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를 살지만, 아무 고민없이 골프 치고, 여행하고, 맛집 찾아다니고, 자식 자랑하는 것만으로 삶을 훌륭하게 꾸려나가는 이들이 많다. 전쟁이 나도 그렇고, 전염병이 돌아도, 외환위기가 와도, 천재지변이 생겨도 그렇다. 페북을 넘기다 보면 사바가 괜히 사바랴 싶은 적이 많다.
수십 년 내가 맞서온 현대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침묵하는 지식인은 거짓의 부역자들에 지나지 않는 그저 그런, 그래도 없어서는 안되는 '소비자들'이다. 정부 지원 연구기금은 쏙쏙 잘 받아먹지만 실적은 거의 없는, 노벨상은 감히 상상도 못하고, 남들이 인용조차 안하는, 물 건너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읽어주지 않는 맞춤법 틀리고 어법 틀리는 허섭한 논문이나 써서 세금 뽑아먹는 기술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깨달음 구하려 출가했다는 승려들이 뻔한 불의에 입 닥치고 염불과 제사만 지내는 걸 보면, 내 눈에는 더 하찮아 보인다. 불교는 화쟁(和諍)하는 종교다. 붓다 시대에도 토론이 있었고, 티베트는 짱군최라는 세계 최강의 격렬한 토론이 있고, 우리나라도 화쟁, 팔리사 등이 있었다. 붓다는 조국을 치러가는 코살라 군대에 맞서 두 번이나 말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신라의 원효 등이 실제 사용한 화쟁은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맞서 말로 다투는 것이다. 다투지 않고 피하거나 숨으면, 지금도 헉헉거리며 사바나를 뛰어다니는 한 마리 짐승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