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없이 꽃들이 피고 지듯이,
어버이날, 스승의 날, 초파일 행사가 숨가쁘게 지나갔다.
다행히 초파일을 전후해서 일주일간이 초파일 방학이다. 방학 마침표를 예쁘게 찍으려 문경으로 갔다.
백척간두에 오똑 선 듯한 금선대에 올라서 호호탕탕, 상서로운 기운을 듬뿍 받으러.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듯 한 쾌청한 봄날,
서정주의 <신록>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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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오전 11시경, 문경 김룡사 대성암에 도착했다. 4년 만이다.
현 직지사 주지 스님이 김룡사 주지로 계실 때는 초봄에 종종 갔었다.
올해 김룡사는 가장 늦봄에 온 것이다.
절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운달산 품으로 뛰어들었다.
4년 전에 운달산을 오를 때는, 콘크리트 전봇대에 금선대와 화장암 표시를 했었다.
예전의 전봇대는 보이지 않고 대신 깔끔한 나무 이정표가 보인다.
금선대는 아예 표시도 하지 않았다.
숨어사는 고독한 은자의 도량, 그 성역에 살곰살곰 소리를 죽이며 올라갔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들리고 운달산 산길 초입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일찍 찾아온 봄소식에 나무며 풀들이 무성하게 산길을 덮었다.
이번에도 화장암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닫힌 대문 사이로 안을 기웃하니 인기척이 없다.
마당은 잡풀이 무성하다. 온갖 꽃으로 장엄된 화장암이라는 이름과 어울리 않게 쓸쓸하다.
화장암 근처에 고추나무가 흰 꽃을 피웠었는데 오늘은 이미 꽃이 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무진장의 초록, 초록, 초록의 세계이다.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 남짓 짐승처럼 헐떡이며 올라갔다.
목적지 부근에 이르면 오솔길이 끊어지고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진 너덜겅이 나온다.
너덜겅을 밟고 한 모리를 돌면 시야가 트이면서 절해 고도같은 작은 누옥이 보인다.
아, 꿈결같은 같은 금선대!
하늘이 감춘 땅!
성철, 서암, 서옹, 법전 네 분의 종정과 고승들이 용맹정진한 곳이다.
오늘은 어떤 스님이 용맹정진의 결의를 이어받아 자신과 진검승부를 겨루고 있을까?
수행에 방해될까봐 쉼호홉을 하며 멀찍이서 바라보다가 다시 하산했다.
대성암으로 곧장 향했다. 함박꽃나무 소식이 궁금했다.
활짝 열린 <대성암 조계문>을 들어서니 절의 대들보가 무너진 듯 삭막하다.
감로수가 솟는 돌확 근처에 두레박을 타고 천녀가 내려온 듯 예쁜 함박꽃나무가 없다.
눈을 씻고 다시 보니 예전의 함박꽃나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 작은 나무를 심었다.
이럴 수가? 왜?
돌확의 매달린 돌단풍도, 단청을 하지 않은 고풍스러운 건물도 예전 그대로인데…….
*** 4년 전의 대성암 함박꽃나무 모습!
허허로운 마음으로 김룡사에 들어갔다.
천왕문 보수가 모두 끝나고 목욕재계한 듯 천년 고찰이 정갈하다.
예쁘게 놓인 노주석이 대웅전 적요한 마당에 액센트를 준다.
천년의 더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절안을 화사하게 수놓았던 겹벚꽃도 낙화하고 짙은 녹음만이 고요하고 청청하다.
작약과 백당나무가 여기저기에 보인다. 절에 불두화는 많아도 백당나무는 보기 힘든 나무이다.
백당나무와 소나무에 달린 한두 개의 연등이 깨끗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백당나무는 흰빛의 산수국과 비슷하다.
산수국은 관목으로 물가에 살지만 백당나무는 교목으로 양지바른 곳에서 크게 자란다.
함박꽃나무 대신에 백당나무를 몇 번이나 눈으로 어루만지며 귀가했다.
*** 아, 옛날이여! 4년 전, 겹벚꽃피던 봄날의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