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일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만났습니다.
전남 곡성에서 농촌 사회사업하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
키가 크셨습니다.
포옹하면 제가 쏙 안겼습니다.
온화하셨습니다.
늘 웃는 상과 주름진 눈매와 검은 눈동자가 기억납니다.
농촌이 살고 소농이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미 FTA를 반대하셨습니다.
사회사업 하기 전에 대기업에 다니셨습니다.
퇴사하고 사회사업 전공한 뒤 시골로 가셨습니다
외지인으로서 시골에 자리 잡으려고 지역 공장에 취업하셨습니다.
부각공장입니다.
결혼도 하신 때였는데 다섯 달 일해서 50만원 버셨습니다.
그러다 봉조리 농촌체험학교 사무장을 맡으셨습니다.
봉조리는 밤나무가 우거진 산 속 작은 농촌 마을입니다.
어느 날, 이정일 선생님은
아내이셨던 김희 선생님과 서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나누자고 자리에 앉으셨답니다.
첫번 째는 못 들었습니다.
두번 째는 농민회 활동이라하고 하셨답니다.
농촌과 소농을 귀하게 여겼던 마음이 깊어져 농민이 되려고 했던 사회사업가.
이정일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동네 이장님과 어른들이 엉엉 우셨답니다.
돌아가시고 다음날,
민정씨와 이정일 선생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울었습니다.
추모 영상이 벽을 밝혔습니다.
김희 선생님이 벽을 쓸어 만지셨습니다.
이정일 선생님이 가시고 몇 해 후에 김희 선생님과 아이들이 추동에 왔습니다.
"아이 아빠가 한 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요."
이정일 선생님 막내 아들이 자고 가자고 졸랐는데 겨우 설득해서 그날 바로 가셨습니다.
추동에서 농촌사회사업한다고 하니 오신 겁니다.
이정일 선생님 삶을 생각하니 고맙고 죄송하고 부끄러워 숨고 싶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회사업 뜻있게 하고 싶습니다.
이정일 선생님 추모 여행 다녀오니 더욱 그렇습니다.
첫댓글 최선웅 선생,
그리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이정일 선생님이 살며 꿈꾸던 봉조리에서 이정일 선생님 추억을 나누었지요.
김희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정일 선생님 이야기.
부부이자 동지었던 두 분.
아름다운 삶을 기억합니다.
김동찬 선생님과 박미애 선생님이 그렇지요.
충전하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