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c7X1rZbtwI
* 찬송 336장
<베드로전서 5:8-9>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다소 공포스러운 표현을 베드로는 사용합니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일부 강력한 공산국가와 이슬람 과격파들이 정권을 장악한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기독교 신앙 때문에 삶이 파괴될 정도의 박해를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당시의 로마 권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만큼 폭력적이고 잔혹하고 무자비한 자들이었지요. 그들에게 당하는 박해는 정글에서 굶주린 사자들에게 먹혀버리는 약한 동물들처럼 삶 자체가 파괴되어버리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는 것은 전혀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베드로가 말하는 우는 사자에게 삼켜진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런 공포분위기 속에서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에게서 떠나버리는 겁니다. 우리 대적 마귀가 사람들에게 그런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을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위함이지요.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서 떠나 세상의 욕망과 가치관, 심지어 마귀가 가르치고 주입하는 사상을 따라 살아가게 하려는 겁니다.
오늘날과 같이 박해가 없는 상황에서는 마귀도 조용히 있을까요? 아닙니다. 박해의 상황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지요. 고린도후서 11:14절에서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박해가 없는 시대에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 나타난다는 거죠. 광명의 천사라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가장 고급져 보이고, 가장 세련되고, 수준 높아 보이고, 듣자마자 ‘이게 가장 정확한 해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가장 아름다워 보이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처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겁니다. 차라리 베드로시대처럼 폭력적이고 잔혹하면 누가 보더라도 심지어 예수 안믿는 사람들까지도 저것은 사탄의 짓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 눈에 매력적이고 좋아 보이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도 경계심을 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의 길을 떠나 불신의 길, 세상 욕망과 구원 없는 죽음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마는 거죠.
우리 나라 짧은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구한말 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에 기독교가 박해를 당할 시대에 기독교인 수는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숫자는 적었어도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든든하고 건강하고 담대한 믿음이었지요. 하지만 7,80년대 들어서서 기독교가 번성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성도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서서히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번영하고 성공하고 권력을 잡고 세상에서 왕노릇하는 세속적인 것에 믿음과 마음이 기울어졌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떠나버렸지요. 누가 예수 믿는다고 박해하고 욕하지 않았는데도 성도들 스스로가 믿음의 길을 떠난 겁니다. 경제가 성장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장했다고 믿었는데 이 시대는 저성장의 시대가 되니까 이제는 하나님도 경제적인 풍요를 주시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베드로 시대는 박해의 고통 때문에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찾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이 시대는 그 때보다 훨씬 교묘하고 표시 안나게 믿음의 사람들을 더 많이 잡아 먹어버리는 더 위험한 시대라는 것을 우리가 인식해야 합니다.
8절 첫 부분에 ‘근신하라. 깨어라.’ 강하게 권면하지요.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강한 어조로 하나님께서 강조하실 겁니다. 우리도 늘 근신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근신과 깨어있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신앙으로 굳건하게 서는 겁니다. 각자가 좀 더 경건훈련에 마음을 두면서 흔들림 없는 견고한 믿음이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하는 거죠. 반면에 정글에서도 약한 초식동물들은 상위포식자들이 함께 있는 정글의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사자들은 무리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녀석을 타겟으로 삼아 공략하지요. 무리 안에 있을 때에는 그 강한 사자도 쉽게 공략을 못하지만 무리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자는 쉽게 공략을 해 버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이유는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힘이 약하고, 내가 대적할 능력이 부족해도 교회공동체에 강하게 소속되어 있으면 아무리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탄이 다가와도 함께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믿음생활이 되려면 건강하고 좋은 교회에 뿌리를 든든히 내려야 하는 것이고, 또 개인적으로도 경건의 훈련, 신앙의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거죠. 이렇게 늘 새벽기도회에 함께 하는 것은 본문의 9절 말씀처럼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9절 후반부에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우리가 이렇게 함께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많은 숫자가 모이지 않았지만 여기에 나 홀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에 더 힘을 내 기도할 수 있는 거죠. 아마 이 시간 목사인 저와 성도 달랑 한 분만 있다면 저도 힘빠지고 그 성도 기도하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이든 교회는 항상 존재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위해 허락하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첫댓글 새벽기도회에 직접 참석은 못하지만 영상으로라도 매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일에만 예배 참석한다면 갈급함을 해결 할 수 없고 마귀를 대적할 수 없음을 느껴봅니다.
내가 힘이 약하고, 내가 대적할 능력이 부족해도 교회공동체에 강하게 소속되어 있고
개인적으로도 경건의 훈련, 신앙의 훈련을 받고 근신과 깨어있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신앙으로 굳건하게 서게 함을 믿습니다.
경건훈련에 마음을 두면서 흔들림 없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간구합니다.
8절 첫 부분에 ‘근신하라. 깨어라.’ 강하게 권면하지요.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강한 어조로 하나님께서 강조하실 겁니다. 우리도 늘 근신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근신과 깨어있는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신앙으로 굳건하게 서는 겁니다. 각자가 좀 더 경건훈련에 마음을 두면서 흔들림 없는 견고한 믿음이 사람이 되기를 힘써야 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이유는 바로 이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힘이 약하고, 내가 대적할 능력이 부족해도 교회공동체에 강하게 소속되어 있으면 아무리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탄이 다가와도 함께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믿음생활이 되려면 건강하고 좋은 교회에 뿌리를 든든히 내려야 하는 것이고, 또 개인적으로도 경건의 훈련, 신앙의 훈련을 받아야 하는 거죠. 이렇게 늘 새벽기도회에 함께 하는 것은 본문의 9절 말씀처럼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는’ 좋은 방법입니다.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위해 허락하신 축복의 통로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