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특별히 힘쓸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천국은 저절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으로 들어가는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대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속 자체가 구원은 아닙니다. 그것을 믿고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에 대하여 잘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엡2:8)
은혜+믿음=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우리도 자신에 대하여 또 세상에 대하여 죽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니라."(롬6:11)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그런데 믿는다는 것은 지적인 확신이나 동의 정도가 아니라 삶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곧 삶속에서 실제 죽은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모습이 나타나지도 않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인식만 하고 있다면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을 삶을 통해서 나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며(빌2:12), 믿음으로 자신을 확증하는 일입니다.(고후13:5)
그러므로 믿음의 삶이란 부단히 자신을 죽이기 위한 힘씀(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도 힘쓰지 않고는 그러한 모습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써야할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요긴한 것 세가지만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1.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 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낮아지는 일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높이고 교만해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가장 큰 특징이 교만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단의 꼬임을 받아 타락한 뒤에 인간은 사단을 닮아서 교만해 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를 가능하면 높일 수 있을 만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인지라 이것과의 싸움이 필수적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이유도 교만이었고, 사울이 버림을 받은 것도 교만함 때문이었으며, 웃시야가 문등병이 들게된 이유도,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것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2. 성결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살게 하고자함 입니다. 더러워진 옷을 세탁해 주는 것은 더러운 것이 싫기 때문이듯이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해 주신 것은 죄가 싫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우리를 정죄하는 율법을 폐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도덕률폐기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참으로 한국교회의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 오히려 도덕률의 권위가 더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도덕적인 죄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계21:27)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영적이든 육적이든 가릴 것 없이 부도덕한 마음이나 행위를 버리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3.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
나 자신이 아무리 겸손하고, 성결한 삶을 살았다해도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완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며(롬12:10), 천국에 입성하기 위한 최고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5-11)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얻었으며, 그 사랑으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마음엔 사랑을 못하게 만드는 많은 악한 성품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울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3-14)
바울 같은 사람도 앞으로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또 말년에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6:12)
또한 말년에 이렇게 자신의 살아온 것에 대하여 승리를 노래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우리도 이렇게 승리의 개가를 불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