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자보(庚子譜,서기1900) 서문(序文)
金海金氏族譜序(김해김씨족보서)1. 譯者 金希元 2004. 6. .
譜者所以收其族而其本也 夫天下氏族之有譜自歐蘇氏始 而以來文獻大邦尙歎無百年故可況我東之편域乎
족보란 것은 씨족의 그 근본에까지 거슬려 올려서 수록하는 것이니 대저 천하의 씨족이 족보를 가진 것은 구소씨로부터 시작하였으나 송나라와 같이 큰 나라에서도 백년동안 문헌이 없었으니 오히려 탄식할 노릇이거늘 하물며 동쪽의 좁은 우리 나라의 형편으로서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謹按金海之金其源昉於駕洛國首露王而自後千有年昭穆之序系若貫珠文獻之徵的如指掌此非古今諸氏之所可及 而羅麗以來名公碩輔偉勳壯節磊落相望尤可其盛且赫也
삼가 김해 김씨의 그 근원을 살피건대 시조이신 가락국 수로왕으로부터 천년이 넘은 뒤에도 소목의 차례와 계통이 구슬을 꿴 듯이 문헌으로 밝혀서 손바닥 가리키듯이 명백하니 이는 고금의 여러분들의 힘써 미치게 한바가 아니겠는가? 신라와 고려 이래로 이름난 공경대부와 뛰어나게 공훈을 세운 크신 재상과 씩씩하게 절개를 지켜낸 장사가 주렁주렁 배출하여 번성하였으니 서로 선망함이 더욱 컸으며 그 업적 또한 혁혁하였다.
盖其源也其根也 固派分支列不可稱數者乃理也勢也 其圭冕顯閥之外夷爲平民者亦且蕃庶편滿國中是可見首露之裕德垂휴진悠久無窮也
대게 그 근원과 뿌리가 멀어서 진실로 파가 나누어지고 가지는 갈라져서 그 수를 헤아려 다 말할 수가 없으나 이는 곧 이치이고 형세일 것이며 그 벼슬과 드러난 문벌 이외에도 보통 평민이 된 자도 역시 또한 그 무리가 번창하여 온 나라안에 두루 가득 찼으니 이는 모두 수로왕의 넉넉하신 음덕이 나무그늘처럼 드리워진 것으로 오래도록 무궁함이 다할 것이다.
然親疏隆殺之分支혜四散難容俱收幷蓄京鄕著族내相與別爲譜 龜城大雅金鍾洛卽譜中人也 謁余以弁文曰 昔大老先生于舊譜 稱揚吾金之世德源流固盡矣 而今日重刊之由何可不明 子是大老之後踪而述之 不亦可乎 余屢獲猥
그래서 친족이 가깝다가 멀어지며 융성하였다가 쇠약해 지기도하여 가지가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져 사는 곳을 잘 알지 못하여 경향각지를 두루 모아서 함께 아울러 수록하기가 어려우므로 이에 서로 따로 파보를 만드는 것이다. 구성에 사는 존경하는 김종낙씨도 곧 이 족보중의 한사람으로서 나를 찾아와서 머릿글을 부탁하며 말하기를 옛날에 큰 어른(尤庵 宋時烈)선생께서도 구보에 우리 김씨의 대대로 이어온 덕과 원류를 진실을 다하여 칭양해 주셨습니다. 금일 다시 중간하게 되었으니 어찌 그 연유를 밝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은 대로선생(尤庵 宋時烈)의 후손이시니 서문을 지어 주심이 역시 옳지 않겠습까? 하였으나 나는 더럽혀질까봐 여러 번 사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以一言塞白凡譜於是者各知其來處矣 苟能考蹟 而感奮思所以下不沫前徽 卽實張子所云 大有益於朝廷者也
그래서 여러 말을 막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모든 족보는 각자의 그 유래된 내력을 알아서 진실 된 그 자취를 헤아리고 감격하고 분발하고 생각해서 앞날에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게 해야하는 바라서 실로 장자가 말하는바 조정에도 크게 유익한 것이라 하였으며
吾先子序所謂明倫展親 各盡同祖之義者亦譜之準則也 惟當勉隆而節復何贊哉 遂書此以歸之主管譜事者 甲峯忠靖公 七世孫寢 卽元培甫云爾
나의 선조께서도 서문에 이른바는 친족간의 윤리를 밝히고 펴서 각자가 조상을 같이하는 의의를 다하게 하는 것을 또한 족보의 준칙으로 삼게 하였으니 생각하건대 마땅히 힘써 절의를 나타나게 하였으니 어찌 다시 여러 말을 덧붙이겠는가? 마침내 이 글로서 보사를 주관하는 곳으로 돌려보내어 충정공 갑봉 선생 7세손인 원배를 비롯해서 여러분에게 말할 뿐이노라.
時上章困敦孟冬之下澣 恩津宋秉璇謹序
때는 경자(庚子.고종37.서기1900)년 초겨울 10월 하순에 은진 송병선이 삼가 서문을 지음
庚子譜 序文2(경자보 서문2) 譯者 金希元 2004. 6. .
金氏之譜혜金氏之族也 金氏出自駕洛而氏葉蔓延仍顯于羅麗入 本朝世襲簪纓昔涵虛亭云 東韓世族
김씨의 족보는 김씨의 씨족을 담아 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가락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손들은 늘고 뻗어나서 신라와 고려에 들어와서는 크게 드러났었으며 조선조에서도 대대로 벼슬을 세습하였으니 옛날 함허정(洪貴達, 1438∼1504)은 말하기를 동쪽의 한국에서는 드러난 씨족이라 하였다.
盖多姓金 金海之金獨高古今匪溢辭也 제綠世代久遠文獻莫徵槪其混雜無派無之可勝歎哉
대게 김 성이 많으나 김해 김씨가 유독 고금에 빛남이 높고 넘친다고 말하였다. 관록을 이은 세대가 멀고 오래되니 증빙할 문헌이 없게 되었음을 개탄하며 혼잡하여 파를 따질 수 없음을 한탄 스러움을 감내할 수가 없다.
不肖無狀 慨然有志於修譜沈潛反復 盖亦有年矣 適覩各派譜系 則詐僞冒眞若苗之有유栗之有 秕其徒寔繁 其略曰 自始祖王以下七十餘代聯系中三十餘代 諱字本無先世世譜牒中可據 又無國史可證可稽之說而載錄譜系中其不可者一也
불초 본인은 형용할 수 없이 개연하여 족보를 닦을 뜻을 가지고 남몰래 깊게 빠져들기를 반복한지가 대개 또한 몇 해가 지나서 마침 각파족보의 게통을 살펴보니 진실을 가리고 거짓되게 속임이 마치 곡식의 싹에 잡풀처럼 더럽히는 무리들이 번성하고 있으니 그 대략을 말하자면 시조대왕으로부터 70여대를 연이어온 가운데 삼십여대의 휘 자는 본래 선대의 보첩 가운데에서는 근거가 없으며 또 국사에서는 증명하고 상고할 수도 없는 것을 말하여서 족보의 세계 가운데에 실었으니 첫 번째로 잘못된 일이다.
文正公尤庵宋先生與判書公李敦宇氏親製 吾金譜序廢闕私刊而輪布以若他姓大家見之 則必取師門亂類甚可懼者二也
문정공 우암 송선생과 판서공 이돈우씨가 친히 쓰신 우리 김씨의 족보서문에 사사로이 족보를 간행하여 돌려 배포하는 것은 페하여 버려라 하였으니 타성인 대가의 견해와도 같은 것이다. 이는 반드시 사문을 어지럽히는 부류와 같이 취급해야 할 것이니 두 번째로 매우 두려운 일이다.
各派世系每방入此出彼添祖換父莫此爲甚實可愕者三也
각파 족보중 세계의 매방(每방=족보의 세계를 쓰는 칸)에 들이고 여기에서 빼고 거기에 조상을 더하는 것은 이는 아비를 없애거나 바꾸는 것으로서 세 번째로 실로 매우 경악스러운 일이다.
我朝開國功臣益和君 諱仁贊與 中廟振武功臣鶴城君諱任 宣廟壬辰功臣花川君諱禮禎 貫在鷄林昭在國史而冒錄吾金譜系此亦不可使聞於他人系之不明若是其謬尤可痛者四也
우리 조선조 개국공신 익화군 휘인찬과 중종조 진무공신 계성군 휘임, 선조조 임진공신화천군 휘예정은 본관이 계림이라고 국사에서 밝혀져 있으며 우리 김씨 족보 세계에도 기록이 가리어졌으니 이는 역시 타인이라고 듣게 되어 세계가 불명하니 이 같이 그릇됨은 네 번째로 더욱 통탄할 일이다.
乙酉之大邱譜與壬辰之大邱譜實無派稽而錯亂統緖誠可惜哉五也 自數三年來合譜之意設于京城而八道涯角難以合席亦可恨者六也
을유(乙酉.고종22.서기1885)년의 대구보와 더불어 임진(壬辰.고종29.서기1892)년의 대구보는 실로 파를 헤아릴 수 없도록 뒤섞여 어지러워졌으니 계통을 합하려는 성의가 다섯 번째로 애석한 일이고 수삼년 전 시작부터 합보의 뜻으로 경성에 자리를 마련코자하나 팔도의 먼 시골에 흩어져 있으니 합석하기가 역시 어려운 것이 여섯 번째의 한이다.
際此修譜合氏族明昭穆之志倦방亶在於胸中而洋방流溢於言表者也
이 즈음 씨족을 합쳐서 족보를 닦아서 소목을 밝게 할 뜻을 실증이 나도록 흉중에 지녔으나 다만 흐름이 넘쳐서 바다처럼 넓고 아득하니 말로만 들어낼 뿐이다.
若不先正其本 則稱祖之狄拜墓之郭不知其幾天百仁 而容喙籍口世代謬錯倫序紊乖正 此朱夫子云 正其本者雖若迂緩實易爲力구其末者 雖若切至而實難爲功必深明夫本宗之所枉 而先正其本則末之不治非所憂矣
만약 선조의 그 근본이 바르지 않으면 조상이라 말하면서 남의 묘의 언저리를 참배하는 사람이 기천 백 명인지 알 수 없을 것이며 세대를 핑계삼아 참견해서 어긋나게 했다면 인륜의 바른 질서는 무너지고 문란해질 것이다. 이에 주 부자가 말하기를 그 근본이 바르다면 비록 느슨하게 굽었더라도 실로 힘써 그 가지는 바로잡아 구하기가 쉽지만 오직 끊어짐에 이르렀을 것 같으면 반드시 힘써 공들여 깊이 밝히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져 그 본종이 굽었다면 먼저 그 근본을 바르게 하면 그 가지는 다스리지 않아도 근심할 바가 아니라 하였다.
此吾譜之所以修而與嶠南各派諸宗克合詢謨以正世系糾夫乘史無據廢闕間詐之傳習革其入此出謬載譜牒之流弊然後如水之一源而千條萬派皆此源之流 如木之一根千枝萬葉 皆此根之發
이에 우리는 족보를 닦고자 영남각파의 여러 종문과 상의하고 합의해서 세계를 바로 잡았으니 대체로 사기에 근거가 없는 것은 없애고 그간에 거짓되게 전하여진 것은 고치고 보첩에 들어있는 잘못되게 기재된 흐름의 폐단은 여기에서 빼내고 그런 연후에 물의 근원은 한곳인 것과 같이 천 갈래, 만 갈래의 흐름은 모두 여기에서 근원하여 흐르게 하였으니 마치 나무가 한 뿌리에서 천가지 만 갈래로 갈라진 것처럼 모두가 이뿌리에서 발생한 것이다.
其敢曰 克卒前人圖事庶乎合族明序之義有補於萬一云爾
그래서 감히 일을 마치고 말하건대 앞서신 분들의 도모하신 모든 일들은 씨족이 합치는데 명분과 의의를 가지고서 하였으므로 만의 하나라도 여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할 따름이다.
後孫 金元培 謹序
후손 김원배 삼가 서문을 지었다.
凡例 범례 譯者 金希元 2004. 6. .
一 惟我金肇自駕洛國흘今數千而世代久遠譜牒無傳各世系병皆中絶莫知其知係何葉 故謹取東史所載 始祖以下十餘代諱自特爲載錄於譜牒之首以存愼重之義而各派中祖則昭穆難序故分門各編自此始計代數
우리 김씨는 처음 가락국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수 천년에 이르렀으며 세대가 오래되고 멀어서 보첩은 없어지고 세계의 기록은 중간에 끊어져서 그 갈래가 어느 갈래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런고로 삼가 동사에 실린 바를 살펴서 시조이하 십 여대의 휘와 함자를 보책의 제일 첫 장에 실은 것은 신중하게 모신다는 뜻이다.
생각하건대 우리 김씨의 시초는 가락국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천년에 이르렀으며 세대 또한 멀고 오래 되어 보첩의 전함이 없으니 각파의 세계가 아울러 모두 중간에 끊어져 어느 갈래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삼가 동사(우리나라 역사)에 기록된바 시조로부터 이하 십여 애의 휘 자를 취하여 특별히 보첩의 첫머리에 실은 것은 신중하게 모신다는 뜻이며 각파 중조의 소목의 차례를 알기 어려움으로 나뉘어진 문중에서는 각기 중조(中祖)부터 시작하여 대수를 계산한다.
一 世代寢遠務在徵信故輿地勝覽所載本貫沿革及先祖以下諸位墓道文字 文獻之可考者一一收錄 而至於駕洛國記似涉荒誕旣是傳世遠之文字則後孫不可不知是以弁焉
세대가 점점 멀어져 힘써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살피고자 한 고로 여지승람에 기록된 바의 본관과 연혁 및 선조 이하 제위의 묘도 비의 문자와 여러 문헌을 하나하나 고찰하여 수록하였으며 가락국기에 이르러서는 황탄함도 이미 오랜 세대에 전하여진 문자라서 자손으로 알지 않으면 아니 되기에 이를 흉내내어 서둘러 실었다.
一 譜牒舊無刊行者而我先祖少전公始乃修輯著成一秩未及침재寧不慨然厥後年代滋久子姓蕃昌舊譜中未及載錄者須可收錄 故今玆一依舊本推演成秩隨其未單一방載錄비無子孫遺漏之患焉
예전에 간행된 보첩은 없고 나의 선조 소전공(德承)께서 처음으로 자료를 모아서 한 질의 책을 편집하였으나 인쇄 간행함에 미치지 않았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후에 연대가 오래되어 자손이 번창해져서 구보 중에는 수록되지 않은 자가 많으므로 반드시 수록하도록 하였다. 그런고로 지금 여기 구본에 의하여 추연해서 단자가 오는 대로 하나같이 칸을 만들어 수록하여 한 질의 족보를 이루었으니 자손들로 하여금 빠짐이 없도록 근심하였다.
一 譜冊書爲六層每場面以千字隨次塡書以表其張次 而各派紙窮更起他卷 或他及內外孫重見於他派皆書見某字使之開卷易考
보책에는 여섯 층으로 칸을 그었고 매장마다 천자의 차례에 따라 글을 매겨서 차례를 표하였다. 각파의 지면이 다하면 다른 책에 다시 일으켰으며 혹 다른 장에서 내 외손이 거듭 나타나거나 타파의 것이라도 모두 글의 어디를 보라 하여 책을 찾아 펴보기 쉽게 하였다.
一 本宗則始面金海金氏族譜一書以下子孫更不姓字者所以示其同宗之義也 外孫則必書姓者所以別其異姓也
본종은 처음 표지 면에 김해김씨족보라 한번 쓰고 이하 자손에는 다시 성자를 쓰지 않는 것은 동종의 뜻을 나타내는 바이다. 외손은 반드시 성자를 써서 성이 다름을 구별함이다.
一 本宗則勿限代數遠近載錄 而必書字號及改名者恐或名者之誤傳也 書某年號某年生者標行序也 書某年月某日卒者以識其忌也 享壽及年登科文武官爵資級贈爵竝書之而生存有官爵則加今字於某官上以標生存焉
동종은 곧 대수와 멀고 가까움의 한계 없이 수록하였으며 반드시 자와 호와 초명과 개명한 것을 쓴 것은 혹시라도 이름자가 잘못전할까 두려워서이다. 어느 해에 호를 정하고 어느 해에 났다는 것은 항렬의 차례를 알게 함이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졸하였다고 쓴 것은 그 기일을 알게 함이다. 향수와 등과한 해와 문무관의 작위를 받거나 자급되거나 증직됨도 아울러 썼으며 관작 위에 금 자를 더한 것은 생존함을 표한 것이다.
一 本宗人出繼於他派則於本生名下只書出繼某之後又於所後處書字號以便添考其旁註及子孫亦書於所後之下以重繼體之義焉
본종 사람이 타파에 출계하였을 시에는 본 생가 이름 아래 다만 누구의 뒤로 출계하였다고 썼으며 또 뒤로 간 곳에도 자와 호를 그 옆에 상곡 하도록 간편하게 썼으며 그 자손도 역시 아래에 후손 된 바를 쓴 것은 뒤를 이은 것을 중히 여기는 뜻이다.
一 配位封爵姓貫及四祖亦皆皆祥錄 而四祖以上上如有達官聞人則必書某之後비如其某閥 且後配則各書生其子女與無后以明其所出焉
배위의 봉작 성과 본관 및 사조 역시 모두 상세히 기록하고 사조 이상에도 달인 현관이 있다고 들으면 반드시 누구의 후손이라 하여 그 지체를 알도록 기록하였다. 또 전, 후실은 각기 낳은 자녀와 더불어 그 뒤가 없거나 출산한 바도 분명히 하였다.
一 墓山則書某邑面某里山麓某向某原 配位之合墳異용皆爲備錄 而有碑銘墓誌則書某之撰書者慮其 後世代遠或有難尋之廢矣
묘지는 어느 읍, 어느 면, 어느 리, 어느 산, 어느 기슭, 어느 좌향의 언덕에 배위와 합장 또는 달리한 것을 번잡하더라도 모두 수록하였다. 비가 있으면 묘지를 누가 지었다고 짓고 기록한 것은 혹시라도 먼 후대에 찾기가 어려움의 폐단이 있을까해서이다.
一 男女以長幼次第書之則雖云倫序之明白 本爲先男後女者所以重其宗也 至於外孫不必用此規焉
남녀로서 장유의 차례로 기록함이 비록 인륜의 명백한 차례의 근본이나 지금 남자를 앞세우고 여자를 뒤로한 것은 그 종을 중히 여기는 바이다. 외손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이규정을 지켜 쓸 필요가 없다.
一 女서名下書科官姓貫父名者恐或名字之混錯於別仁也 且書前後室及有后與無后者 盖爲明其所出 而慮其互相混同也
사위의 이름 아래는 과거와 관등 성과 본관 및 부 명을 쓰는 것은 혹시라도 이름자가 다른 사람과 어긋나 혼동될까 두려워서이다. 또 전 후실인지 후손이 있는지 없는지 대게 그 출산한 바를 명백히 한 것은 서로 혼동될까 염려함에 서이다.
一 內外孫中如有王妃則勿論代數之遠近必爲載錄 而只作四圈于 本位特書某諡王后四字於拯行以致尊敬之義焉
내 외손 중에 왕비 같은 분이 있다면 대수에 멀고 가까움을 논하지 말고 반드시 기록하여 실었으며 단지 넷 우리만 짓고 본위인 왕후의 시호 네 글자를 특별히 증행(拯行=줄을 거슬려 올려서 씀)한 것은 지극히 존경하는 뜻이다.
一.甲戌年間井邑金德埰家有一譜 自諱巖以下三十餘代連系 而稱云井邑金姓老僧所傳然此非印本公籍又多可疑無稽之言不足準言 而年代久遠或恐有眩眞之弊 故特書于此以懲後考愼勿載錄焉
갑술(1754)년간에 정읍에 사는 김덕채가에 족보 한 권이 있었는데 휘암자로부터 이하로 30여대의 세계가 연이었으며 일러 말하기를 정읍의 김씨 성을 가진 노승이 전하는 바라 하였다. 그러나 공적본으로서는 간행되지는 않았으며 또한 의심됨이 많고 상고할 것이 없으며 믿을 수 있는 말들이 부족하니 연대가 멀고 오래된 후에 혹시라도 이로 인하여 진실됨이 현혹되는 폐단이 있을까 두려워서 특별히 여기는 기록하여 뒷날을 징계토록 하는 것이니 신중히 살펴서 족보에 기록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一 金海之金 又有金時興之派 此則出於新羅敬順王后而賜貫於金海者 非我駕洛之后也 勿同譜以別他姓焉
김해 김씨에는 또 김시흥파 가있으니 이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관향을 김해로 사성 받은 것으로 우리 가락후손이 아니므로 동보하지 말고 타성으로 구별하라.
我朝開國功臣益和君 諱仁贊與 中廟朝靖國功臣鶴城君諱任與 宣廟朝扈聖公臣花川君諱禮禎貫在鷄林昭枉國史而冒錄吾金譜系此必是世系之不明故也 特書于此以懲後考愼同譜焉
조선조 개국공신 익화군 휘 인찬과 중묘조 정국공신 학성군 휘 임과 선묘조 호성공신 휘 례정의 본관이 계림으로 국사에서 잘못 밝혔는지 우리 김씨 족보에 잘못 기록하였는지 이는 필시 세계가 불명한 고로 특별히 여기에 기록하는 것이니 뒷날에 이를 삼가 신중히 살펴서 동보토록 하라.
一 凡我同姓雖云蕃衍彼此派源旣未相繼則不能隨行輪各者固矣 至於我先祖吏曹參判安敬公昆季子孫宜昭穆輪行定名字而散在京鄕不能花樹一會致有各立名字有著疎적者然是豈同源敦睦之義哉 凡命名從五行者取其相生之義也 玆遵先旨今以五行排行定字至于十世書之卷首自今以後同宗子孫咸體好意未以爲遵命名必須同用輪行之字而他派亦宜各定輪行之字世世勿替以保我修族之義而吾京派子孫自植字以下十世輪行名字定規焉
무릇 우리 같은 성 바지는 비록 넘치도록 번창하였다 하나 각파에서는 피차가 근원부터 세계를 서로 잊지 않았으므로 진실로 항렬의 돌림자를 따를 수가 없었다. 나의 선조 이조참판 안경공에 이르러서 자손들은 형제의 소목의 차례에 따라 마땅히 이름은 항렬의 돌림자를 정해야 할 것이나 경향각지에 산재함으로 한자리에서 화수회를 모을 수가 없으므로 각기 이름자를 세워 가지는 것은 소원함이 있으나 그러나 이는 어찌 한 뿌리로서 돈독하고 화목한 뜻이 아니겠는가. 무릇 오행에 따라 이름을 짓도록 명한 것은 그 상생의 뜻을 가지는 것이다. 이에 선대의 뜻을 받들어 지금 오행으로서 십 세에 이르는 항렬자를 정하여 배열하여 책머리에 기록하였으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한 종문의 자손은 모두 좋은 뜻을 본받아서 모름지기 반드시 같은 돌림 항렬자를 써서 명을 따르도록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타파에서도 역시 마땅히 각각 돌림 항렬자를 정하여 대대로 바꾸지 말고 보전하여 우리는 한 혈족임의 의를 닦도록 하라. 우리 경파 자손은 식자로부터 이하 십 세의 돌림 항렬자를 규정하였다.
○植 顯○ ○培 鍾○ ○泰 榮○ ○謙 載○ ○鎭 浩○
숭정4을축보(崇禎四乙丑譜;1865)의 정덕보 관련 범례(일부) 序文人 濟運
各派譜牒舊本俱未祥上系 去壬戌大譜時各立中祖九十八派矣 世或有湖南井邑金德采家稱有所一譜而諱巖以下下繼四十餘代 又古阜金永哲家稱有所正德譜以諱長淸以下繼三十餘代 此兩譜年代錯誤昭穆模糊事甚荒誕 湖南松廣乙丑譜錯認正德譜而繼三十餘代失傳尤甚誕荒恐有日後眩眞之弊 故詳錄于此以備參考焉 而今此兩派大同譜曰依壬戌大譜例各立九十八派中祖凡我宗族子孫一依體悉焉
각파의 보첩은 구본에는 모두 상계가 상세치 않았는데 지난 임술(1802)대보 때에 중조를 세운 각파는 98파이다. 혹 세간에서는 호남의 정읍 김덕채집에 족보 한 질이 있다고 말하는바 휘 암자로부터 40여대를 이었고 또 고부에 김영철집에는 정덕보가 있다하여 휘 장청 이하 30여대가 이어졌으니 이 두 족보는 연대가 어긋나 잘못 되었으며 소목의 차례가 모호한 일들이 매우 황탄(荒誕=荒唐=터무니없고 허황함)하며 호남의 송광 을축보도 정덕보의 실전된 30여대를 이었음이 착오로 인정되는 등 황탄스럽기가 더욱 심하여 일 후에 진실이 현혹될 폐단이 될까 두려워하노라. 그런고로 여기에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지금 여기에 양파 대동보에 가로되 임술대보에 의하여 98파의 각파에서는 중조(中祖)를 세웠으니 무릇 우리 종족자손들은 모든 것을 하나같이 이를 본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