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vFVPLhgkC0
* 찬송 291장
<베드로전서 5:10-11>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은혜의 하나님’ 베드로는 하나님을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에서부터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지요. 출애굽의 역사와 광야 40년의 역사를 보면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해방과 구원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출애굽에 이어지는 광야 40년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든 상황이 분명했지만 그 힘든 상황보다도 이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끌어가시는 은혜의 역사의 과정이었던 거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고 광야의 어려운 현실만 앞세우면서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던 겁니다.
베드로는 지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로마의 박해 상황에서 어려움 겪고 시련을 당하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 그것도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요. 박해의 상황이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출애굽 시대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한 역사인 것과 같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중이기 때문에 박해의 고통보다도 우리에게 참된 생명의 손길을 여전히 펼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깨닫게 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고 골치 아프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런데도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나의 현실이라는 이 좁은 틀에 갇히지 말고, 내 인생 전체를 통해서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깨닫게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은 은혜를 깨닫는 신앙인 거죠.
베드로는 하나님을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의 은혜 중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합니다. 먼저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불러주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시는 것도 큰 은혜이고, 행복하고 좋은 조건 속에 살게 하시는 것도 큰 은혜이지만 그 어떤 은혜도 나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불러주셔서,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신 은혜만큼 크지 않습니다. 풍요도 행복의 조건도 때가 되면 사라져 버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믿음이 더해가면서 그 어떤 은혜보다도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불러주신 은혜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고, 그래서 더 진실하게 감사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의 은혜는 10절 중간 부분에서처럼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즉 하나님은 첫 번째 은혜처럼 우리를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주신 은혜와 더불어서 두 번째 은혜로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거죠. 영원이라는 말은 오직 하나님께만 가능한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고, 세상 그 어떤 보석도 재물도 지위도 지식도 권세도 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시지요.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 그 어느 것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은혜인 겁니다.
반면 10절 중반부에 보면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이 땅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과 아픔은 잠깐이라고 말하지요. 우리로서는 너무 오랜 시간 겪어오는 지긋지긋한 시련과 아픔 같은데도 베드로는 잠깐 고난을 당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영원함 앞에서는 내 평생이라는 8,90년의 시간은 사실은 잠깐인 셈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것에 더 마음을 두게 된다면 이 땅에서 겪는 어떤 시련과 고난이든지 잠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함을 인식하면서 이 세상의 시련과 고난이 잠깐이라고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 10절 후반부의 표현들처럼 온전하게 되고, 굳건하게 되고, 강하게 되고, 터가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온전하고 굳건하고 강하고 터가 견고한 것은 어떤 외형적인 상황과 배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영역이고 믿음의 영역인 것이지요.
이제 11절에서 베드로전서 전체의 결론을 맺습니다. ‘권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바로 찬양입니다. 비록 로마의 압제 속에서 박해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마지막 결론은 누가 뭐래도 찬양이지요. 찬양은 기쁘고 성공하고 번영하고 승리하는 좋은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강한 자에게 박해를 당하고, 힘겨운 현실 속에서 한숨과 원망이 나와야 할 상황에서도 찬양은 불려져야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죽은 사람으로 인해 슬퍼하고 애도하는 자리에서도 찬송을 부릅니다. 찬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굳건한 믿음의 의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도 우리의 현실적인 상황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변함없는 생명의 은총을 펼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예수 믿는 사람으로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잠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터를 견고하게 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며 감사로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내가 지금 이런저런 일들로 힘들고 골치 아프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이런데도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나의 현실이라는 이 좁은 틀에 갇히지 말고, 내 인생 전체를 통해서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깨닫게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기독교 신앙은 은혜를 깨닫는 신앙인 거죠.
즉 온전하고 굳건하고 강하고 터가 견고한 것은 어떤 외형적인 상황과 배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영역이고 믿음의 영역인 것이지요.
오늘도 우리의 현실적인 상황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변함없는 생명의 은총을 펼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