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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6강> (2016.02.15)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周易』으로『大學』읽기 * (4)
☆…『대학(大學)』은 <경(經)> 1장(章)과 <전(傳)> 10개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傳)> 10개 장(章)은 경일장(經一章)에 나오는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을 덕목별로 구체화하여 서술하고 있다. 주자(朱子)는『대학장구』에서 <전1장>에는 삼강령(三綱領)의 ‘명명덕(明明德)’을, <전2장>에는 ‘친민(親民)’을, <전3장>에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을, <전4장>에는 ‘본말(本末)’을, <전5장>에는 팔조목(八條目)의 ‘격물보장(格物補章)’를, <전6장>은 ‘성의(誠意)’를, <전7장>은 ‘정심(正心)·수신(修身)’을, <전8장>은 ‘수신(修身)·제가(齊家)’를, <전9장>은 ‘제가(齊家)·치국(治國)’을, <전10장>은 ‘평천하(平天下)’와 ‘총론(總論)’을 서술하고 있다. 오늘은 <전6장>에서 <전9장>의 내용을 공부했다. 정리한 분량이 길어서 그 내용을 (1)부 <전6장>~<전8장>, (2)부 <전9장>으로 나누어 올린다.
<經一章>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오늘의 대학(大學) 읽기 — 전(傳) 6~8장
* <傳六章> —‘성의(誠意)’의 장(章)
06-01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니,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처럼 하며 좋은 빛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족(自足)하는 것이라 일컫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에 삼가는 것이다. [毋 말 무]
[강설] ———
마음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성(性)이고, 이 성(性)이 발동하여 구체화된 마음이 정(情)이다. 의(意)는 성(性)에서 발동했으나 정(情)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의 마음, 즉 성(性)에서 정(情)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마음을 말한다. 성(性)이 구현된 정(情)에는 선(善)한 정(情)과 악(惡)한 정(情)이 있다. …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성(性)에서 정(情)으로 가는 과정이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고 성(性)의 순수함이 그대로 발현되도록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뜻을 정성스럽게 하지 못하면 성(性)이 발현할 때 왜곡되면 악한 정이 되는데, 이는 자신의 본마음[性]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므로 이를 따른다는 것은 결국 자기의 본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이 장(章)에서 주목해야 할 구절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毋自欺)'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상태에서 자족[自謙]하는 것이니 남과 비교하거나 얄팍한 계산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순수한 사람은 ‘혼자 있을 때에도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기 위해 늘 조심한다.(愼其獨)’
☆… 다산(茶山)은 이 신기독(愼其獨)으로, 18년 동안의 고독하고 처절한 유배생활 속에서도 심신의 평정을 기하여 위대한 저작(著作)을 남겼다. 비록 정치적으로 내쳐진 일신이지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늘이 보고 있다!”고 여겨 늘 하늘의 뜻을 정성스럽게 받들며 살았다. 『자치통감(自治通鑑)』을 쓴 사마광(司馬光)은 “혼자 있을 때, 행동하거나 말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갈파하기도 했다. 성의(誠意)를 다하여 신기독(愼其獨)으로 수신의 전범을 보여준 것이다.
06-02 小人閒居 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 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 君子必愼其獨也
소인(욕심이 많은 사람)은 한가하게 있을 적에 착하지 아니한 것을 하여, 이르지 아니하는 데가 없다가 군자를 본 후에 싸악 그 착하지 아니함을 가리고 그 착함을 드러내지만, 남이 나를 보는 것이 나의 허파와 간을 보는 듯하니 그러한즉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이것이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진리를 구하는 사람)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음에 삼가는 것이다. [揜 가릴 엄]
[강설] ———
소인(小人)의 삶은 이중적이다.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선하지 않은 모습을 지내다가, 남이 보면 마음의 행위가 다르다. 그러나 가식(假飾)으로 꾸미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면 밖으로 드러난다.(誠於中 形於外)’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君子]는 홀로 있을 때에도 ‘반드시 그 마음속의 뜻을 정성스럽게 하기 위하여 조심한다.’
君子必愼其獨也 (안동 <도산서원> 유물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는 퇴계 선생의 친필)
06-03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
06-04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右傳之六章 釋誠意>
증자가 이르기를, “열 눈이 쳐다보는 바이며,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엄하도다.” 하였다. …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德)은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펴지면 몸이 편안하게 펴지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
[강설] ———
욕심 많은 사람[小人]이 홀로 마음속에서 꾸미는 일은 남이 모를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눈과 손가락이 무섭지 아니한가. … 덕(德)은 덕(悳)이니. 직(直)과 심(心)의 합자이다. 그러므로 덕(德)은 곧게 발현되는 마음의 능력이다. 마음이 성(性)에서 곧게 발현되도록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性)에서 발현되는 과정에 있는 의(意)가 굴절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굴절되게 하는 외적 요인, 즉 이기적으로 계산하는 마음의 작용을 제거하는 것이다. 전자는 성의(誠意)이고 후자는 지경(持敬)이다. 이 장(章)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이다.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이룬 덕(德)은 결국 몸을 건강하게 하고 윤택하게 한다. 몸이 바른 마음을 따라 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은 넓어지고 몸은 편안하게 펴진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뜻 있는 사람이라면 본래의 참다운 뜻을 정성스럽게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傳七章> — ‘정심(正心)·수신(修身)’의 장(章)
07-01 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 하는 것은, 몸이란 (마음속에) 성내거나 노여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있으면 그 바른 것을 얻지 못한다.
[강설] ———
사람이 수신(修身)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마음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의(誠意)를 통해서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하게 되어서 늘 마음이 반듯하게 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이 정심(正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 마음을 해치는 것이 있으니, 지나친 노여움[忿懥]이나 두려움[恐懼], 지나친 즐거움[好樂]이나 근심[憂患] 등이 바로 이것이다. 마음을 해치는 것이니 항상 ‘마음의 우물치기’를 하여 늘 존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07-02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
07-03 此謂修身 在正其心 —<右傳之七章 釋正心修身>
마음이 (몸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며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몸을 닦는 것이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음을 일컫는 것이다.
[어구 해석] ———
~‘焉’은 어조사로서 음은 ‘언’인데, 이 ‘焉’은 대체로 장소를 나타내는 술어 뒤에 오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거기에’라고 하는 장소의 의미를 약간 내포하고 있다. 문장의 첫머리에 나오면 ‘어디에서’ 혹은 ‘어찌’라는 의문사로도 쓰인다.
[강설] ———
마음은 육체를 조종하는 작용을 한다. 마음을 두지 않으면 육체의 감각기관은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 이것이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수행의 전제로 두지 않던가.
* [주역으로 읽기·1] ———
<수신(修身)의 장>에 해당하는 주역의 괘는 (48) 수풍(水風) 정(井)이다. 우물 밑에는 나무로 만든 정(井)자 모양의 구조물이 있어 정(井)이 된 것이다. 상(象)에서 말한다.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이니,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백성을 위로하고 서로를 권하도록 해야 한다.(象曰, 木上有水, 井, 君子以勞民勸相.)” … 우물을 오래 쓰다보면 이끼도 끼고 더러워진다. 그래서 수시로 ‘우물치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지하에서 솟아나는 원래의 맑은 물이 솟아나와 그대로 보존하도록 해야 한다. 어디 우물뿐인가. 우리의 마음도 살다보면 더러워지기 십상이다. 청정한 하늘마음을 늘 유지하고 또 회복할 수 있도록 수시로 자기 수양(修養)을 통해 깨끗하게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신은 우리 마음의 우물치기이다.
* <傳八章> —‘수신(修身)·제가(齊家)’의 장(章)
08-01 所謂齊其家 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이른바 그 집을 안락하게 하는 것이 그 몸을 닦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그 친하고 사랑하는 것에 편벽되며, 그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에 편벽되며, 그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것에 편벽되며, 그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에 편벽되며, 그 오만하고 게을리하는 것에 편벽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좋아하되 나쁜 점을 알고 미워하되 그 좋은 점을 아는 자는 천하에 드물다.
[어구 해석] ———
‘人之其所親愛而~’의 ‘之’는 어조사 ‘於’(~에)와 같이 쓰였다. 뒷문장의 ‘之’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而辟焉’에서 ‘辟’(벽)은 ‘편벽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辟’(벽)은 이외에도 ‘피하다[避]’, ‘비유하다[譬]’는 뜻으로도 쓰인다.
[강 설] ———
그 집안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자신의 몸을 닦는 것[修身]이다. 여기에서 ‘가(家)’는 단순한 하나의 가정이라는 의미와 함께 ‘집안’이라는 의미를 지닌 친척이나 일하는 가속을 포함한 일가(一家)나 가문(家門)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이나 일가의 구성원을 대할 때 좋은 감정이나 나쁜 감정을 앞세워 상대방을 대하면 원만한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마음으로 공경(恭敬)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마음가짐이 곹 수신이요 그 결과로 가정이 행복하고 안락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나 미움, 두려움과 공경함은 물론, 애틋하고 불쌍히 여기거나 게으르고 소홀하게 대하는 것은 모두 불만과 불안을 야기하는 것들이니 온전한 한마음으로 가정에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당한 이유로 좋아한다면 좋아하면서도 그의 나쁜 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의 좋은 점을 알고 지적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고 한 것이다.
* [제가(齊家)와 관련된 퇴계 선생의 일화 (1)] ———
퇴계(退溪) 선생이 상처(喪妻)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권질(權礩)이라는 명망 있는 분이 유배를 가면서 ‘약간 정신이 모자라는’ 자기의 딸을 퇴계에게 부탁을 했다. 퇴계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재취(再娶)의 아내로 맞이했다. 많은 일화 중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제사상에 올린 배를 한 개 슬쩍하여 남모르게 혼자 먹고 있었다. 조상의 제사상에 올린 경건한 음식에 손을 댔다는 것은 근신과 예절의 가풍이 엄존하는 집안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조용히 아내에게 다가간 퇴계가 차분한 목소리로 ‘왜 그랬소?’ 하고 물으니 ‘배가 고파서… 배가 먹고 싶어서요…’ 하고 말을 흐렸다. 퇴계는 몸소 배를 하나 더 가지고 와서 손수 깎아서 아내에게 주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퇴계는 아내의 부족함과 무례를 조금도 천박하게 여기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아내를 공경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 그래서 집안은 늘 화목하고 따뜻했다.
* [제가(齊家)와 관련된 퇴계 선생의 일화 (2)] ———
퇴계(退溪) 선생의 손부(孫婦)가 서울에서 출산을 했다. 난산 끝에 아기를 낳았지만 산모의 젖이 나오지 않아서 아이는 여위어 갔다. 안동에 있는 퇴계가 아기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전갈을 받고 노심초사했다. 그때 마침 집안의 하녀가 출산을 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이 산모를 서울로 보내어 죽어가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자고 권했지만, 퇴계는 단호히 거절했다. ‘생명의 귀천(貴賤)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서울의 아기는 결국 죽고 말았다.
08-02 故 諺有之 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
08-02 此謂身不修 不可而齊其家
그러므로 속담에 이런 말이 있으니 ‘사람은 그 아들의 나쁜 것을 알지 못하고 그 싹의 자라남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 이것이 몸이 닦이지 아니하면 그 집을 안락하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강설] ———
사랑하는 자식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랑스럽다. 그래서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식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잡초의 싹은 그 자라는 것이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자라는 것이 매우 빨라서 순식간에 곡식을 해치게 된다. 눈앞의 사랑에 몰입하다 보면 자식의 일생을 망치게 되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이는 스스로 몸이 닦여지지 않아서 정(情)이 편벽되어 그 집안을 안락하게 만들 수 없다고 하는 까닭이다.
* [제가(齊家) — 주역으로 읽기·1] ———
[1] <제가(齊家)의 장>에 해당하는 주역의 괘는 (37) 풍화(風火) 가인(家人)이다. 하층부[☲]는 불[火]이니 밝고 따뜻함이요, 상층부[☴]는 바람[風]이니, 안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바람을 타고 온 집안에 번져나가는 형세이다. 그래서 단(彖)에서 말한다. “가인은 여자가 아래에서 바른 자리에 있고, 남자가 밖에서 바른 자리에 있어, 남녀의 위치가 바로 되는 것이 천지의 큰 이치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워야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되며, 집을 바로 잡아야 천하가 안정이 된다.(彖曰, 家人,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 男女正, 天地之大義也. 家人有嚴君焉, 父母之謂也.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 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그리고 상(象)에서 말한다. “바람[風 ☴]이 불[火 ☲]에서 나오는 것이 가인(家人)이다. 군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말에 실속이 있고 행동에 일정함이 있다.(象曰, 風自火出, 家人, 君子以言有物而行有恒)” 결국 개개인의 수신을 통하여 제 역할을 할 때 가정은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 [제가(齊家) — 주역으로 읽기·2] ———
[2] <제가(齊家)>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주역의 괘는 (54) 귀매(歸妹)이다. 뇌택(雷澤) 귀매(歸妹)라. 소녀[☱]가 장남[☳]에게 시집가는 형상이다. 부부의 연(緣)을 맺는 것은 생명 창조의 시작이며 부부지도은 오상(五常)의 근본이 된다. 부부가 있은 연후에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으며 그것이 가정을 이루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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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강의록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부에 도움을 받게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강의록을 통해서, 또한 선생님의 好學 君子의 모습에서 저 또한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늘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 손기원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