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키르기즈스탄에는 쓸쓸한 가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벌써 서리가 내리고 천산이 하얗게 뒤덮였다가 다시 따뜻해지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곧 눈이 내리겠지요. 먼저 감사하게도 지난 7월24일에 또 한 해를 이곳에서 머물며 살아갈 은혜를 얻었습니다. 큰 어려움 없이 노동허가와 비자 연장을 마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안정적인 장기체류를 위해 영주권 신청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정해진 수수료 외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말하는 사람마다 다 달라서 마치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며 가격을 흥정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마치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하심을 따라 지혜롭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알려드린 것처럼 여름에 고아원 아이들이 저희 집에 와서 직접 토마토와 오이, 피망을 따보고 체험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원장님 생각으로는 소련 시절의 노동학습처럼 아이들이 땀흘려 고생해보길 원하셨지만 도시를 벗어나 탁 트인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차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큰 기쁨이었답니다. 늘 먹던 고아원 밥이 아닌 저희 가족과의 점심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돌아가는 길에 들린 마트에서 직접 골라먹는 아이스크림 맛도 있을 수 없는 기쁨이었답니다. 해가 늦게 기우는 여름이라 동네 이웃집 아저씨네 젖소의 젖을 짜는 체험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고 말이나 당나귀를 타보기엔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다녀간 아이들의 미소짓는 얼굴이 남아있어 계속 해야겠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11월쯤 있는 가을방학과 연말에 계속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해야겠습니다.
8월 12,13일 부산의 평화로운 회사에서 오셔서 프로그레스 마을 학교에서 한국문화캠프를 잘 마쳤습니다. 태권도,한글, 천연염색, 한국음식, 운동회 등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으로 우리마을 아이들과 함께 서로 사귀고 어울렸습니다. 72세 할머니부터 8살 꼬마까지 오신 분들 모두 학교 선생님들과 마을 사람들 집에서 이틀간 홈 스테이를 하면서 서로의 삶도 나누고 정성스런 선물도 나누고 사랑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미리 약속한 5~8학년 80여명 외 모여든 아이들을 돌려보내느라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엄포를 놓아야 했고 떠나는 날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떠나는 발걸음을 축복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우리 마을에 큰 선물을 주고 가신 평화로운 회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아이들의 마음 가운데 새겨진 깊은 사랑의 흔적이 자라나 열매맺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최 아클 선생님의 도움으로 프로그레스 마을 학교에 칠판을 교체 기증하게 되어 감사하고 또 지난번 소식에 전해드린 것처럼 올해 저희 마을이 속한 행정구역에 정 헤브론 선생님 도움으로 한국 연탄은행에서 지원하는 석탄을 지원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지난 9월19일부터 지원대상이 된 마다니얏, 온비르 즐가, 카이르마 그리고 저희 프로그레스 마을에 석탄이 도착했고 23일부터 이틀간 지원대상 가정들에게 분배되었습니다. 예정보다 지원시기가 늦어졌지만 추위가 오기 전에 전달되어 참 감사합니다. 중간에 소통과정에서 오해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는데 약속대로 지원가정들이 모두 지원받게 되어 더욱 감사하고 기쁩니다.
그리고 9월부터는 송자크야 선생과 함께 토크막 인근 마을을 대상으로 검안과 안경조제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함께 교제하는 현지인 루슬란이 살게 될 악베심 마을에서 시작했습니다. 마을 학교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검안하고 안경이 필요한 분들에게 안경을 제작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경 코받침이 없는 채로 쓰고 있는 교장선생님의 안경도 고쳐드리고 칠판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눈이 나쁜지 모르고 있었던 8살 여자아이에게 안경을 씌워줄 때의 기쁨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말로 다 하기 어렵네요. 면사무소 직원들과 학교 교직원들도 정말 고맙다고 와서 여러 차례 인사를 하고 갔는데 기다리던 사람들도 그런 모습을 보며 저희를 환영하고 열린 마음으로 맞아주어 저희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루슬란과 친구 아디스벡은 우리가 검안하는 동안 대기하는 사람들의 접수를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안경을 받은 분들의 감사와 더불어 마음이 열린 분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지난주에는 타슈켄트에서 안경사분이 오셔서 저희가 일하는 현장에서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보충하는 실습교육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10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진행하는 미국 save vision팀의 사역에도 함께 참여하여 배우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여름부터 이곳에 있는 중국인 선생님들을 자주 만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북성, 복건성, 홍콩 등 출신도 다양하고 연령도 다양한데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 한결같아 함께 식사하고 교제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희처럼 농촌지역으로 가길 원하시는 분이 있어서 농업회사 설립절차와 비용 등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먼저 와서 비슷한 일을 하는 한국분들과 연결도 하고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아내도 오랜만에 중국어 실력을 되살리는 기회도 얻었구요.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을 맞을 마지막 준비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여름동안 오래된 비닐 교체를 위해 벗겨놓은 비닐하우스도 새 비닐을 입어 파란 하늘처럼 산뜻해 졌고 갈라진 창틀에도 페인트를 칠하고 실리콘도 바르고 찬바람이 들이치지 않도록 단단히 손질해둡니다. 석탄창고에도 겨우내 사용할 석탄을 가득 부어두고……
그런데 정작 정말 중요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며칠전 구잘 아주머니가 보내온 동영상에는 그 마지막 심판의 날에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얼마나 좋은 차를 타느냐가 아니라 그 차로 길 가에 서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테워주었느냐 이고 얼마나 큰 집에서 살았느냐가 아니라 그 집에 누구를 초대하고 환대했느냐이며 당신의 피부가 무슨 색인지, 눈동자가 무슨 빛인지가 아니라 슬퍼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 따뜻한 말과 빛을 전했느냐이며 당신이 어떤 직위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가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섬겼느냐 일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아버지의 자녀가 아닌 분인데 저에게 이런 동영상을 보낸 의미를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하루였습니다.
곧 다가올 그 날에 함께 기쁨으로 노래하며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단기 제목
1.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있을 안경캠프를 통해 세부적인 진행과정과 준비사항들을 잘 배우고 돌아올 수 있도록
2. 악베심 마을과 이어지는 토크막 인근 마을들에서의 검안과 안경전달을 통해 눈이 열리고 빛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을 보게 되기를.
3. 고아원 아이들의 농장체험을 세부적으로 잘 살피고 준비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시간들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고 삶이 풍성해지도록.
4. 영주권 신청을 위해 10월 중순경 변호사를 만날 예정인데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중장기 제목
1.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2.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가운데 인도하심을.
3. 안경사역팀의 일원으로 잘 섬길 수 있도록.
4.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5. 프로그레스의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세워가도록.
개인과 가정 제목
1. 내년 봄 첫째 지성이와 둘째 인애의 중등과정 검정고시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2. 지성이가 한국에서 고교과정을 경험하려는 마음이 있는데 충분히 생각하고 잘 결정할 수 있도록
3. 홈스쿨을 하면서 한글 수업도 해야 하는 아내가 시간관리와 건강을 잘 지키도록
4.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해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