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重大匡 平城府院君에 封君되신 忠貞公(諱彦脩)을 1세조로 모시고 있다.
충정공께서는 成味(忠簡公) 堅味(平原府院君) 齊味(判尹君) 世味(兆陽君) 自味(市津君) 毅味(善山君)의 여섯아드님을 두셨는데 2자이신 견자미자(평원부원군) 후손이 평원부원파이다.
公은 어려서부터 기품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었으며 기사무예에 능하더니 호반(虎班)으로 入仕하여 .공민왕10년 중낭장을 시작으로 내외 문무요직을 두루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동12년에는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졌다.
학문과 덕망이 높던 이자송(李子松), 정몽주(鄭夢周)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아들은 세분을 두셨는데 輔(吏曹典書), 치(密直副使) ,崇(都祭庫府使) 이시다.
회장; 임승래 063-285-3649.
총무; 임용구 063-861-3490.
중앙회상임부회장; 임행진 061-744-2071 , 016-651-2071
** 평원부원군휘견미신도비문(平原府院君諱堅味神道碑文)
大自然의 고요한 道理는 不測無功하므로 이것이 곧 神道다.
神天은 陰陽이 元道요 富地는 柔剛이 本源이요 大人은 仁義가 全道어늘 이것이 天地人三才의 原道이다. 人生이 이 世上에서 信仰과 敬天과 愛族之心과 忠義와 孝烈의 行動이 없다면 어찌 영원히 썩지않는 聲名을 갖으리오, 公의 姓은 林이요 系出은 平澤이다.
公은 諱八及 諡忠節公의 後孫이요 諱彦脩의 둘째아들이시다.
公이 麗末 공민왕때 中郞將이 되고 또 大護軍이 되어 羅州와 晉州의 兵馬使가 되었을 때 紅巾賊을 討滅하여 都城을 收復하고 吏曹判書가 되어 安州 및 西北都巡問使가 되고 密直副使로 副元帥가 되어 濟州道牧胡戰에 참전하여 戰功을 盡忠的으로 세웠다.
또 고려 禑王때 門下府事와 西京 上元帥와 評理事와 守門下侍中과 政房提調와 門下侍中 領三司事가 되신 平原府院君이시다.
公의 配位는 水原李氏니 輔치崇 三子를 두었나니 長子 輔는 吏曹典書公이요 次子 치(木+致)는 密直副使요 末子 崇은 都祭庫府使다 그리고 큰집 孫子 益龍은 錦溪處士요 曾孫 夏는 成均進士요 둘째집 孫子 得生은 隱德逸士요 그집 曾孫 積은 務功郞이요 末子집 孫子 承幹은 左右衛保勝郞將이요 曾孫 陽은 宣務郞이요 둘째 孫子 承岳은 文科名公이요 曾孫 甲雨는 文科敎書郞이요 둘째 曾孫 乙雨는 隱德名儒라 동 丙雨도 또한 名儒다 玄孫 昆孫 來孫부터 이하는 모두 보첩에 수록 되었으므로 여기에서는 省略한다.
지극히 슬픈마음 가슴에 안고 알왼다.
할아버지 壽가 萬世위에 萬世를 더하여도 孫子들은 오즉 不足하온데 높은 목슴이 어찌 그리 짧었단 말입니까. 公과 떨어진지 육백년만에 中外에 널리 사는 총생일동 업드려 두 번 절하며 삼가 고하나이다.
庚申(1980년) 10月 開天節 後孫總生 追慕謹선
첫댓글 한 가지 밝혀 둡니다 충정공계에 自味는 오류이고 自美는 恩津 林氏의 조상인데 味와 美가 착오이며 순창이나 화순에 사시는 先味公의 후손은 호적상 평택이고 계보상으로는 季美손(몽주공의 끝 八美 손=예천 부안 계)이며 울능군파 평택관도 같은 맥락입니다---임행진님 글 옮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