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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세기는 명백히 후천 상생 인류의 시대라고 확신한다. 소설 <황금부적>을 쓰면서 이러한 확신을 더 깊이 가졌다.
즉 그 이전의 문화에서는 남을 억압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야 이기거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생긴 이래 이 법칙은 바뀐 적이 없었다. 숱한 멸종 위기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인류 초기 역사인 수렵채집 시기에는 남보다 힘이 세어야만 들짐승 산짐승을 잡고, 이웃부족과 싸워 물리칠 수 있었다. 생존율이 높으려면 덩치가 크고 힘이 세어야만 했다. 당시 사망자의 약 25% 정도가 두개골 파손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과 폭력은 일상이었던 듯하다. 이런 환경에서 힘은 지혜보다 앞선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고, 후손을 남길 수가 없다.
힘이 약한 자들은 빼앗기고 억눌려도, 생식 과정에 도태되어도 할 말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센 지도자를 따라야만 했다. 힘이 약하면 힘센 자의 종이 돼야만 했다. 종의 문화가 우리 DNA에 각인되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 힘이 약한 자는, 생존능력이 부족한 자는 후손을 남길 권리마저 박탈되었다. 그렇게 승리한 자들의 DNA가 이어져 오늘날의 우리에게 와 있다.
더구나 수렵채집 시기에 인류는 이미 도시의 필요성을 자각했던 듯하다. 고양이과 동물들처럼 독자 생존을 도모하기보다 군체(群體)를 형성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깨닫은 것이다. 초기에는 150명 내외의 씨족 단위 생활을 했지만 근친 교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호적인 이웃 씨족들과 사회관계망을 형성, 500명 ~ 5000명 정도의 부족으로 성장하고, 이 또한 다른 부족과 우호적인 혹은 적대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생존가능성을 높여갔다.
12세기 경에 보여준 몽골 초원의 씨족, 부족 사회가 그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연재해가 닥치기 전까지는 평화를 유지하지만 식량이 모자라는 기근이 일어나면 부족들이 연합하여 중국을 침략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자기들끼리 전쟁을 벌여 개체조절을 하고, 멸종 위기를 극복했다.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는 오직 전쟁과 약탈이었음은 물론이다.
- 두개골이 부서진 선사시대 남자 두개골.
케냐 투르카나호수에서 발견. 1만 년 전 추정.
그러다 농경시대에는 체격이 크고 힘이 좋은 지도자 시대를 벗어나 큰 농장을 소유한 땅주인이 우월한 시대가 되었다. 땅주인은 큰 농장을 경작하기 위해 많은 인부가 필요했다. 그런데 경작에 동원되는 인부(대부분 노예)는 임금을 주지 않고 오로지 밥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부릴 수 있었다. 필요하면 이들이 군사도 되었다. 결국 농장주가 성장하여 씨족장이 되고, 부족장이 되고, 그들 중 군사를 많이 거느린 자가 왕이 되었다. 고려 때까지도 이러했다. 이때도 사람들은 강한 왕이나 농장주에게 붙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모자라면 남의 것을 빼앗는 게 일상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음모, 중상모략, 고변을 일삼아 상대를 무너뜨리고 그 땅과 노예를 빼앗았다. 봉건시대에 유독 반란 같은 정변이 많은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반란을 모의하지 않아도 덮어씌워 그렇게 희생되는 집단이 많았다.
이러는 과정에 사농공상이란 직업의 변화가 일어나 왕 혹은 주군을 지키는 무사와 문사들이 나타나 종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즉 무사와 문사는 왕 혹은 주군에게 종질을 하기는 하나 백성에게는 사납게 굴고, 그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 중간 왕 노릇을 한 것이다. 무사 계급으로는 일본의 사무라이가 대표적이다. 문사로는 조선시대에 착취의 중간고리 역할을 단단히 한 아전 따위가 대표적이다.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습관으로 이어지는 직업군이 공무원과 군인이다. 조선시대의 공무원을 대표하는 아전은 지방에서 왕이나 권신을 대신하여 착취하고, 농민을 실질적으로 억압하는 최전선의 중간관리자였고, 군인은 언제나 백성을 위협하고 약탈하는 존재들이었다. 저절로 계급, 신분이 정해지고, 이러한 계급과 신분을 지키는 것이 곧 생존을 위한 최선이었다. 그래서 공무원과 군인은 계급에 철저히 복종하고, 미래의 연공서열에 따라 받게 될 권력을 위해 몸을 낮추고 충성하는 습성을 갖춰나갔다. 공무원 집단과 군인 집단의 역사를 보면 외국 군대와 싸운 것보다 제 나라 백성을 죽이거나 빼앗은 전력이 단연 앞선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오늘날 남아 있는 혈연, 지연, 학연, 선후배 문화, 결혼동맹 따위가 바로 이러한 계급과 신분에 소속하여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농경시대의 무사, 문사의 유습이다. 뜯어먹는 쪽에 서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진박이니 친문이니 하는 패거리 문화가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누구도 진박이니 친문이니 하는 명백한 증거가 없지만, 이 영역에 든 자는 최소한 방어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런 용어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에는 당파가 매우 중요하다. 자기 편이 아니면 사정없이 물어뜯고, 자기 편이면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조선 국왕 중 가장 무능하다고 평가되는 선조 이균 시절에 시작된 동인-서인 붕당은 이후 안동김씨 세도가 생기기 이전까지 약 150여년간 줄기차게 분열되며 패거리 문화를 정착시켰다.
오늘날 SNS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막말을 하고 욕설을 퍼붓는 습성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아직도 조선시대 당쟁 문화에 잡혀 있는 것이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진박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독점하기 이해 비박을 물리친다. 그래놓고 파이를 키워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친문세력으로 불리는 야권 기득권자들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담합구조를 이루고 그 기득권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운동권이니 동교동계니 노무현계니 하면서 성격을 규정하고, 배타적으로 집단을 관리한다. 동인서인이 남인북인, 노론소론, 시파벽파로 끝없이 분화하는 것은, 그만큼 배타적으로 이익을 독점하려는 생존 본능으로 생긴 것이다.
이런 흔적이 SNS에서 자신과 조금만 의견이 다르면 금세 포악해지고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으로 변하는 원인이다.
이후 산업시대에는 자본이 주인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자본의 상징인 돈을 따라다녔다. 돈이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불러모았다. 돈 앞에 인류가 줄을 선 것이다. 이것이 20세기를 지배했다. 우리들의 반쪽이 바로 산업시대에 길들여진, 돈의 노예가 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모든 평가는 돈이 대신했다. 문화, 예술, 교육, 과학까지도 돈이 좌우했다. 돈이 모든 걸 평가했다. 결국 사람들은 돈을 빼앗고, 독점하고, 약탈하고, 착취했다.
하지만 농경시대의 쌀이 산업시대의 돈으로 모양이 바뀌었을 뿐 당파를 지어 이익을 독점하고, 자기들끼리 담합하여 나눠먹는 방식이 달라진 건 없다. 산업시대나 농경시대나 왕과 자본주가 있을 뿐이고, 그 아래 문사와 무사같은 중간계급이 존재하는 것이다. 중간계급이 바로 공무원과 군인이고, 공무원과 군인 집단이 커지면서 공무원은 고시 출신, 육사 출신을 따지는 또다른 패권이 그 안에 자리를 잡고, 군인은 육사출신이니 하나회니 하면서 패당 속의 패당을 짓는 것이다.
어두운 역사는 여기까지다.
이제는 21세기다.
가난한 대학 자퇴생 스티브 잡스가 거부가 되고, 대학을 다니다 만 빌 게이츠 같은 청년이 세계적인 갑부가 되는 세상이다. 창의의 시대에는 독특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금세 부자가 되고, 능력을 인정받는다. 엄청난 변화가 다가왔지만 우리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직 이 소식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아직 국민평균의식이 산업시대에 머물러 있다. 연간 국가예산 380조원을 잘 나눠쓰면 5천만 국민이 불편하지 않게 잘 살 수 있지만 기득권 세력들이 담합하여 서로 뜯어먹고 나눠먹느라 정작 국민들은 가난하다.
줄서면 먹을거리가 쏟아지지만 줄을 서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 끝없이 터지는 방위산업 비리는 아예 근절되지 않는다. 도리어 가벼운 처벌을 받으면서 범죄는 그치지 않는다. 교수는 연구비 떼먹느라 바쁘고, 업자들은 공무원 술사줘가며 이권 따내기 바쁘다. 검사, 판사들은 전관예우로 수십 억원, 수백억원을 삽시간에 나꿔챌 수 있고, 공무원들도 퇴직 후 알짜 산하기관으로 내려가 노후를 준비하고, 장교들도 그들이 만든 방위산업체 같은 곳에서 갖은 노른자위를 차지하였다.
우리가 진정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창의의 시대로 넘어가려면 농경시대의 쌀처럼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이 돈을 누군가 움켜쥐고 있으면 안된다. 돈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 돈을 찍어 풀 수 있는 권리를 특정집단이 갖고 있으면 이런 사회는 산업사회, 농경사회처럼 집단화, 독점화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영향 권 아래에 있는 한국은행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고, 미국의 경우 민간 은행들이 만든 연방준비은행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다. 미국의 연준이 오늘날 세계화폐인 달러를 주고 마음껏 세상을 흔들 수 있는 것이다. 미 연준은 발권력을 이용, 0.15%~1.25%에 이르는 막대한 이자수입을 올리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정부 수입이다.
- 한국은행이 찍어내는 5만원권 화폐. 인쇄비를 제외한 수익 즉 인쇄비를 제외환 금액에
대한 이익을 Seigniorage라고 하는데, 이는 국가 소유다. 더구나 시중은행에 이자를 받고 빌려주기도 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은 연간 약 110억달러에서 150억 달러의 시뇨리지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이 돈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날이고, 인류가 인류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날이다. 그 날은, 지배자와 기득권세력이 갖고 있는 발권능력을 회수하여 국민 전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블록체인에 의한 비트코인이다. 즉 국민이 돈을 만들어 푸는 권한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그야말로 대의기관일 뿐이며, 그들은 어떠한 권력도 독점하기 어렵다.
인류가 블록체인으로 돈에서 해방되는 날, 돈의 지배를 받게 되지 않는 날 상극의 시대는 실질적으로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상생의 시대를 열 수 있으리라고 본다.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것이다. 아무도 주인이 될 수 없고, 누구나 주인이 되는 것이 블록체인 방식이다. 검은돈을 원천 차단하고, 돈이 흘러다니는 길이 명백해지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나라의 부패는 5만원권 지폐 때문에 일어난다. 이것은 바로 어떤 기득권자들이 만든 음모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국민들이 블록체인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조선시대 양반지주와 아전에서 시작된 끈끈한 기득권 집단, 현대에 이르러 친일관료와 일본군 출신들이 만들어 놓은 철옹성 같은 기득권 집단을 깨부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 것이다.
- 블록체인 개념도. 일종의 인드라망으로 이를 통해 돈과 정보가 유통된다.
물론 인류라는 종이 살아 있는 한 생존의 문제는 다양성 차원에서 여전히 유효한 목표가 될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종의 목표가 있는 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남는 길'과 '이기는 길'을 찾아나설 것이다. 다만 상극하는 반칙이 아니라 상생하는 원리에 편승할 수밖에 없는 창의시대 길이 될 것이다. 다양하게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고, 나아가 다른 개체의 생존을 돕는다는 이 기본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수렵채집시대를 좌우한 힘과 근력, 농경시대의 쌀, 산업시대의 돈, 정보화시대의 정보 따위가 이제는 블록체인으로 관리되면서 인류가 공동으로 그 혜택을 보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제 창의성이다. 창의성으로 말하자면, 현재까지 알려진 교육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브레인워킹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앞으로도 바이오코드는 창의성을 만들어내는 교육법 개발을 위해 더 힘을 쏟을 것이다. 2급상담사 이상은 이미 알고 있으며, 남은 것은 오직 실천 뿐이다. 제3의 눈이 저절로 떠지는 그 순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