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글이 있어 이곳에 남깁니다.
개인적으로는 올댓분들도 비슷한 느낌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글을 보며 또 다시 느끼게 됩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 내곁을 떠나갔구나...
정말 많이 보고싶고 그립습니다.
조성규감독님께 양해를 구하고 올리는 글입니다.
원본글 : http://cafe.naver.com/spongehouse/30326
(스폰지하우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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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전화가 왔다.
보통 그 시간에 전화를 안 하는 류승수의 전화라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길이가 죽었어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왜?
자초지정을 설명하는 그의 얘기를 듣고 나서 정신이 멍해졌다.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너무 허망하게 사람이 죽다니...
몇 달 전 <산타바바라>를 찍으면서,
촬영장에서 새로 이사갈 시골집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나 즐거워하는 그 사람이,
결국 그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들에게 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알리지 않아도 금방 다 알게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 스스로가 이 상황을 받아 들이기가 어려웠다.
살아선 그렇게 한번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던 친구가
네이버 검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까운 배우다, 천재연출가다... 그런 소리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상윤이한테 연락이 왔다.
그리고 태우한테도...
스텝들도,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은 문자로 연락을 한다.
모두들 당황스러워 한다.
한번이라도 그와 일을 같이 했던 사람이라면, 그를 쉽게 잊지 못한다.
그는 멋지게 인생을 살았고,
성공을 하려고 모두 발버둥치는 이 세계에서 그래도 여유를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래 전 영화 <부산> 편집본을 보면서,
그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창석씨를 통해 그를 소개 받았고,
나의 부족한 첫번째 영화 <맛있는 인생>을 찍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위해 멀리 강릉까지 와 주었다.
밤새 촬영을 하고, 아침 비행기로 동티모르로 영화를 찍으러 가야 하는 창석씨는 떠나고,
그 새벽에 원길은 나에게
대표님 술 한잔 하시죠... 라고 말을 던졌다.
모든 스텝들은 잠을 자러 가고 이른 아침에
난 원길과 순두부집에 가서 아침 겸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는 서울로 떠났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맛있는 인생>에서 그가 식당에서 부인에게 끌려나오면서 쳤던 그 대사를 잊지 못한다.
나사람이에요.. 후 후 먼...
새벽 4시에 찍었던 그 컷은 사실 NG컷 이었다.
류승수는 너무 웃느라 카메라에게 얼굴을 돌려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컷을 쓰고 말았다.
너무 그 사람의 에드립이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난 원길에게
'당신은 나의 영원한 페르소나야'
앞으로 내가 찍는 모든 영화에 곡 나와 줘...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이전에 봤던 다른 배우들처럼
갑자기 너무 떠버려 그게 불가능해질 수 도 있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진심으로 그 같은 배우가 뜨길 바랬다....
<내가 고백을 하면>을 찍으면서 대부분 배우들에게 애드립을 하지 말라고 했다.
가급적 시나리오 상에 있는 대사를 그대로 하고 꼭 고치고 싶으면 미리 얘기하라고...
단 한명 예외는 원길이었다.
그와 영미가 둘이 태우랑 기네스바에서 같이 대사를 치는 장면 마지막은,
물론 편집을 해 버렸지만 너무 좋았다.
밤을 새고 여관으로 들어와 바지를 벗고 자다가 깨는 장면에서,
태우는 원길 때문에 계속 웃느라 NG를 냈다.
결국 최종적으로 쓴 컷도 태우가 웃느라 정신줄을 놓아버린 NG컷이다.
<산타바바라>를 찍으면서 상윤이는 미리 나의 전작을 보고 백원길의 폭탑애드립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별 소용이 없었다.
원길 때문에 한번 웃음이 터진 상윤은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웃고 또 웃고...
그는 그런 존재였다. 나의 현장에서
그는 가끔 말했다.
나 말곤 영화쪽에서 연락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흐뭇해졌다.
그래.. 넌 내꺼야.. 넌 조성규의 배우란 말야...
세상엔 너의 가치를 모르는 바보천지들이 득실거려도
난 널 확실히 알아보았다고...
언젠가 그가 주인공인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는데,
이번 작업이 그와 마지막 작업이 되고 말았다.
<산타바바라>는 마치 소비뇽 블랑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처럼 가볍고 즐거운 영화로 끝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 공간에 그에 대한 추억을 담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을 남긴다....
원길아.... 넌 멋지게 살았다.. 인생... 비록 남보단 조금 짧았지만.
첫댓글 오빠...ㅠㅠㅠㅠ
원길오래비ㅜㅜㅜㅜ
보고싶습니다
울컥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