구水口老哈河口에서 <량산에 이르는 땅 사이의 10부락 50여둔을 정벌하여 1만 5천의 적들을 죽이고 8천여 구를 사로잡으셨더니, 잔중들은 <돈하>땅으로 도망하여 들어갔다. <돈하>적도로서 와서 돕던 이들도 또한 많이 죽고 상하였다. 이 전쟁 역시 화공으로 승리하였다. 적들은 추위는 견뎠으나 불은 견딜 수 없었으며, 불에 데어 문드러진 이들은 일어설 수도 없었더니, 상을 화신으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감히 항거하지 못하였다. <북옥저>땅의 모든 적도들은 황군이 <하>를 건너는 것을 보더니만 모두 북쪽의 요새로 멀리 달아나서 산을 의지하여 거처하였으며, 사신을 보내 항복을 약속하고 매년 조공하겠다고 청한 이들이 열둘{열 두 무리}이었다. 상께서 <하남>으로 개선하시어, <락랑왕 <시길>을 불러내시어 <왜산>에서 사냥하셨다. <시길>이 정성껏 조공하였었기에 상께서 그를 우대하셨던 것이었고, 그는 <동부여>의 속국이었던지라 그로 하여금 고향땅에서 편안히 살도록 하려시던 것이었다. 허나, <시길>은 능히 스스로 마음을 놓지 못하여서 딸을 바치길 원하였더니 상께서 <협보>에게 명하시어 그 딸을 처로 삼게 하셨다. 이가 <시화>부인이다.
6월, <갈사국><엄리현}>이 오랫동안 <말갈>에게 점유당하여 있다가 이때에 이르러 <송강>으로 래부하였다.
東明六年 己丑, 五月,上,至質陽,與桂后‧蘭氏分排征荇之軍,命舟師沿滸水作站以絶鹽路.鹽侯等來拒各出兵守其鹽,蘭氏與蘭秀‧祖鶩等或說或討輸其鹽於滸口.蘭,年已六十五,而娠皇子八月矣,上慮其難産而命安之,不聽而先入.荇國多鹽山‧鹽井,其鹽爲黃‧盖‧卒‧句等之用.鹽侯,有大‧小‧黃‧白之名,以鹽爲豪者也.各有鹽兵數百販鹽爲利.至是,其鹽皆爲我軍所留.祖天,憂惧不知所爲,盡出王府兵七百與之大鹽侯曰事之成敗任卿自爲而已.大鹽曰臣等之兵不過二千,皆是販鹽奴,不知弓釼,何能敵彼不若請救於北鞨.天,乃求救於北鞨王㫪臣,遺以美女曰朱蒙來侵我國將奪鹽山,此鹽歸彼,末曷亦無鎰鹽矣.朱蒙之意不徒鹽山而亦在䃚山,䃚山去則羯之去勢也.願與之共禦此寇.㫪臣,然之,與肅愼王乾朕大擧而來,與我兵會于子午谷.大戰終日,互有殺傷日晡不决,上與桂后親冒矢石當前驅呼,賊勢漸加,事甚危急.時,南風吹沙塵北去,賊依林而射.上大呼火攻,桂后乃引火手因風放火燒山.火圍賊衆,賊衆始知陷在火中,遂潰大乱.我軍乘勝追擊,莫不以一當百,賊遺尸万余而走,馬匹兵仗牛羊無數,皆爲我獲.祖天,大惧與其妻子,出奔北棘城.上,以士卒多傷,命停進擊祖天,使扶芬奴將新二千與蘭秀巡定荇南諸郡,荇人莫不來降,尉厭將質陽一千巡定荇東諸郡.以祖鶩爲前導,以七月五日會於河上.
동명>6년기축{BC32}년, 5월, 상께서 <질양에 다다르시어 <계>후 및 <란>비와 더불어서 <행인>정벌군을 나누어서 거느리시고, 주사{船軍}들에게 명하시어 <호수 연변에 참 소금 길을 끊게 하셨다. 이에 「염후」들이 와서 항거하며 각기 출병하여 자신들의 소금을 지켰더니, <란>씨가 <란수>・<조목> 등과 함께 설득하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여서 그 소금들을 <호구로 날랐다. <란>이 나이 예순다섯에 황자를 가진지 여덟 달이었더니, 상께서 난산을 걱정하시어 편안히 있으라고 명하셨으나, 듣지 않고 앞서서 들어간 것이었다. <행인국>에는 염산{소금산}과 염정{소금물샘}들이 많아서 그 소금으로 <황룡>・<개마>・<졸본>・<구다>가 그것을 썼으며, 「염후」에는 대・소・황・백「염후」라는 이름들이 있었고 소금으로 귀하게 된 자들이었으며, 각기 염병 수백씩을 거느리고 소금을 팔아서 이득을 보았는데, 그 소금들이 모두 아군이 점유한 바가 되었더니, <조천>이 걱정스럽고 두려움에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며 왕부王府의 군병을 모조리 불러내어 「대염후에게 건네주고서는 “일의 성패가 경에게 달렸으니 알아서 하게나.”라고 일렀다. 이에 「대염후」가 말하길 “신 등의 병졸은 2천을 넘지 못하며, 모두가 소금을 팔던 자들이어서 활과 칼 쓰기를 모르니, <북갈>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서는 어찌 능히 저들을 대적하겠습니까?”라 하였더니, <조천>이 이에 <북갈>왕 <용신>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미녀들을 건네면서 말하길 “<주몽>이 내 나라에 쳐들어와서 장차 소금산들을 빼앗으려 하고 있소. 이 소금들이 저들에게 넘어가면, <말갈>들 역시 소금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주몽>의 속셈은 염산들만이 아니고 또한 촉산{화살촉을 만드는 돌이 있는 산}에도 있음이니, 촉산이 떨어지면 <말갈>들도 세력을 잃게 될 것이오. 원컨대, 그대와 함께 이 적을 막고 싶소.”라 하였더니, <용신>도 그렇게 여기고 <숙신>왕 <건짐>과 함께 대거 몰려와서 우리 군사들과 <자오곡에서 맞붙어 종일토록 큰 싸움을 하였다. 서로 간에 죽고 상하면서 해질녘에도 끝나질 않기에, 상께서 <계>후와 더불어 친히 화살과 돌멩이를 무릅쓰고 앞을 맡아 나서서 말을 달리며 호령하셨으나, 적의 기세가 점점 늘어나는지라, 일이 심히 위급하였었다. 때마침 남풍이 모래와 먼지를 날리며 북쪽으로 불어갔고 적들은 숲을 의지하며 활을 쏘아댔더니, 상께서는 ‘화공火攻!’이라고 크게 외치셨고 <계>후는 화수들을 이끌고 바람을 힘입어 불을 놓아 산을 태웠다. 불길이 적군 무리들을 둘러쌌더니, 적군 무리들은 비로소 불 속에 빠져든 것을 알고 무너져 내려서 크게 어지러워졌고, 아군은 승승하며 추격하였더니 일당백 아닌 이가 없었다. 적들은 1만을 넘는 시체를 남기고 도주하였으며, 남겨둔 마필 및 병장기와 소와 양들이 셀 수 없이 많았더니, 모두 아군의 차지가 되었다. 이에 <조천>은 대단히 두려우매 자신의 처자들과 함께 <북극성으로 달아났고, 상께서는 병사와 병졸들이 많이 상하였음에 명을 내리시길 전진하여 <조천>을 치는 것을 그만두게 하시고, <부분노>로 하여금 새로운 군병 2천을 거느리고 <란수>와 더불어서 <행남의 모든 군들을 순수하여 평정하게 하셨더니 <행인>사람들로 찾아와서 항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위염>으로 하여금 <질양의 1천병으로 <행의 모든 군들을 순수하여 평정하셨다. <조목>을 전도{嚮導}로 삼아서, 7월 5일에 <하>상으로 집결하였다.
芻牟鏡中 芻牟鏡 卷五 本紀 第六
東明七年庚寅
六月 徵荇南軍二千黃龍軍五千 命扶芬奴于仁鍊之于西川 上親鍊沸流軍三千于汗濱 從汗水至汗東南 獵于桓那句茶之界 閃尼躍馬追桂后大罵曰 亡國之女敢閙天仙之國 上怒欲伐之命沸流軍結陣于界上而待詔
七月 上至瓠盧湖 與柘公妃桂孟子泛舟湖上 品瓜賞月酒然有絶世氣象 閃尼以馬韓人水德爲其情夫 悉集國中兵 與我軍相待 其國在黃龍桓那之南漢북之北 東至汗東之南 西至盖馬之東南 接馬韓辰韓 常附庸於黃龍盖馬 至是 與馬韓通好 與燕宜失和 上以爲戰機乃使人謂閃尼曰 戰吾所非不能也 傷人必多不若和閃尼曰 “勝者傷人 敗者被傷 當然之事也 欲來降則降 欲被傷則傷 而已引兵入界迫之以威 今忽言和何也”上笑曰“無已則戰矣 其勿怨可也” 乃使前騎散告於民曰 “吾欲與和而閃尼請戰 故不得已戰也 殺傷破毁 吾豈嗜而爲之哉 北夫余之故土不可不復 而戰也”
七月二十日 先鋒突破敵陣直馳黃山 大軍繼之 敵集其軍於黃東 大戰三日互有勝負水德有勇我軍多傷 上親射殺之 敵潰保水上 追擊破之 閃尼以虎山爲將決死戰於都下 大戰自晨至晡 桂后護上被矢 上怒督軍迫之射殺虎山以下九將 血流成渠 賊臣霞逢等縛閃尼出降 命斬之 命諸將巡撫諸郡 不下者擊破之 至八月十五日乃定 行月歌于茶都 分句茶爲馬山平山黃山泥河豊城 以閃尼女爲桓柏松太之婢 虜其親戚子女爲奴婢
<추모경>중, <추모경>권5, 본기제6
<동명>7년경인{단기2303년/BC31}...
6월, <행남>군 2천과 <황룡>군 5천을 징발하여, <부분노>와 <우인>에게는 명하여 <서천>에서 훈련하게 하였고, 상은 친히 <비류>군 3천을 <한수>가에서 훈련하고서 <한수>를 따라 <한수>의 동남에 이르러 <환나>와 <구다>의 경계에서 몰이사냥을 하였더니, <섬니>가 말위에 뛰어올라 <계>후를 추격하며 큰소리로 욕하여 이르길;“나라를 말아먹은 년이 감히 천선의 나라를 소란스럽게 하느냐?”라고 하였다. 이에 상은 뿔이 나서 그녀를 토벌하고자 <비류>군에게 명하여 경계에다 군진을 차리고 명을 기다리라고 하였다......7월, 상이 <호로호>에 이르러 <자공>비인 <계맹자>와 함께 호수에 배를 띄우고 오이를 품평하고 <월주>를{또는 호수위에 비친 달과 술을} 즐겼더니 과연 절세기상이었다. <섬니>는 <마한>사람 <수덕>을 정부로 삼고는 나라 안의 병력을 모두 모아서 아군과 서로 대치하였다. 그 나라{=구다}는 <황룡>과 <개마>의 남쪽과 <한산>의 북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한수>동쪽의 남쪽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개마>의 동남에 이르며, <마한> 및 <진한>과 접하고 있으며, 통상 <황룡>과 <개마>에 부용하여 왔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한>과 상통하더니 <연의>와는 화평이 깨졌다. 상은 {지금이} 싸울 기회라 여기고는 사람을 보내서 <섬니>에게 이르길;“우리가 싸울 힘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필시 사람을 많이 상하게 할 것이니 화친함만 같지 않소.”라 하였더니, <섬니>는 승자는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되고 패자는 많은 사람이 죽게 됨은 당연한 일이오. 와서 항복하고 싶으면 항복하고 죽고 싶으면 죽으면 될 일이오. 이미 군병을 이끌고 경계를 넘어 들어와서 위세로써 겁박하면서, 지금 갑자기 화친을 얘기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라 하였다. 이에 상은 웃으면서 이르길;“그렇다면 싸울 수밖에 없겠소. 그대는 원망하지 마시오."라 하고는 앞에 있는 기병들에게 명하여 흩어져서 백성들에게 “나는 화친하고자 하였는데 <섬니>가 싸우길 청하여 부득이 싸우게 되었소. 죽이거나 부수는 것을 어찌 내가 즐기거나 하고자 함이겠소. <북부여>의 옛 땅을 되찾지 않을 수 없어서 싸우게 된 것이오.”라고 알리게 하였다......7월 20일, 선봉이 적진을 돌파하여 <황산>으로 치달아 들어가고 대군이 뒤를 이었더니, 적들은 <황산>동쪽에 집결하였다. 큰 싸움 3일간에 서로가 승부를 갈랐는데, <수덕>이 용맹하여 아군이 많이 상하기에, 상이 친히 <수덕>을 쏘아서 죽였더니, 적들은 무너져서 물줄기 위쪽으로 물러나기에 쫓아가서 격파하였다. 이에 <섬니>는 <호산>을 장군으로 내세워서 죽기를 다하여 도성 아래에서 싸웠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큰 싸움 중에 <계>후가 상을 옹위하다가 화살에 맞자, 상은 뿔이 나서 군사들을 독려하여 압박하며, 활을 쏘아 <호산>과 이하 장수들 아홉을 사살하였더니,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다. 적의 신하 <하봉> 등이 <섬니>를 결박하여 나와서 항복하기에, 명을 내려 그들을 참하게 하고는, 제장들에게 명을 내려서 모든 군을 돌며 위무하게 하였으며, 항복하지 않는 이들은 격파하였다. 8월 15일에야 평정하였으며, <월가>회를 <구다>의 도읍에서 행하였다. <구다>를 <마산>・<평산>・<황산>・<니하>・<풍성>으로 나누었으며, <섬니>의 딸들은 <환백>과 <송태>에게 비첩으로 주고, 그 친척들과 자녀들은 붙잡아서 노비로 삼았다......
東明八年 辛卯春正月丁亥宴群臣於朝陽殿上謂烏伊曰北沃沮靺鞨越河入寇河上之民歲受其侵矣宜將兵掃窟使民無苦烏伊曰黑水之鞨連亘數千里以漁獵寇盜爲生本無定居掃窟甚難一時散之終復來寇如蝇如蚊上曰屠其王庭而移民屯戌沿界立亭以報其霣
五月 鍊兵三万於河上荇人黃龍勾茶卒本桓那沸流順奴沃沮曷樂浪人皆來犒軍 以壯其觀卑离梁㹮聞之膽寒 上不見桂后騎馬之狀而痛哭諸臣慰之不得皀衣庚七奏曰天子不哭于夫人臣恐隣國笑之上怒欲斬之桓柏諫曰恐傷后靈請止之上乃觧賜七金百兩 梁㹮國沙頭部酋長許信 五里部陌克加 南部酋長烏陳 月伊部酋長金忍等入朝 皆賜妻一人馬二匹練絹十匹厚待而送之 黃龍國寶得以病呻吟年餘不食而死 其子皆幼 上命于仁代之 妻以桓英
<동명>8년신묘{BC30}년, 춘정월, 정해일에 군신들에게 <조양전>에서 연회를 베푸시고, 상께서 <오이>에게 말씀하시어 이르시길 “<북옥저{嫩江・陀喇河지역?}>땅의 <말갈>이 <하>를 넘어 들어와 노략질하여, <하>상의 백성들이 해마다 그들의 침략을 받고 있소이다. 마땅히 병력을 이끌고 가서 소굴들을 쓸어내서 백성들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하여야 하겠소이다.”라 하셨더니, <오이>가 아뢰길 “<흑수>땅의 <말갈>들은 수 천리에 널려있으면서,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하고 약탈하거나 훔치기를 생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시 눌러앉아서 살지를 않아서 잠시 흩어졌다가 종당엔 다시 와서 노략하는 것이 파리 떼와 같고 모기떼와도 같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이르시길 “그들의 왕정을 도륙해버리고, 백성들을 옮겨놓고 경계를 연하여 둔{陣地}을 쳐서 지키게 하고, 초소를 세워서 그들이 몰려오면 알리게 하시오.”라 하셨다.
5월, <하>상{주변, 위쪽, 상류}에서 3만병을 훈련하시매 <행인>・<구다>・<졸본>・<환나>・<비류>・<순노>・<옥저><말갈>・<락랑>사람들 모두가 따라와서 군사들을 먹였더니, 그 모습이 장관이었음에, <비리{上都河西便地境?}>와 <양맥{上都河東便地境?}>이 이를 듣고 간담이 서늘해 하였다....<양맥국>의 <사두부>추장<허신>・<오리부><맥극>가・<남부>추장<오진>・<월이부>추장<금인> 등이 입조하였기에, 모두들에게 처 한 사람과 말 두 필 및 명주 열 필씩을 하사하고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東明 九年 壬辰,...六月,上,北巡至梁山,賜戍卒衣酒,溯上大河北望大河之勢以審九河之曷域而謂烏伊曰曷衆尙依芦叢而居之,因風火攻之計不可棄也.命沿路備魚油‧松脂‧蓬炬等物.九河之賊三十餘落,其中大河‧玉河‧蘭河‧中河‧牛河‧濱土‧石齒‧月窟‧馬丘‧狄屯‧巴婁‧阿勿‧史弗等最强,餘皆服屬于是.史弗,最近於梁山,漸被皇化而頗有服從之意,且有外部落七酋長有內附之意,乃募喜厚遺是輩約以有事相應. 五鹿充宗,好匈極惡,與石顯輩弄絡劉奭,以致貨累鉅万,爲王鳳所逐而出幽州 自稱玄菟太守,以金銀彩絹等每誘涉臣會獵,而欲襲鮮卑.涉臣,將其計而反誘鹿出<渝關>至石原,使其將互獨射殺之,馳入其居而取其財寶美女.涉臣之母可喜,莫車之大姑也,與狦爲從,而且以妹妻莫車而交密,相與専橫於上谷王鳳惡鹿而不問其死.
十月 烏伊等分末曷十二落爲三州,曰大河州‧中河州‧蘭河州,置戌而還.送中河所得白熊王女加得於白熊國,其王大喜遣使來貢魚皮鹿鹽.
<동명>9년임진{BC29}....6월, 상께서 북녘을 순시하여 <량산{들보산,징검다리산;赤峰北方西遼河上流經棚地境?}>에 다다르시어 수자리 군졸들에게 옷과 술을 하사하셨으며, <대하>를 거슬러 올라가시면서 북쪽으로 <대하>의 기세를 바라보시고 <구하{嫩江支流歸喇里河? 현금 西遼河則錫喇木倫河 北方의 수많은 물줄기들?}> 땅의 <말갈> 영역을 살피시더니 <오이>에게 이르시길 “<말갈>무리들은 항상 부들{갈대} 무더기를 의지하여 살고 있으니 바람을 힘입어서 화공하는 계책을 저버릴 수 없음이야.”라 하시고는 연로{길목에 연하여 있는 이}들에게 명하시어 어유 및 송진과 쑥홰불대 등을 준비하게 하셨다. <구하>땅의 적들 30여락들 중에서 <대하>・<옥하>・<란하{呼蘭河?}>・<중하{中科河?}>・<우하{牛爾河?}>・<빈토濱土>・<석치石齒>・<월굴月窟>・<마구{馬延河?}>・<적둔狄屯>・<파루{巴魯}>・<아물{阿倫河?}>・<사불史弗}> 등이 아주 강성하였고 나머지들은 이들에게 복속하고 있었으며, <사불>은 <량산{經棚地境?}>에 가장 가까이 있었더니 점차로 황은에 교화되어 복종할 뜻이 꽤나 있었고, 뿐만 아니라 바깥쪽 일곱 부락의 추장들도 내부할 뜻이 있었더니, 이에 <도희>에게 명하시어 이 무리들에게 후하게 재물 등을 주어서 일이 있게 되면 함께 내응하기로 약속을 받으셨다. <오록충종>이 흉사를 즐기기가 극악하여 <석현>의 무리와 함께 <유석{西漢高宗}>을 농락하면서 누거만금의 재화를 긁어 들이다가 <왕봉>에게 <유주>로 쫓겨나가더니 <현도>태수를 스스로 칭하고서{☞이 시절의 幽州와 玄菟의 위치는 분명 현금의 陰山山脈과 賀蘭山脈의 바깥이라는 의미?} 금과 은 및 아름다운 비단 등으로 매번 <섭신{鮮卑王}>을 회유하여 함께 사냥하였으며, <선비>를 습격하고자 하였다. 이에 <섭신>도 그 계략{재물 등을 주어서 회유하는 방법}을 써서 도리어 <오록>을 꾀어 <유관{현금 陝西省 北部 楡林關보다 西쪽의 楡林關?}>바깥으로 나와서 <석원{혹, 자갈 사막인 澣海?}>에 다다르게 하더니만, 그의 장수 <호록>으로 하여금 그를 쏘아 죽이게 하고, 그의 거처로 내달려들어가서 그의 재보와 미녀들을 취하였다. <섭신>은, 어미 <가희>가 <막거{雕陶莫고皋=復株絫선우}>의 대고모{왕고모}이고, <산{호한야선우}>과는 4촌간이었으며, 게다가 여동생을 <막거>에게 주고 몰래 교통하면서 서로가 더불어서 <상곡上谷>땅을 전횡하였고, <왕봉>은 <오록>을 미워하였기에 그의 죽음을 불문에 붙였다.
10월, <오이> 등이 <말갈> 12부락을 나누어서 <대하주>・<중하주>・<란하주>라 이름 하는 세 개의 주로 삼았으며, 수자리들을 만들어놓고 돌아왔다. <중하>에서 붙잡힌 <백웅>왕의 딸 <가득>을 <백웅국>으로 돌려보냈더니, 그 왕은 크게 기뻐하며 사신을 보내서 어피{沙魚껍질}와 사슴 및 소금을 바쳐왔다.
芻牟鏡中 卷五 本紀 第六
東明十年 癸巳
春正月 涉臣使與莫車使 入朝獻土物 旒后乙氏以老衰 請退從其子乙音而如牛壤 許之 二月 徵黃竜荇南桂林民丁万人 營石汁水上鵞卵原 上與孟后 如獸林溫宮 紫蒙王廣公 以其子西川爲紫蒙王 自稱太上天王 西川遣使來獻土物 北鞨王舂臣爲其下蘇辰所殺 大河酋長角民伐蘇辰殺之而自立 盡取旧臣財宝妻女以爲其有
七月,至大河閱兵,角民聞之率其妻子遁入雪羅山中,諸酋續續來降自願爲先鋒.上曰朕,豈好用兵㢤,但問角民之罪而已.角民如自來則兵不血刃而定矣.角民大惧送㫪臣財寶‧妻女而請和,上叱其使曰角民不自來則不得免死矣. 命曹元理,測定北鞨之勢,審其風俗.東自白熊西至肅愼之界,元理曰測此廣漠之地,審其人情風俗,當用十万人費,二十年之力,然後方可.上曰如彼其浩繁乎,其止之.上,以此,踈元理. 肅愼王乾朕,遣使來献北海之火魚‧月山之角雁,而諫曰臣聞陛下鍊兵十万於大河而將屠北鞨之衆云.然,末曷隨水而移,其源遠自<上谷>之北,從河而上逶迤太伯蚕食黑水,東至于海上,西至于北海.此北海者單于之秘園也.漢帝不能侵,蘇武老於此者也.臣與末曷或和或戰者百有余年,不能根治而抛之者.盖如惡草而難除,不可盡芸也.臣,以爲陛下,英勇雖出百王,與此惡草爭利則得不補失,恐非聖人之治也.請罷是役.上謂其使曰爾王之忠言,朕甚嘉之.厚遺而送之.乾朕,恐禍及己而如是言之,聞上之嘉其言而半信半疑,憂惧老病而死.子胡白,嗣,秘其喪而不告之.
八月,北地飛雪寒威早至.上,與士卒,露宿于野,以兵卒冬衣未至不御重喪.沿江積薪爇火,火光連天,賊以爲開闢後初有之事.召后‧孟后聞上有微祟而馳至,上翼衣未至責而還之.未幾,皮衷至,軍得御寒,上還都. 上夢見類利太子及禮氏于舊床.未幾,禮氏果遣使來献衣酒獐肉.傳語女使一如禮氏語,上嘉之厚遺而送之.
十一月,置沃沮將軍十人,分治降衆.以曷女六万三千分賜將士,移其大姓男丁于杜訥之西及梁㹮之谷,使垦荒地. 上,遣桓福於五河,分賜粱酒粱飴於將士.福歸献鼠皮于上及三后曰皇軍之皮衷不如鞨衆之鼠衷故,皆奪彼衣而衣之乃免落指傷鼻之患.曷女,爲皇軍,盡死力者亦多得,以奏功云.上曰曷女,以獸性木腸,亦知王師之重.其令有司選其佳者賞之.命軍爲妻以國人待之無差.召后曰曷乃賤婢也.妻軍可乎.上曰曷亦人也.有何不可.夫物賤則貴又安知後日彼亦貴乎.漢,以胡‧曷爲賤,而反爲胡‧曷所困,貢其絮繒公主.貴賤何常固乎.能自樹者必勝,不可以一時之困賤之也.況其迎王師而出死力者乎.盖有㧞賤爲貴之志也.不酌其情,何以御之.
十二月,冬,暖如春,無氷雪.行月歌之會於石,以慰凱旋軍卒犯夜三日.縱軍恣慾飾以花䑓鳳車,使美男女戴行.上,與三后,登䑓而賞其衆.巾帶衣領中外會者數十万,女居其三而男其一.
추모경 중 권5 본기제6
동명>10년계사BC28 춘정월, <섭신>의 사신이 <막거>의 사신과 함께 입조하여 토산물을 바쳤다. <유>후 <을>씨가 몸이 노쇠하였기에 물러나서 아들 <을음>과 함께 <우양>으로 가겠노라 청하였더니, 허락되었다. 2월, <황룡>・<행남>・<계림>의 민간장정 만명을 징발하여 <즙수> 윗편{북쪽? 수변?} <아란원>에 [서도]를 세웠다. 상은 <맹>후와 함께 <수림>온궁엘 갔다. <자몽>왕 <광>공이 자신의 아들 <서천>을 <자몽>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태상천왕을 자칭하였다. 이에 <서천>이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북갈>왕 <용신>이 자신의 수하 <소진>에게 죽음을 당하자, <대하>추장 <각민>이 <소진>을 토벌하여 죽이고 자신이 보위에 섰으며, 옛 신하들과 재보 및 처와 딸들을 모조리 취하여 자기의 것으로 하였다.
7월, <대하>땅으로 가셔서 군병을 사열하셨더니, <각민{北鞨王}>이 이를 듣고 처자를 데리고 <설라산> 속으로 도망해 들어갔다. 이에 여러 추장들이 속속 찾아와서 항복하며 스스로 선봉이 되길 원하였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짐이 어찌 병장기 쓰기를 즐기겠소. 다만 <각민>이 죄를 지었음을 이미 들었음이니, <각민>이 스스로 찾아올 것 같으면 군병들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그칠 것이오.”라 하셨다. <각민>은 크게 두려웠던지라 <용신>의 재보와 처첩들을 실어 보내고 화친을 청하였더니, 상께서는 그 사신을 질책하여 이르시길 “<각민>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으면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오.”라 하셨더라. <조원리>에게 명하시어 <북갈>의 판세를 측정하고 그들의 풍속을 살피라고 하셨다. 동쪽으로는 <백웅{현금遼河下流地境?}>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숙신>의 경계{甘肅省 燉煌이나 居延海 隣近의 北方?}까지였기에, <원리>가 아뢰길 “그렇게 넓은 땅을 측량하고 그들의 풍속을 조사하는 데에는 마땅히 10만인의 비용이 들 것이며 20년의 노력을 들이고서야 가능할 것입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 “{그대는} 그들이 그리 넓고 번성한 듯 말하는구려. 그만두시오!”라 하셨다. 상께서는 이 일로 <조원리>를 멀리하셨다. <숙신>왕 <건짐>이 사신을 보내 찾아와서 <북해{바이칼호?}>의 「화어」와 <월산>의 「각안」을 바치면서 간하여 아뢰길 “신이 듣기엔 폐하께서는 군병 10만을 <대하>에서 훈련하고 계시며, 곧 <북갈>무리들을 도륙하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허나, <말갈>들은 물줄기를 좇아서 움직이며, 그들의 근원은 멀리 <상곡{弱水東北方지역? 河套 上郡? 河北省北部?}>의 북방 땅인데, 큰물줄기들을 좇아서 구불구불하고 삐딱하게 <태백>에 이르러서 <흑수{嫩江東北黑龍江?}>땅을 잠식하더니만, 동쪽으로는 <바다海>의 북쪽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북해>에 다다랐습니다. 이 <북해>라는 곳은 「선우{匈奴 임금}」의 옛 터전으로, <한漢>의 임금이 능히 칠 수 없었더니, <소무{西漢劉徹이 匈奴로 보낸 使臣}>가 그곳에서 늙었다고 합니다. 신은 <말갈>들과는 혹간은 화친하다가 혹간은 싸우기를 100년여를 하였어도, 능히 뿌리를 뽑을 수 없어서 포기하였습니다. 개략 지독한 잡초들은 없애기가 어렵듯이 모조리 속아낼{베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신이 폐하를 위한 말씀을 드리자면, 뛰어나게 용맹하시기가 비록 모든 왕들 중에서 특출하셔도, 이 지독한 잡초들과는 이로움을 다투셔보아야 얻는 것이 잃는 것을 메우지 못하실 것이어서, 성인의 다스림이 되지 못하실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이 전쟁을 파하소서.”라 하였더니, 상께서 그 사신에게 말하여 이르시길 “그대 왕의 충성스런 말에 짐은 심히 즐겁소이다.”라 하시고는 후하게 음식을 대접하여 돌려보내셨다. <건짐>은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이런 말을 하였던 것이었으며, 상께서 기뻐하셨다는 말을 듣고서도 반신반의하면서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쇠하여서 죽었더니, 아들 <호백>이 뒤를 잇고서 <건짐>의 죽음은 감추고 알리지 않았다{☞肅愼과 北鞨의 領域은 重複!}.
8월, 북쪽 땅이어서 눈이 날리는 추위 위세가 일찍 찾아왔다{☞음력8월경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고위도지역!}. 상께서 병사 및 병졸들과 더불어 벌판에서 노숙하고 계셨었는데, 병졸들의 겨울옷이 다다르지 않아 많은 이들이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없으시어 강 언저리에 땔나무를 쌓아놓고 불을 피우셨더니, 불빛이 하늘에 닿았고, 적들은 개벽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 여겼다. <소>후와 <맹>후가 상께서 좀 편찮으신 낌새가 있음을 듣고 내달려왔기에, 상께서는 겨울옷이 오지 않았다며 질책하여 돌려보내셨더니, 오래지 않아 겉옷과 속옷이 도착하였고 군대들이 추위를 견길 수 있게 되었고, 이에 상께서는 도성으로 돌아오셨다. 상께서 꿈에 ‘<유리>태자와 <예>씨가 오래 된 침상 위에 있음’을 보셨더니, 오래지 않아서 <예>씨가 과연 사신을 보내서 옷과 술 및 노루고기를 바쳐왔다. 말을 전하는 여자사신이 <예>씨가 말하는 것과 똑같았더니, 상께서는 기뻐하시면서 후하게 먹이고 주어서 돌려보내셨다.
11월, <옥저>에 장군 12명을 두어 항복한 무리들을 나누어 다스렸다. <말갈>여인 6만 3천을 장수와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말갈들의 큰 성씨 집안 장정들은 <두눌{旧黃龍國地}> 서쪽과 <양맥곡{達里湖印潢河지역?}>으로 옮겨서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였다. 상께서 <환복>을 <오하>땅으로 보내시어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기장 술과 기장 엿을 나누어 하사하셨더니, <환복>이 돌아와서 상과 세 후들에게까지 쥐{족제비}가죽을 바치면서 아뢰길 “황군의 겉옷과 속옷이 <말갈>무리들의 쥐{족제비}가죽 속옷보다 못하여서, 모두들 저네들의 옷을 빼앗아 입고 손가락이 떨어져나가고 코가 상하는 고통을 덜었으며, <말갈>여인으로 황군을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이들이 많았었습니다. 이들의 공을 상주하옵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 이르시길 “<말갈>여인들은 성깔은 짐승 같아도 마음은 질박하더니, 역시 왕사{皇軍}의 중함은 알고 있구먼. 그대가 해당관리에게 령을 내려서 그 어여쁜 이들을 가려내어 상을 주도록 하시오.”라 하시고는, 군대에는 명을 내리시어 그들을 처로 삼고 나라사람들로 대우하며 차별하지 말라고 하셨더니, <소>후가 아뢰길 “<말갈>여인들은 천비{천한 계집들}들인데, 군사들에게 처로 삼아주시는 것이 옳은 일인지요?”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 “<말갈> 역시 사람이거늘 아니 되는 까닭이 무엇이오? 대저 만물{사람}은 천하게 여기면 곧 귀해지는 것이어서, 후일에 저들 역시 귀해질 수 있음을 알기는 하는 것이오? <한漢>이 <호{北方族의 西方族屬則匈奴?}>와 <갈{北方族 東方族屬?}>을 천시하다가, 도리어 <호>와 <갈>에게 곤욕을 치렀고, 자신들의 솜옷 및 비단옷과 공주를 공물로 하였소이다. 귀하고 천한 것이 어찌 오래도록 변하지 않겠소! 능히 스스로 일어서는 이들은 필시 귀하게 되는 것이니, 한때 곤경에 빠졌다하여 천시하는 것은 옳지 않소이다. 하물며 그들은 왕사{제왕의 군대}를 맞아들이며 나와서 죽기로 힘쓴 이들이거늘 어찌 하여야 하겠소? 아마도 천함을 이기고 귀해지려는 뜻이었을 것인데, 그 정성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그들을 다스린단 말이오?”라 하셨다.
12월, 겨울인데도 따듯하기가 봄과 같아서 물도 얼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았다. 서도에서 월가회를 거행하여 개선한 군졸들을 위로하며 3일 밤을 새우도록 하였더니, 풀려난 군졸들은 마음껏 화대와 봉거를 치장하여서 잘생긴 남녀들로 하여금 높이 들고 행진하였으며, 상께서는 세 후들과 더불어 그 화대에 오르시어 그 무리들에게 상을 주셨다. 두건을 쓰고 갖춰 입은 옷에 허리띠를 하고서 모여든 이들의 수효가 10만이었으며, 그들 중 계집이 셋이면 사내는 하나였더라
<東明>十三年 丙申...三月朔...阿隃陀國使二人來 朝貢物皆爲馬韓人所奪云 其國在西海岸 海路杜絶 請從山路去 上命夏信月當等率輕騎 送于豊城之南 ...
동명13년병신 BC25...3월 초하루...아유타국의 사신 2인이 래조하였다.
공물은 모두 <마한>사람들에게 털렸다고 하였다.
그 나라는 서해안에 있으며, 해로가 끊겨 산길로 돌아가겠다고 청하기에,
상은 <하신>과 <월당>등에게 명하여서 경기병을 이끌고 {호위하여} <풍성>의 남쪽에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