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뿌리는 사람
20여 년 전부터 결식아동과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중국요리를 만들어 주는 당광유 공번아 부부. 그들은 한국에 사는 화교 2세다. 한약사이기도 한 당광유씨는 얼마 전 "한국이라크평화팀"이 요르단으로 떠나기 전날 밤 그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기도 했다. 먹을거리로 사랑을 실어나르는 부부의 삶이 아름답다.
앙증맞게 얹힌 초록색 완두콩과 윤기나는 갈색 소스 속에 감춰진 면발을 서투른 젓가락질로 뒤섞는다. 급한 마음에 면발을 대강 젓가락에 휘감아 입안에 밀어 넣는다. 아이들의 입가는 이내 자장 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좋기만 하다. 여기에 탕수육과 군만두까지 곁들여지면 아이들은 그만 이성을 잃고 만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죠. 허겁지겁 입안 가득 자장면을 밀어 넣는 모습을 보면 체하지나 않을까 걱정돼요.”
20여 년 전부터 중국음식점을 운영해 오고 있는 당광유(56세) 공번아(52세) 부부는 오래 전부터 결식어린이나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단체들에 요리를 갖다 주거나 직접가서 만들어주고 있다. 잘 아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을 통해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나 단체를 소개받으면 부부는 점원들에게 가게를 맡기고 음식을 챙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는 단연 자장면과 탕수육. 대개는 점심식사로 대접할 수 있도록 삶거나 데우기만 하면 곧바로 내놓을 수 있는 면과 만두, 탕수육 재료를 준비한다. 준비해야 할 음식 분량이 많을 때는 버스를 전세 내고 일손을 도와줄 친구들을 급히 부르기도 한다. 소년소녀가장들의 운동회 날, 자장면 1500명분을 마련한 적도 있다.
음식점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부부에게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에 그치지 않는다. “음식점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귈 수 있어서 좋아요. 오랜 단골손님들과는 친구가 되었죠.” 서울 북창동에서 문을 연 음식점은 반포를 거쳐 91년부터 지금의 이태원에 자리를 잡았다. 단골손님이자 오랜 친구들은 부부를 만나러 예까지 찾아온다. 친구들은 당광유 씨가 개발하는 음식들을 맛보고 평가해주는 시식단이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러 가자고 말하기도 전에 언제 또 가는지 물어오는 이들이기도 하다.
자장면을 파는 한의사
당광유 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 2세로 원래 한의사였다. 재미있게도 그는 한동안 한의원과 음식점을 함께 운영했다. 음식 때문에 탈이 난 환자를 치료하면서 또다시 탈이 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음식점을 연 것이었다.
그러나 음식점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은 당씨는 극구 만류하는 부인을 설득했다. 남편은 한의원을 정리하고 부인은 교단을 내려와 음식점에 매달렸다. 당씨는 한약재를 넣은 음식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면역효과가 뛰어난 대나무 통에 버섯과 한약재를 넣은 수프와 밀가루에 한약재를 섞어 만든 녹색 면발의 비취자장면 등은 당씨의 역작들이다. 물론 식당에서 당씨가 가르쳐주는 대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요리사이지만, 당씨도 앞치마를 두를 때가 있다. 부인과 함께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줄 때다.
“처음에는 결식아동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실상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음식을 주는 것 못지 않게 아이들과 같이 있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사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음식을 더 자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려요.”
그들이 요즘 자주 찾는 곳은 ‘평화마을’이다. 음성 꽃동네 같은 곳인데 그보다 규모가 훨씬 작아 일손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그들은 평화마을에 다녀올 때면 두 번 놀란다. 그곳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깨달았을 때. 그래서 더 굳게 다짐한다. 내가 조금 더 가진 것을 나눠가져야겠다고.
나의 고향은 한국입니다
장남은 중국의 한 잡지사에서 일하고 막내딸은 미국 유학 중이라 큰딸과 살고 있는 부부는 그들 가족이 ‘이산가족’이라며 웃는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 때문에 이곳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더 애착이 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저희들 국적이 대만이라 한국에서 우리는 외국인이에요. 하지만 대만에 가면 우리더러 한국사람이라고 하죠. 당연해요.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까요. 우리는 어디에 가더라도 이방인 취급을 받아요. 어떤 때는 서글프죠.”
공번아 씨는 그래도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비록 정부는 그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 스스로는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다. 이웃에 눈을 돌리는 것은.
“뿌리내리고 산 곳이 이곳인데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이곳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꽃동네에 갔다가 악취와 소독약 냄새에 파묻혀 있는 노인들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던 것도, 헤어질 때 매달리며 울던 장애어린이들을 붙들고 함께 눈물 흘렸던 것도 그들 모두가 아버지, 어머니 같고 아들, 딸 같았기 때문이다.
당광유 씨는 요즘 새로운 일에 빠져 있다. 몸에 좋은 먹거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온 그는 건강한 먹거리를 재배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비닐하우스를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는 것이다. 지금의 비닐하우스는 별도의 난방시설을 필요로 하지만 당씨는 태양열을 이용해 사계절 내내 비닐하우스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기름을 쏟아 부어가며 비닐하우스를 쓰고 있으니까 농가들이 다 빚더미를 안고 있잖아요. 우리 같은 나라에서는 돈 안 들이는 방법을 찾아야죠.” 식당에서 벌어들인 돈을 계속 여기에 쏟아 붓고 있는 남편을 보며 부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는 남편에게 원망 섞인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제풀에 꺾였다. 남편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중국속담을 그 역시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뜻하는 바가 있으면 꼭 이룬다. 희망을 갖고 살자.”
이들 부부는 2월초 이라크로 떠난 ‘한국이라크평화팀’이 출국하기 전날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공동체 운동을 하는 친구로부터 평화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내 요리를 해 날랐다. 인터뷰 도중에도 부부는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꼭 알려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사람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당광유 공번아 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