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온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 가운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이 엄청난 시기에 모두들 평안하신지요?
ㅋㄹㅋㅈ스탄에도 지난 3월18일 중동지역을 다녀온 사람들 가운데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일주일 후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락다운 정책이 실시되었습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마을에도 방역을 위한 차단시설이 설치되었습니다. 인근 도시의 시장에서는 식료품 사재기로 난리가 나서 경찰이 투입되었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도 불안해했습니다. 식료품 구입과 병원과 약국 방문을 위한 목적으로만 외출을 허락한다는 소식과 함께 마을에서 만든 마스크가 집집마다 2장씩 배포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5명인데……
저희 가정도 그렇게 봉쇄상태로 한달 보름을 지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홈스쿨을 하고 있으니 특별한 변화없이 일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말한글학교를 가지 못해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에 하늘이는 처음엔 좀 힘들어했습니다. 그런데 곧 날씨가 따뜻해져서 하늘이와 현수는 반나절을 마당에서 놀면서도 오늘 너무 못 놀았다고 투덜대며 집에 들어오지요. 인애도 지난 봄에 새로 낳은 강아지 한마리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아침 저녁 돌보는 취미가 생겼구요. 저 역시 아내와 함께 조만간 봉쇄가 풀리면 다시 사람들도 만나고 하던 일을 그대로 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그동안 밀린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쇄 3주가 지나면서 식료품이 점점 줄어들고 냉장고가 텅텅 비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지침에 따라 자필로 작성한 이동경로 소명서를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곧 바로 마을 입구의 검문소에서 면사무소에서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확인서와 외출허가서를 받아오라고 돌려보내더군요. 뉴스로만 듣던 코로나 방역을 위한 봉쇄의 엄중하고도 심각함을 실감했습니다. 면사무소에는 이미 건물 밖으로 사람들의 긴 줄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청년은 상기된 얼굴로 병원방문은 가능하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한 마을에서 하루5명만 나갈 수 있다는게 말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지만 기다리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마을에서 조그만 상점을 운영하는 아저씨도 5일에 한번씩만 시장을 가라는 소리에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한시간 줄을 서서 면사무소에서 받은 서류를 들고 다시 검문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제 차량은 오늘 날짜로 허가받은 차량이 아니니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근 지역에 며칠전 확진자가 발생하여 갑자기 강화된 조치가 시행된 첫날이었습니다. 마침 검문소에 온 마을 이장이 저를 보고 내일 아침 일찍 면사무소로 나오라며 외국인이니 예외적으로 규칙을 적용하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결국 그날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다음날 면사무소에서 한시간 반을 걸려 외출허가서를 다시 받고 나서야 마을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검문소를 통과하며 다시 마을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유난히 파란 하늘과 눈부시게 푸른 들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토크막 시 경계에서는 여러 마을들에서 내려온 차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체온을 확인하고 차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려 서류를 확인하는 절차를 엄격히 시행하느라 시간이 한 없이 지체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30분 걸리는 거리를 4시간이나 걸려 토크막 시에 진입하고 나서 제 눈에 들어온 광경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걸어다니는 사람도 하나 없고 마주오는 차량도 없는 도로를 혼자 달리고 있는 그 생소함. 텅빈 시장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엄격한 봉쇄정책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수그러졌는지 아니면 봉쇄로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을 무한정 막아둘 수는 없었는지 5월 중순부터 단계적으로 봉쇄가 해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종교모임도 공식적으로 허락되었구요. 이제는 마을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고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주요 도시들의 입출경을 제한하고 있고 일일 확진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이 상황이 종식되고 일상을 되찾기를 기대하지만 상당한 시간을 인내하며 견뎌내야 하겠지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몇몇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지난 5월말에 밀가루와 식용유를 비롯한 식료품을 어려운 분들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석탄을 지원할 때 기록해둔 생활지원대상가정 명단이 있어서 장애가 있는 분들과 한부모 가정에 전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크막에 있는 한 형제자매인 지체들과도 나눌 수 있었구요. 그동안 수입이 없어 너무 힘들었는데 마침 꼭 필요한 것들이라며 너무 기뻐하시며 받은 분들이 전한 축복의 말씀들을 다 전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참 감사하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혼란의 시기에 저희 가정은 노동허가와 비자 연장 및 거주등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원래 계획보다 한 주 일찍 서류접수를 시작했는데 그게 국가비상사태 선포 3일 전이었습니다. 며칠만 늦었어도 어떻게 되었을지… 지난 5월 중순부터는 비자 만료를 앞두고 매일 초조한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하필 이시기에 두 아이의 여권도 재발급해야 했는데 한국대사관에서 여권발급이 되었다고 연락을 주면서 대사관 출입이 불가능하니 비상사태가 해제될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참 막막했었습니다. 세무서와 연금공단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는 과정도 봉쇄상태 중이라 한없이 지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그때마다 면사무소에 가서 외출허가서를 받아 나가야 하는 것도 마을 사람들에게 눈치보이는 일이었고 외출하고 다녀오고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혼자 방에 들어가 마스크 쓰고 창문열고 소독약을 뿌리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또 비자 기간이 만료되고 보름이 지나고도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서 마음을 졸였고 비자 발급 시스템이 바뀌면서 처음 보는 형식에 모두들 당황하느라 저 역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외국인들에 대한 비자연장과 거주등록 지연에 관해 7월1일까지 관용적으로 허용하기로 하면서 지난주에서야 겨우 모든 절차가 끝났습니다. 정말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은혜이고 감사였습니다.
또 봉쇄정책으로 인해 재배한 농산물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었는데 감사하게도 모두 필요에 따라 나눌 수 있었습니다. 4월초에 폭설이 오고 며칠간 영하 7도의 강추위가 닥치며 비닐하우스 안에서조차 냉해를 입었고 농산물을 전달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그냥 땅을 갈아 엎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재발급된 여권 때문에 비쉬켁에 나가야 했고 면사무소에서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농산물 판매로 이동허가서를 만들어 줄 테니 필요하면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핑계로 저는 비쉬켁에 계시는 선생님들을 만나 열무랑 알타리, 무를 건네며 서로의 안부도 확인하고 격려와 위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두달 만에 처음 한국사람을 만난다며 얼굴을 못 알아볼만큼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으로 얼싸 안고 감격하기도 했었지요. 그 일로 인해 몇몇 분들이 이렇게 매년 그냥 받아 먹기 미안한데 같이 조합처럼 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요. 당장 지금 현실에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첫 주부터는 안경사역을 위해 다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방역을 위해 두 사람씩만 모여 안경제작을 하기로 했지만 두 달 반 만에 처음 다시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이고 감격이었습니다. 올해 계획된 일들이 모두 취소되었고 당분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그동안 노력해서 얻은 노하우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한국에 있는 큰아이 지성이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몇차례 미뤄진 중졸 검정고시를 드디어 통과하고 고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4월초 예정이었던 시험이 연기되면서 고교 입학도 덩달아 계속 미뤄지고 있었답니다. 결국 지성이가 그냥 학교가는 걸 포기하고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그렇게 학교라는 걸 경험해 보고 싶어했는데 이런 상황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잠잠히 따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또 감사하게도 루슬란 친구인 아디스벡 아내 아나라가 지난달 다섯째 아이를 건강히 출산하였습니다. 자녀들의 나이차이가 작아 산후조리도 어렵고 회복도 더뎌서 힘들어 하지만 감염확산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건강히 출산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 그 형인 울룩벡도 간경화 상태가 좋아져서 살던 곳인 카라콜로 돌아갔는데 그 지역엔 간 전문의가 없어서 장기적으론 토크막이나 비쉬켁 인근으로 이사를 하려고 합니다. 생사의 고비에서는 일단 벗어났지만 그의 생명을 허락하신 아버지께서 계속 붙들어주심 가운데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놀랍고도 감사한 일이 한가지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직전에 루슬란, 아디스벡과 함께 한 가정을 방문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고있는 키르기즈 자매의 가장 친한 친구가 갑자기 병으로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은 루슬란이 먼저 가겠다고 응답했고 저와 아디스벡은 기쁘게 동행했습니다. 잠시 머물며 대화를 나누던 중 바로 하루 전 다른 형제의 방문으로 기쁜 소식을 듣고 영접을 했고 감사와 기쁨으로 말씀을 읽고 있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쪽방촌의 초라하고 궁색한 살림이었지만 이 땅에 빛으로 오신 분의 은혜를 누리는 여인의 간증은 참 풍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저 멀리 누군가의 일로 느껴지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현지인들 친구나 가족들의 확진으로 새삼 가까이에 있슴을 인식합니다. 그 옛날 이집트 땅에서 죽음이 넘어간 것처럼 그 보혈의 공로로 지금 여기서 살아감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이 위기의 시간들 속에 오히려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시는 아버지로 인해 위로와 안식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
단기 기도 제목
1. 루슬란의 아내 에르케아임이 셋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달 중순이 예정일인데 건강과 안전한 출산을 위해서.
2. 안경사역을 위해 비쉬켁 시내 운영중인 사무실이 임대료 문제로 이전을 준비중입니다. 사용하는 안경조제 장비들의 설치문제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확인 중인데 코로나 상황으로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달 말까지 좋은 곳을 찾아 이전을 하게 되기를.
3. 7월 초 비쉬켁 시의 쓰레기 매립지 인근 마을에 해마다 여름캠프를 운영하는 팀에서 안경사역의 참여를 요청해왔습니다. 이틀정도 예정인데 잘 분별하고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중장기 기도 제목
1.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2.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가운데 인도하심을.
3. 안경사역의 현지 법인등록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4.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5. 프로그레스의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세워가도록.
개인과 가정 기도 제목
1. 지성이가 한국 생활을 잘 적응하고 고등학교 진학이 순조롭게 이루어 지도록
2. 홈스쿨을 하면서 한글 수업도 해야 하는 아내가 시간관리와 건강을 잘 지키도록
3.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