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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채 선생께서 노평구선생 추억집(<노평구전집> 별권)에 기고한 글을 보내주셨기에 여기에 올립니다.
노평구선생 추억집은 조명한 교수, 김성기 선생 두 분께서 편집을 맡고 계십니다.
원고 모집에 관한 사항은 이 카페 '소식 및 알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노평구 선생님을 추억하며
"다카하시 사브로 선생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그 분의 "무교회와 교회"라는 책을 아주 우연히 발견하여 읽고는 이렇게 노선생님께 여쭈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무교회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후 약 3~4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때인가 합니다.
무교회신앙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며 집회를 쫓아다니던 때이어서 사실 교회에 대한 인정 여부를 떠나 같은 하나님 믿는다는 곳인 데 그런 교회와의 화합도 기독교의 관용과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고……… "내 일본인 친구분인 데 그 분은 오래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누워계시지요."
이 말씀만 하시고 더 이상 말씀을 연결하지 않으시길래 제 질문을 다시 풀어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 분의 책을 우연히 보았는 데 교회와의 화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분은 교회를 좋아하시지요."
그 이상의 말씀을 기대하고 있던 저는 그 말씀 다음 굳게 다무신 입술을 보며 더 이상 질문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YMCA 집회에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 두 사람이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사람 모두 교회의 높은(?) 직책, 아마 장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공식적인 집회시간이 끝나고 감화회를 한사람씩 하는 데 아무래도 그 분들의 말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강의 수준이 꽤나 높은 줄 알았는 데 별로이네요. 우리가 교회에서 공부하는 내용보다도 수준이 낮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희도 말 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외에도 기억은 안나지만 몇 가지 무례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해서 교회와 집회를 비교하며 수준 운운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도 여러 질이 있다더니 정말 그런 사람들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려니 뭐라 말을 해야 할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 때, 건너편에서 침묵을 지키고 계시던 노선생님께서 특유의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신 분들은 교회에서 큰 일을 많이 하시는 분들 같으신 데 앞으로는 이곳에 나오시지 말고 다니시는 교회에서 교회를 위하여 계속 큰 일을 하시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이곳에서 우리 일을 하겠습니다."
한 번은 함석헌선생님에 대하여 여쭈어 본 적이 있는 데 답변은 그저 "그 분은 한국이 낳은 천재시지요" 라는 답변 이외에는 더 이상 듣질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때로 무교회잡지나 집회에서 언급되는 함선생님에 대한 내용을 접하며 위와 같은 노선생님의 모습이 간절히 떠 오른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신앙이 중요하고 귀하면 남의 신앙도 그런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신앙이 아무리 확고하며 확실한 복음에 입각해 있다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어디나 주관적이 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잣대로 남의 신앙을 재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고 무엇보다도 종교다원주의시대에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있는 자들을 볼 수 있겠냐?고.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내용중 가장 중요한 점이 겸손이 아닌가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사랑도 바로 이러한 겸손이 바탕이 되어야 존재할 수 있는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선생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말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저로서는 참으로 겸손한 분이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겸손이 참으로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인 것을 그 분이 뿜어내시는 잔잔하고 따스한 사랑의 체취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해 동안 뵈면서 단 한번도 아들도 막내아들같은 저에게 하대말 한 번 하신 것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늘 존대를 하시며 격려와 사랑으로 저의 앞 날을 걱정하여 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한 때 일본 전국을 다니시며 강연하시고 또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세계 여러곳곳을 여행하시던 시절을 아련한 추억속에 기억하시곤 하셨습니다. 당시는 참으로 좋았고 즐거웠는 데 이제 늙어 생각하니 못다한 공부가 아쉽다는 후회의 말씀을 종종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늘 젊은이들에게 학문하는 신앙, 단순한 열정보다는 머리에 냉수를 치며 하는 신앙을 신앙, 단순한 열정보다는 머리에 냉수를 치며 하는 신앙을 말하는 무교회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말씀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신 지금 아쉬움으로 많이 남아있는 것은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이 1996년 6월로서 연세가 85세 되셨을 때여서 그 유명하셨다는 육성 강의을 한 번도 직접 들어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을 추억하며 명복을 빕니다.
전 희채 ㈜울트라보드 대표이사
첫댓글 제가 교수님께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때 자세한 설명을 안 하시길래, 모르는 건 아니실테고, 설명하기가 귀찮으신가? 네 힘으로 알아보라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 노선생님도 그러셨던가 봅니다. 그래서 열심히 자료 읽으며 하나씩 깨우쳐 가는 중이예요.ㅜㅜ 임교수님은 안 그러시던데...
제가요? 저도 몰라서 그랬겠죠..^^ 그나저나 <노평구선생 추억집>은 영영 사라진건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