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북한의 정식 국가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China의 국가명칭도 중국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말도 안되는 국가명칭이다. 그런데, 그 국가명칭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번 정부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되고 있다.
왜 똑같이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를 국가명에 표기하는데도 자유와 인민의 두 글자가 틀리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목숨걸고 저항하는 것일까?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마르크스 레닌주의 국가들의 역사가 매우 짧다는 점을 주목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처음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한 러시아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러시아 였다. 황제라는 1인이 엿장사 마음대로 통치하는 국가를 무너트리고 세워진 제도는 하층 국민들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두번째로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한 청나라 역시 황제제도로 국민들은 수천년간 폭정에 시달린 역사가 있다. 청나라 말기 쑨원(손문)선생에 의해 공화국이 선포됐지만 그 혼란기를 틈타 바로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팔로군이 훼방을 놓고 끝내는 공화국 정권을 몰아내고 공산당인민정부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홍콩이 1997년 영국으로 부터 중국으로 반환될 때 대략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캐나다나 호주등지로 떠나게 되고 부동산은 절반가로 폭락한 기록이 있다. 당시 홍콩에 거주하던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들 중에 헐값에 부동산을 사들여 거부가 된 사람들도 있다. 외국인이야 언제든 떠나면 되지만 홍콩이 모국인 한족들의 사정은 그렇지가 못하다. 홍콩의 일국양제 제도가 끝나갈 시점이 다가오면서 홍콩인들이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절박하다. 영국이 통치하는 100년의 기간동안 민주주의가 뭔지 몰랐던 중국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그리고 50년의 일국양제라는 실험기를 거쳐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공산정권에 통합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중국을 보니 도저히 그런 숨막히는 정치제도가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저항의 기회인 지금 그들은 목슴을 걸고 그야말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외치게 된다.
한국인들은 그동안 건국이후 70여년 다양한 형태의 발전적인 민주주의를 경험해 왔다. 하지만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지나칠 만큼 부족하다 보니 자유민주주의 보다 민족주의가 더 시급하다는 좌파 지식인들의 감언이설에 세뇌된 계층들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선배를 통해 동아리에 가입을 하게되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서적을 필두로 각종 이념서적들을 학습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치 남녀가 결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변화를 경험하듯 철저하리 만큼 반정부 성향을 품게 된다. 한국의 수많은 부모들은 자신이 겪은 고생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고, 또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대학생활이기에 간섭할 생각조차 못한 것이 결국 오늘의 사태를 만든 것이다.
비교적 인민민주주의가 잘돼 있다고 생각하는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를 맺은 덕분에 비교적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우호적인 나라에 속했었다. 적어도 사드사태 이전까지는 그런편이다. 중국은 2~3년전 까지만 해도 한국인에게 비자발급에 관해서는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까칠하다. 여행비자를 받을 경우도 단체가 아니면 미주알 고주알 전체 여행일정과 숙박할 호텔을 미리 제시해야 한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피죽도 제대로 못먹는 가난을 떨치기 위해 중국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덩샤오핑(등소평)에 의해 잠시 제도를 내려놓는 수정주의를 채택했다. 그 때 김일성은 "중국은 공산주의 배신자, 수정주의자"라는 표현으로 중국과 거리를 두게 된다. 중국은 정권을 이양하지만 김일성은 절대로 정권을 이양할 마음이 없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중국이 수정주의를 채택하고 개혁개방을 선택한 1972년 이후 중국은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남부럽지 않을만큼 기본토대를 구축했다.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가 바로 제조업인데, 과거 일본이나 한국이 차지하던 세계1위 생산품에서 세계최고의 가장많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중국의 수정된 인민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최고의 정치제도"라고 할만하다. 우선 중국은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한국처럼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즉각 실행을 한다. 그러니 정책결정이 대단히 신속하다. 송영길씨가 인천시장에서 낙선 후 2년간 베이징에서 연수를 하면서 대단한 중국사랑에 빠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는 아마도 한국이 21세기를 살려면 반드시 중국의 정치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똑같은 한국인이라도 중국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살았느냐에 따라 중국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 왜 홍콩인들은 지금까지 조용하다가 갑자기 지난해 여름부터 그렇게 극렬한 저항을 시작했을까? 물론 범죄자처리법이라는 도화선이 지난해 여름 발생한 것이 표면적 이유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홍콩인들로 하여금 항거에 나서도록 이끌어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만큼 중국에 대한 불안이 쌓여있었을 뿐이다.
중국이 달라진 것-다시 공포의 국가로 변한 것은 시진핑정부 들어서이다. 시진핑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다. 그의 부친 시중쉰은 시안의 막강한 군벌이었다. 그는 장제스의 정부군에 쫒겨다니는 마로쩌둥의 팔로군을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군대를 이무 조건없이 넘겨준 사람이다. 마오쩌둥은 그후 고난의 대장정을 거쳐 1949년 공산당정부를 수립했지만 자신에게 군대를 넘겨준 시진핑 집안을 잊고 지낸다. 시진핑이 정권의 눈에 들게된 것은 시진핑이 공무원 생활을 하며 지방정부의 요직에 있을 때 그 지역을 방문한 장쩌민(택민)의 눈에 띄면서 부터이다. 장쩌민은 자신의 인상에 남은 시진핑에 대한 조사를 명하게 되고 그가 바로 시중쉰의 아들임을 알게돼 그 뒤로부터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된다.
시진핑은 본래 중국공산당의 적자가 아니다. 가장 막강한 상하이방도, 공산당 간부 자녀들 집단인 태자당도 아니다. 그냥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일 뿐이다. 바로 이러한 흙수저처럼 보여지는 그의 배경이 그를 공산당서기 후보에 오르게 했고, 전임자인 후진타오를 이어 당서기에 오르는 행운을 안겨 주었다. 공산당의 관례는 명목상 독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낙점한 후보와 더불어 들러리 후보를 세우는데, 본래는 상하이방이 원하는 후보는 지금의 총리인 리커창이었다. 절차상 전국인민대회(국회)에서 대의원들에 의해 선출이 되는데, 기존의 정치라인인 후진타오 계열의 부정부패에 신물을 느낀 전인대 대표들이 배경이 없는 시진핑을 선택하는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알고보면 금수저이지만 표면상 흙수저인 시진핑은 처음 5년의 기간동안 중국몽이라는 자신만의 청사진으로 중국인들의 눈을 세계화로 돌리면서 처절할 만큼의 내부 숙청을 단행한다. 그는 중국몽을 구실로 "부정부패는 인민의 적"으로 규정해 반대파의 저항을 일거에 제압해 버렸다. 당연히 중국의 관료집단은 얼어붙게 되고 자유분방하던 중국의 공기는 홍콩인들까지 느껴질 만큼 공산당의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시진핑 초기까지 중국에 거주했던 외국인들의 기억에는 중국이 그리운 나라일 것이다.
시진핑 집권1기 5년간은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었다면 그의 집권2기는 말 그대로 철권통치의 출발점이 된다. 물론 명분은 충분하다. 이후락씨가 주장하는 콩고물이론이 중국사회에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주창하는 공산주의 국가에 말로 다못할 만큼의 빈부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못가진자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로다 못할 지경이다. 그러니 시진핑으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현실이다. 그가 제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배고픈 인민들은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런데, 투사의 기질은 링 위서만 발휘되지는 않는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은 기질은 쉽게 조절이 안된다는 의미가 된다. 지금 중국은 숨막히는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일단 공항에 입국하면 열손가락과 얼굴3면을 등록해야 한다. 시내버스와 택시를 제외한 모든 대중 교통망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신분증을 등록해야 한다. 평균 30~50미터당 한대꼴의 cctv는 특정인의 동선을 모두 추적이 가능하다.
민주주의라고 똑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중국은 속전속결이다. 그래서 검사가 필요없다. 그냥 명목상 구색을 갖추기 위한 직책일 뿐이다. 당연히 숫자가 적다. 경찰과 검찰을 모두 합한 공안국이 존재한다. 드디어 한국의 좌파정부는 그들이 부러워하는 중국의 속전속결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다. 통과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중에 그런 내막을 아는 의원은 몇이나 될련지!
정말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중국은 피죽도 못먹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것이 수정주의였다. 즉 자신들이 신봉하는 인민민주주의를 49년부터 72년까지 실시해본 결과는 배고픔이었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우리가 배고프자고 공산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했다. 고양이의 사명은 쥐를 잡는 것인데, 검은 쥐면 어떻고 힌쥐면 어떠냐해서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이 나온 것이다. 다만 너무 잘나가다 보니 부정부패라는 부작용이 발생해 다시 옥좨는 것일 뿐이다.
한국은 중국과 바탕이 다른 사회구조이다. 한국은 철저히 근면성실만이 살 길이라는 스스로의 자각으로 오늘을 이룬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모범국가이다. 한 때는 재벌이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중국도 부러워하는 경제집단의 성공사례에 속한다. 어떻든 재벌이라는 대규모 집단이 수출의 선봉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설사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한다해도 재벌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 이미 글로벌화 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처럼 중소기업위주라면 국가변란 발생시 보전이 어렵다. 현재 한국의 취약계층들이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는 것은 재벌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세금의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 좌파정부는 거꾸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문재인은 4년전 박근혜대통령을 향해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을 조사하려는 검찰을 무참할 정도로 짓뭉개고 있다. 즉, 인민민주의란 "집권자의 입맛에 맞는 정치제도"일 뿐이다.
지금의 여당이 야당일 때 그들은 현재의 야당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어거지를 일삼았다. 인민민주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용납한다"는 논리를 바탕에 두고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는 서로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길을 선택한다.
인민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싸우면 자유민주주의는 백전백패한다. 어떻게 논리가 억지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인민민주의(공산주의)는 선의로 시작해 악의로 변질한다. 러시아의 푸틴은 법을 악용해 평생집권을 하고 있다. 시진핑은 부정부패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강화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로 발전해 버렸다. 10년의 임기를 폐지해 영구집권을 채택했다. 지금 문재인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부분일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