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우리의 현실과 이상과 사명
얼마 전 서울에서 1, 2년 사업에 종사하던 지우(誌友) 이 군이 들러 그동안의 사업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군은 우리 사회란 아직도 날치기와 브로커밖에 성공할 수 없는 사회라고 했다. 나는 영국 국민의 유일한 상도(商道)인 정직과, 실리적인 중국인의 거래 철칙인 신의(信義)를 생각하고 우리 민족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 지우 되시는 윤 선생을 대했다. 선생은 근래 악인의 꾀에 빠져 적지 않은 금전의 손실로 심려 가운데 건강을 해치고 계셨는데, 우리같이 못나고 어리석고 약한 자가 이 생사람의 눈도 빼먹는 악독한 현실에서 오늘날까지 이렇게나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 덕분이라고 하시며 나의 손을 굳게 잡으셨다.
그런데 이 군과 윤 선생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심중에는 순간적으로 우리의 현실과 이상에 대한 높은 영감과 확신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편에서 다시 한번 윤 선생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렇다, 우리는 악인의 꾀와 성공에 반하여, 선의(善意)의 실패와 비참에 하나님의 기적이 확실히 따르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를 믿고 사는 것이 신자인 것이다. 신앙생활인 것이다. 그리하여 불의와 악의와 허위, 거짓과 간계가 판을 치는 우리의 이 현실에서 온갖 손실과 비참과 희생과 눈물과 낙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기적에 의한 정직․선의․믿음․근면․인내․신의 등을 쌓아올려야 한다.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엄밀히는 하나님의 뜻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만 구하라는 것이다. 그 때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신자는 우리의 악랄한 현실과 우리 자신의 실패와 비참에 좌절․실망한 나머지 현실에 굴복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이야말로 악마에게 굴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몇 해 전 어느 외국인이 내게 한 말이 있다. 일본이나 미국은 이제 그야말로 사람의 욕망에 대한 지상천국으로 화하여 하나님도 신앙도 필요 없는 나라가 되고 있으나, 한국이 처한 비참한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종교가 설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아니 그의 기적을 통해 여기 당신의 의의 나라를 세우려 하시는 것이다.
그 옛날 그리스 반도에 그리스인들은 학문의 꽃을 피웠다. 고대 강대국들의 육교(land bridge)로 불리던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 토라를 기반으로 도덕의 나라를 세웠다. 우리는 오늘날 한반도에 하나님의 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 나는 이 이하의 이상(理想)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이상의 영광을 생각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처한 이 비참, 이는 우리의 이상과 사명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성서연구> 제113호 (1963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