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 허태기
아직 덜 떨어진
눈꺼풀 안으로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다가온다
간밤에 눈이 함빡 내린 모양이다
겨울철의 칙칙하고
을씨년스러운 모습들이
하얗게 녹아들고
시끄러운 소음들은
백색의 차가운 침묵 속에 묻혀버린 듯
온 세상이 시리고 고요하다
시커먼 아스팔트길도
회색 빌딩들도
형형색색의 자동차도
지저분한 쓰레기통도 모두 하얗게 변하고
고개를 들어 북한산을 바라보니
쌓인 눈으로 산과 숲 바위들이
하나로 보인다
지금 쯤
고향의 시골지붕과 장독대
정든 골목길
감나무 가지에도
대나무 잎에도
멀리 대가저수지* 앞을 가로지르는
소나무 숲에도
하얀 눈이 휘일 듯 내렸겠지
상념의 나래를 타고 지난 밤 내린 눈이
사박사박 미흡한 듯
오솔길 따라 다시 흩날리기 시작하고
동화 속 같은 겨울 숲으로 소담스런 눈송이가
들어서는데 여린 가지 끝을 스칠 때마다
때아닌 벚꽃이
사푼사푼 피어난다.
[20061217]
* 대가저수지: 경남 고성군 대가면 소재 저수지(유흥리 마을 정면에 위치한 넓은 호수)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garungbi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