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원 박사 周·人·工 四書三經] *<제112강> (2018.07.02.)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제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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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역(周易) 공부 ☞ 계사전·하 [제8장~12장]
<제8장> ; 역(易)의 도(道)
[8]-1 易之爲書也 不可遠이오 爲道也
屢遷이라 變動不居하여 周流六虛하여
上下 无常하며 剛柔 相易하여 不可爲典要요 唯變所適이니
其出入以度하여 外內에 使知懼하며 又明於憂患與故라
无有師保나 如臨父母하니
初率其辭而揆其方컨댄 旣有典常이어니와
苟非其人이면 道不虛行하나니라. 右는 第八章이라
역(易)이라고 하는 것[책]은 멀리할 수 없는 것이요 그 도(道)는 항상 옮겨 다닌다.
변하고 움직여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두루 천지사방[六方]에 흐른다.
상하(上下)가 일정함이 없으며 강유(剛柔)가 서로 교차하여 전형적인 표준을 만들 수가 없고
오직 변화를 따라갈 뿐이니, 그 출입이 법도로써 하여 안팎으로 (하늘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하며 또 우환(憂患)과 그 까닭을 밝힌다.
(나를 인도하는) 스승과 보호자가 없을 때는 부모님이 임(臨)하는 것과 같고,
처음 그 효사(爻辭)를 따라가서 그 방도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덧 일정한 법칙을 알게 된다.
진실로 참다운 사람이 아니면 도(道)가 어느 곳에서도 행해지지 않는다.
· ‘屢遷’(누천)에서 ‘屢’는 ‘자주, 항상’. ‘屢遷’은 ‘항상 옮겨다니다’의 뜻.
· ‘周流六虛’에서 ‘六虛’는 ‘상·하 / 동·서·남·북’ 즉 ‘육방(六方)’을 말한다
· ‘上下’는 ① ‘위와 아래’ ② ‘오르고 내리는 것’
· ‘剛柔 相易’(강유상역)에서 ‘剛柔’는 음양(陰陽)을 가리킨다
· ‘不可爲典要’에서 ‘典要’는 ‘표준이 되는 전형적인 기준’을 뜻한다.
· ‘无有師保’에서 ‘師’는 ‘사보(師保)’, ‘保’는 ‘태보(太保)’를 말함이니 ‘스승’의 뜻이다.
· ‘初率其辭而揆其方’에서 ‘揆’(규)는 ‘헤아리다’
· ‘旣有典常’에서 ‘有’는 ‘소유하다’, 여기서는 ‘알게 된다’
* [강 설(講說)] —————
역리(易理)는 우환이나 난관을 극복하는 지혜를 제시해 주기 때문에, 태사나 태보와 같은 훌륭한 스승이나 지도자가 있어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역이 늘 나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일일이 깨우쳐 주고 가르쳐 주기 때문에 부모(父母)와 같은 것이다. 역은 천지(天地)의 도(道)를 통하여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가르쳐주는 지혜(智慧)를 담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가르치는 것이 이와 같다.
<제9장> ; 육효(六爻)의 위상과 특성
[9]-1 易之爲書也 原始要終하여 以爲質也하고
六爻相雜은 唯其時物也라
其初는 難知요 其上은 易知니 本末也라
初辭擬之하고 卒成之終하니라
若夫雜物와 撰德과 辨是與非는 則非其中爻면 不備하니라
噫라, 亦要存亡吉凶인댄 則居可知矣어니와
知者 觀其彖辭하면 則思過半矣리라
역(易)이라고 하는 것[책]은
근원(根源)에서 시작하여 긴요한 것에서 끝나니 그것으로써 본질을 삼는다.
육효(六爻)가 서로 섞여있는 것은 오직 그 시(時)와 물성(物性)에 달려있다.
그 처음[初爻]은 알기 어렵지만 그 상효(上爻)는 쉽게 알 수 있으니
(그것이) 본말(本末)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초효(初爻)의 효사에서 근본을 헤아리고 마침내 상효(上爻)에서 그 말(末)을 이룬다.
대저 음물과 양물이 섞여있고 덕을 헤아리며 옳고 그름을 가려내려면
‘중간의 효’[二爻와 五爻]가 아니면 구비되지 않는다.
아, 존망과 길흉을 요약하면 역리를 거의 알 수 있다.
지혜로운 자는 그 단사(彖辭)를 보면 절반 이상을 알 수 있다.
* [강 설(講說)] —————
· ‘原始要終’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① ‘근원(根源)에서 시작하여 필요(必要)한 곳에서 끝난다’ ② ‘原’은 ‘관찰하다’는 뜻이 있고 ‘要’는 ‘탐구하다’는 뜻이 있으므로, ‘처음[初爻]를 관찰하기 시작하여 끝[上爻]에 이르기까지 탐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손기원)
그리고 이는 주역(周易) 공부에서 ‘처음 시작은 알기 어렵지만, 공부하고 나면 그 마지막은 쉽게 알 수 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 ‘以爲質也’에서 ‘以~’의 목적어는 ‘原始要終’. 그러므로 ‘原始要終으로써 본질을 삼는다.’
· ‘唯其時物也’에서 ‘時’는 ‘상황(狀況)’, ‘物’은 ‘물성(物性), 즉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이다.
· ‘其初는 難知요 其上은 易知니’에서 ‘其初’와 ‘其上’은 각각 ‘초효’와 ‘상효’를 가리키는 말.
· ‘初辭擬之’는 '초사의 효사가 그것[역의 본질]'을 헤아린다.‘
· ‘卒成之終’는 마침내 마지막[상효]에서 그것[역의 본질]을 이룬다.‘
· ‘若夫雜物’에서 ‘若夫~’는 어두에 들어가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자전에 보면 ‘至於(~에 이르다)’의 뜻이 있다. ‘雜物’은 ‘양물과 음물이 섞여 있다’ 즉 괘(卦)는 양효와 음효가 섞여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 ‘撰德’에서 ‘撰’(찬)은 ‘선(選)’과 통용된다. 그러므로 ‘덕(德), 즉 특성을 가려내는 것’
· ‘則非其中爻’에서 ‘中爻’는 ① 괘에서 상하괘의 중심을 이루는 ‘이효’와 ‘오효’를 가리키기도 하고 ② 괘의 초효와 상효를 제외한 ‘이효-삼효-사효-오효’를 가리키기도 하며 ③ 괘의 한 가운데 있는 ‘삼효와 사효’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앞 문장에서 초효와 상효를 말하고 여기에서는 가운데의 효의 기능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다.
· ‘亦要存亡吉凶’에서 ‘要’는 ① ‘, 요약하다, 핵심을 이해하다’ ② ‘대체로’의 뜻이 있다.
[9]-2 二與四 同功而異位하여 其善이 不同하니
二多譽코 四多懼는 近也일새니
柔之爲道 不利遠者컨마는
其要无咎는 其用柔中也일새라
三與五 同功而異位하여
三多凶코 五多功은 貴賤之等也일새니
其柔는 危코 其剛은 勝耶인저 右는 第九章이라
이효(二爻)와 사효(四爻)는 역할은 같으나 위상이 다르므로 그 좋은 점이 같지 않다.
이효(二爻)는 영예로운 일이 많은 반면, 사효(四爻)에는 두려움이 많은데
그것은 (四爻가 五爻에) 가깝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것의 도(道)는 멀리 있는 것을 이롭게 않게 여기는 데도
그것이 대체로 허물이 없는 것은 부드러움을 가지고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삼효(三爻)와 오효(五爻)는 기능이 같으나 위상이 다르므로
삼효(三爻)에는 흉함이 많고, 오효(五爻)에는 공이 많은데 귀천의 차등(差等)이 있기 때문이다.
(三爻나 오효가) 음효(陰爻)일 경우에는 위태롭고,
양효일 경우에는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 [강 설(講說)] —————
이효(二爻)와 사효(四爻)는 음의 자리로서 그 역할은 비슷하다. 두 효 모두 전체를 이끄는 오효(五爻)를 보좌한다는 입장에서 그 역할이 비슷한 것이다. 이효(二爻)는 오효(五爻)의 짝으로서 응하고 사효(四爻)는 오효(五爻)를 최측근에서 보좌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 위상이 다르다.
오효(五爻)는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효(四爻)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하층부의 전체를 이끌고 보좌하는 이효(二爻)의 역할을 더 중시한다. 그래서 이효(二爻)가 사효(四爻)보다 명예로움이 많다.
삼효(三爻)와 오효(五爻) 역시 양의 자리에 있으면서, 양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오효(五爻)는 상층부의 중심에 있으면서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자리인 반면, 삼효(三爻)는 하층부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개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 위치는 다르다.
<제10장> ; 삼재(三才)와 육효(六爻)
10 易之爲書也 廣大悉備하여
有天道焉하며 有人道焉하며 有地道焉하니
兼三才而兩之라 故로 六이니
六者는 非他也라 三才之道也니
道有變動이라 故曰爻요
爻有等이라 故曰物이요
物相雜이라 故曰文이요
文不當이라 故로 吉凶이 生焉하니라. 右는 第十章이라
역(易)이라고 하는 책은 광대하여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는 하늘의 이치가 있고, 사람의 (삶의) 도리가 있으며 땅의 이치가 있다.
이 세 가지를 겸하여 둘로 포개었기 때문에 여섯이 된다.
이 여섯 효(爻)는 다름이 아니라 세 이치의 도(道)이다.
도에는 변화와 움직임이 있으므로 효(爻)라고 한다.
효에는 물(物)이라고 하는 등차가 있으므로 물(物)이라는 형태로 구체화 된다.
물(物)은 서로 뒤섞이므로 여러 형태의 모양새가 갖추어진다.
갖추어진 모양새는 (타당한 것도 있지만) 타당하지 않는 것도 있다.
따라서 길흉이 생겨난다.
* [강 설(講說)] —————
· ‘有天道焉’에서 ‘~焉’은 종결의 어조사이지만 ‘거기에’라는 지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 ‘爻有等 故曰物’에서 ‘物’은 음물(陰物)과 양물(陽物) 등의 지위, 즉 ‘초효(初爻), 이효(二爻), 삼효(三爻), 사효(四爻), 오효(五爻), 상효(上爻)’의 자리를 말한 것이다.
· ‘物相雜 故曰文’에서 ‘文’은 ‘모양새, 무늬, 모양’ 즉 두 가지 무늬 음효(陰爻)와 양효(陽爻).
· ‘文不當’은 ‘(爻가) 항상 타당한 것은 아니다’ 즉 음의 자리에 양이 오고 양의 자리에 음이 오는 경우를 말한다. 음의 자리에 음이 오고 양의 자리에 양이 오는 것을 정(正)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부정(不正)이라고 한다. 정(正)/ 부정(不正)에 따라 길흉이 생긴다.
<제11장> ; 역(易)의 도(道)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 周之盛德耶인저 當文王與紂之事邪인저
是故로 其辭 危하여 危者를 使平하고 易者를 使傾하니
其道 甚大하여 百物을 不廢하나
懼以終始면 其要 无咎리니 此之謂易之道也라. 右는 第十一章이라
역(易)이 생겨난 것은 은(殷)의 말세에 해당하는가, 주(周)의 성세에 해당하는가!
문왕(文王)과 주(紂)에 해당하는가!
그래서 그 설명하는 말[辭]이 위태로움에 대비하는 형태를 취한다.
위태롭다고 생각하고 대처하는 자에게는 평안하게 만들고,
안이하게 대처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을 그르치게 한다.
역(易)의 도(道)는 아주 커서 만물의 삶을 다 충족시키고 폐지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관해야 하는 것이니, 그 요점은 허물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역(易)의 도(道)라고 한다.
* [강 설(講說)] —————
· ‘危者’(위자)는 ‘위태롭게 여기는 자’, 역사적으로 문왕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 ‘易者 使傾’에서 ‘易者’(이자)는 ‘안이하게 생각하는 자’. 역사적으로 걸왕이나 주왕이 여기에 해당한다. ‘使傾’은 ‘망하게 한다.’ ‘危者 使平 易者 使傾’은『중용』제 17장에 나오는 ‘栽者 培之 傾者 覆之’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17-01 子曰 舜其大孝也與 德爲聖人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02 故大德 必得其位 必得其祿 必得其名 必得其壽
03 故天之生物 必因其材而篤焉 故栽者 培之 傾者 覆之
04 詩曰 嘉樂君子 憲憲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保佑命之 自天申之
05 故大德者 必受命
공자가 말씀하셨다. “순(舜)은 대효(大孝)이시도다. 덕(德)의 측면에서는 성인(聖人)이 되셨고 높은 벼슬의 측면에서는 천자(天子)가 되셨으며 부유함에 있어서는 사해(四海) 안을 다 가지셨다. 종묘에서 그 제사를 지냈고 자신이 이를 보존하였다.”
그러므로 그 덕은 반드시 그 지위를 얻으며 반드시 그 오랜 삶을 얻는다.
그러므로 하늘이 만물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그 재목에 따라서 하되 그것을 다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가꾸는 것을 북돋아주고 기울어지는 것을 뒤엎어버린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아름답고 즐거운 군자여, 밝고 아름다운 덕(德)이 있도다. 백성들에게 적합하고 관리들에게 적합하여 녹(祿)을 하늘에서 받았도다. 백성들을 도와주고 인도하니 하늘에서 녹(祿)을 거듭 내려주셨도다.” 하였다.
그러므로 큰 덕(德)이 있는 자는 반드시 명(命)을 받는다.
<제12장> ; 역(易)의 역할(役割)과 비전
[12]-1 夫乾은 天下之至健也니 德行이 恒易以知險하고
夫坤은 天下之至順也니 德行이 恒簡以知阻하나니
能說諸心하며 能硏諸(侯之)慮하여
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之亹亹者니
건(乾)은 천하에서 가장 꿋꿋한 것이니, 건괘(乾卦)의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의 덕행은
항상 평이(平易)하지만 험(險)한 것이 있음을 안다.
곤(坤)은 천하에서 가장 유순한 것이니 곤괘(坤卦)의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의 덕행은
항상 간편(簡便)하지만 저지당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한 자는 마음속에서 기뻐하고, 생각을 다듬어서
천하의 모든 길흉(吉凶)을 단정하고 천하의 모든 작용(作用)을 이루는 자이다.
· ‘德行’은 ‘하늘의 뜻을 실행하는 것’
· ‘能說諸心’에서 ‘諸’는 ‘之於’의 축약 형태. ‘說’은 ‘悅’과 통용
· ‘能硏諸(侯之)慮’에서 주자는 ‘侯之’ 두 자를 연문(衍文)으로 보았으나 문맥상 타당하다.
· ‘成天下之亹亹者’에서 ‘亹’(미)는 ‘힘쓰다, 부지런하다, 노력하다’는 뜻이니, ‘成天下之亹亹者’는 ‘천하가 힘쓰는 것(작용)을 이루다’는 뜻이다.
* [강 설(講說)] —————
하늘의 작용은 매우 굳세면서 일정하기 때문에 누구나 알기 어렵지 않다. 봄이 가면 항상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항상 가을이 온다. 하늘의 이러한 작용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에 대처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험하고 어려운 상황이 있다. 폭풍이 불 때도 있고 가뭄이 들 때도 있다.
땅의 작용은 매우 유순하고 정직하다. 하늘의 작용을 묵묵히 받아 따르면서, 인간의 행위에 정직하게 반응한다. 콩 심으면 콩을 키워주고 팥 심으면 팥을 키워준다. 그래서 땅은 일구고 가꾸기가 간편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쉽지 않은 일이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작용을 알고, 인도를 실천할 있는 사람은 역리를 알고 실천함으로써 마음속이 기쁨으로 충만한 자이다. 즉 생각이 역리로 다듬어져서 하늘과 땅의 모든 작용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성인은 모든 것에 원만하게 대처할 수 있다.
[12]-2 是故로 變化云爲에 吉事 有祥이라
象事하여 知器하며 占事하여 知來하나니
天地設位에 聖人이 成能하니
人謀鬼謀에 百姓이 與能하나니라
八卦는 以象告하고 爻彖은 以情言하니 剛柔 雜居而吉凶을 可見矣라
이런 까닭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말하고 행동하여
길사(吉事)에는 상서로움이 있다.
일에 나타나는 형상을 보면 (그에 대처하는) 기구(器具)를 만들 줄 알고,
일에 대해서 점(占)을 침으로써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안다.
천지(天地)가 각각의 자리를 설정하고
성인(聖人)이 천지와 더불어 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이어 사람에게 의논하고 귀신에게 모의함으로써
백성들이 참여하여 바르게 살 수 있는 능력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팔괘(八卦)는 형상으로 알려주고, 효사(爻辭)와 단사(彖辭)는 실상을 말해 준다.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섞여 있어서 길흉을 알 수 있다.
· ‘變化云爲’에서 ‘云爲’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
· ‘變化云爲에 吉事 有祥이라 象事하여 知器하며 占事하여 知來하나니’ ; 공자는 주역의 효용을 사(辭)-언(言) / 변(變)-동(動) /상(象)-기(器) / 점(占)-복서(卜筮)으로 요약했다.
· ‘與能’은 ‘거(擧)’의 의미도 있다. ‘들어올리다, 받들다, 공경하다’
· ‘爻彖 以情言’에서 ‘爻彖’(효단)은 ‘효사(爻辭)와 단사(彖辭)’. ‘情’은 ‘실상’
· ‘剛柔’는 음양(陰陽)을 말한다.
* [강 설(講說)] —————
인간을 중심으로 보면, 하늘은 머리 위에 있고, 땅은 발 아래에 있다. 그래서 사람이 똑 바로 서면 하늘과 땅이 제 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지만, 거꾸로 서 있거나 누워 있으면 하늘과 땅은 제 위치에 있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바로 선다’는 것은 마음이 삶의 주가 되고, 몸이 그 명령을 듣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욕심이 가득하게 되면 육체가 욕구하는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여 그것을 삶의 목적으로삼는다. 그리하여 몸이 삶의 주가 되고 마음이 그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된다. 이것은 거꾸로 된 삶이다. 욕심을 버리고 역리에 따라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형태가 된다.
역리(易理)를 실천하는 성인(聖人)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딛고 선다. ‘성인이 능력을 갖추었다’고 한 것은 ‘똑바로 서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의 출현은 사람들이 바로 설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인(人)이라는 말은 원래 동이족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으나, 점차 귀족이라는 의미로 쓰이다가 나중에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명사로 확대되어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의 인은 귀족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귀(鬼)는 원래 음양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니, 여기서는 인간의 순수한 정신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귀족]도 성인의 본보기로 역리를 따라서 사는 방법을 꾀하고 순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이를 도모하여 일반 백성들도 이를 꾀하여 모두가 참여하여 역리에 따라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12]-3 變動은 以利言하고 吉凶은 以情遷이라
是故로 愛惡相攻而吉凶 生하며
遠近이 相取而悔吝이 生하며
情僞 相感而利害 生하나니
凡易之情이 近而不相得하면
則凶或害之하며 悔且吝하나니라
변하고 움직이는 것은 이로움으로써 말하고 실상은 길흉에 따라서 옮겨간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이 서로 부딪혀 길흉이 생기고,
먼 것과 가까운 것을 서로 번갈아 취하기 때문에 뉘우칠 일이나 곤란한 일이 생기며,
참과 거짓이 서로 교감하여 이로움과 해로움이 생긴다.
무릇 역(易)이 깨우쳐 주는 진리가 가까이 있는 데도 보고 터득하지 못하면
곧 흉하게 되고 혹 그 진리를 해치면 후회하게 되고 곤란해진다.
· ‘愛惡’(애오)에서 ‘愛’는 음양의 조화를 말한다. 예컨대 오효(五爻)가 양(陽)이고 이효(二爻)가 음(陰)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역에서 이를 ‘상응(相應)’이라고 한다. ‘惡’은 그 짝이 같은 음이거나 같은 양일 경우이다. 이를 ‘불응(不應)’이라고 한다.
· ‘遠近’에서 ‘遠’는 ‘서로 짝이 되는 효(爻)’를 말하고, ‘近’은 ‘이웃이 되는 효’를 말한다.
· ‘情僞’에서 ‘情’은 양의 자리에 양이 오고 음의 자리에 음이 오는 것을 말하고, ‘僞’는 음의 자리에 양이 오고 양의 자리에 음이 오는 경우를 말한다.
· ‘近而不相得’에서 ‘相’은 ‘보다[看]’의 뜻이 있다.
* [강 설(講說)] —————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역(易)의 이치(理致)이다. 그래서 이러한 길을 제시할 때에는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 등등 ‘여차여차 하는 것이 이롭다’는 형식으로도 표현했다.
실제로 역(易)의 지시에 따라 이로운 방향으로 실행했는가 못했는가에 대한 결과에 따라서 판단한 것이 길흉이다. 여기서 ‘情’이라고 한 것은 역리에 적절히 대처했는가 아닌가의 실상(實相)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역리에 적절히 대처하는 경우는 모든 것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흉(凶)함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만 있으면 길(吉)함이 없다.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엇갈리기 때문에 길흉(吉凶)이 생긴다.
진리(眞理)는 항상 가까이에 있다. 도끼를 들고 도끼 자루를 벨 때 그 베는 원리가 가까이에 있는 것과 같다. 자신이 들고 있는 도끼의 자루를 보고 그와 같은 것을 베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까이 있는 진리를 보고 취하면 문제가 없지만, 진리가 멀고 고원한 데 있는 것으로 여겨 취하려 하면 결국 후회하고 한스럽게 되는 일이 생긴다. 역리를 진실하게 따르면 이롭고 거짓으로 따르면 해롭다.
[12]-4 將叛者는 其辭 慙하고
中心疑者는 其辭 枝하고
吉人之辭는 寡하고 躁人之辭는 多하고
誣善之人은 其辭 游하고
失其守者는 其辭 屈하니라. 右는 第十二章이라
모반(謀叛)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말에 부끄러움이 있고,
마음속이 의심(疑心)의심스러운 자는 그 말이 산만하다.
길한 사람의 말수는 적고 조급한 사람은 그 말이 많다.
착한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 사람은 그 말이 왔다갔다하고
지조를 잃은 사람은 그 말이 비굴하다.
· ‘將叛者는 其辭 慙하고’ ; ‘장차 모반을 하려고 하는 경우의 괘사나 효사는 부끄럽다.’
예컨대 [47] 택수(澤水) 곤괘(困卦)의 괘사나 삼효(三爻)의 효사가 그렇다.
[47] 곤괘(困卦)의 괘사 ; ‘困, 亨, 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곤란한 형국이다. 밝고 바른 마음으로 해야 한다. 대인을 만나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그러나 말을 해도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곤괘 육삼(六三)의 효사는 참으로 참담하다. ‘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육삼(六三)은 돌에 눌려 곤란을 당하고 가시덤불에 앉아 있다. 자기의 집에 들어가도 자기의 부인을 볼 수[면목이] 없으니 흉하다.)
육삼(六三)은 양의 자리에 음이 왔으므로 부정(不正)이고 중(中)도 아니다. 하층부의 곤란한 상황의 극에 달했다. 그래서 ‘돌에서 곤란(困難)을 겪고 가시덤불 속에서 들어있으니’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돌은 육삼의 위에 있는 강양의 구사와 구오이고 가시덤불은 하괘인 감괘이다. 그야말로 참담한 곤경(困境)에 있는 상황이다. 스스로 궁핍하고 난관에 처해 있으니 ‘자기의 집에 들어가도 자기의 부인을 볼 수[면목이] 없으니 흉하다’고 한 것이다.
· ‘吉人之辭는 寡하고’(길인의 괘사나 효사는 짧다.) 예컨대 [14] 화천(火天) 대유(大有)괘와 [34] 뇌천(雷天) 대장(大壯)괘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