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마당에 녹지 않고 쌓여있는 눈이 벌써 겨울이 시작되었슴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도 3일간 눈이 예보되어 있는데 어린 시절처럼 마냥 기쁘지만은 않네요.
비록 겨울은 제 시간에 왔지만 예년보다 훨씬 따뜻한 가을 날씨였습니다. 보통 10월에 오는 첫눈이 올해는 지난주에 왔으니까요. 10월 중순까지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를 수확하는 것은 이 마을에 와서 처음이었습니다. 고아원 아이들에게 늦게까지 토마토를 보내줄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갈 때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수확이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좀 멋쩍게 웃기도 했구요. 고추도 늦게까지 충분히 수확하고 햇볕에 말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마늘도 예년보다 보름이나 늦은 이번 주에 다 심었습니다. 올 가을에 안경사역으로 농사일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대신 이렇게 충분히 여유를 주시네요. ^^
지난 9월에는 악베심 마을에서 그리고 11월에는 카라발타 시와 소쿨룩 시에서 저희 안경사역팀이 다함께 진행했었습니다. 카라발타 현지회사에서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정기 사역으로 요청해 오기도 했습니다. 악베심 마을에서는 검사결과 대로 안경을 제작하여 나눠주는 자리에서도 계속 시력검사를 요청해와서 다음 마을들을 돌아보고 꼭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월19일부터 24일까지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진행된 안경캠프에도 감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포스코 인터내셔널이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하라 시 지역사회 공헌차원에서 실시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국의 하트 하트재단이 부하라 보건소와 함께 안보건 증진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하트 하트 재단에서 시력검사와 안경보급 실무를 세이브 비전에 요청했고 저는 세이브 비전에서 봉사요원으로 참여를 요청받아 함께 했습니다.
이번 부하라 안경캠프에서 뉴욕에서 오신 세이브 비전 검안사 분과 통역을 맡았던 친구와 있었던 일을 좀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2년 전에도 안경 캠프에서 함께 일한 구면이었습니다. 통역을 맡은 친구는 포스코 인터내셔널 직원이라 영어, 한국어, 우즈벡어, 타직어가 가능했던 유능한 인재였습니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 했지요. 그런데 이번 캠프 기간에 출산한지 얼마 안된 아내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했어요. 그래서 검안사 분이 다른 통역과 일할테니 가족에게 가 보라고 했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끝까지 남아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왔고 기쁘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검안을 마칠 때쯤 모두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왜 아내에게 가지 않았냐고? 그런데 그 친구 말이 이 검안사 분처럼 우리를 정성껏 봐주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묻는 거에요. 자기는 점심시간도 아깝다고, 한 명이라도 더 떠나기 전에 검안해주면 좋겠다고, 나는 힘들지 않으니 선생님만 괜찮다면 계속 검안을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고.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난시가 심한 눈이라서 영국에서 공부할 때 구입한 안경도 그다지 눈이 편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안경을 오래 쓰고 있으면 두통도 생기고. 지금까지 어디서도 만족할만한 안경을 쓰지 못했대요. 그런데 이번에 이 검안사가 자기 눈에 대해 검안하면서 이런 저런 질문도 하고 나서 새 안경을 씌워주는데 세상이 달라보였다고 하더군요. 오랫동안 안경을 써 왔는데 좋은 장비나 렌즈문제가 아니라 검안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대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봐달라고 부탁하고 싶은데 어떻게 자기가 이 자리를 비울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결국 마지막 날 그 친구가 검안사에게 물었어요. 나도 영국에 살아보니 서양 사람들은 참 바쁘게 살더라. 당신이 사는 뉴욕도 모두들 바쁘게 살아갈텐데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하냐고. 그래서 그 검안사분이 이렇게 대답했어요. 난 내가 섬기는 아버지께서 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걸 안다고. 그리고 나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게 좋아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고 해요. 그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구요. 앞으로 또 언제 그 친구를 만나게 될지 그 친구가 회심을 하게 될지 저희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친구 마음에 확실한 증거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큰 아이 지성이가 이제 한국으로 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동안 홈스쿨을 하면서 친구가 없어서 힘들어 하기도 하고 적성과 진로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지요. 고등학교를 마치는 나이까지는 가족이 함께 있기로 했었는데 지성이가 좀 더 다양한 환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그려볼 수 있도록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아직 중등과정 검정고시를 통과하지 않아서 내년 봄 고등학교 입학도 어려울텐데 그마저도 한국에 가서 길을 찾아보고 부딪혀보기로 하고 떠납니다. 포천에 계시는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진학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말에 아내와 아이들이 잠시 그 일로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3년 후에 떠나나 지금 떠나나 떠나기는 마찬가지일텐데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번 가을 안경사역이 줄지어 이어지면서 영주권 신청은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필요한 서류준비에 한달 정도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성이가 한국으로 가는 동시에 영주권을 준비하기에는 경제적으로도 부담이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을 동시에 진행하기 어려웠습니다. 예비하신 때에 이루어짐을 알기에 한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사람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시력을 검사하고 안경을 씌워주고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조금씩 느껴갑니다. 홍채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보면서도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조그만 나의 손짓으로 조금씩 그 빛을 찾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
단기제목
1. 카라발타와 소쿨룩 지역 시력검사 처방에 따른 안경제작과 전달을 잘 마칠 수 있도록.
2. 루슬란과 에르케아임 부부가 모스크바에서 온 조카들을 앞으로 돌보게 되었는데 사랑으로 잘 품고 양육할 수 있도록.
3. 아내와 아이들이 한국에서 4주간 머물며 지성이의 한국생활을 돕게 되는데 만남과 교제 가운데 더 배우고 자라고 돌아오기를 .
중 장기 제목
1.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2.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가운데 인도하심을.
3. 안경사역팀의 일원으로 잘 섬길 수 있도록.
4.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5. 프로그레스의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세워가도록.
개인과 가정 제목
1. 내년 봄 첫째 지성이와 둘째 인애의 중등과정 검정고시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2. 지성이가 한국 생활을 잘 적응하고 고등학교 진학이 순조롭게 이루어 지도록
3. 홈스쿨을 하면서 한글 수업도 해야 하는 아내가 시간관리와 건강을 잘 지키도록
4.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