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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전 종도사님이 밝혀주는 환단고기의 가치
『환단고기』의 출간과정
『환단고기』 출간과정을 여기서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은 ‘우리가 원래 천자국’이라는 것을 내세운 것입니다. 대한제국의 첫해, 광무光武 원년(1897)에 해학 이기가 제자 계연수를 만나면서 『환단고기』의 감수와 교정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단군세기』를 내고, 그 다음해에 『태백일사』와 「천부경」 주석서를 내었어요. 그러면서 1911년에 태천泰川의 백관묵 진사와 삭주朔州의 이형식 진사 집에서 내려오던 『삼성기』를 비롯해서 다섯 가지 책을 묶은 『환단고기』를 음력 5월 5일 광개절廣開節에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1920년에 감연극의 밀고로 계연수 선생이 끌려가고 배달의숙 학당이 잿더미로 사라지면서 3천여 권의 소중한 9천 년 역사의 서류도 불구덩이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광복이 되고 1949년에 이유립 선생이 청주에 왔다가 대전에 머무를 때 대한민국 사주학의 일인자 이석형이라는 분과 같이 역사운동을 했어요. 그때 오형기吳炯基라는 분이 『환단고기』를 베껴 썼습니다. 이 『환단고기』가 1979년에 두 번 인쇄되었어요. 이어서 1980년에도 찍었습니다. 오형기는 한암당과 아주 가까운 분이었어요. 오형기는 한암당이 돌아가시자 장례위원장도 했지만 이후 행적을 잘 알 수 없습니다.
『환단고기』와 『태백일사』가 그 책 제목과 내용, 골간이 조작됐다고 하면서 트집을 잡고 또 그 부분적인 수정, 보정 작업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시비를 거는 것은 잘못된 접근입니다. 일부 학자가 그렇게 트집 잡는 것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환단고기』를 ‘환빠’들의 책이라 합니다.
이런 위서론의 영향 때문에, 사단법인 대한사랑에서 미주 지역에 『환단고기』를 기증하려 할 때 심지어 ‘위서이기 때문에 사절합니다’라는 반응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환국·배달·조선 역사 인식
여기서 우리 대한민국 탄생 배경이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에 관한 영상을 잠깐 보겠습니다. 이 영상에서 보듯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1890~1957)이 1926년에 ‘환국은 절대적 이데아의 세계요, 남조선은 지상천국적 이상 목표’라는 말을 했어요. 육당은 ‘남조선 사상’이라는 나름대로 놀라운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19년 3.1독립운동과 그 후 1930년대, 40년대 임시정부 활동에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인류 창세 역사의 출발점 환국과 동방 문명의 원 주인인 배달, 단군조선을 강조했어요.
동방의 모든 왕들이 단군조선의 6세 달문達門 단군을 모시고 만주 장춘에서 환국, 배달과 과거의 왕업에 감사 올리면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한 대천제의 기원문, 제천문으로 「서효사誓效詞」(신지비사神誌秘詞)가 있습니다. 제가 연세대학교에서 이 「서효사」를 자세하게 강독한 적이 있어요.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하야 흥방보태평興邦保太平이로다’라는 「서효사」 한 구절을 인용해서 조소앙趙素昻(1887~1958) 선생이 삼균사상三均思想의 맥을 잡았어요. 이분은 단재 신채호, 백암 박은식 선생과 친했는데 아마 「신지비사」에 관통한 문화의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삼균사상은 ‘하늘과 땅과 인간은 일체, 하나’라는 생각에서 나왔어요. 하늘, 땅, 인간이 하나라는 것은 인류 창세 역사 이래로 영원한 진리의 절대 근본 주제입니다.
『환단고기』의 사서 가치와 원형문화 정신
그러면 『환단고기』의 진정한 가치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른바 임나일본부가 어디인지 분명히 나온다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일본 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임나任那는 원래 경주 아래 바다 쪽에 있다고 합니다. 윤내현 교수님이 쓴 『한국 열국사 연구』에서는 『환단고기』를 인용하여 ‘임나는 대마도’라 했습니다.
대마도에 삼가라三加羅가 있는데 중앙에 인위가라仁位加羅가 있고, 위쪽에 좌호가라佐護加羅, 아래쪽에 계지가라鷄知加羅가 있었어요.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기 여기를 다스렸어요. 이 대마도, 임나를 사령탑으로 해서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하고 일본 고대 국가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따르면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임나를 한반도 남부 가야에 옮겨놓고 그 지역을 북쪽으로 더 확대시켰어요.
1990년에 김해金海 대성동 고분의 대형 목곽분에서 유물이 나왔는데 역사학자들이 다 놀랐어요. 금관가야의 왕권을 상징하는 다양한 유물들이 나온 거예요. NHK 특파원들이 와서 그걸 보고 ‘임나일본부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폐기처분해야 된다는 거예요. NHK에서 발간한 잡지 내용을 자세히 보면, 거기서 나온 유물을 근거로 할 때 거기에 강력한 왕권이 있었고 따라서 임나일본부가 가야를 다스렸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근래에는 임나일본부를 기껏 왜의 외교 사절이 안라국安羅國 등에 가서 근무한 것으로 해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둘째는, 『환단고기』의 『북부여기』가 부여사를 완전하게 복원해 주는 유일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환국·배달·조선의 뿌리가 뽑히고, 환국·배달·조선에서 여러 나라 시대 즉 열국시대로 가는 출발점인 부여사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오늘날 학자들이 북부여와 동부여의 차이를 모르고, 동부여와 서부여의 차이도 모릅니다.
부여사의 출발점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는 해모수가 태어난 임술년 4월 8일인데, 『환단고기』 기록에는 그것이 180년, 3주갑周甲 앞섭니다. 해모수解慕漱가 서력 전 239년에 웅심산에서 북부여를 열고 이듬해에 단군조선 본조의 47세 고열가古列加 단군이 ‘내가 왕정을 더 이끌 수 없으니까 너희 오가五加가 연정을 해라’ 해서 공화정시대로 들어갔어요. 6년 공화정이 끝난 서력 전 232년에 해모수가 단군조선을 계승했습니다. 당시 번조선의 제후로 있던, 기자箕子의 후손 기비箕丕가 왕이 되었는데 이 기비가 해모수를 도왔어요.
지금 남아있는 중국 역사서,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이 임술년이 180년 뒤의 임술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해모수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 실린 『북부여기』를 보면 해모수는 고주몽의 고조부입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고주몽의 아버지는 고모수高慕漱(옥저후 불리지)예요. 고구려는 북부여라는 나라의 이름을 바꾼 것이지 고주몽이 창건한 게 아닙니다.
장수왕長壽王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을 위해서 비를 세웠는데 이 광개토대왕비문에 ‘우리 아버지는 시조로부터 17세손’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시조’는 해모수입니다. 고주몽부터 치면 광개토대왕은 13세손입니다.
북부여의 4세 고우루高于婁 단군 때 한무제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한사군 논리에 빠져서 ‘대동강 한사군 전쟁’으로 알고 있어요.
한무제는 북부여를 쳐들어오기 전에 중국 서방 36국을 평정하고 거기에 사군四郡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사군을 배치해서 진정한 대천자, 진명천자眞命天子가 되려 했어요. 진시황보다 훌륭한 대천자가 되려는 야망이 있었던 겁니다. 한무제는 신선을 좋아하고, 하늘의 우주정치 통치자 삼신상제님의 진정한 아들이 되겠다고 밤새 제사를 지내기도 했어요.
흉노를 정벌하고 서방을 평정한, 중국 5천년사에서 가장 강력한 대제왕 한무제도 번조선의 우거右渠 왕을 쉽게 무너뜨리지 못했어요. 사마천이 쓴 『사기』를 보면 좌장군 순체, 누선장군 양복이 서로 공을 다투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모두 벌을 받았습니다. 순체는 기시형棄市刑을 받고, 양복은 벌금을 내고서 평민이 되었어요.
당시 조선족은 독립의지가 강력했지만, 이간계離間計에 넘어가서 번조선의 귀족들이 연합하여 우거 왕을 죽여버렸어요. 『환단고기』나 『사기』 「조선열전」을 읽어보면 패수, 상하운장, 왕검성이 한반도 안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도 네 개의 한나라 식민지 군을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평안도 평양에서 단군조선이 망했다는 겁니다. 위만조선도 그 도읍이 대동강 평양이라는 거예요. 낙랑국과 낙랑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중국과 일본이 저지른 역사 조작을 그대로 추종하고 신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상고 역사가 이렇게 비뚤어져 있는 거예요.
번조선이 망한 뒤에 한무제가 북부여로 계속 쳐들어왔을 때 서압록 사람 동명왕東明王 고두막한高豆莫汗이 한나라 군대를 계속 격파했습니다. 『환단고기』에 그 얘기가 나오죠. 고두막한이 그 뒤에 ‘나는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 고열가의 후손이다. 내가 동방 문명의 진정한 주인이고, 천제지자天帝之子니까 왕권을 내놓아라’고 북부여 고우루 단군에게 요구했습니다. 고우루 단군이 병들어서 죽자, 고두막한이 5세 고두막高豆莫 단군이 됩니다.
그때 고우루 단군의 아우 해부루解夫婁가 재상 아란불阿蘭弗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동쪽 우수리 강 쪽으로 가서 가섭원迦葉原에 동부여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런 악업 때문인지 모르지만 고두막 단군의 아들인 고무서高無胥 단군은 딸밖에 못 낳았어요. 고주몽의 왕비가 된 소서노召西弩는 고무서 단군의 따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로는 고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柳花夫人이 해모수와 연애를 하다가 임신해서 동부여 해부루 왕에게 가서 고주몽을 낳아 길렀다는 것이죠. 주몽이 워낙 활을 잘 쏘고 명민하니까 동부여 태자 대소帶素와 그 일파가 죽이려고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주몽에게 ‘도망가서 한 판 차려라’고 한 겁니다. 그 어머니가 사실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6백 년 왕가의 마지막 왕인 테레지아Maria Theresia(1717~1780) 여제女帝보다도 더한 여자예요. 아마 주몽에게 ‘북부여 단군에게 딸밖에 없으니까 북부여 큰집에 가서 그냥 사위가 되어라. 그러면 빼앗긴 왕조를 그냥 찾는 거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고주몽은 고무서 단군의 사위가 되어서 왕위를 물려받고 나라 이름을 고조할아버지 해모수의 고향 이름을 따서 고구려라 했습니다. 『환단고기』 「고구려본기」를 읽어보면 고주몽의 시조 할아버지의 고향이 고구려라 돼 있잖아요.
동부여의 3세 대소 왕이 고구려 괴유 장군의 한칼에 목이 떨어져서 나라가 망하고, 대소의 종제가 서쪽으로 가서 연나부부여椽那部夫餘 즉 서부여를 세웠습니다. 부여잔여사夫餘殘餘史라 할 수 있는 서부여의 마지막에 의려국依慮國 왕과 그 아들 의라依羅가 백제를 거쳐서 일본으로 갔어요. 놀랍게도 오사카에 의려신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사 이름을 바꿔놓아서 일본 사람들도 모르고 궁사도 몰라요.
조선과 관계되는 역사를 알 수 있는 신사의 이름을 바꿔놓은 것은 명치유신의 죄악입니다. 일본 신사 기행을 하다 보면 참 흥미도 진진하지만 역사의 근본을 왜곡한 것을 알면 기가 막히죠.
셋째, 단군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력 전 239년에 북부여가 서고 그 다음해에 단군조선의 본조本朝인 진조선이 망합니다. 그러고 나서 44년 뒤인 서력 전 194년에 위만이 번조선에 쳐들어와서 왕위를 빼앗았는데, 그때 준왕準王이 망명하여 익산益山에 들어오고 남삼한 중 하나인 마한이 생깁니다.
넷째로 단군조선의 건국 과정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단군할아버지의 사주도 나와요. 단군왕검은 신묘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나셔서 열네 살 때 어머니 웅씨왕녀熊氏王女의 친정인 대읍국(웅씨국)에 가셨어요. 왕검이 영이 열려서 모든 걸 보니까, 웅씨국 왕이 섭정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24년간 섭정을 하다가, 38세 때 웅씨국 왕이 전쟁에 나가서 세상을 뜨자 고향 단국檀國으로 왔어요. 단군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입니다. 웅씨녀, 웅씨국이라는 언어는 동북아 역사 비밀, 여진족女眞族의 비밀을 푸는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여진족은 중국 청나라의 왕족입니다.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Nurhachi(1599~1626)가 건주建州에서 왔는데, 그 누르하치가 임진왜란 때 ‘나도 가서 도와주고 싶다’고 하니까 명나라 황제가 ‘너는 거기서 네 일이나 하라’고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때 세력을 기른 것입니다.
그리고 근세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고조할아버지는 여진족에게 가서 다루가치라는 벼슬을 했어요. 그래서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열 때 여진족 출신 이지란李之蘭 장군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청나라와 우리나라 마지막 왕조를 연 사람은 올라가서 보면 여진족이고, 웅씨녀 집안과 연결이 됩니다.
중국에 가면 대읍루大挹婁 왕의 큰 동상이 있는데 그곳 박물관이 몇 년 전에 벼락을 맞았어요. 중국 사람들이 역사 뿌리를 조작해서 그런지 큰 벼락을 맞아서 박물관이 문을 닫아 버렸어요.
다섯째로, 환웅천황의 계보를 전하고, 단군조의 근원인 배달국 신시의 역사 체계를 자세히 밝혀 줍니다.
여섯째로, 동서 인류 문화의 영원한 조국, 천산 동방의 12환국이 나옵니다. 12환국은 다민족 국가의 연맹체일 수도 있는데, 기독교의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로 추정되는 우루국虞婁國이 있고, 서양 문명의 근원인 수메르를 연 수밀이須密爾라는 나라도 있어요.
그리고 동서 문명의 건국이념, 경영 사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도,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가 환국에서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역사가 조작되어서, 환웅이 아니라 단군이 10월 3일 개천절에 홍익인간의 도로 나라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혜의 근원인 『카발라Kabbala』라는 경전이 있는데, 이 경전은 「천부경」, 「삼일신고」를 응용한 겁니다.
일곱째로,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배달·조선의 언어가 있습니다. 문자로 기록되어야 역사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삼성기 하』에서 ‘부도지문符圖之文’이라 한 것은 부적 같고 그림 같은 문자입니다. 이것은 환국시대에 있었던 그림문자로 볼 수 있어요.
여기 도표에서 보듯이 신시 배달 때 녹서鹿書, 산목算木이 있었습니다. 태호복희 때는 용서龍書가 있었어요. 4,700년 전인 치우천황 때 우서雨書가 있었고 또 화서花書(투전목)도 있었어요. 단군조선 때는 신전神篆이 있었고 3세 가륵嘉勒 단군 때 지금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 38자를 만들었습니다.
행촌 이암의 손자 우의정 이원李原이 세종대왕에게 『단군세기』를 바쳤는데, 세종대왕이 『단군세기』에 실린 가림토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입니다.
서울대 김주원 교수가 『훈민정음-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라는 멋진 책을 냈어요. 책 서두를 읽어보면, 그때 『성리대전性理大全』 80권이 들어왔는데 그 첫째 권에 있는, 우주관을 설명한 주렴계周濂溪(1017~1073)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 오행사상 영향을 받아서 소리 시스템을 정립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맞기도 하지만, 세종대왕은 『환단고기』에 실린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를 보신 겁니다.
여덟째로, 웅족문화를 알려 줍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6,500년 전의 곰 조각이 나왔습니다. 새끼 곰을 가슴에 안고 있는 이 조각상의 모습이 인간에게 큰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이미지의 진화’라는 부제가 붙은 『The Myth of the Goddess(여신의 신화)』라는 책을 보면 “The bear is probably the oldest sacred animal of all.”, 곰은 만물 가운데 가장 오래고 신성한 동물일 것이라고 했어요.
곰은 코끼리, 개보다 잘 걷고 인간에게 친밀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유라시아 대륙, 동북아가 대략 곰을 토템으로 했어요.
중국의 역사 수수께끼 가운데 진짜 놀라운 게 하나 있습니다. 중국 역사의 시조를 4,700년 전 황제헌원黃帝軒轅이라 합니다. 그때 동방에는 자오지慈烏支 환웅천황 즉 치우천황蚩尤天皇이 있었어요. 그런데 2,200년 전 진시황이 세운 진秦 제국이 15년 만에 망하고,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통일했어요. 그래서 한족이라 합니다.
한 패공沛公 유방이 항우와 의형제를 맺었지만 서로 싸웠어요. 우리 상생방송에서 그 내용을 다룬 80편짜리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는데 며칠 있으면 끝나요. 『환단고기』에는 유방이 마지막에 승리한 이유가 나옵니다. 유방이 치우천황 사당을 지어놓고 천제를 올린 겁니다. 그러고서 유방이 항우를 무너뜨렸고 항우는 자결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방이 곰을 숭상하고 좋아했어요. 또 동방을 침략하여 완전한 천하통일을 이루려 했던 한 무제의 무덤 곁에 정자를 지어놓았는데 거기에 거대한 곰 동상이 있어요. 그리고 바로 그 박물관에 보관된 당대의 삼족정三足鼎이나 사족정四足鼎을 보면 그 밑 부분에 전부 곰을 새겼어요.
일웅일호一熊一虎는 북두칠성의 신성과, 신의 사제司祭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미국 인디언 문화를 보면 거대한 벽에 아홉 마리 곰이 북두칠성처럼 새겨져 있어요. 제가 뉴욕에서 강연할 때 그걸 한번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아에서는 시베리아 산産 순수 호랑이가 있습니다. 호랑이 문양을 보면 마치 산맥이 늘어선 것 같아요. 그래서 옛날부터 산신들이 호랑이를 타고 다닌다고 하고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합니다. 호랑이가 삼신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고 믿은 거예요. 그래서 일웅일호를 토템으로 봐야 됩니다.
마지막 아홉째로, 이 우주의 자연정신의 혼백을 신성한 수, 3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제사장 왕들이 문명을 창조하고 나라를 열 때는 우주의 신성한 수를 근본으로 했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려고 피타고라스Pythagoras(BCE 582년경~BCE 497년경)의 고향인, 터키 옆에 있는 사모스 섬을 갔어요. 피타고라스를 기념하는 조형물 밑에 히랍어로 ‘우주의 중심 수는 3이다’라고 씌어 있었어요. 피타고라스가 3수의 신비를 캐려고 저 중동을 통해서 이집트로 갔고, 또 티베트를 거쳐서 중국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3수 사상의 원류는 어디인가? 그것은 동방에서 보면 환국·배달·조선이고 서방에서 보면 수메르입니다.
런던박물관 근방에 있는 시골 박물관을 들어가면 삼신할머니가 있습니다. 유럽의 저 끝을 지배한 겔트족은 삼신 신성문화를 가장 예술적으로 디자인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놀라운 디자인 양식이 많아요.
우리가 유라시아를 보면 몽골의 삼 울루스, 카자흐스탄의 삼 주스, 헝가리의 삼 구스, 러시아의 삼 루스, 우즈베키스탄의 삼 우즈에서 알 수 있듯이 세 사람, 세 구역이 국가 건설의 밑자리를 만듭니다.
단군조선의 삼한 즉 진한·번한·마한이 한반도 밑으로 내려와서 백제·신라·가야의 전신인 삼한이 되었어요. 이것이 북삼한과 남삼한입니다. 이 삼한이 내려가서 대마도 즉 임나의 삼가라三加羅가 되고, 또 내려가서 유구국(오키나와)에 있는 산남, 중산, 산북이라는 삼산三山이 된 겁니다. 오키나와에 가 보면 그것을 삼국三國이라고도 말합니다.
중국에 가보면 축아지생祝兒之生, 아이를 낳는 것을 삼신三神이 축복해 준다고 해서, 연꽃 위의 동자가 삼신을 안고 있는 상이 중국 전역에 다 있어요. 여기 사진을 보면 부처님처럼 생겼는데 단전 쪽에 삼신의 기운을 받고 감사하는 제스처를 쓰고 있어요.
사실 전 지구촌에 『환단고기』의 원형문화 역사정신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젊고 뛰어난 가이드들이 『환단고기』를 읽지 않았는데도 『환단고기』의 원형문화 정신에 맞게 유물을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경전 종도사님 환단고기의 가치, 안경전 프로필 안경전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