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나자와 가는 길
2018년 1월 13일(토) 캡슐 호텔 The Millennials에서 이번 여행 첫날밤을 보냈다. 새벽에 한기가 들어서 잠을 깼다. 우리나라처럼 온돌이 아닌 숙소에서는 자기 전에 뜨겁게 몸을 데운 다음 바로 자야 하는데, 씻고 나서 시간이 지나 몸이 식은 다음에 침상에 들어갔기에 체온이 내려간 것이다.
교토에서 가나자와(金澤)까진 선더버드(Thunderbird)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원래 계획은 당일로 가나자와에 갔다가 윤봉길 의사 순국기념비를 찾거나 가나자와 성 또는 미술관을 구경하고 오는 것이었다.
교토 역으로 가는 5번 버스 안에서 1일 패스(Kyoto City Bus & Kyoto Bus One-day Pass)를 500 엔에 끊었다. 편도 230 엔이라 하루 중 3번만 타면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도(京都) 1일 패스는 선택하지 않았어야 했다.
09:09 교토를 출발하는 ‘천둥새(雷神鳥, Thunderbird)’는 출발부터 10분 정도 지연된다. 일본에서는 열차가 늦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하지만 가볍게 생각한 게 하루 일정이 틀어질 정도일 줄은 당시는 몰랐다. 기차는 조금 가다가 멈추어 선다. 다른 차들을 몇 대나 보낸다. 오쓰(大津) 역에선 무작정 대기하고 있다.
10:48 이제야 기차가 출발한다. 가나자와 가는 방향에 큰눈으로 열차 운행이 계속 늦어진다고 한다. 어제 묵었던 숙소엔 텔레비전이 없어서 뉴스를 보지 못했고, 오늘 호쿠리쿠 지방(北陸地方) 일기예보를 살피지 못한 실수였다. 비와호(琵琶湖) 건너 산엔 하얗게 눈이 쌓였다.
우리 기차는 비와호 서쪽을 따라 달리는 고세이선(湖西線)을 달린다. 비와호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호쿠리쿠 본선(北陸本線)과 연결된다. 천지사방이 눈세계가 펼쳐지고 천둥새는 느릿느릿 움직인다. 원없이 눈구경하게 생겼다. 여행길에선 그것도 나쁘지 않다.
12:23 후쿠이(福井)에 도착했다. 교토를 떠난 뒤 두 시간이 넘었다. 그나마 교토 역에서 사온 도시락(에키벤)으로 요기는 걱정 없었고, 기대하지 않던 설국(雪國) 구경으로 여유를 가진다. 여행자인 우리는 그렇다고 하지만, 일상 생활인 일본 사람들은 전혀 동요 없이 조용히 객실 안에서 머문다. 세오녀는 달리는 기차에서 멋진 설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언제부턴가 객차 안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방송실 마이크를 끄지 않아서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계속 난다. 아무도 불편을 드러내지 않아 우리만 속으로 불편함을 감수한다.
13:51 드디어 눈 내리는 가나자와에 도착했다. 11:14 도착 예정이었는데 두 시간 37분 늦었다. 개찰구에선 일본 사람들은 뭔가 도장을 받는다. 열차 지연으로 인한 보상을 받는가 보다. 우리도 역무원에게 보여주었더니 JR패스이기에 이런 경우에 보상을 받지 못한다. 방송국 카메라가 기차에서 나오는 군중을 찍고 인터뷰도 한다. 폭설로 인한 대중교통 지연엔 일본도 어쩔 수 없나 보다.
멋진 가나자와 역에 내렸지만, 밖엔 눈이 엄청 쌓여 있고, 눈은 계속 내린다. 세오녀는 당장 교토로 다시 돌아가는 걸 우려한다. 많은 천둥새와 백로(시라사기, 白鷺) 호가 운행 중지되었다. 그래서 일단 교토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16:29 출발하여 18:53 도착 예정인 ‘천둥새’다. 빨리 돌아가서 차라리 교토 시내나 버스 투어를 할 셈이었다.
밖으로 나가기엔 너무 미끄럽고 위험하다. 늦은 점심을 역사 안 식당에서 해결했다. 그냥 돌아가기엔 너무도 아쉬웠다. 기차 시간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역사 주변 눈 오는 가나자와를 살폈다. 수십 센티는 쌓였는데 눈은 계속 내린다. 눈 속에서도 시내버스는 엉금엉금 다닌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플랫폼에 들어갔는데 기차는 오지 않는다. 과연 오늘 중으로 교토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점점 걱정된다. 짧은 겨울 낮이라 점점 어두워진다.
17:40 드디어 가나자와에서 기차가 출발했다. 밖은 어둑해서 멋진 설경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교토에는 20:45 도착했다. 역시 1시간 52분이나 늦었다.
왕복 4시간 정도 거리인데 눈 때문에 하루를 그냥 잡아먹었다. 겨울철 눈이 많이 오는 호쿠리쿠 지방(北陸地方)을 여행할 때는 이런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일이다. 교토에서 가나자와 당일치기는 무리였다.
교토 버스 1일 패스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냥 숙소로 돌아오는 걸로 만족한다. 다음날 아침 일기예보를 보니 1월 14일 06시까지 호쿠리쿠 지방에 최고로 많이 내린 곳은 155 센티미터였고, 대부분이 50센티미터를 넘겼다. 열차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고립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