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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이재진
들어가며
버스를 타고 복지관으로 가는 길, 수료식을 앞두고 <꼴찌를 위하여> 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은 거야.” 실습 중에 이 가사를 수백번은 되뇌인 것 같습니다. “꼴찌여도 상관 없을 정도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의 길은 무엇일까?”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저는 그러한 고민에 휩싸입니다. 아직도 고민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실습을 통해 그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윤시온 실무자 선생님이 했던 말을 다시 떠올립니다. 실습 첫 주에, 시온 선생님은 “이제 정신 차려보면 수료식을 앞두고 있을 거에요.”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품고 실습을 시작했고, “아, 이것이 사회사업의 보람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료사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인욱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 “백지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한 뒤에는, 항상 백지를 앞에 두고 자신이 배운 것을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백지는 아니지만, 하얀 MS 워드 화면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봅니다. 이제 제 앞에는 두 개의 물음표와 하나의 느낌표가 놓여져 있습니다. 물음표와 느낌표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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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연수 때 이가영 과장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들 하고 싶은 것, 다 해보세요. 재진 학생은 하고 싶은 게 뭐에요?” 이것이 제가 얻은 첫 번째 물음표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언제 들었는지도 까먹었던 말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못 들어보고, 대학교에서도 못 들어보고, 군대에서는 더욱 더 못 들어 보았던 말이었습니다. 한 번 더 반복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하고 싶은 게 뭐야?” 라는 질문 말입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뭘까?” 사회사업은 잠시 머릿 속에서 지우고 고민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조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곧 인생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은 자신만의 호기심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정말로 궁금한 게 뭐니? 직접 해결해봐!” 라고 말하는 사회와는 먼 것 같습니다. 지식을 주입하고 줄 세우기를 하는데 급급한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아무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아이들이 마음껏 호기심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하며 정말 즐겁고 신나게 활동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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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호기심 학교에서 저는 느낌표를 하나 얻었습니다. “아, 이것이 사회사업의 작은 보람과 즐거움이구나!” 이것이 제가 얻은 느낌표입니다. 국사봉이라는 산에 올라갔을 때입니다. 어떤 아이가 국사봉이 왜 국사봉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국사”가 어떤 역사적 인물의 호인지 머릿속 역사책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어떤 아이가 대번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국을 사 먹는 봉우리니까 국사봉 아니에요?”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이렇게 창의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다니, 제가 더 신났습니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을 아마 평생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니, 아이가 당황했습니다. 자기가 말한 것이 정답이 아닌데, 왜 좋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꼭 정답이 아니라도 창의적인 나만의 답이 정말 좋은 답이라고 생각해.” 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진짜요?” 라고 되물었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무엇이 궁금하고 알고 싶은지, 당사자들이 정하고 직접 실험해서 해결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도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무엇을 해보자고 할지, 어떻게 해결할지, 어디로 떠나자고 할지 기대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제가 모든 활동을 기획하고 아이들을 짜맞추는 실습이었다면 이런 즐거움, 느낄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대학에 온 후, 이렇게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는지 싶습니다. 정말 오래간 만에, “참 살 맛 난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심 생생 토크쇼를 아이들이 찍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뿌셔뿌셔를 라면처럼 끓여먹으면 맛이 어떨지에 대한 호기심이 나왔습니다. 다음 날 직접 끓여 먹었습니다. 속은 울렁거렸지만 그렇게 신난 적이 없었습니다. 퍼즐 100개를 얼마나 빨리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나왔습니다. 다음 날 직접 퍼즐을 맞추고 기록을 쟀습니다. 퍼즐이 없었는데, 한 당사자가 전단지를 오려서 직접 퍼즐을 만들었습니다. “풍선껌을 머리보다 크게 불 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도 나왔습니다. 다음 날 직접 다 같이 불어봤습니다. 머리보다는 크게 불 수 없지만, 눈 정도 높이까지는 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제 껌을 뱉고 다른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한 아이가 껌을 3일 동안 밖에 놔두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3가지의 가설을 세웠고, 직접 실험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했을 때, 아무 변화가 없자 저는 이번 실험은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돌아서려는데, 한 아이가 “왜 아무 변화도 없지?”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왜 없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가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껌을 붙이고 돌아오는 길, 우연히 물총놀이를 하는 다른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호기심 학교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물총이 더 멀리 가는지 궁금해요. 확인해봐요.” 라고 말입니다. 다음 날 바로 구암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물총 쏘러 갔습니다. 한 아이가 물총으로 바닥에 등수를 적었습니다. 기록은 어떻게 쟀을까요? 한 아이가 발자국으로 재면 된다면서 기록을 쟀습니다. “39 발걸음” 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활동이 끝난 뒤 앉아서 쉬는 그 10분 동안, 한 아이는 수십개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물 하나 하나를 짚어가며 이건 왜,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왕이 계속 통치를 하면 되는 것이지, 왜 대통령을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듣고 있던 우리 모두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었으면, 신은 누가 만들었냐고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제 사업기록을 보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아이들의 창의력, 질문하는 능력, 호기심, 궁금증을 관찰하고 있으면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즐거움에 사회사업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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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실습을 마치며, 저는 또 다른 물음표를 얻어갑니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 더 재밌게, 즐겁게 사회사업할 수 있을까?” “다음에는 무엇을 해볼까?” 라는 물음표를 말입니다. 이번 실습을 통해 사회사업은 예술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저의 창의력을 끊임 없이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사회사업가에게 있어서, 지식과 기술 그 이상으로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따라서 끊임 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동료들을 관찰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호기심 학교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마음껏 표출하고 그것을 직접 해결하는 자세를 배웠으니, 저도 앞으로 그렇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을 참 많이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아이들에게 지적 주체성을 운운할 처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다음 날 직접 해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호기심 학교의 선생님은 제가 아니라, 바로 아이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나가며
기관 자체 수료식이 끝나고, 저희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주민 분들이 실습생들의 발표가 끝나면 직접 준비한 선물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선생님들 참 좋은 사람들이고, 사회에 나가서도 정말 잘 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랑한다고, 다시 보고 싶다고, 떠나게 되어 슬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어디에서 또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봉천동 주민분들께 감사하고, 이런 멋진 분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신 선의관악 복지관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물음표를 던졌으면 마침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음표를 들고 실습을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또 다른 물음표를 가지고 실습을 마쳐도 되는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음표에 대한 확실한 마침표를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호기심 학교를 담당하면서, 그런 생각이 산산히 부숴졌습니다. 똑같은 물음표가 제게 남았지만, 실습을 시작할 때 가지고 있었던 물음표에 비해, 지금 가지고 있는 물음표가 훨씬 뜨겁게 데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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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에, 모두가 처음 해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서 모두 다 같은 아마추어야.
<아마추어> - 이승철
“
첫댓글 사회사업은 특히 그런 것 같다.
같은 사업이라도 사람이 다르고 상황도 전과 꼭같지는 않으니 항상 새롭고 두렵다.
난 늘 아마추어였다.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사회사업은 매 순간이 모험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은혜를 구한다.
재진이가 잘되기 바란다. 살아가며 좋은 사람들 만나기 바란다. 재진이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듯...
재진이를 알게 되어 기쁘다.
정보원을 알게 되고, 선의관악복지관을 알게 되고
졸업하기 전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사업을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사회사업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지금 이 시간마저
저에게는 매 순간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축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