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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基元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4강> (2016.1.25)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주역(周易)』으로『대학(大學)』읽기 * (2)
1.『대학(大學)』주요 내용과 체제
☆…『대학(大學)』의 내용은 <경(經)> 1장(章)과 <전(傳)> 10개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傳)> 10개 장(章)은 경일장(經一章)에 나오는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을 덕목별로 구체화하여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주자(朱子)의『대학장구』에서 <전1장>에는 삼강령의 ‘명명덕(明明德)’을, <전2장>에는 ‘친민(親民)’을, <전3장>에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을, <전4장>에는 ‘본말(本末)’’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전5장>에는 팔조목 '격물치지(格物致知)'에 해당하는 ‘격물보장(格物補章)을, <전6장>은 ‘성의(誠意)’를, <전7장>은 ‘정심(正心)·수신(修身)’을, <전8장>은 ‘수신(修身)·제가(齊家)’를, <전9장>은 ‘제가(齊家)·치국(治國)’을, <전10장>은 ‘평천하(平天下)’와 ‘총론(總論)’을 서술하고 있다.이 중 <전4장>의 ‘본말(本末)’의 장(章)은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의 덕목에 들어가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본말’을 하나의 장구(章句)로 설정한 것은 문제가 있는 듯이 보인다.
2.『서경(書經)』과『시경(詩經)』에 대하여
☆…『대학(大學)』의 각 <전(傳)>의 장구(章句)에는『서경(書經)』과『시경(詩經)』의 구절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서경(書經)』은 요(堯)—순(舜)—하(夏, 禹)—은(殷, 湯)—주(周) 문무(文武)에 걸친 기록으로, 일명『상서(尙書)』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여,『서경(書經)』은 요(堯) 임금에서 시작하여 진(秦)나라 목공 때의 이르기까지의 정치철학적인 내용에 대한 기록인데, 이 기록의 편찬 체제는 전하는 자에 따라 약간 씩 차이가 있다. 이기동 박사의『서경강설』에는 우서(虞書)·하서(夏書)·상서(商書)·주서(周書)로 목차를 갖추어 해설하고 있다.
☆…『시경(詩經)』은 기원전 12세기경부터 시작되는 서주(西周)에서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 초기까지 불렸던 노래 가사의 모음집이다. 내용은 궁중의 향연이나 제례에서 불리던 노래 가사나 민간에서 불리던 민요의 가사로 국풍(國風) 160편, 소아(小雅) 80편, 대아(大雅) 31편, 송(頌) 40편 합계 311편인데, 이 중에서 소아(小雅) 6편은 편명만 있고 가사가 없으므로 실제로는 305편이다. 국풍(國風)은 각국의 민요, 아(雅)는 조정의 음악, 송(頌)은 종묘 제사 때 연주하던 노래 가사이다. 공자(孔子)가 당시 유행하던 3,000여 편의 노래 가사 중에서 300여 편을 정리하여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오늘날의『시경(詩經)』은 공자에 의해서 정리된 것이다. 공자는 이『시경(詩經)』의 시(詩)를 두고 “사무사(思無邪)”라 했다.(『논어(論語)』)
오늘의『대학(大學)』읽기 — (전(傳) 1~4장)
<經一章>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 <전(傳) 1장> ‘명명덕(明明德)’의 장(章)
01 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서경(書經)』의 ‘강고(康誥)’에는 “능히 덕(德)을 밝힌다.”고 하였고, ‘태갑(太甲)’에서는 “이 하늘의 밝은 명(命)을 돌아본다.”고 하였으며, 제전(帝典)에서는 “능히 큰 덕을 밝힌다.”고 하였으니 모두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강설(講說)] ———
『대학(大學)』의 길은 덕(德)을 밝히는 것, 즉 명명덕(明明德)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天]’이란 무엇인가? 인간 존재의 본질은 마음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성(性), 즉 ‘살려는 의지’인데 이 살려는 의지는 나의 육체와 남의 육체 그리고 만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동일자이다. 나의 본질이 곧 남의 본질이므로 이는 나에게 국한 되지 않는 전체적인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살려는 의지’는 나의 본질로서 나의 육체에 작용하는 면에서 보면 개별성을 갖지만, 나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보면 전체성을 갖는다. 이 ‘살려는 의지’의 전체성을 ‘하늘[天]’이라 표현하고 개별성을 성(性)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천(天)의 명(命)이란 모든 삶을 전체성의 견지에서 조화롭게 유도해 나가는 의지라고 할수 있다. 천(天)이 주체이고 명(命)을 그 주체의 작용이다.
[주역으로 읽기] ———
명명덕(明明德)은 주역의 팔괘 중, 화(火)괘[☲]에 해당한다. 불은 빛을 발하니 광명을 상징한다. 그런데 어둠을 밀어내고 떠오르는 아침 해는 참다운 인간[君子]의 밝은 덕(德)이 세상에 드러내는 표상이다. 군자(君子)는 아침의 순결한 햇살에 자신을 겸허하게 비추듯이 덕을 밝힌다.『주역(周易)』의 진괘(晉卦, 火地 晉)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밝음이 세상에 나옴이 진(晉)이니, 군자(君子)가 보고서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象曰 明出地上 晉 君子以 自昭明德)”고 했다. 지상에 떠오르는 태양(太陽)을 보며 군자(君子)는 자신의 밝은 심덕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정이천(程伊川)의『역전(易傳)』에 이르기를 “군자의 밝음이 지상으로 나와 더욱 광명정대한 상을 관찰하여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 가려진 것[어둠]을 제거하고 앎을 극진히 함은 밝은 덕을 자신에게 밝히는 것이요, 명덕(明德)을 천하에 밝힘은 밝은 덕을 밖에 밝히는 것이다.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밝힌다고 말한 것이다.”(君子觀明出地上而益明盛之象 而以自昭其明德 去蔽致知 昭明德於己也 明明德於天下 昭明德於外也 明明德 在己 故云自昭)
* <전(傳) 2장> ; ‘친민(親民)’의 장(章)
02 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 君子無所不用其極
탕(湯) 임금의 세숫대야에 새겨진 명문에는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하고 날로날로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고 하였고,『서경(書經)』의 ‘강고(康誥)’에서는 “백성을 진작시켜 새롭게 한다.”고 하였으며,『시경(詩經)』에서는 “주나라는 비록 오래 된 나라이나 그 통치 이념과 기상이 계속 새롭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군자는 그 최선의 방법을 쓰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강설] ———
아침마다 깨끗이 씻는 일은 백성들을 위하여 늘 참신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날로 새로워지기’를 기원하는 다짐이다. 백성의 임금은 백성과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주역으로 읽기] ———
<전(傳) 2장> ‘친민(親民)’과 <전(傳) 3장> ‘지어지선(止於至善)’은『주역(周易)』의 동인괘(同人卦)의 구현 덕목이다. ‘천화(天火) 동인(同人)’이니 ‘남과 하나가 되는 형국이다.’ 초구(初九)의 효사(爻辭)가 말한다. “문(門)에서 남과 한마음이 되면 허물이 없다.” 상(象)에서 말했다. “문을 나서면서 남과 한마음이 되는데,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初九 同人于門 无咎 象曰出門同人 又誰咎也) 이에 대해 이기동 선생이 강설한다. “초구(初九)는 구오(九五)와 육이(六二)의 주도하게 대동사회를 건설하려는 집단의 가장 어린 존재이다. 이 경우 의심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 … 육이(六二)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 문(門)에서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시작부터 한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괘(上卦)의 중심인 구오(九五)의 효사에서, “구오(九五)는 남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먼저 호통을 치고 울부짖고 나중에 웃음으로 달래야 한다. 큰 군대가 이겨야 서로 만날 수 있다.” 상(象)에서 말했다. “남과 하나가 되는데 먼저 호통을 쳐야 한다는 것은 가운데 있고 곧아야 하기 때문이다. 큰 군대라야 서로 만난다는 것은 상극관계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九五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象曰 同人之先 以中直也 大師相遇 言相克也)
* <전(傳) 3장> ;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장(章)
03 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시경(詩經)』에 “방기천리여, 오직 백성들이 머물 곳이로다.”고 하였고, 또『시경(詩經)』에 “면만하는 황조여, 언덕 기슭에서 머무는구나!” 하였으니 공자는 “머무는 데 있어서는 그(새들도) 머물 곳을 알거늘 사람이 새만도 못할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강설] ———
『서경(書經)』의 체제는 풍(風)·아(雅)·송(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풍(風)에는 다시 국풍(國風)이 있고, 아(雅)에는 소아(小雅)와 대아(大雅)가 있으며, 송(頌)에는 주송(周頌)·노송(魯頌)·상송(商頌)이 있다. 상송(商頌)의 현조편(玄鳥篇)에는 ‘경기(京畿)지방 천리는 오직 백성들이 머물러 살 곳’이라 노래하고 있는데, 이 시는 당시의 경기지방은 덕(德)을 밝힌 왕에 의하여 친민(親民)이 되어 있는 지선(至善)의 이상사회임을 노래한 것이다. 또한 『서경(書經)』소아(小雅) ‘면만편’에서 수목이 빽빽하기 우거진 높은 언덕 가장자리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황조를 노래하고 있다. 새도 가장 살기 좋은 곳에 머물러 살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그러하지 못하니 공자는 이를 개탄한 것이다. 사람이 마땅히 머물러 살아야 할 곳은 지선(至善)의 상태가 아니겠는가.
[주역으로 읽기] ———
이 장(章) 새의 머무름과 관련된 것으로『주역(周易)』에 소과괘(小過卦)가 있다. ‘뇌산(雷山) 소과(小過)’라, 조금 지나친 형국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거두어야 하고 마무리해야 한다. (중략) 단(彖)에서 말했다. “… 나는 새의 형상이 있다. 나는 새가 소리를 남기니 마땅히 위로 가지 않고 아래로 가면 크게 길한 것은 위로 가면 거스르게 되고 아래로 가면 순조롭기 때문이다.” 상(象)에서 말했다. “산[☶] 위에서 번개[☳]가 치는 것이 소과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일을 할 때 좀더 공손하고, 상을 치를 때는 좀더 슬퍼하며, 소비할 때는 좀더 겸손하게 한다.”(小過, 亨, 利貞,… 彖曰, …有飛鳥之象焉,“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上逆而下順也. 象曰, 山上有雷, 小過, 君子以 行過乎恭, 喪過乎哀, 用過乎儉.) 위의『서경(書經)』에서 황조가 깃들어 살면서 노래하는 숲속은 새가 편안히 머물러 사는 최적의 장소이니, 사람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최적의 경지는 지선(至善)이 아니겠는가.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시경(詩經)』에 “인품이 아름다운 문왕(文王)이여, 오! 계속 빛나며 경건하게 머문다.” 하였으니, (문왕이) 남의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한 상태에 머물고 남의 신하가 되어서는 경건한 상태에 머물며, 남의 아들이 되어서는 효(孝)의 상태에 머물고, 남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慈)의 상태에 머물며, 나라의 사람들과 사귐에 있어서는 신(信)의 상태에 머문다.
[강설] ———
『서경(書經)』의 대아(大雅) 문왕편(文王篇)에는 ‘인격이 깊고 그윽한 문왕이 계속 인격의 빛을 발하면서 경건하게 최선의 상태에 머문다.’고 노래한다. 문왕은 한마음 성인이다.
문왕(文王)은 백성의 임금이 되었을 때 늘 어진 마음을 실천하는 데 마음이 머물러 있었다. 어진 마음, 즉 인(仁)이란 사람 인(人)과 두 이(二) 자로 구성된 글자이다.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서로 같은 부분을 가리킨다. 나의 마음과 남의 마음이 서로 같은 부분이 마음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성(性)이라고 본다면, 인(仁)은 곧 성(性)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임금의 도리로 인(仁)을 강조한 것이다. 문왕을 그 임금의 도리를 다한 사람이다.
문왕(文王)이 남[주왕(紂王)]의 신하가 되었을 때는 늘 경건한 마음을 간직하였다. 경(敬)이란,『주역(周易)』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의 “경(敬)으로써 속마음을 곧게 하고 의(義)로써 바깥일[행동]을 방정하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고 하는 문장에서 보면, 본래 있는 속마음이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곧은 마음 상태를 간직한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신하된 사람의 목적은 임금을 도와서 모든 백성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것이 충(忠)이다. 그러나 충(忠)이라도 바른 군주와 포악한 군주의 경우에 대응하는 양상은 다르다. 전자의 경우 신하는 임금과 하나가 되어 합심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임금을 추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충(忠)의 개념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 의(義)이다. 그러므로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義)가 있다.[君臣有義]’고 한 것이다.
문왕(文王)이 또 남[문왕의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을 때 계속 효(孝)를 다하였다. 온갖 욕망이 대립하는 세상의 갈등 속에서도 나를 믿어주고 감싸주며 희생까지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부모이다.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모든 정신적 갈등은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서 해소될 수 있다. 부모의 절대적인 사랑은 나의 정신적 고향이며 행복의 본향이다. 그 부모를 위한 자식의 참다운 마음이 바로 효(孝)이다. 문왕은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시었고, 그 마음이 확장되어 천하를 얻어 백성과 한마음이 되어 성덕을 베풀었다.
문왕(文王)이 남[아들 무왕(武王)]의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계속 아들에 대한 자애(慈愛)로운 마음을 유지하였다. ‘자(慈)’ 자는 ‘이[玆]’와 마음[心]의 합체어이므로 자(慈)는 곧 ‘이 마음’, 혹은 ‘그 마음’이다. 결국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란 자식과 부모가 ‘한마음’이 되는 상태이다.
문왕(文王)은 백성들과 사귈 때는 믿음[信]을 계속 유지하였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어떠한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할 수가 없다. 일반적인 인간관계란 사회생활 속에서 필요에 의해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단절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믿음이 필요하다. 참다운 믿음은 밝은 덕을 회복한 상태에서 서로 ‘한마음’이 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주역으로 읽기] ———
늘 경(敬)에 머물러 있는 문왕의 아름다운 덕(德)은 결국 백성과 한마음[信]을 이룸으로써 빛을 발한다.『주역(周易)』 태괘(泰卦)의 상(象)에서 말한다. “지[☷]와 천[☰]이 교감하는 것이 태(泰)니, 임금이 이 괘의 이치를 터득하여 천지의 운행원리를 마름질하여 이루고, 천지의 마땅한 운행방식을 돕고 살펴서 백성들을 돕는다.”고 했다.『주역(周易)』을 완성한 문왕(文王)이야말로 하늘과 땅, 그리고 백성을 하나가 되게 하여 통치한 성군이었다.
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저 기(淇)라는 강의 가장자리를 보니 푸른 대가 무성하도다. (인격이 도야되어) 문채가 나는 군자여! 자르는 듯하고 미는 듯하며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하도다.
근엄하고 빈틈이 없고 굳세며 밝고 드러나니 문채가 나는 군자여! 끝까지 잊을 수 없도다” 하였다. 자르는 듯하고 미는 듯하다는 것은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쪼는 듯하고 가는 듯하다는 것은 자기를 닦는 것이며, 근엄하며 빈틈이 없고 굳세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모습이고, 밝고 드러난다는 것은 위엄 있는 거동이며, 문채가 나는 군자여! 끝까지 잊을 수 없다는 것은 그 무성한 덕과 지극히 착한 것을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강설] ———
이 시는『시경(詩經)』<위풍(衛風)> ‘기욱편(淇澳篇)’에 있는 시인데, 그 내용은 위(衛)나라의 시인이 그 임금 무공(武公)의 무성한 덕(德)을 칭송한 것이다. … 저 기(淇)라는 강의 가장자리에 푸른 대가 무성하게 자라나 푸름을 더하고 있다. 마치 인격이 도야(陶冶)되어 환하게 빛나는 우리 임금 같다.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뼈나 뿔을 자르고 밀듯이 정성스럽게 학문을 하셨고 옥이나 돌을 쪼고 갈 때처럼 정성껏 수양을 하셨다. 그리하여 훌륭한 인격자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부족한 듯 조심스럽고 근엄하며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옥돌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환하게 드러나고 있으나, 문채(文彩)나는 우리 임금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있는 힘을 다하여 학문 도야하고 부단히 자기 인격 수양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라고 한다.
詩云 於戱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시경(詩經)』에 “아, 전왕은 잊혀지지 아니 하는도다!” 하였으니 군자(君子)는 그 임금 어진 것을 어진 것으로 여겨서 좋아하고, 그 임금의 하나되는 마음을 하나 되는 마음으로 여겨서 좋아하며, 소인(小人)은 그 임금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아서 좋아하고 그 임금의 이로움을 자신의 이로움으로 삼아서 좋아한다. 이 때문에 이 세상을 다하도록 잊혀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강설] ———
이 시는『시경(詩經)』<주송(周頌)> ‘열문편(烈文篇)’에는 전왕(前王)인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덕을 칭송하여 이르기를, “아, 전왕은 잊혀지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다. 진리를 구하는 군자들은 전왕의 어진 덕을 좋아한다. 그 어진 덕은 자신 속에 있는 덕을 밝히는 데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친(親)은 하나 되는 마음이다. 임금이 하나 되는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은 그 임금을 귀하게 여기고 덕을 사모하여 잊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첫째 진리를 공부하는 사람이며, 둘째 마음이 밝은 사람이며, 셋째 문왕과 무왕처럼 리더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월이 흘러도 만인의 추앙을 받는다.
[주역으로 읽기] ———
<전(傳) 3장> ‘지어지선(止於至善)’ 역시『주역(周易)』의 동인괘(同人卦)에 해당하니, 이 장에서는 ‘한마음[同人]’으로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 천화(天火) 동인(同人)이라. “들에서 (남과 한마음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떨쳐 일어나야 한다. 큰 내[川]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군자(君子)가 참아야 이롭다.” 단(彖)에서 말했다. “남과 하나가 되는 것은 부드러운 것이 자리를 얻어 가운데 있으면서 하늘에 응하기 때문에 남과 하나 된다고 했다. 들에서 남과 하나 되는 역할을 하고, 떨쳐 일어나야 하며, 큰 내를 건너야 이로운 까닭은 하늘이 행하기 때문이고, 문명으로써 건설하게 대처하고, 가운데 있고 바른 자리에 있으면서 응하는 것은 군자가 바르기 때문이다. 오직 군자라야 능히 천하에 뜻을 통할 수 있다.” 상(象)에서 말했다. “하늘[天 ☰]과 불[火 ☲]이 어울리는 것이 동인이다. 군자(君子)가 이 괘의 이치를 살펴 겨레와 하나 되고 사물을 변별한다.”(同人 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貞. 彖曰,“同人”柔得位得中而應乎乾, 曰同人. 同人曰“同人于野, 亨, 利涉大川”乾行也. 文明以健, 中正而應, 君子正也. 唯君子爲 能通天下之志. 象曰, 天與火, 同人, 君子以類族辨物.)
동인괘(同人卦)로 보면, 가족 구성원이 마음이 하나가 되면 이상적인 가정이 되고,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이상적인 국가가 되며,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이상세계가 된다. 여기서는 특정한 집단을 넘어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것을 ‘들에서 한마음이 된다.’고 했다. 이 괘의 뛰어난 추진력을 가진 상층부는 하층부의 완벽한 보좌를 받아 이상사회 건설을 위한 역사적인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이다. 하층부에서 상층부를 보좌하는 것은 육이(六二)이다. 육이는 구오(九五)의 지지를 받아 엄청난 일을 추진한다. 이때 구삼(九三)과 구사(九四)가 소외감을 느껴 반발하기 쉽다. 육이(六二)가 성급하게 대항하면 저항에 부딪쳐 좌절한다. 참고 기다리면서 서서히 추진해야 한다. 그래서 ‘군자가 참고 견디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이상사회(理想社會)는 구성원 각각의 마음에서는 모두 하나가 되면서 현실적으로는 구별되는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때 가능하다. 모두 하나가 되는 역할을 여기서는 ‘유족(類族)’이라 했고, 각각 구별되는 삶을 유도하는 역할을 여기서는 ‘변물(辨物)’이라 했다. (이기동 역해,『주역강설』에서)
* <전(傳) 4장> ; '본말(本末)’의 장(章)
04 子曰 聽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此謂知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송을 들어 판결하는 데 있어서도 나는 다른 사람과 같으나 (그것보다 나는) 반드시 소송이 없어지게 할 것이다.”
진실함이 없는 자가 그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없는 것은 크게 백성의 뜻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근본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근본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강설] ———
밝은 덕으로 서로 한마음이 되어 남을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이다. 인간이 이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투쟁하게 되는 소송을 많이 하게 된다. 공자(孔子)는 소송에서 그 내용을 듣고서 그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본 마음을 회복시킴으로써 아예 소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주역으로 읽기] ———
『주역(周易)』에 송괘(訟卦)가 있다. 천수(天水) 송(訟)이라. ‘송사가 일어나는 형국이라. 양심만 믿고 추진하면 막혀서 애를 태울 것이니 도중에 중단하면 길하지만 끝까지 하면 흉하다.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고 큰 강을 건너는 것은 이롭지 않다. 단(彖)에 말했다. “송(訟)은 위는 굳세고 아래는 험하니 험한 상태에서 굳세니 송사가 된다. …” 상(象)에서 말했다. “하늘[天 ☰]이 물[水 ☵]과 어긋나게 가는 것이 송사가 되는 것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일을 할 때에 처음을 잘 헤아린다.(”訟, 有孚窒惕, 中吉, 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彖曰, 訟, 上剛下險, 險而健, 訟. …(중략) 象曰, 天與水違行, 訟, 君子以作事謀始.)’
대개의 경우 송사(訟事)를 벌이는 것은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결코 의로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송사는 적절한 선에서 중지해야 한다. 상(象)에서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일을 할 때에 처음을 잘 살핀다.’고 했다. 그래서 공자는 송사로 시비를 가리는 것보다 한마음으로 상보(相補)하여 송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이다.
☆… 글의 본문 끝에서 ‘此謂知本’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주자(朱子)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여 뒤의 것을 연문(衍文)이라 하였다. …그리고 주자(朱子)는 이 장(章)을 ‘본말(本末)’에 대한 설명이라 하여 독립시켰는데,『대학(大學)』의 <전(傳)> 10개 장(章)은 모두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의 해석으로 되어 있는 점을 보면 이 장(章)은 맥락이 통하지 않는다. 조선 전기의 학자 이언적(李彦迪)은 그의 저서『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에서 이를 본말(本末)에 대한 설명으로 보지 않았으며, 장(章)으로 독립시키지도 않았다. (이기동『대학중용강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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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손박사님의 명강의를 전문가 수준으로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는 것에 감사드리고 열정과 노력에 존경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