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또 보문동에서 상도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근 한 달 동안 후보지를 찾고, 또 적은 돈에 적당한 방, 그리고 좋은 주인을 찾아 헤맸다. 복덕방과 싸우기도 수 차였다. 그것도 여자 복덕방 주인과. 또 전에 살던 집에 대한 석별의 정, 이사 후의 불안감도 상당히 오래 간다.
이번은 최후 후보지로 수유리와 상도동이 물망에 올랐는데, 결국 경치만 쳐다보고 살 수도 없는 처지라 가처(家妻)의 일 관계도 있고 해서 상도동으로 정했다. 수유리는 북한산 기슭으로, 백운대를 눈앞에 바라보는 화려 웅대한 경치가 지금도 마음을 끈다. 그러나 상도동도 정작 와보니, 이솝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처럼 들리긴 하겠지만, 관악산 밑 수줍은 서민적 야산 경치가, 북한산처럼 사람을 위압하지도 않고, 산보와 사색과 공부에 알맞은 조용한 곳임을 발견하게 되어, 이제 수유리를 잊고 마음도 좀 안정을 찾게 되었다.
각설하고, 이번 이사에서 가장 난처했던 것은 아내가 이사 수속 때문에 구청에 갔다가 돌아와서, 서울에서는 아마 우리만큼 이사를 많이 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대장을 뒤지던 직원이 말했다고 하며, 집 없는 푸념을 한바탕 또 털어놓을 때였다. 사실 해방 후 용문동 화재를 기점으로, 6.25사변 때 대구, 부산, 대전 등지의 피난살이까지 넣으면 아마 족히 수십 차례는 될 것이다. 사실 나의 책들은 공부보다는 이사로 더 많이 닳았다.
이사 철학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사를 나무랄 일만도 아니다. 이사야말로 무엇보다 사람을 여러 가지 생활상의 타성에서, 물질적인 안정감과 인간적인 의뢰심, 무익한 지연, 편협, 파당성 등에서 해방시켜, 관용성, 친애, 동정, 사교, 적응성, 고독감 등, 범인류적인 정신과 종교적 신앙심을 함양토록 한다. 또 사람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연, 풍물, 역사, 제도 등에 의해 크게 인성을 계발한다.
우리의 경우 길게 보면 해방 후 이북민의 피난이 우리의 민족적 고질로 되어 있는 지방관념, 파당성, 양반근성 등의 해소에 힘이 될 것이다. 역사상 유럽 민족의 우수성과 진보성은 그들의 빈번한 이동과 교류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섬나라 근성에 비해, 영국인은 같은 섬나라면서도 이와는 정반대로 웅비하여 근대 세계에서 해가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특색 역시 전체 유럽 여러 민족들의 이동과 이주에 의한 것이며, 요즘은 실로 여기에 인류의 가장 우수한 인적 자원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앞으로 미국 문명에 무슨 인류적인 것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실로 이 때문일 것이다.
괴테는 세계를 자기 집으로 삼는 영국인이 무섭다고 말했는데, 영국인보다 더욱 이사를 많이 한 민족은 역사상 디아스포라―이산자(離散者)―로 불리는 유대 민족일 것이다. 시조 아브라함과 족장들의 역사가 무엇보다 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리하여 오늘날 이들은 종교와 진리와 경제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는 또한 세계 지배 이상의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이것이 예수를 통해 복음신앙, 천국신앙, 영적인 인류와 우주완성의 신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점 그리스도인이란 히브리서 11장의 신앙영웅 열전이 보여주는 대로 철저히 천국 시민권의 소유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의 나그네로 사는 자이다. 아브라함도 예수도 바울도 다 그러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생활이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생각난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3계 편력도 떠오른다. 이사라고 하지만 크게 보면 천국 아버지 집으로 가는 인생길, 아니 연습인 것이다.