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ZIiKJJXPos
본문 마태복음13:44-46 제목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오늘도 우리가 함께 했던 주기도문 중에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 같은 말로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지요. 예수님은 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오게 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죽어서 가게 되는 천국의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같이 십자가에 달렸던 한 강도가 자신의 삶을 뉘우치며 회개했지요. 그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눅23:43)응답하셨는데 여기서 낙원은 우리가 죽어서 가게 될 천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요.
반면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부분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왕권 통치를 의미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예수님께서 49회 사용하셨고,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단어를 36회나 사용하셨지요. 이렇게 복음서를 통틀어서 하나님 나라, 천국이라는 단어를 85회나 사용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때의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은 하나님의 왕권적인 통치를 의미하신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모든 말씀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인 겁니다.
그런데 평민들도 그렇고, 정치 종교의 권력자들이나 당시 유대 지역을 지배하던 로마의 권력자들에게도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유대 평민들은 강력한 메시야가 오셔서 악하고 못된 높은 권력자들을 때려 부수고 자신들이 주권자가 되고 상류계층이 되게 해주기를 기대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과 사랑과 평화와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겁니다. 게다가 강력한 메시야가 아니라 무기력하게 유대 폭력배들에게 붙잡히고 로마 병정에게 넘겨지고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야상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면서 빌라도 법정에서는 오히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는 폭도들이 되어 버렸지요.
반면 정치 종교 권력자들과 로마의 권력자들에게도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불편하게 들렸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공평과 정직과 진실함과 섬김의 통치는 대부분 불의와 불공평과 거짓과 폭력과 억압으로 권력과 큰 재산을 가지게 된 그들에게는 당연히 불편하고 싫을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반역처럼 여겨졌던 겁니다. 예수께서 아무 죄도 없이 최악의 죄인에게 내리는 십자가 형을 받으신 이유는 권력과 재물의 힘이 지배하는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절대적 왕권 통치를 선포하신 것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즉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왕적 통치’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 성도님들도 사모하며 기다리고 계신가요? 우리의 신앙의 가장 궁극적인 이유가 주기도문에서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나에게 임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냥 세상에서 가난하지 않고 좀 풍요롭게,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규모의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별 슬픈 일이나 비극이 없이 순조롭고 무탈하게 한 평생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에 신앙의 목적이 머물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고대 라틴어에 3대 명언이 있다고 하지요. 첫째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둘째가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셋째가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는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이 3대 명언은 신앙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일반 철학이나 지혜의 관점에서 나온 겁니다. 이 중에 첫째인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인데, 이 세상 철학이나 지혜에서도 우리 인생의 끝인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고 바른 삶이라고 말하지요. 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 아닙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에서도 고백하는 것처럼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우리는 기다리지요. 그 날이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라는 말처럼 우리의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전적인 왕권 통치가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그 날을 항상 생각하고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으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인 거죠.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일곱 개의 비유가 담겨 있지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일곱 개 비유 중에서 다섯 번째 비유인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여섯 번째 비유인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이지요.
먼저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인 44절을 살펴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천국 즉 하나님의 통치는 감추어졌다는 겁니다. 감추어졌다는 것은 없다는 게 아니지요. 은폐 되어진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내 안에 생명이 있지요. 그런데 내 몸 어디에 있을까요? 뇌에 있을까요? 아니면 심장에 있을까요? 분명 생명은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직 현대 첨단과학도 풀지 못한 신비이지요. 생명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감추어져 있고 은폐되어 있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지요. 우리는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본문의 비유처럼 우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알게 되면서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알게 되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게 된 것은 마치 본문의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과 같은 거죠. 우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본체를 지니신 분이심을 알고 믿습니다. 요한복음 1:18절에 보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하실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가 발견하고 믿고 의지하게 된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과 같은 거죠. 이것은 우리의 실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이 보화가 자기의 것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요. 합법적으로 자신의 것이 되게 하려고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통째로 사버립니다. 자신의 소유를 다 판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거는 위험한 모험일 수 있지요. 그럼에도 그 보화의 소중함과 가치를 인식한다면 기꺼이 할 수 있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겼던 어느 여인처럼 말이지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가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값지고 소중한 보화임을 깨닫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다해서라도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려 한다는 겁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의지하며 따를 수 있을 만큼 참된 보화로 여겨지는가? 본문은 우리에게 묻고 있지요.
그 다음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인 45절과 46절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앞에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천국을 보화로 비유했는데 지금 이 비유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사람으로 비유합니다. 두 비유가 비슷하지만 하나는 천국을 보화로 비유했고 또 하나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사람으로 비유한 거죠. 그리고 공통적인 것은 보화를 소유하고 진주를 소유하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 모든 재물과 모든 귀한 것들을 뛰어넘는 가장 소중한 보화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는 값진 진주라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발견했을 때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에게 초점을 두고 있지요. 즉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혼자만으로도 완벽한 나라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보화로 인식할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통치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바로 그런 믿음의 사람과 함께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심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이렇게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통해 가르치신 거죠. 오늘의 비유의 말씀으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이 기도를 다시 풀어본다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 그 어떤 재물이나 권세나 내 욕망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최고의 보화임을 깨닫게 해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기 위해 내 모든 생명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고 주님과 동행하는 참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통치는 이 땅에 존재하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완전히 임하고 완성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옛날 로마의 지혜처럼,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반드시 임하고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늘 기억하며 사모하며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