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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11강> (2018.06.25.)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7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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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하 [제5장b~7장]
周易 繫辭傳·下 (제5장-②)
[5]-8 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요
亡者는 保其存者也요
亂者는 有其治者也니
是故로 君子 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아
繫于包桑이라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울 것을 생각하여 대비(對備)하는 자는 자기의 지위를 안정시킬 수 있고,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대비하는 자는 자기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으며,
혼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대비하는 자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때문에 군자(君子)는 편안히 거처하면서 위태롭게 될 것을 잊지 않고,
편안히 있으면서도 망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안정된 상태에 있으면서도 혼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몸이 편안해지고 국가가 보존될 수 있다.
역(易)[비괘(否卦) 구오(九五)]에서 말하기를
‘(항상 스스로 경계하여) 망할라, 망할라 하고 걱정해야
빽빽한 뽕나무에 묶어두듯 견고할 수 있다’고 했다.”
·‘ ‘危者’에서 危’(위)는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
· ‘亡者’에서 ‘亡’(망)은 ‘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
· ‘亂者’에서 ‘亂’(란)은 ‘혼란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
* [易曰 其亡其亡이라아 繫于包桑이라] ☞ [12] 비괘(否卦) 구오(九五)의 효사
[12] 비괘(否卦, 天地否)는 그 괘상이 태괘(泰卦, 地天泰)와 착종관계(錯綜關係)이므로 그 함의(含意)도 정반대이다. 태괘가 소통(疏通)이라면 비괘는 불통(不通)이다. 비괘의 외형은 건실하고 화려하지만 속은 허약하고 부실하다. 뿌리는 나약하지만 잎과 줄기가 무성한 식물과 같다. 그리고 자녀는 나약하지만 부모가 강력한 가정과 같다. 이런 가정의 경우, 부모와 자녀가 소통되기 어렵고 자녀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막힘’을 의미하는 ‘비(否)’로 붙였다. ‘否’는 원래의 음이 ‘부’이지만 괘명의 경우 ‘비’로 발음한다.
비(否)는 결국 소인(小人)의 시대이고 난세(亂世)이다. 이를『맹자』에서는 ‘천하무도(天下無道)’라고 했다. 군자(君子)의 시대, 즉 도(道)가 살아있는 시대[治世]에는 작은 덕(德)이 큰 덕의 부림을 받고, 조금 어진 사람이 크게 어진 사람의 부림을 받지만, 소인(小人)의 시대 즉 무도(無道)한 시대[亂世]에는 작은 사람이 큰 사람에게 부림을 받고 힘이 약한 사람이 센 사람에게 부림을 받는다. (小人道長, 君子道消也) 그것이 천하가 무도한 실상이다.
비괘(否卦)는 ‘난세(亂世)의 주역코드’라고 말한다. 태괘(泰卦)가 ‘치세(治世)의 주역 코드’에 대비되는 상황이다. 역사(歷史)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곡절로 이어진다. 난세(亂世)의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智慧)가 무엇인가.
[12]否卦 否之匪人, 不利, 君子貞, 大往小來. | ‘上九, 傾否, 先否後喜.’ ‘九五, 休否, 大人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九四, 有命无咎, 疇離祉.’ ‘六三, 包羞.’ ‘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 亨.’ ‘初六, 拔茅茹, 以其彙, 貞吉, 亨.’ |
구오(九五)는 막힌 상태를 끝내야 한다. 대인(大人)이라야 길하다.
‘이러다간 망하지’, ‘이러다간 망하지’ 하고 조심하면
빽빽이 가지가 돋아난 뽕나무에 묶어둘 수 있다.
뽕나무는 뿌리가 견고하고 줄기와 껍질이 질기다. 따라서 말이나 소의 고삐를 뽕나무 그루터기에 묶어두면 안전하다. 더구나 가지가 총총 뻗은 뽕나무는 고삐가 가지에 걸리기 때문에 미끄러질 염려도 없다. 그러므로 안전하다는 말을 실감나게 표현할 때 옛사람들은 ‘뽕나무에 묶어 둔다’고 했다. 소인의 시대, 군자의 시대가 가는 때이니 굳세게 할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위기에 처한 지도자는 특히 대인(大人)이어야 한다. 대인이어야 모든 사람과 한마음이 되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구오는 중정(中正)의 자리에 있으므로 대인의 덕을 갖추고 있다.
[5]-9 子曰 德薄而位尊하며
知(智)小而謀大하며
力小而任重하면 鮮不及矣나니
易曰 鼎 折足하여 覆公餗하니 其形이 渥이라 凶이라하니
言不勝其任也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이 천박하면서도 자리가 높고,
지혜(智慧)가 작으면서도 도모하는 것이 크며,
힘이 적으면서 짐이 무거우면 화가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
역(易)[정괘(鼎卦) 구사(九四)]에 말하기를
‘솥의 다리가 부러져 왕공(王公)이 먹을 음식을 엎으면
그 형벌로 목을 벨 것이니 흉하다’고 했으니 임무를 감당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 [易曰 鼎 折足하여 覆公餗하니 其形이 渥이라 凶이라] - 정괘(鼎卦) 구사(九四)
[50] 정괘(鼎卦)의 상괘는 이괘(離卦, ☲)이고 하괘는 손괘(巽卦, ☴)다. 괘상의 전체를 두고 보면 꼭 솥[鼎]의 형상이다. 괘의 자질로 보면 이괘는 ‘불’을 상징하고 손괘는 ‘나무’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나무를 지펴 불을 때어 밥을 짓는 것이니 바로 솥[鼎]이다.
『본의(本義)』에서 말했다. “정(鼎)은 삶아서 요리하는 기물이다. 괘(卦)의 됨이 아래의 음(陰)은 (솥의) 발이 되고 이효(二爻)·삼효(三爻)·사효(四爻)의 양(陽)은 배가 되며 오효(五爻)의 음(陰)은 귀가 되고 위의 양효(陽爻)는 현(鉉)이 되니 솥의 상(象)이다. 또 손목(巽木)으로 이(離)의 불[火]에 들어가 삶아서 요리하니 솥의 쓰임이다.”
[50] 鼎卦 鼎, 元(吉), 亨 | ‘上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九四,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九三, 鼎耳革, 其行塞, 雉膏不食, 方雨虧悔, 終吉.’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初六, 鼎顚趾, 利出否, 得妾以其子, 无咎.’ |
구사(九四)는 솥의 발이 부러져 공(公)이 먹을 음식을 엎으면
그 형벌이 목을 베는 것이니 흉하다.
구사(九四)는 솥 안의 음식을 잔치상(床)에 퍼 나르는 자이다. 그런데 구사(九四)는 음(陰)의 자리에 양(陽)이 와서 부정(不正)이요 또한 중(中)도 아니다. 솥의 발은 초육(初六)인데 초육 역시 부정(不正)이고 부중(不中)이다. 그래서 서로 원만하게 호응(呼應)하지 않는다. 그래서 ‘솥의 발이 부러졌다’고 한 것이다. 솥 다리가 부러지면 상(床) 위에 음식이 엎어지게 된다. 구사(九四)가 차려서 올리는 음식은 존위의 군주가 먹는 음식상이다. 이렇게 불경(不敬)하고 방자(放恣)한 일이 없다. 그래서 ‘그 얼굴이 땀이 나서 흥건히 젖어서 흉하다’고 했다.
* [강 설(講說)] —————
덕(德)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또 일으킨 문제를 수습하지 못해 화(禍)를 입게 된다. 지혜(智慧)가 얕은 사람이 규모가 큰일을 계획하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고 만다. 이는 힘없는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진 것과 같다.
[5]-10 子曰 知幾 其神乎인저!
君子 上交不諂하며 下交不瀆하나니 其知幾乎인저!
幾者는 動之微니 吉[凶]之先見(현)者也니
君子 見幾而作하여 不俟終日이니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코 吉하다하니
介如石焉커니 寧用終日이리오. 斷可識矣로다.
君子 知微知彰知柔知剛하나니 萬夫之望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미(幾微)를 아는 것이 신묘한 것이다.
군자는 윗사람과 사귀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사귀더라도 모독하지 아니하니,
기미(幾微)를 아는 것이다. 기미란 움직임이 은미한 것이고, 길[흉]이 먼저 나타난 것이다.
군자(君子)는 기미를 보고 일을 처리하니 종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역(易)[예괘(豫卦) 육이(육二)]에서 말하기를,
‘돌에 끼어 있으니 종일 기다리지는 않아야 하는 것이니,
참고 견디면서 잘 분별하면 길하다’고 했다.
끼어 있는 것이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를 기다리겠는가? 단행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군자(君子)는 은미한 징조를 알고 드러난 모습도 알며, 부드러운 것도 알고 굳센 것도 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본다.”
* [易曰 介于石이라 不終日이니 貞코 吉하다] — [16] 예괘(豫卦) 육이(六二)의 효사
[16] 예괘(豫卦)는 진(震, ☳)이 위에 있고 곤(坤, ☷)이 아래에 있어서 순하게 동하는 상(象)이니, 동(動)하면서 화순(和順)하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구사(九四)는 동(動)의 주체가 되어, 상하의 여러 음(陰)이 응하고 곤(坤)이 또 순함으로써 받드니, 이는 동함에 상하가 순하게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화롭고 기쁜 뜻’을 이룬다. 그래서 ‘예(豫)’라 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순조롭지 않다. 하층부가 모두 빈약한 음(陰)들이며, 정책의 결정권자[六五]도 음(陰)이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사(九四)가 움직임[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구사(九四)가 ‘동기(動機)를 부여(賦與)’하면 상하의 음(陰)들이 함께 응하고 곤(坤)이 또한 순함으로써 받들게 된다.
[16] 豫卦 豫, 利建侯 行師 | · ‘上六, 冥豫成, 有渝无咎.’ · ‘六五, 貞疾, 恒不死.’ · ‘九四, 由豫, 大有得, 勿疑, 朋盍簪.’ · ‘六三, 盱豫悔, 遲有悔.’ · ‘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吉.’ · ‘初六, 鳴豫, 凶.’ |
육이(六二)는 돌에 끼어있다. 종일토록 그러지 않고 바르게 하면 길할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했다. “육이(六二)는 하층부의 중심으로 중정(中正)의 자리에 있다. 괘의 상(象)을 보면 현재 실권자는 육오(六五)지만 능력자인 구사(九四)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러므로 육오(六五)와 구사(九四)에게 동시에 관심을 받고 있는 육이(六二)는 육오(六五)의 명령을 우선 들으면서 구사(九四)의 존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운신이 자유스럽지 못하다. 이를 가리켜 ‘돌에 끼어 있다’고 했다.”
육이(六二)는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주인공이다. 육오(六五)와 구사(九四)의 틈에 끼어 종일토록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기회를 보아 구사(九四)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공개적으로 하면 육오(六五)에게 배척을 당하므로 조짐[幾微]을 보고 은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예컨대 육오(六五)가 궁예라면 구사(九四)는 왕건이다. 신하 최응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왕건을 위해 큰 역할를 한다. 최응이 처한 상황이 바로 예괘의 육이(六二)이다.
* [강 설(講說)] —————
일이 벌어진 후에 대책을 준비하면 이미 때가 늦어지고 만다. 무너진 집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과 같다. 미리 그 일의 징조(徵兆)를 보고 차근히 대비(對備)해야 한다. 역(易)의 이치를 알아 변화(變化)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면, 기미(幾微)를 보고 그 일의 과정을 예측(豫測)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11 子曰 顔氏之子 其殆庶幾乎인저!
有不善이면 未嘗不知하며
知之면 未嘗復行也하나니
易曰 不遠復이라 无祗悔 元吉이라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顔回)는 아마도 (역리의 실천에) 거의 가까웠던 것 같다.
올바르지 않은 것이 있으면 알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알았으면 다시 저지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알았으면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
역(易)[복괘(復卦) 초구(初九)]에서 말하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면 후회하는 일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크게 길하다’고 하였다.”
* [易曰 不遠復이라 无祗悔 元吉이라] — [24] 복괘(復卦) 초구(初九)의 효사
[24] 복괘(復卦)의 상괘는 곤괘(坤卦, ☷)이고 하괘는 진괘(震卦, ☳)이다. 이 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일한 양(陽)인 초구(初九)이다. 초구(初九)는 이 괘 전체의 생명이다. 만일 초구가 제 역할을 못한다면 전체의 생명은 없어지고 만다. 가을에 떨어진 열매에서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다. 새싹이 자라 다시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작년에 떨어진 낙엽이 모두 썩어서 자양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씨앗이 부활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복(復)’이라 붙였다.
[24] 復卦 復, 亨. 出入无疾, 朋來无咎, 反復其道, 七日來復. 利有攸往. | ‘上六, 迷復, 凶, 有災眚. 用行師, 終有大敗, 以其國, 君凶, 至于十年不克征’ '六五, 敦復, 无悔 ‘六四, 中行獨復.’ ‘六三, 頻復, 厲无咎.’ ‘六二, 休復, 吉. ‘初九, 不遠復, 无祗悔, 元吉. |
초구(初九)는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게 되니 후회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하다.
초구(初九)는 부활(復活)하는 상황에서 생명(生命) 그 자체이다. 그것도 양(陽)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굳센 생명력이다. 그래서 ‘머지않아 곧 회복된다’고 한 것이다. 비록 여린 생명이 다시 잉태되고 있지만 그 생명력(生命力)이 굳센 것이니, 크게 길한 것이다.
『주역강설』에서 말한다. 초구(初九)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초봄을 맞이하려는 순간이고, 오랜 혼란의 시기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의 시대가 도래 하려는 찰나이다. 역사는 사계절이 순환하듯 그렇게 순환한다. 일정 기간의 혼란을 겪고 나면 안정된 시기를 맞이하고, 안정이 지속되면 다시 혼란에 빠진다. 말하자면 일치일란(一治一亂)이 반복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① 혼란의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버려서 돌아오지 못하고 멸망해 버리는 역사도 있고, ② 혼란의 방향으로 한참 나아간 뒤에 돌아오는 역사도 있으며, ③ 약간 갔다가 금방 되돌아오는 역사도 있다. ③의 경우와 같이,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는 최선의 방향에 가까운 순탄한 역사이므로 크게 길(吉)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방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경우라면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높아야 하고, 개인의 경우라면 인격과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수신(修身)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공자(孔子)는 그 수신(修身)의 전형적인 예로 안자(顔子)를 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공자는 안자의 수신(修身)을 ‘不遷怒 不貳過’로 표현했다.『논어(論語)』<옹야편>에 나온다.
* [강 설(講說)] —————
안회(顔回)는 공자의 수제자이다. 30세에 요절(夭折)하여 공자를 애통하게 했던 인물이다. 공자는 그가 거의 자기의 수준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자질(資質)과 덕(德)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절하여 그 도의 완성을 보지 못했다고 슬퍼했다. 그가 죽자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며 통곡(痛哭)을 했는데, 이를 본 제자들이 ‘선생님께서 통곡을 하셨습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를 위하여 통곡하겠느냐” 하면서 더욱 슬퍼했다.
『논어』에 의하면, 안회(顔回)는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도(道)를 즐겼으며 성나는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 화를 전가하지 않았고, 한 번 범한 실수나 과오는 되풀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자기성찰과 수양이 철저했던 사람인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반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못을 한 번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5]-12 天地 絪縕에 萬物이 化醇하고 男女 構精에 萬物이 化生하나니
易曰 三人行앤 則損一人코 一人行앤 則得其友라하니 言致一也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교감하고 쌓여
만물이 응결하고 암컷과 수컷이 교합하여 만물이 생겨난다.
역(易)[손괘(巽卦) 육삼(六三)]에서 말하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잃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고 했으니, 한결같은 마음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 ‘天地 絪縕’(천지온인)에서 ‘絪’(인)은 ‘기운, 천지의 기운’, ‘縕’(온)은 ‘쌓다’
· ‘萬物 化醇’에서 ‘醇’(순)은 ‘진한 술, 순일하다’
* [易曰 三人行앤 則損一人코 一人行앤 則得其友라] - [41] 손괘(損卦) 육삼(六三)
주역 [41] 손괘(損卦)의 상괘는 간괘(艮卦, ☶)이고, 하괘는 태괘(兌卦, ☱)이다. 여기 손괘(損卦)의 근본은 지천(地天) 태괘(泰卦)이다. 태괘(泰卦)는 위의 땅[坤, ☷]은 아래로 내려오는 속성이 있고, 아래의 하늘[乾, ☰]은 위로 올라가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상·하가 서로 만나서 교합(交合)하는 양상이다. 그래서 태괘(泰卦)의 괘상을 보면, 소인(小人)의 시대가 가고 군자(君子)의 시대로 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태괘(泰卦)의 상괘는 곤(坤)으로 ‘물질문명’을 상징하고 하괘인 건(乾)은 ‘정신문화’를 상징한다.
‘손(損)’은 비우는 상황이다. 비우는 것은 자신의 것을 덜어서 다른 것을 유익(有益)하게 하는 것이다. 욕심(慾心)을 비워서 덕(德)을 쌓는 일이다. 비우는 상황에서 우선 믿음을 가져야 하고 두 번째는 큰마음으로 하면 길하고 세 번째는 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마음먹었으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면 이롭다. 욕심을 비워서 덕(德)을 쌓는 일은 소박한 마음으로 정성(精誠)을 다해야 한다. ‘두 개의 대그릇으로도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소박한 제사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하면 된다.
[41] 損卦 損, 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可用享 | ‘上九, 弗損益之, 无咎, 貞吉, 有攸往, 得臣无家.’ ‘六四, 損其疾, 使遄有喜, 无咎.’ ‘六四, 損其疾, 使遄有喜, 无咎.’ ‘六三, 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 ‘九二, 利貞, 征凶, 弗損益之.’ ‘初九, 已事遄往, 无咎, 酌損之.’ |
육삼(六三)은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주역강설]▶ 육삼(六三)은 하층부 태괘(兌卦, ☱)의 가장 윗자리에 있다. 아래의 두 양(陽)이 따르니 현재에 만족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육삼(六三)은 원래 양의 자리에 음(陰)‘이 왔으므로 부정(不正)이고 또 부중(不中)이다. 그러므로 육삼(六三)은 작은 만족에 안주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자기 욕심(慾心)을 덜어내야 한다. 육삼(六三)이 자기를 따르는 구이(九二)와 초구(初九)를 함께 어울리게 되면 결국 삼각관계가 되어 갈등이 생긴다.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만물이 화순한다는 것은 만물의 기(氣)가 응결하는 것이다. 기가 응결하면 생명이 이루어진다. 기는 구체적인 음양의 교합에 의해서 실재적인 존재를 형성한다. 이를 ‘만물 화생’이라고 한다. ‘순(醇)’은 술의 원액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 현상의 근원인 기운이 응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5]-13 子曰 君子 安其身而後에야 動하며 易其心而後에야 語하며
定其交而後에야 求하나니
君子 修此三者故로 全也하나니
危以動하면 則民不與也코
懼以語하면 則民不應也코
无交而求하면 則民不與也하나니
莫之與하면 則傷之者 至矣나니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하니라.
右는 第五章이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君子)는 몸이 편안해진 뒤에 움직이고,
마음을 다스린 뒤에 말하며, 사귐이 확고하게 한 뒤에 남에게 요구한다.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아서 완수하기 때문에 온전하다.
자기 몸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움직이면 백성들이 함께 하지 않으며,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서 말을 하면 백성들이 호응하지 않으며,
사귐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구하면 백성들이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해치는 자가 이른다.
역(易)[익괘(益卦) 상구(上九)]에서 말하기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이 공격해 올 것이니,
마음을 세우되 항상됨을 잃으면 흉하다’고 했다.
· ‘易其心而後’에서 ‘易’(이)는 ‘다스리다’의뜻
* [易曰 莫益之라 或擊之리니 立心勿恒이니 凶이라] — [42] 익괘(益卦) 상구(上九)
주역<益卦 第四十二> ; 이 괘의 상괘는 바람이 순조롭게 부는 손괘(巽卦, ☴)이고 하괘는 움직이는 성격이 강한 진괘(震卦, ☳)이다. 특히 상층부의 능력 있는 육사(六四)가 하층부의 개혁주도자인 초구(初九)와 상응(相應)한다. 육사(六四)는 음(陰)이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오고 싶어 하고 강양(剛陽)인 초구(初九)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연히 조화(調和)를 이룬다. 초구(初九)와 육사(六四)가 조화를 이루면, 초구(初九)의 힘은 전체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변한다. 그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큰 이익(利益)이 생긴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익(益)’이라 한 것이다.
익(益)은 더함이다. 상괘 초효[九四]의 양(陽)을 덜어서 하괘 초효[初六]의 음(陰)에 더해주었으니, 상괘(上卦)로부터 하괘(下卦)로 내려왔다. 그래서 익(益)이라 한 것이다. 구오(九五)와 육이(六二)가 모두 중정(中正)을 덕을 지니고 있으니 유익함이 있다.
[42] 益卦 益, 利有攸往, 利涉大川. | ‘上九,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九五, 有孚惠心, 勿問元吉, 有孚惠我德.’ ‘六四, 中行告公從, 利用爲依遷國.’ ‘六三, 益之用凶事, 无咎, 有孚中行, 告公用圭.’ ‘六二, 或益之十朋之龜, 弗克違, 永貞吉, 王用享于帝, 吉.’ ‘初九, 利用爲大作, 元吉, 无咎.’ |
상구(上九)는 유익하게 하지 말아 보아라! (그렇게 하면) 혹 공격을 받을 수 있으니
마음을 세우되 항심(恒心)을 잃으면 흉(凶)하다.
상구(上九)는 도우는 상황에서 부중(불中) 부정(不正)으로 실권도 없고 능력이 쇠퇴한 원로이다. 그렇다고 역시 부중(不中)·부정(不正)인 육삼(六三)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제 누구를 도울 것도 없다.’하고 체념하고 전체를 외면하기가 쉽다. 그러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구성원들이 그를 외면하거나 비난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공격(攻擊)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상구(上九)는 내적으로 손순의 덕을 쌓은 원로이다. 모든 구성원들을 도우는 일은 일단 마음을 세웠으면 한결 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세우되 항심(恒心)을 잃으면 흉(凶)하다’고 한 것이다.
돕고 유익하게 하는 익괘(益卦)에서 초구(初九)가 홍익(弘益)의 밑그림[계획]을 그렸다면, 상구(上九)에서는 그 계획을 끝까지 실천하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어 한다. 그리하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세계가 구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세운 뜻[立志]을 한결같이 하지 않으면[勿恒] 흉하다’고 한 것이다.
* [강 설(講說)] —————
자연은 언제나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설사 번개와 천둥으로 요동하고 바람으로 가격하는 것도 생명을 깨우고 살게 하려는 작용이니, 길게 보면 편안하고 안정됨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태로운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불안한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일체감이 조성되어 피차의 입장을 편견없이 공감할 수 있어야, 요구하고 부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부탁하면 편안하지 않다. 성사되기 어렵다.
<제6장> ; 주역의 바탕이 되는 건곤(乾坤)
[6]-1 子曰 乾坤은 其易之門邪인저.
乾은 陽物也요 坤은 陰物也니
陰陽이 合德하여 而剛柔가 有體라.
以體天地之撰하며 以通神明之德하니
其稱名也 雜而不越하나
於稽其類엔 其衰世之意耶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건(乾)과 곤(坤)을 역의 문(門)인가?"
건(乾)은 양물(양物)이고 곤(坤)은 음물(陰物)이다.
음과 양이 덕을 합해서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일정한 성격을 갖는다.
그럼으로써 하늘과 땅의 일을 재현하고, 그럼으로써 신명(神明)의 덕(德)에 통달한다.
괘(卦)의 명칭이 잡다하지만 건곤(乾坤)의 작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유형을 살펴보건대, 그것은 아마도 쇠퇴하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 ‘以體天地之撰’에서 ‘撰’(찬)은 ‘짓다, 품다, 만들다’의 뜻
* [강 설(講說)]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은 모든 괘의 전형이다. 이 두 괘를 바탕으로 나머지 모든 괘가 형성된다. 그래서 건(乾)과 곤(坤)을 역의 문(門)이라고 했다.
괘가 성립하면 음(陰)과 양(陽)이 서로 어울려 굳세게 행동하는 것과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 등 괘의 성격이 정해진다. 예컨대 양과 양이 합하여 태양(太陽)이 되어 매우 굳세게 행동해야 하지만, 양과 음이 어울리면 소양(少陽)이나 소음(少陰)이 되어 약간 세계 또는 약간 부드럽게 행동해야 한다. 또 음과 음이 어울리면 아주 부드럽게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행동지침이 정립되고 나면, 천지의 일을 따라 실천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천지의 일을 체현할 수 있고 신명의 덕에 통할 수 있다.
괘의 명칭(名稱)은 다양하게 예순 네 가지나 되지만, 그 내용은 모두 건곤(乾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유형(類型)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체로 조심하고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대를 반영하고 만들어진 것임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6]-2 夫易은 彰往而察來하며
而微顯[微顯而]闡幽하며
開而當名하며 辨物하며
正言하며 斷辭하니 則備矣라.
其稱名也 小하나 其取類也 大하며
其旨 遠하며 其辭 文하며
其言 曲而中하며 其事 肆而隱하니
因貳하여 以濟民行하여 以明失得之報니라.
右는 第六章이라.
대저 역(易)은 지나간 것을 분명히 알고 올 것을 살피며,
은미(隱微)한 것을 드러내고 숨어 있는 이치를 밝히며,
만물의 이치를 열어서 마땅하게 이름을 붙이며, 만물이 처한 상황을 잘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사(辭)를 단행하니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다.
이름을 일컫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진리의 유형을 취하는 것은 크다.
그 의미는 심원하고 그 사(辭)는 세련되다.
그 말은 상세하면서도 이치에 맞고, 그 일을 많이 벌려놓았으면서도 은밀하다.
의심스러운 것으로 인하여 백성들에게 행동방침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행동의 잘잘못에 따라서 주어지는 보답에 대해서 밝힌다.
· ‘而微顯闡幽’(비현탄유)에서 ‘微顯’은 ‘은미한 것을 드러낸다.’ 문법적으로 ‘顯微’이다.
* [강 설(講說)] —————
역(易)은 변화의 원리를 상징적(象徵的)으로 표현한 것으로, 지나간 것의 변화(變化)의 원리를 살피고, 미래(未來)에 있을 변화의 내용을 살핌으로써 변화의 법칙을 설명한다.
변화를 예측·통찰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기미(幾微)를 잘 살펴야 한다. 즉 인식하고 감지하기 힘든 은미한 것 속에서 앞으로 진행될 변화의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역에서는 그것을 찾아내어 이름을 마땅하게 붙인 것이고, 각 효에 적용되는 이름을 마땅하게 붙였다. 초구에서는 잠룡(潛龍)이라 하고 구이에서는 견룡(見龍)이라 한 것은 각각의 상황을 분별한 것이다. 각각의 괘와 효의 내용을 바르게 말로 표현했으며, ‘길하다’, ‘흉하다’ 등으로 분명하게 단정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과 만물의 이치를 갖추고 실천의 원리까지 갖추었다.
의심스럽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여 판단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에서는 이러한 경우에도 그 처한 상황의 성격을 알려주고 대안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취한 행동의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득실에 대해서도 밝혀준다. ‘이(利)/ 불리(不利)’, ‘길(吉)/ 흉(凶)’ 등이 그것이다.
<제7장> 우환(憂患)을 극복(克服)하는 9가지 지혜
[7]-1 易之興也 其於中古乎인저?
作易者 其有憂患乎인저?
역(易)이 생겨난 것은 중고(中古)의 때인가?
역을 만든 사람은 우환(憂患)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 [강 설(講說)] —————
역(易)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천지만물의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고(中古)의 시대 즉 은(殷)나라 말기에서 주(周)나라 초기에 이르는 혼란기에 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혼란한 세상에서는 그 난국(亂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처방이 많게 마련이다. 역(易)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7]-2 是故로 履는 德之基也요 謙은 德之柄也요
復은 德之本也요 恒은 德之固也요
損은 德之修也요 益은 德之裕也요
困은 德之辨也요 井은 德之地也요 巽은 德之制也라.
그래서
리괘(履卦)는 덕을 실천하는 기본이 되고, 겸괘(謙卦)는 덕을 실천하는 손잡이이며,
복괘(復卦)는 덕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고, 항괘(恒卦)는 덕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손괘(損卦)는 덕을 닦는 것이고 익괘(益卦)는 덕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다.
곤괘(困卦)는 덕을 분별하는 것이고, 정괘(井卦)는 덕을 다지는 것이며
손괘(巽卦)는 덕을 제어하는 방법이다.
[7]-3 履는 和而至하고
謙은 尊而光하고
復은 小而辨於物하고
恒은 雜而不厭하고
損은 先難而後易하고
益은 長裕而不設하고
困은 窮而通하고
井은 居其所而遷하고
巽은 稱而隱하니라
리괘(履卦)의 지시를 따르면 조화롭게 되어 진리에 이르고,
겸괘(謙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존귀해져서 빛나게 된다.
복괘(復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작은 일이라도 하더라도 다른 것과 구별되고,
항괘(恒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복잡해져도 염증이 나지 않는다.
손괘(損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처음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쉽고,
익괘(益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오래동안 넉넉하여 꾸미지 않는다.
곤괘(困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곤궁하다가도 통하고,
정괘(井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모두를 좋은 방향으로 옮기며,
손괘(巽卦)의 지시를 실천하면 자기의 역할을 잘 하지만 외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7]-4 履以和行코 謙以制禮코
復以自知코 恒以一德코
損以遠害코 益以興利코
困以寡怨코 井以辨義코
巽以行權하니라. 右는 第七章이라
리괘(履卦)로써 조화롭게 행동하고, 겸괘(謙卦)로써 예를 제정한다.
복괘(復卦)로써 자신을 알고, 항괘(恒卦)로써 덕을 한결같이 한다.
손괘(損卦)로써 해로움을 멀리하고. 익괘(益卦)로써 이로움을 일으킨다.
곤괘(困卦)로써 원망 받을 일을 줄이고, 정괘(井卦)로써 의로움을 변별하며,
손괘(巽卦)로써 권도(權道)를 행한다.
* [강 설(講說)] —————
『주역(周易)』<계사전·하> (제7장)에서는 ‘우환(憂患)이 생겼을 때 대처하는 아홉 가지 지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 9가지 지혜가 바로 이(履), 겸(謙), 복(復), 항(恒), 손(損), 익(益), 곤(困), 정(井), 손(巽) 등의 괘에 담겨 있다. 예컨대, 이(履)는 ‘덕을 실천하는 기본이 되는 것(履 德之基也)’이라 하고 그 지혜로 풀기를 ‘이괘(履卦)의 실천은 조화를 이루어 지극하다(履 和而至)’고 했으며, 그리고 또 ‘이괘(履卦)로써 조화롭게 행동하라(履以和行)’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괘는 단순히 ‘이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이행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조화(調和)의 지극함은 범의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는 상태이니, ‘조심조심’ 이행하여 완전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밝은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맹자(孟子)』의 <고자장구·상>(제8장)에서 공자는 ‘조심(操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08-02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 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03 故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 04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어질고 의로운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그 양심을 놓아버리는 것이 또한 도끼가 나무에게 아침마다 가서 베는 것과 같으니, 그러고서도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낮과 밤이 양심을 불어나게 하는 것과 새벽에 기운에 있어서도, 그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서로 비슷한 것(여기서는 양심 또는 본마음을 뜻함)이 거의 드문데, 그 아침과 낮에 하는 소행이 이를 꽁꽁 묶어 없애버리니 꽁꽁 묶어서 없애는 것을 반복하면 야기(夜氣)도 양심(良心)을 보전할 수가 없다. 야기(夜氣)가 보존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 다름이 멀지 않다.
사람들은 그 금수(禽獸) 같은 모습만 보고서 일찍이 좋은 재질(才質)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본래의 모습이겠는가?
그러므로 진실로 기르는 기회를 얻으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로 그 기르는 기회를 잃으면 소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아두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 일정한 때가 없어서 그 방향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하셨다.”
❊ 주역에서 우환(憂患)을 극복(克服)하는 아홉 가지 지혜(智慧)
우환 극복의 괘 | 괘상(卦象) | 덕(德)의 갈래 | 덕(德)의 지혜 | 덕(德)의 실천 |
[10] 天澤 履 |
| 德之基 | 和而至 | 履以和行 |
[15] 地山 謙 |
| 德之柄 | 尊而光 | 謙以制體 |
[24] 地雷 復 |
| 德之本 | 小而辨於物 | 復以自知 |
[32] 雷風 恒
|
| 德之固 | 雜而不厭 | 恒以一德 |
[41] 山澤 損 |
| 德之修 | 先雜而后易 | 損以遠害 |
[42] 風雷 益 |
| 德之裕 | 長裕而不設 | 益以興利 |
[47] 澤水 困 |
| 德之辨 | 窮而通 | 困以寡怨 |
[48] 水風 井 |
| 德之地 | 居其所而遷 | 井以辨義 |
[57] 重風 巽 |
| 德之制 | 稱而隱 | 巽以行權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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