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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과바람(아우라지)
 
 
 
카페 게시글
문학 스크랩 소설가. 천주교 신부 고마태오
솔과바람 추천 0 조회 260 10.12.24 16:5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설가. 천주교 신부 고마태오(1930~ 2004.12.31)

 

 

 천주교 신부이며 소설가이다. 속명 고종욱. 저서로 <사랑의 지도>, <예수 없는 십자가>, <고향에 못 갈지라도>, <영원의 방랑객>, <아 조국아 민족은 하나인데...>, <영생을 향한 삶의 한 광장에서>, <복음을 지키는 사람들>, <늙으면 추억으로 산다더니> 등이 있다.

 

[연보]
1930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남.
1948년 해군 12기 신병훈련소 입대.
1950년 포항 전투에서 부상, 퇴원과 동시에 해병대 편입. 원산 상륙 이후 1956년 해병대에서 제대할 때까지 제주도 한라산 전투, 도솔산, 김일성 고지, 원산령 서부 사천강, 판문점을 중심으로 한 임진강 전투 등에 휴전 때까지 참전.
1956년 가톨릭 대학 철학과 입학.
1958년 프랑스 낭시 신학대학 유학.
1963년 위 신학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
1965년 캐나다 오타와 도미니코 수도회 신학원 수료.
1965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교구 St. Louis France 성당보좌신부겸 교포 지도신부로 발령.
1969년 캐나다 토론토 대교구 한인 천주교회 본당신부로 부임.
1973년 캐나다 정부로부터 연방정부 복합 문화성 자문위원으로 발령. 1982년 12월 웨스트 코비나 한인 천주교회 본당신부로 부임.
1984년 북한 선교사업을 위해 프랑스 파리에 부임.
1987년 미국 산호세 한인 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
1991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교구 한인 천주교회 주임신부로 부임.
2004년 선종함.

 

[대표작품 및 경향]

 

소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고마태오 신부는 자전적인 소설로 유명하다. 바오로 딸 출판사에서 나온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라는 4부의 소설이 대표적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 : 사랑의 지도 --사제가 되기 전, 아마 6.25 전쟁 전에 자신의 삶을 서술
2부 : 예수 없는 십자가 -- 자신이 참전한 6.25 전쟁 중에 이야기인데 동맹군인 미군과 적군인 인민군사이에서의 갈등을 묘사했다.
3부 :이 세상의 이방인 -- 신학교와 프랑스 유학 시절 이야기
4부 : 영원의 방랑객 - 캐나다에서 사목을 시작하면서 이야기
  인기 작가이자 신부로서 사제 생활 30여년을 전부 교포사목을 해 온 고 마태오 신부의 프랑스어로 쓴 소설의 한국어 판인 이 [예수없는 십자가]는 전후 식자층에서 많이 읽혔던 소설로  6.25 동란에 참전한 한 가톨릭청년이 가열한 전쟁의 마당 속에서 겪고 보고 느끼는 인간의 삶의 부조리와 참혹, 한편 그 속에서도 피고 지는 인간애와 연애등의 체험을 통해 마침내는 하느님에게 대한 완전 헌신을 결심하기에 이른다는 일종의 수기체 소설이다. 수기체 소설이라 그런지 예술적 형상성이나 문학적인 기교로 따진다면 평면적인 서술이라 말하겠으나 그 체험의 생동성과 핍진력이 저절로 극적인 전개와 긴장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살육과 증오의 마당에서 주인공이 적의 포로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적 대화가 가지는 장면등 이작품에 깔린 강렬한 휴머니티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낸다.

 

수필집 : 43년만의 귀향

 

  고 마태오 신부의 신념은 이같은 겸손함과 민족애와 조국애를 비옥한 토양 삼아 정립되고 있다. 그는 `믿음이 깊은` ,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면서 살았고 따라서 우리 민족의 분단의 고통에 동참하면서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절망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갖도록 촉구한 사람이다. 그는 무력감이 팽만한 속에서 용기를 불어 넣고 있다. 즉 그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 전쟁 때에도 전우들에게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 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남아 버린 이 분단의 조국과 민족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심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미 제국주의와 남한의 위정자들을 증오하는 인민군 장교에게 `미워해야 할 것은 당연히 미워해야 겠지만, 미움보다는 용서와 사랑을, 복수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먼저 생각합시다... 이러한 용서와 사랑과 화해라는 복음을 전파하시다가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인류는 그 분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형성하며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미약한 나지만 나도 예수님처럼 우리민족에게 그 분의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외쳐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또 분열된 민족을 화해시키는데 일조(一助)를 하자는 뜻을 갖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라고 그의 아니 예수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43년만의 귀향]이란 책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그가 오랜 기간 동안을 안타까움과 향수의 세계로 남아 있던 고향(정신적 고향, 마음의 고향, 그리움의 고향, 영원의 고향,...)을 회복함으로써 얻게 되는 하느님과 예수의 말씀에 의거한 탈(脫)분단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43년만의 귀향] 은 대략 귀향길에서의 감흥(感興),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산가족들의 애환(哀歡), 휴전선상에서 느끼는 민족 분단에 대한 아픔, 보통강변을 거닐면서 교포들과 그곳 젊은이들과의 대화, 다시 평양을 떠나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선교에 대한 사제적 존재로서의 소망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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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43년만의 귀향]

 

  그의 처음 이야기는 자기가 태어난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의거해 출발하고 있다. 즉 그는 일제 시대에 개성 주변인 여현땅으로 우리들을 이동시킴으로써 그 추억의 흔적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천주교인인 집안에서 7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의 본당 신부는 아들중 한명은 신부로, 딸 중 한명은 수녀가 되기를 요구하였고 그의 부모님 또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그의 형제들은 본당 신부의 이러한 것을 거부하였고 신부는 신부대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신앙 교육이 부족해서라고 호통을 치곤 하였다.젊은 신부에게서 꾸중을 듣는 비참한 광경을 본 종옥(고 마태오 신부)은 이 때부터 신부가 되기로 다짐을 한다.

  그는 이러한 회상을 하면서 고향땅 여현을 향해 가고 있다. 거기에 가면 이런 자기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가족이 있으리라. 달구지로 나무 장사를 하던 것하며, 신애와 그의 형수를 이북으로 월북 시킨것 하며, 작은 형님을 포함한 가족들과의 추억이 깃든 이곳을 달리면서 그는 이름 모를 슬픔과 감흥(感興)에 젖어 있었다.

  드디어 고향 여현에 도착하자 많은 가족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그는 가족들과 몇 40여년만에 재회를 하지만, 그 동안 분단이 남긴 서로간의 이질감(異質感)을 절실히 느낀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상호 불신의 벽을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전달과 핏줄에 대한 인정(人情)의 차원에서 극복하고 다시 숙명적인 혈연의 끈을 회복한다. 물론 사제적(司祭的) 존재로서 말이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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