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유감
지난 날 나의 산책은 대개 독서 산책이었다. 일제시대 10년 동안 도쿄에서는 매일 한두 시간의 무사시노(武藏野) 산책으로 꽤 많은 독서를 했다. 큰 것만 해도 신구약성서, 우치무라 간조 전집, 단테의 신곡, 칼라일의 프랑스혁명사, 기조의 문명사, 랑케의 세계사, 칼 힐티의 논집 등을 읽었다.
해방 후에는 용산에서 효창공원이 산책 장소였고, 6·25 후는 대개 보문동이 거처였으므로 낙산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근래는 낙산도 판잣집으로 들어차 이를 못하게 되었다. 하긴 판잣집도 동정심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건축미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요, 웅대한 북한산의 조망을 막는 것도 아니니 산책에 방해될 것은 없다. 그러나 부끄러운 말이지만 여기서는 결국 오물 때문에 이를 못하게 되었다.
근래 나의 산책로는 돈암동 버스길을 넘어 신흥사 앞을 통과, 고개 넘어 약수터로 뻗었다. 그리고 전날의 독서 산책이 요즘은 방에서 읽는 성서주해의 사색으로 변했다. 단 정릉 쪽 북한산의 조망이야말로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나 로마의 일곱 언덕 못지않은 세계적인 경관인데, 결국 여기에서도 오물 때문에 산책을 하지 못할 정도이다. 길이고 숲이고 개천이고 샘터고, 한국인이 접근한 곳은 모두 휴지와 오물 범벅이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나무와 화초를 꺾는 것이 마음 아파 견딜 수 없다. 소풍객은 대개 중류 이상인데 어떻게 된 일인가? 나 자신은 가급 휴지를 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 나무는 꺾지 않도록 타이르고 있다. 의무교육 하나만 잘해도 이런 문제는 곧 해결될 듯한데, 이도 결국 국민 성격 때문인가?
서양 사회에서는 문명의 높고 낮음을 공원 등 공공기관의 청결로써 재고 있다. 유럽의 자연은 인공 자연으로 불린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인도주의의 척도가 된다. 우리의 자연에 대한 불결과 침범은 결국 우리의 삶의 터전인 자연에 대한 우리의 천시요 학대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를 축복하시고 사람에게 넘겨 지배하도록 하셨다. 자연을 가꿀 줄 모르는 우리란 인간성에 큰 결함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한다. 도대체 자연을 더럽히며 무슨 아름다움이며 예술인가? 단테는 예술을 하나님의 창조물인 예술에 대한 모방이라고 했다. 자연을 아낄 줄 모르는 자의 성격은 대체로 잔학하다. 일본의 인도주의 작가 도쿠토미(德富蘆花)는 국민의 동물학대와 호전성의 상관관계를 말했다. 칼 힐티는 화초를 말려 죽이는 여성과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불결의 중대한 문제점은 이것이 부지불식중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결국 도덕적 죄악에 대한 불감증, 양심의 마비, 옳고 그름의 혼돈에까지 간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비정은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에 대한 무시로서, 우리의 모든 질투와 싸움의 근원이 된다.
(성서연구 1964년 10월 제126호)
첫댓글 헐, 저는 누구보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집안의 화초는 잘 말려 죽입니다.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귀찮아서요. 반면, 제 동생은 얼마나 정성스레 화초를 가꾸는지, 우리집에서 다 죽어가는 화초를 가져다가 싱싱하게 잘 살려 놓더군요. 취향이 다른 탓 아닌가요. 암튼, 무레사네 가면 쓰레기 잘 버리고 종이컵도 한 개씩만 씁시다.^^
27일 춘천, 임교수 재가가 떨어졌어요...^^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 있으니 그 사이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불안..불안..
동감이어유..하지만 언제나 승리는 낙관주의자의 것이니까...^^
같은 마음입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가꾸신 산천인데, 우리 그리스도인도 참여하여야 하지요
자연을 더럽히는건 양심의 더럽힘과 상관관계가 있는가봐요...
화초를 말려죽이는 여자와 결혼 하지 말라 하신 말씀은...ㅋㅋㅋ 좀 극단적이지만,
일리가 있네요. 가엾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 즉 사랑이 없기 때문이죠.
근데 교수님 방법을 몰라서 인지는 몰라도 화초 기르기 성공하고 싶은데,
가끔은 죽여요. 돌보지 않아서는 아닌것 같고 너무 물을 많이 줘서 그런가?
암튼 잘 키우는 것도 있고 죽이는 것도 있답니다.
저의 아파트 베란다에는 조건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화초만 기르고 있습니다.
무교회주의 초창기 선생님들은 다 넉넉하지 않으셨던 것 같고, 있는 것 조차 베푸시고
사신 분들 같습니다. 그런 훌륭하신 분들을 좀 일찍 알고 뵈었으면 좋았을것을...
내 맘이 그 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