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마을 이름은 기날 마을이다.
왜 마을 이름이 기날인지 얼마 전에야 알았다.
마을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나무와 덩굴이 꽉 우거져 사람들이 이곳을 기어들어오고 기어나갔다고 기날 마을이라고 불렀다한다.
우리가 기날 마을로 이사온 지도 2년이 넘었다.
기날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에는 직지문화모티길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기날 쉼터에서 출발하여 산을 넘어서 직지공영주차장까지 걷는 직지문화모티길과 사명대사길이 있다. 걷는 총 거리는 4.5km로, 안내판에는 1시간 50분이라고 되어있지만 천천히 걸어도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김천에는 산을 휘돌아 걷는 길로 수도리모티길, 직지문화모티길, 사명대사길이 있다.
‘모티’는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이며, ‘모티길’은 구불구불 도는 곳이 많은 길을 말한다.
이곳 어르신들은 ‘모티’를 다시 ‘모리이~’라고 길고 부드럽게 부른다.
직지문화모티길이란 이름은 이미 직지초등학교, 방하치, 돌모마을을 경유하는 10km의 산길이 있다.
그런데도 기날 마을에서 출발하는 산길을 같은 이름의 직지문화모티길을 사용하다니 행정하는 분의 무신경이 놀랍다.
안내판을 고쳐 기날 마을에서 직지공영주차장까지의 길은 모두 사명대사길이라고 고쳐야 한다.
이사온 첫 해 가을날, 사명대사길을 홀로 걷다가 도중하차한 적이 있다.
숲은 무성한데 사람의 흔적이 없어서 와락 무서움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길은 더 이상 나무나 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올이 굵은 가마니 같은 천으로 덮어서 더욱 생경했다. 기날마을 주민은 주로 노년층이고 직업은 농사이다. 주민들이 운동을 한다고 해봐야 동네 입구까지 천천히 걷거나 정자나무, 마을회관을 오가는 정도이다. 산길을 운동하러 걷는 주민을 본 적이 없다.
처음의 강렬한 기억 이후로는 사명대사길은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우리 가족은 운동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타고 예전에 살았던 시내 고성산이나 강변공원길, 시민대운동장으로 간다.
오늘은 든든한 동반자인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사명대사길을 걸었다.
무성한 잎들을 떨군 나목들이 도열한 산길은 예전 기억과는 달리 넓고 완만하고 포근했다.
이렇게 좋은 산길을 두고 시내까지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어리석음이라니.
기날쉼터에서 1.4km 산길을 걸으면 이정표와 쉼터가 나온다. 여기까지가 안내판에 적힌 직지문화모티길이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하나는 등산로이고 또 하나는 사명대사길이다.
산길 좌우에는 부러진 잔 나뭇가지들이 무척 많았다. 구들방 땔감으로 제격이다.
남편은 나중에 지게를 가져와서 나뭇짐을 지고가야겠다고 벼른다.
사명대사길에 접어드니 세 군데 사명대사에 대한 안내판이 나오고, 인근 직지사에서 염불소리도 그윽하게 들린다. 사명대사는 밀양이 고향이지만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6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직지사로 출가한다. 승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봉은사에 머물다가 30세에 직지사 주지를 맡는다. 직지사에는 사명대사를 기리기위한 사명각이 있다. 사명대사는 김천과의 인연이 각별하나 시에서 사명대사를 널리 알리지 않아서 안타깝다.
사명대사길은 직지노인요양원, 북암민속촌, 하야로비공원 조성부지, 직지사, 백수문학관, 직지문화공원, 직지공영주차장으로 이어져있다. 하야로비공원 부지에는 포클레인이 보이고 인부들이 잔돌을 쌓는 일을 하고 있다. 기존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새로 아름드리 적송과 나무들을 많이 심었다. 직지문화공원에 이어 그 옆에 외관이 화려한 매머드급 하야로비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현란한 과시 문화에 동승한 것이다. 천문학적인 공원조성비용은 모두 국민들의 세금에서 끌어 쓰는 것일 텐데, 어떠한 연유로 공원 허가를 받아서 엄청난 비용을 따올 수 있었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