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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중 예수의 말씀 가운데 특히 심상히 넘겨 버릴 수 없는 한마디 간단한 말씀이 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는 물론 사람들에게 육신의 귀가 없어서 하신 말씀은 아니다. 예수의 말씀과 사업을 그릇되게 천박하게 이해하고 믿고 따를 것을 경계하여 하신 말씀이다. 믿고 순종하기보다는 제멋대로 이를 이용할 것을 경계하여 하신 말씀이다.
민중 속에 그의 명성이 높아가고 많은 무리가 육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를 둘러싸고, 심지어 그를 왕으로 삼으려는 무리까지 나오게 되었을 때, 그는 그의 말씀을 사람들이 직접 알아들을 수 없도록 더욱 비유로써 가르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 같이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사람들이 제멋대로 쉽게 알아듣거나 그릇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마태 13: 13-16). 그가 그의 기적을 퍼뜨리지 말도록 엄히 경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후일 그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조용히 그의 사업의 깊은 뜻을 소수의 그의 제자들에게 피력하고, 이제 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을 것이나 또한 3일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수제자 베드로는 이를 제지, 만류하다가 “악마야 물러가라”는 심한 질책을 들었다.
예수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에 대해서보다 그를 따르는 신앙자들에 대해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나같이 신앙과 진리에 대한 판단력과 이해, 체험이 부족한 자는 소위 세상 기독교와 정반대로 걸어가는 것이 신앙 이해와 신앙 생활에 큰 틀림이 없을 것으로 알고, 그렇게 나의 신앙 코스를 잡고 걸어간다.
그들이 교회에 진력할 때 나는 홀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는 밀실에서, 그들이 표적을 구할 때 나는 믿음만을, 그들이 감정적인 광신(狂信)에 빠질 때 나는 성서 연구로, 그들이 세상을 쳐다볼 때 나는 내세와 천국만을, 그들이 사업에 열중할 때 나는 복음만을, 그들이 사람을 추종할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그들이 육체의 치병에 열중할 때 나는 영혼의 치유, 죄악의 치유만을, 그들이 현실에 급급할 때 나는 영원의 생명에, 그들이 돈에 연연할 때 나는 가난을 사랑하는 일에, 그들이 기독교 신학과 사상에 열중할 때 나는 신앙생활과 순종을, 그들이 책략을 구할 때 나는 정의(正義) 외길로, 그들이 율법적일 때 나는 양심적으로, 그들이 거짓을 용납할 때 나는 순 도덕적으로, 그들이 세상에 굴복할 때 나는 싸움의 길로, 그들이 세상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할 때 나는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분은 이렇게 코스를 잡아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성서연구』 제51호 (1955년 4월)
첫댓글 햐~~~(입이 안 다물어짐)
"그들이 율법적일 때 나는 양심적으로, 그들이 거짓을 용납할 때 나는 순 도덕적으로, 그들이 세상에 굴복할 때 나는 싸움의 길로, 그들이 세상에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할 때 나는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은 예수입니다.
'예수에게로 들어가라'는 예수를 따라 예수의 '삶을 살라'입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작은 자들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옆에서 굶주리고 있는 자에게는 당장 쥐어주는 빵 한조각이 양심입니다.
세상과 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