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讀大學法
朱子曰 語孟은 隨事問答하여 難見要領이어니와 惟大學은 是曾子述孔子說古人爲學之大方이요 而門人이 又傳述以明其旨라 前後相因하고 體統都具하니 翫味此書하여 知得古人爲學所向하고 却讀語孟하면 便易入이니 後面工夫雖多나 而大體已立矣니라
朱子가 말하였다.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하여 요령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만은 증자가, 공자가 말한 옛 사람이 학문하는 큰 방법을 서술하고, (증자의) 문인이 또 (증자가) 서술한 것을 전하여 그 뜻을 밝혔기 때문에, 앞뒤가 서로 연관되고 전체의 체계가 모두 갖추어졌다. 이 <대학>을 완미하여 옛 사람들이 학문한 방향을 알고 나서 <논어> <맹자>를 읽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니, 앞으로 해야 할 공부가 많더라도 (학문의) 대체가 서게 될 것이다.”
看這一書 又自與看語孟不同하니 語孟中엔 只一項事 是一箇道理라 如孟子說仁義處엔 只就仁義上說道理하고 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엔 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어니와 若大學은 却只統說이라 論其功用之極이 至於平天下라 然이나 天下所以平은 却先須治國이요 國之所以治는 却先須齊家요 家之所以齊는 却先須修身이요 身之所以修는 却先須正心이요 心之所以正은 却先須誠意요 意之所以誠은 却先須致知요 知之所以至는 却先須格物이니라
“이 한 책(대학)을 보는 것은 또 본래 <論語>·<孟子>를 보는 것과 다르다. <논어>·<맹자>에는 하나의 일에 하나의 도리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孟子가 인의를 말한 곳에서는 仁義에 대한 도리만 말하고, 孔子가 顔淵에게 ‘克己復禮’로 대답한 곳에서는 ‘극기복례’에 대한 도리만 말하였다. 그러나 <大學>의 경우에는 총괄하여 말하기 때문에 그 功用의 극치를 논한다면 ‘천하를 공평하게 다스림[平天下]’에 이른다. 그러나 천하가 공평하게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나라가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집안을 가지런하게 해야 하고,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닦아야 하고, 몸이 닦이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고, 마음이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뜻을 진실하게 해야 하고, 뜻이 진실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앎을 지극하게 해야 하고, 앎이 지극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사물에 대한 먼저 사물에 대한 도리를 궁구해야 한다.”
○ 大學은 是爲學綱目이니 先讀大學하여 立定綱領하면 他書는 皆雜說在裏許라 通得大學了하고 去看他經이라야 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며 此是誠意正心事며 此是修身事며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니라
“<大學>은 학문하는 綱領과 條目이다. 먼저 <大學>을 읽어 綱領을 확실하게 정리하면 다른 책에서 잡다하게 말한 것들은 모두 강령 안에 있다. <大學>을 두루 깨닫고 나서 다른 經典을 보아야, 이것은 格物 致知의 일이며, 이것은 誠意 正心의 일이며, 이것은 修身의 일이며, 이것은 齊家·治國·平天下의 일임을 비로소 알게 됙 것이다.”
今且熟讀大學하여 作間架하고 却以他書塡補去하라
“지금 우선 <대학>을 면밀하게 읽어, 얼개[間架]를 만들고 다른 책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 大學은 是通言學之初終이요 中庸은 是指本原極致處니라
“<대학>은 학문의 처음과 끝을 통괄하여 말한 것이고, <중용>은 본원의 지극한 곳을 가리킨 것이다.”
○ 問欲專看一書인댄 以何爲先이니잇고 曰 先讀大學하면 可見古人爲學首末次第하니 不比他書라 他書는 非一時所言이요 非一人所記니라
又曰 看大學엔 固是著逐句看去나 也須先統讀傳文敎熟이라야 方好從頭仔細看이니 若專不識傳文大意하면 便看前頭亦難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오로지 한 책을 보고자 한다면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먼저 대학을 읽으면 옛사람이 학문한 시작과 끝의 차례를 알 수 있다.” “다른 책에 비교할 것이 아니다. 다른 책은 한때에 말한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또 말하였다. “<대학>을 볼 때에는 진실로 한 구절씩 보아야 한다. 그러나 먼저 전문을 통독하여 익숙하게 하여야 좋으니, (그 다음) 처음부터 자세하게 보아야 한다. 만일 전문의 대의를 전혀 모른다면 앞부분을 보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又曰嘗欲作一說敎人 只將大學 一日去讀一遍 看他如何是大人之學 如何是小學 如何是明明德 如何是新民 如何是止於至善 日日如是讀 月來日去 自見 所謂溫故而知新 須是知新 日日看得新 方得却不是道理解新 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이니라.
또 말하였다. “일찍이 하나의 풀이를 지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였다. <대학>만 하루에 한 편씩 읽으며 거기에 어떻게 하는 것이 大人의 학문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小學이며 무엇이 明明德이며, 무엇이 新民이며 무엇이 止於至善인가를 보았다. 날마다 이처럼 읽어 세월이 가니 이른바 ‘옛 것을 반복해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안다.’는 말뜻을 저절로 이해하게 되었다. 반드시 새로운 것을 알고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된다. 도리에 대해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의 생각이 점점 새로워지는 것이다.”
○ 讀大學 初間 也只如此讀 後來 也只如此讀 只是初間讀得 似不與自家相關 後來看熟 見許多說話須著如此做 不如此做自不得이니라.
“<대학>을 읽을 때에는 처음에도 이와 같이 읽고 나중에도 이와 같이 읽어야 한다. 처음 읽을 때에는 자기와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나중에 보는 것이 익숙해지면 많은 말을 이와 같이 해야지,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저절로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讀書 不可貪多 當且以大學爲先 逐段熟讀精思 須令了了分明 方可改讀後段 看第二段 却思量前段 令文意連屬 却不妨이니라.
“책을 읽을 때에는 많은 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우선 <대학>은 첫째로 단락마다 면밀하게 읽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확실하고 분명하게 (이해하여야) 비로소 다음 단락을 읽을 수 있다.” “두번째 단락을 볼 때에는 앞의 단락을 생각하여 문의가 이어지게 해야 지장이 없을 것이다.”
問大學稍通에 方要讀論語한대 曰 且未可하니 大學稍通이면 正好著心精讀이니라 前日讀時엔 見得前하고 未見得後面하며 見得後하고 未見得前面이러니 今識得大綱體統이면 正好熟看이니 讀此書功深이면 則用博이니라
昔에 尹和靖이 見伊川半年에 方得大學西銘看이러니 今人은 半年에 要讀多少書로다 某且要人讀此는 是如何오 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일새니라 凡讀書에 初一項에 須著十分工夫了면 第二項엔 只費得八九分工夫요 第三項엔 便只費得六七分工夫라 少間讀漸多하면 自通貫이니 他書는 自著不得多工夫니라.
물었다. “<대학>을 조금 깨달아 <논어>를 읽고자 합니다.” 대답하였다. “아직 안 된다. <대학>을 조금 깨달았으면 바로 마음을 붙여 정밀하게 읽는 것이 좋다. 지난날 읽을 때에는 앞 부분을 보고 뒷 부분을 못 보았으며, 뒷부분을 보고 앞 부분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대강과 전체 체계를 알았으니 바로 (반복해서) 면밀하게 보는 것이 좋다. <대학>을 읽어 공부가 깊어지면 응용이 넓어질 것이다.”
“옛날에 윤화정(윤돈)이 이천[정이]을 만나본 지 반년만에야 <대학>과 <서명>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반년 동안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내가 우선 사람들에게 <대학>을 읽어라고 권하는 것이 어째서인가. <대학>은 (양이) 많지 않으면서도 규모가 두루 갖춰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을 때, 처음 첫 번째 항목에 반드시 100%의 공부를 하면, 두 번째 항목에는 (처음의) 80~90% 정도의 공부만 하면 되고, 세 번째 항목에서는 (처음의) 60~70% 정도의 공부만 하면 된다. 얼마 동안 점차 많이 읽어서 저절로 꿰뚫어 알게 되면 다른 책은 자연히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看大學에 俟見大指하여 乃及他書니라 但看時에 須是更將大段하여 分作小段하여 字字句句를 不可容易放過요 常時暗誦黙思하여 反覆硏究하여 未上口時엔 須敎上口하고 未通透時엔 須敎通透하고 已通透後엔 便要純熟하여 直待不思索時에도 此意常在心胸之間하여 驅遣不去라야 方是此一段了하고 又換一段看이니 令如此數段之後엔 心安理熟하여 覺工夫省力時에 便漸得力也리라.
“<대학>을 볼 때는 대지를 이해한 뒤에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볼 때에는 다시 큰 단락을 작은 단락으로 나누어 각 글자와 각 구절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평상시에 암송하고 속으로 생각하여 반복해서 연구하여, 입에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입에 오르게 하고, 투철하게 꿰뚫어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투철하게 꿰뚫어 알게 하고, 투철하게 꿰뚫어 안 뒤에는 순수하고 익숙하게 하여, 다만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항상 가슴 속에 있어서 몰아내도 떠나지 않게 되어야 이 한 단락이 끝난 것이 된다. 또 한 단락을 바꾸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보아야 한다. 몇 단락을 (이렇게 공부한) 뒤에 마음이 안정되고 이가 익숙해져서 공부에 힘이 덜 드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점차 힘을 얻게 될 것[得力]이다.”
又曰 大學은 是一箇腔子니 而今却要塡敎他實이라 如他說格物엔 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著이요 誠意亦然이니 若只讀得空殼子하면 亦無益也니라.
또 말하였다. “<대학>은 속이 빈 것[腔子]이니, 지금 그것을 꽉 차게 해야 한다. 에를 들어 저 (대학의) ‘격물’을 말한 곳에서는 자기가 ‘격물’을 실천해나가 그것을 채워 꽉 차게 해야 한다. ‘성의’도 그렇게 해야 한다.” “다만 텅 빈 껍데기만 읽는다면 또한 무익할 것이다.”
○ 讀大學이 豈在看他言語리오 正欲驗之於心如何니 如好好色,惡惡臭를 試驗之吾心하여 果能好善惡惡如此乎아 閒居爲不善이 是果有此乎아하여 一有不至어든 則勇猛奮躍不已라야 必有長進이니라 今不知如此하면 則書自書,我自我니 何益之有리오.
“<大學>을 읽는 목적이 어찌 그 말을 보는 데 있겠는가. 바로 마음에 어떤지 徵驗하고자 하야 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女色을 좋아하듯이 (선을 좋아하고) 惡臭를 싫어하듯이 (악을 싫어함)을 한번 내 마음에 징험하여, ‘정말로 이와 같이 善을 좋아하고 惡을 싫어할 수 있는가?’라 하며, ‘한가할 때 不善을 행한다고 하는데, 과연 (나에게도) 이러한 (불선의 행함이) 있는가?’라고 하여, 조금이라도 지극하지 않음이 있으면 勇猛하게 奮發하여 쉼이 없어야 멀리 나아감[長進]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와 같이 할 줄 모른다면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가 될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又曰 某一生에 只看得這文字透하여 見得前賢所未到處로라 溫公이 作通鑑하고 言 平生精力 盡在此書라하더니 某於大學에 亦然하노니 先須通此라야 方可讀他書니라.
또 말하였다. “나는 일생 동안 이 글을 보는 데에 투철하여 예전의 현인들이 이르지 못한 곳을 보게 되었다.” “온공[사마광]이 <자치통감>을 짓고 ‘평생 정력을 이 책에 다 쏟았다.’라고 하였는데, 나도 <대학>에 대해서 그렇다.” “먼저 <대학>을 막힘없이 이해하여야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
又曰 伊川이 舊日敎人에 先看大學하시니 那時엔 未解說이러니 而今有註解하여 覺大段分曉了하니 只在仔細看이니라.
또 말하였다. “이천[정이]이 지난날 사람들에게 먼저 <대학>을 보게 하였는데, 그때에는 아직 해설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해가 있어 매우 분명하게 되었으니, 자세하게 보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又曰 看大學엔 且逐章理會하여 先將本文念得하고 次將章句來解本文하고 又將或問來參章句니라 須逐一令記得하여 反覆尋究하여 待他浹洽하여 旣逐段曉得이어든 却統看溫尋過니라.
또 말하였다. “<대학>을 볼 때에는 우선 장마다 이해해야 한다. 먼저 본문을 가져다 외우고, 다음에 <장구>를 가져다가 본문을 풀이하고, 또 <혹문>을 가져다 <장구>에 참고해야 한다. 하나하나 기억해 반복해서 찾아 밝혀 그 내용이 무젖기를 기다려야 하고, 단락마다 환히 안 뒤에는 통합해서 보고 반복해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
又曰 大學一書는 有正經하고 有章句하고 有或問하니 看來看去면 不用或問하고 只看章句便了요 久之면 又只看正經便了요 又久之면 自有一部大學이 在我胸中하여 而正經亦不用矣리라 然이나 不用某許多工夫면 亦看某底不出이요 不用聖賢許多工夫면 亦看聖賢底不出이니라
又曰 大學解本文未詳者를 於或問中에 詳之하니 且從頭逐句理會하여 到不通處어든 却看하라 或問은 乃註脚之註脚이니라.
또 말하였다. “<대학> 한 책에는 정경, <장구>, <혹문>이 있다. 오래도록 읽으면 <혹문>이 필요없이 <장구>만 보면 되고, 오래하면 정경만 봐도 되고, 더욱 오래하면 저절로 전체의 <대학>이 나의 가슴 속에 있게 되어 정경도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성현처럼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또한 성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또 말하였다. “<대학해>(대학장구)의 본문에 자세하지 않은 것은 <혹문>에 자세하다.” “우선 (정경을) 처음부터 한 구절씩 이해하다가 막히는 곳에 이르면 <장구>를 보라. <혹문>은 바로 주석의 주석이다.”
○ 某解書에 不合太多일새 又先准備學者하여 爲他設疑說了하니 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了니라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하여 使人自致思라하니 此事大不然이라 人之爲學이 只爭箇肯與不肯耳니 他若不肯向這裏면 略亦不解致思요 他若肯向此一邊이면 自然有味하여 愈詳愈有味하리라
“내가 글을 풀이함에 너무 자세하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또 먼저 배우는 자들을 대비하여 그들을 위해 의문을 가설하여 설명하였으니, 배우는 자들이 보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내가 해설한 <대학> 등은 간략하게 설명하여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각을 다하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니, 이 일은 매우 옳지 않다.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기꺼이 하느냐 기꺼이 하지 않느냐를 따질 뿐이다. 저들이 기꺼이 이쪽으로 향하려 하지 않으면 (해설이) 간략하더라도 생각을 다할 수 없을 것이요, 저들이 이쪽으로 향하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맛을 느껴 자세히 해설할수록 더욱 맛을 느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